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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기획인터뷰]어떻게 지내세요? #3 쌍용차지부 이창근 - 투쟁이 곧 삶이고 치유의 과정이다

 

  

 [편집자주] 2009년 77일 동안 벌어진 쌍용자동차 공장점거파업 이후 8․6 노사합의가 도출되었다. 2012년 2월11일부로 정리해고 철회 투쟁은 1,000일을 맞았지만 합의는 이행되지 않았고 또다시 조합원이 목숨을 잃었다. 이로 인해 대한문과 전국에 분향소가 설치되었고 먹튀자본과 정부관료들의 돈놀음 속에 희생당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문제가 사회적인 다시 제기되기 시작했다. 5월19일 22번째 죽음을 맞은 조합원의 49제를 지나 22일부로 투쟁 3주년을 맞은 쌍용자동차지부는 또다시 투쟁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사노신은 6월10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되는 '쌍용자동차 해고자 전원복직을 위한 범국민행동 주간'을 맞이하여 쌍용자동차의 정비노동자, 비정규직노동자, 생산직 노동자였던 이들의 기획인터뷰 [어떻게 지내세요?]를 차례로 연재할 예정이다. 함께 투쟁하고 있지만 각기 다른 상황과 사연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쌍용차지부 이창근

6월10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된 쌍용자동차 범국민 행동주간은 희망과 연대의 날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되었다. 여의도에서 시작된 희망걷기는 인도까지 봉쇄한 경찰의 제지로 중간에 흩어졌다 다시 모여야 했고 대한문까지 행진하는 동안 4명이 연행되었다.
그러나 각계각층에서 모인 다양한 참가자들은 다음 날 마지막 일정까지 대한문을 사수하며 다양한 행사를 펼쳐냈다. 동원된 노동자보다는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이번 행동주간은 이름 그대로 쌍용차를 중심으로 희망과 연대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
행동주간 세 번째 날인 6월12일 대한문에서 쌍용차지부 이창근 동지를 만나 이번 행동주간의 의미와 투쟁 속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새로운 전환기를 위한 범국민 행동주간

이번 쌍용차 범국민 행동 주간이 가지는 의미는 어떠한 것인가요?  

 

66월16일 열린 희망걷기

여전히 잘 모이고 있지만 다시 한 번 집중하는 의미, 16일 함께 걷는 행사에 집중하는 의미도 있고요. 실제 내용은, 지금 쌍용차 문제가 여러 단체 시민들 많은 힘이 모아지고 있어요. 그렇지만 새로운 전환기를 못 맞고 있는 게 아닌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필요가 있겠다, 그러한 면에서 행동주간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판단 속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16일 여의도에서 대한문까지의 행진이 불허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원래는 그런 행사는 언론사 특히 경향신문, 참세상과 공동주관 하기 때문에 허가가 나느냐 나지 않느냐 이런 문제는 아니에요. 경찰이 지금 허가 안내고 있는 건데. 그럴 바에 집회신고 내라, 이렇게 얘기하고 있어요.
실무적으로 집회신고 내고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문제 아닌 것 같아요. 쌍용차 이 문제를 경찰이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투쟁 주간사업 끝나면 이후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일단 대한문 분향소를 설치했다는 의미는 이 문제의 끝을 보겠다고 하는 의미이죠. 끝을 보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지금 길거리 강연이라든지 여러 가지 배치들을 하고 있고요. 쌍용차 문제가 더 이상 미룰 이유도 없고 미뤄서도 안 되고 이 참에 해결하겠다, 하는 의지이기 때문에 계속합니다.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희망텐트와 희망광장 투쟁은 전통적인 노동운동의 방식이 아닌데 이러한 운동방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냉정하게 얘기하면 노동운동 주체의 힘없음의 표현이라고 봐요. 만약에 주체의 힘이 있다고 하면 그게 고전적이든, 과거 방식이든 현실적 힘을 가질 텐데. 그것이 고전적이다, 과거 방식이다, 사람들이 평가하는 이유는 그런 방식으로 현실적 힘을 동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조직 동원력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공감, 혹은 공감의 다른 표현이 조직화일 텐데요, 조직이 안 되고 있는 거 아니냐는 거에요.
그런 차원에서 새롭게 고민되고 있는 지점이기 때문에 저는 그것이 옳다, 그르다 라기보다는 부단히 싸워나가는 과정에서 계속 연구하고 있고 기획해가는 것 아니겠는가 라는 거죠. 기존 방식으로는 안 되니까. 그것이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안 되니까. 찾고 있는 과정이 아닌가, 이렇게 봅니다.

 

 

세상과 만나는 노동자, 변화하는노동자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는 현재 쌍용차 투쟁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나요?

하고 있죠. 없다고는 할 수 없고요. 근데 그런 건 있죠. 금속노조나 민주노총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고 이게 단사 문제, 쌍용차 문제만 볼 수 없는 조건이 있는 거잖아요. 지금 임단협 문제도 있는 것이고 노동조합 일정이 있고 그렇다 보니까 외부에서 볼 때에는 결합도가 좀 떨어지는 것 같다고 하는데 노조가 쌍용만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런 부분에서 이해해야 될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쌍용차 문제가 노동운동과 노동진영에 던지는 메시지, 그리고 여기에서 확산되고 있는 연대의 힘들이 어떤 방식으로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들, 이것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도 잘 살필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 결론적으로 사실상 패배의 경험, 혹은 좋지 않은 기억과 이런 것이 전진과 상상력을 가로막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작은 것이라도 승리의 경험, 이기는 성취감을 맛보는 계기, 그래서 좀 더 전진할 수 있고 상상력을 좀 더 확장시킬 수 있는, 그렇게 됐음 좋겠다, 그게 쌍용차 분향소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쌍용차 정리해고 투쟁 이전의 쌍용차노조 집행부는 관료적이고 투쟁을 잘 안했던 것 같아요. 77파업 투쟁을 거치면서 이전과 지금 조합원들 의식이 어떻게 변화하였나요? 

쌍용차노조가 관료라기보다는 어용스럽다라는 측면이 강할 것 같고. 그건 지역색과 무관치 않다, 라는 것도 있고요. 그런 평가(어용스럽다)도 있지만 2000년대 초반 민주노조 들어서서 완성사 파업을 함께 했다거나 주도했다거나 여러 가지 그런 경험도 있는 거죠. 그 뒤에 계속 노조가 어용화 되면서 사실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 혹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바에 대해서 복무하지 못한 게 많았죠. 그 결과가 이런 사태를 불러왔다고 보지 않습니다. 다만 충분한 상관관계는 있겠다라는 생각은 하고 있고요.
지금은 엄밀히 말하면 공장 안에 있는 노조가 어용노조가 있고 분향소에 이른바 ‘망명지부’가 있는 건데. 그 차이는 있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안주하려고 하는 측면은 있죠, 공장 안에. 자기 꺼라도 지키기 위해서.
지금 밖에서 싸우는 노동자들 입장으로 보면 세상과 만나는 거니까 많이 다르죠. 기존의 인식, 저를 포함해서 기존의 인식에서 넓어지는 느낌도 들고. 노조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살 건가,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건지,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건지 이런 문제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봅니다. 

 

1사1조직 속에 비정규직지회의 활동이 지부와 함께 또 따로 진행되어 왔는데 투쟁하는 쌍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상황에 어떠한 차이점이 있나요? 

상황 차이보다는 인식이 상황의 차이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사실 연대를 많이 못했고 쌍용차 투쟁이 원하청 공동투쟁,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싸웠던 투쟁임에도 불구하고 의미가 많이 퇴색됐다, 그것은 집행간부들이 비정규직 투쟁에 대해서 사실상 고민이 많이 없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자기 반성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유철(의원 사무실 앞) 겨울나기 투쟁이라든지 여러 가지 문제의식, 또 선도투, 이런 것을 많이 했고. 그건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를 지키려고 했던 그 싸움들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한편으로는 쌍용자동차 투쟁이 비정규직 투쟁으로는 잘 인식되지 않는 것에 대한 소외감, 혹은 이런 것이 좀 많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고요. 그것에 대해서는 저 개인적으로는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든든한 심리적 파이프 라인, 와락

투쟁을 시작한지 3년이 지났고 피로도가 상당할 것 같은데 육체적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어떻게 감당하고 있나요?

특별히 어떻게 푼다, 잘 모르겠고. 이것도 하나의 일상이니까요.

생활 자체가 투쟁을 하는 것이라는 건가요? 

그렇죠, 생활 자체인 것이죠. 예를 들어서 노점상 하는 분들보고 어떻게 매일 피곤해서 이렇게 합니까, (한다면 그것 자체가) 일이에요. 해고자들이 투쟁하고, 싸우고, 지키고, 일상이니까요. 그 안에서 나름의 일이 있는 거고. 

 

지난해부터 와락 센터에서 이루어지는 심리치료가 쌍용차 노동자들과 가족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획기적 변화 이렇게는 아니지만 아주 든든한 베이스캠프가 마련된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있고요. 든든하죠, 그런 면에서 보면. 그것이 부모가 됐든 아이가 됐든 그 안에서 느끼는 안정감은 매우 크다, 그것이 확산되고 있고. 그것으로부터 다시 투쟁의 어떤,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든든한 심리적 ‘파이프 라인(Pipe Line)’이 선 것이다(라는 것이죠). 그런 심리적 측면에서 보면 허파, 허파의 공간입니다. 

 

대한문에서 대중적인 집회나 문화제 말고 조합원들을 상대로 하는 교육이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나요?

내부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좀 하고 있는데요. 문제는 일정이 너무 많아요, 저희가. 수가 적은 것에 비해서 요구되는 일정이 사실상 너무 많습니다. 일정소화하기 바쁜 게 좀 있죠. 심적 혹은 시간적 여유를 좀 가져야 하는데. 그렇게 잘 못 되는 경우가 좀 있어요.

 

돌아가면서 약간의 휴가 같은 것은 가지나요?

네, 쉬게 해주죠. 그런데 그게 쉽지 않죠.

 

 

투쟁도 하나의 치유의 과정

지금 생계투쟁을 하거나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조합원들과의 소통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노력하고 있고요. 와락을 통해서 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지부를 통해서 하는 경우도 있고. 최대한 연결하려고 만나려고 하고 있고요. 그런 상황에 있습니다. 

 

토론회 같은 것을 가지는 건가요?

쉽지 않죠. 예를 들어서 공장을 떠난 사람들, 혹은 무급자하고 토론회 하기가 쉽지 않죠.  

 

범국민추모위, 범국민대책위, 시민상주단 등 쌍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대체와 정치인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고 쌍용차 문제가 다시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떠올랐는데, 이러한 움직임들이 생계투쟁을 하거나 활동을 쉬고 있는 동지들에게도 전해지고 있나요.

두 가지 측면인 것 같은데요. 느껴지긴 느껴지지만 한 축으로는 해결의 기운으로 가고 있 느낌도 있을 거고 또 하나는 그거와 무관하게, 나는 무관하구나라는 자기 자괴감으로 다가가지 않겠는가, 두 가지로 반응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왜냐하면 예를 들어 희망퇴직자 같은 경우는 고용관계가 완전히 없기 때문에 지금 정리해고자도 마찬가지지만 쌍차 문제가 잘 풀려도 자기와 무관한 문제로 인식하거든요. 다만 우리가 싸웠던 혹은 노동자들이 주장했던 바가 잘못된 것이 아니구나 하는 그것에 대한 스스로의 해명은 되지만 그것이 직접 고용과 연계되지 않기 때문에 거기에 따른 소외감.
예컨대 그런 거죠. 명진 스님이 천만 원을 쌍용차 쓰시오, 하지만 그 천만 원을 내가 받는 게 아니잖아요. 개인이 받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자기 지갑에 들어가는 천만 원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림 속의 떡이죠. 그것에 대한 소외감이 있는 거죠.
마찬가지 투쟁이 잘 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지만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좀 더 서운해 할 수 있는 이런 거 아니겠는가, 그렇게 유추하고 있습니다.  

 

운명을 달리한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활동가나 노조간부보다는 일반 평조합원들이 더 많지 않나 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왜 그러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앞에서 말씀하신 것과 연관된 것인지요?

그럴 수도 있다고 보는데요. 투쟁하는 노동자는 죽지 않는다, 이런 얘기가 전 틀리지 않다고 보고요. 왜냐하면 투쟁도 하나의 치유의 과정입니다. 제가 볼 때는 투쟁하는 것 자체도 치유의 과정이고 풀어내는 과정이고 하는 거죠.
그래서 투쟁하는 동지들이 매우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가 그 자체로서의 존중도 있지만 그 과정이 나를 치유하는 과정, 물론 거기에서 비율이 나를 깎아먹는 비율보다 나를 치유하는 비율이 더 높아져야겠지만. 그런 과정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실제 쉽게 데미지(demage)를 입지 않죠. 그런데 투쟁하지 않거나 혼자 있거나, 혼자 이걸 삭히는 것은 굉장히 괴롭다 이렇게 봅니다. 

 

마지막으로 알리고 싶은 말씀 있다면 해주세요.

다시 집결해야 된다고 봅니다.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이 있을 때, 소위 모든 세력들이 노자 대결이다, 라고 했던 규정, 저는 그 규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거고요. 우리가 지치지 않는 이상 그리고 우리가 싸움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혹은 우리가 싸움을 그만둔다 하더라도 2009년 함께 했던 동지들이 함께 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 노자대립 한 가운데서 여름을 보냈던 그 많은 동지들, 함께 했던 동지들, 많은 조직들, 지금 함께 해야 된다, 이런 뜻이고요. 반드시 이 문제를 함께 풀어야 된다, 풀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된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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