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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 - 박영근

결핍
             박영근

1
너무 뜨겁다
내 몸은 온통 결핍의 자리

내가 살고 있는 골목길
봄날 대낮의 시간에
허공에 터져오르는 백목련
눈부신 흰빛을 바라본다

지상의 그늘을 딛고
타는듯 하늘을 빨아들이고 있는
꽃의 환한 자궁

저 밝은 꽃숭어리들은
겨우내 목말랐던 나무의 몸이
제 살을 찢고 피워낸
뜨거운 숨덩어리들

나는 안다, 빈방의 허기와
욕정과 구겨진
원고지와 바람벽에
지친 형광등 불빛에 말라비틀어져
툭 떨어지는
꽃대가리, 결핍은
견딜 수 없는 비등점에서
주검으로 타버리는 것

그리고 갈증으로 허공에 토해놓은 욕망의 흰빛
비와 바람에 이내 사라져버릴 황홀한 꽃자리
그 한없는 반복

너무 뜨겁다
불탄 마음의 자리에 백목련 저 흰빛의
불안한 꿈

한낮이 가고
흰빛도 스러진뒤
나는 나에게 쓸 것이다

결핍은 욕망의 감옥이라는 말

2
나는 저 꽃가지 위에 새 한 마리를 올려놓는다

날개짓도
울음소리도 잊어버린,
저 몸속에
타고 있는 불덩어리

대낮 뜨거운 하늘길에
눈이 멀고 있는

홀로 미쳐가고 있는
맹목조(盲目鳥) 한 마리

* 박영근 유고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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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7

시골은,
시골은 그래
처음에 안그러다가도
어느새 무언가 주눅들고
때로는 울컥하곤하지

돈없고
능력없으니 여기까지
굴러왔을거라고
서로가 아래로 깔아내리지

젊은이는 다들
밖으로 나가려하고
나가지 못할사람들은
가슴에 바위를 얹고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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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 정호승

너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정호승


불국사 종루 근처
공중전화 앞을 서성거리다가
너에게 전화를 건다

석가탑이 무너져내린다
공중전화카드를 꺼내어
한참 줄을 서서 기다린 뒤
다시 또 전화를 건다

다보탑이 무너져내린다
다시 또 공중전화카드를 꺼내어
너에게 전화를 건다

청운교가 무너져내린다
대웅전이 무너져내린다
석등의 맑은 불이 꺼진다

나는 급히 수화기를 놓고
그대로 종루로 달려가
쇠줄에 매달린 종메가 되어
힘껏 종을 울린다
너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 정호승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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