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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3

메모장에 적어놓은 전화이야기 둘

 

1.

전화를 했다.

무척 진지하고,차분하고,정 많고,성실한 친구다. 내가 서른, 그친구가 스무살때 처음 보았는데, 이제 그친구가 서른이 되었다.  여전히 부드럽고,정감있고,차분한 어투다.  사는 이야기, 공부하는 이야기, 전망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했다. 이전에(재작년) 만났던 이야기도 하고,그때 **의집활동에 대해 내가 말했었는데 그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조금만 따뜻하게 받아주어도 요즘은 가슴이 울컥하고 감동받는다. 왜그런지 모르겠다.  부산에 자주 가는데, 앞으로는 한달에 두번정도 '*온'에 갈 예정이다고 말해주었다. *온이 어떤곳인지도 설명하고, 괜찮다면 한번 같이 가는것도 좋겠다고 말했다. 무척이나 호의적으로 듣는다. 조만간 부산에서 한번 만나기로 했다. 

 

2.

전화를 했다.

전화목소리가 약간 사무적이다. 덜컥 불안하다. 내가 전화하는게 혹시 싫은게 아닐까? 알고보니 방금 수술을 끝내고 나오는 길이라 한다. 다시 목소리가 밝아진다. 안심이된다. 10여분간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했다. 주로 생협,의료,연대,소통,지부,모임 뭐 이런 단어들이 사용되는 대화였다.
전화 끝무렵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바빠도 밥은 꼭 챙겨드세요.." .
아!.. 아찔하다. 나는 그 친구가 밥은 잘먹는지 이런게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수술을 끝내고 나왔다는 사람에게 힘들겠다는 위로의 말 하나 하지 못했다.
그냥 내가 할말만 했다. 내생각, 내계획만 이야기햇다.
친구는 나에게 의례적으로 한말이었을것이다. 그래도 밥을 먹어야만 살수있는 나라는 인간에 대해 관심을 던져주었다.
나는 무언가? 나도 그 친구에게 궁금한것이 많다. 어떤생각을 갖고 있는지? 지금 하는일은 어떤 모습인지, 앞으로 계획은 어찌할것인지? 등등..
하지만 그 친구가 밥을 잘먹는지? 일이끝나고 얼마나 피곤한지? 이런것은  궁금하지 않았다.
요즘은 간혹 눈물이 나려할때가 있다.
하지만 슬프게도,  만져보면 실제로 물이 눈에서 나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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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모악 편지(여덟번째) -김영갑

여덟번째 편지 [두모악 - 2005/04/08]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누구의 간섭도, 눈치도 없이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면 외로움과 궁핍함은 감수해야 한다. 외로움과 궁핍함을 즐기려면 무언가 소일거리가 있어야 한다.

즐거운 소일거리가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간장, 된장, 고추장만 있으면 돈이 없어도 하루가 상큼하다. 몸만 움직이면 자연 속에 먹을거리는 무진장이다. 굶주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자연에 묻혀 지내는 한 돈 걱정은 없다. 문제는 소일거리다. 365일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소일거리만 있으면 된다.

제주도의 속살을 엿보겠다고 동서남북 10년 세월을 떠돌았다. 그러고 나니 제주도가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디서 바라보는 해돋이와 해넘이가 아름다운지, 제주 바다는 어느 때에야 감추었던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지. 나름대로 최상의 방법들을 찾아내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숲보다는 나무로, 나무보다는 가지로 호기심이 변해갔다. 계절에 따라, 기상의 변화에 따라, 시간대에 따라, 보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 풍경은 시시각각 달라진다. 그 진면목을 무어라 단정지을 수 없다. 아름다움의 핵심에 도달하는 황홀한 순간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최적의 장소에서 미리 준비하고 대기해야 한다. 그래야 삽시간의 황홀을 맞이할 수 있다. 결정적 순간을 만날 수 있다. 눈을 감아도 밤하늘 별자리처럼 제주도 전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대자연의 황홀한 순간을,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려면 스물네 시간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으려면 삶이 단순해야 한다. 스물네 시간 하나에 집중하고, 몰입을 계속하려면 철저하게 외로워야 한다. 하고 싶은 일에만 몰두하기 위해서는 최소의 경비로 하루를 견뎌야 한다.

부지런하고, 검소하지 않으면 십년 세월을 견딜 수 없다. 십년 세월을 견딘다고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온몸을 내던져 아낌없이 태워야만이 가능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시행착오를 통해 마음의 눈은 떠진다. 진짜는 두 눈이 아닌 심안으로 보아야 한다. 심안은 간절히 원한다고 열리는 것이 아니다. 앞뒤 재지 않고 육신을 내던져 간절히 소망할 때 마음의 문은 열린다. 

365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태풍이 부는 날이나, 바람 한줄기 없는 날에도, 한여름이나 한겨울에도 똑같은 장소에 간다. 앉아서 보고, 서서 보고, 누워서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슬플 때에도, 기쁠 때에도, 혼자서 바라본다. 그렇게 몰입한 후에야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제주만이 간직한 아름다움이 제모습을 드러낸다. 보여 준다고 볼 수 있는 것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보고 느낄 수 있는 심안이 없으면 그저 무심히 지나친다. 지금까지 무심히 지나친 것들 속에 진짜배기는 숨겨져 있었을 지도 모른다. 모르기에 마음 편안히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심안으로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마음이 고요해야 한다. 마음이 고요해져선 혼자 지내야 한다. 삶의 의욕이 넘치는 젊음은 온갖 유혹에 흔들린다. 생각을 하나로 모으려면 잡념이 없어야 한다. 한 가지에 몰입해 있으면 몸도, 마음도 고단하지 않다. 배고픔도, 추위도, 불편함도, 외로움도 문제되지 않는다. 하나에 취해 있는 동안은 그저 행복할 뿐이다. 몰입해 있는 동안은 고단하고 각박한 삶도, 야단법석인 세상도 잊고 지낸다.

 

** 김영갑 홈페이지 http://www.dumoak.co.kr/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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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8

개집에 살며 주는밥 얻어먹으면서

목줄을 풀었다고

들개가 되는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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