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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차라리 혁명의 권리를 허(許)하라!

  • 분류
    정치
  • 등록일
    2014/11/13 16:22
  • 수정일
    2014/11/13 16:22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장면 하나. 8월 11일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이민걸 부장판사)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사건 항소심에서 이 의원에게 징역 9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1심과 달리 내란음모와 내란선동을 구분하여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지만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대부분 유죄로 인정했다. 1심 재판에서 이 의원은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형을 선고 받은 바 있다. 

#장면 둘. 8월 20일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하 사노련) 사건에 대한 상고심에서 오세철 활동가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원심 중 야간시위에 따른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이하 집시법) 위반 부분을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이 부분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또한 같은 혐의로 기소된 7명의 활동가에 대해서도 같은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집시법 위반 부분을 제외하고 사노련이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이적단체라는 원심은 그대로 수용되었다.


지난 8월,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주목할 만한 판결이 잇달아 나왔다. 사노련 사건과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은 또다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두 사건은 앞으로 파기환송심 및 3심 재판을 각각 남겨놓고 있지만 지금의 유죄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언론의 주목이나 여론의 반향도 예전처럼 크지는 않았다. 공안당국에 의해 이들 사건이 처음 발표되고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을 때에 비하면 그 차이는 확연했다. 

현재 한국 사회는 거대한 우회전을 경험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 시절부터 민주적 기본 권리의 침해 사례가 늘기 시작하더니 특히 박근혜 정권 들어서는 이른바 ‘3종 종합선물세트’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즉, ‘종북’ 프레임을 앞세운 ‘종박’ 세력이 ‘종편’의 지원을 받아 정치적 반대의 목소리를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종북 논란은 심지어 세월호 참사 직후에도 불거졌으며 최근에는 일베 회원들의 폭식투쟁과 서북청년단 재건위까지 등장하여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사노련 사건과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은 발생 시점도 그 성격도 실은 판이하다. 서로의 연관성을 찾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유죄 판결의 법적 근거가 통상적인 공안사건과 차별화된다는 점에서 둘은 공통점을 지닌다. 이점이 중요하다. 한국 사회의 우경화 징후가 이제는 법제도적 완비까지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이 더욱 강력한 탄압 무기를 손에 쥘 수 있다는 우려는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 가뜩이나 시민들의 표현과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가 약화되는 상황에서 그 위험성은 더 커질 것이다. 


죽은 법도 되살려내는 공안당국

국가보안법은 본래 한시적인 법률이었다. 1948년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국가보안법은 1953년 형법이 제정되면서 그 내용이 형법에 흡수되어 폐지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태생부터 냉전적 반공주의를 내세운 탓에 그대로 살아남았다. 이후 국가보안법은 안보를 이유로 집권세력이 반정부 세력을 탄압하는 대표적인 악법으로 군림해왔다. 하지만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한동안 사문화된 법으로 인식되었다. 노무현 정권 때는 대통령이 직접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실제로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민주화 시대의 유산자임을 자처하며 기존의 보수진영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직접 충돌하는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강경자세를 고수했지만 사회정치적 사안에서는 이념적으로 유연하게 접근했다. 이 때문에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국가보안법은 모든 반정부․반체제 세력에 대해 적용되었지만 김대중․노무현의 자유주의 정권 시절에는 그 대상이 주로 통일운동 진영으로 한정되었다. 또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해서는 불구속 수사가 원칙으로 내세워졌다. 

하지만 당시에도 한계는 분명했다. 정치사상의 자유는 북한의 체제를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민주주의적 기본 권리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북한이 더 이상 현실적인 위협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가보안법의 실효성은 점차 의문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고 통일운동 진영을 대상으로 여전히 악용되었다는 점은 국가보안법이 집권세력의 교체에 따라 언제든 현실적인 위협으로 되살아날 수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우려는 2008년 이명박 정권의 등장 이후 곧바로 현실이 되었다. 10년 만에 집권에 성공한 보수진영은 민주화 운동의 성과를 되돌리려 하였다. 적용 법률도 집시법과 국가보안법에 그치지 않았다. 2010년 위헌 결정으로 지금은 사라진 ‘미네르바법’이 대표적이다. 미네르바라는 필명의 인터넷 논객이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했다고 이명박 정권은 옛 전기통신법 47조1항까지 들먹이며 탄압했던 것이다. 운동세력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가보안법은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고, 자유주의 정권 이전처럼 통일운동 진영 뿐 아니라 사회주의 정치를 표방한 운동세력까지 확대․적용되었다. 사노련 사건은 그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한국의 사법부는 그동안 국가보안법 7조1항의 ‘반국가단체’를 북한이라 해석하고, 이를 이롭게 하는 단체를 ‘이적단체’라고 심판해왔다. 그러나 사노련의 경우 북한 체제를 공공연하게 비판했기 때문에 재판부는 ‘국가변란 선전․선동단체’라는 신조어까지 동원하며 유죄를 선고했다. 자본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모든 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새롭게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박근혜 정권은 한술 더 떠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이후 무려 33년 만에 내란음모죄를 부활시켰다. 


국가보안법을 형법으로 대체할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이 당시 출범 6개월의 신생조직인 사노련을 탄압한 것은 2008년 촛불투쟁 이후 조성된 대대적인 공안정국과 관련 있다. 박근혜 정권이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을 기획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2013년 집권과 동시에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이 갈수록 커지자 코너에 몰린 박근혜는 김기춘을 내세워 친정체제를 정비한 다음 종북 몰이를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 작품이 바로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이었다. 

공안당국이 이석기 의원을 내란음모죄로 기소한 것은 상식적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국가보안법도 아닌 내란죄의 부활에 뭇사람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자유주의자들은 국가보안법 폐지의 논리로 형법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막상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이 터지자 자유주의 세력의 위선은 여지없이 폭로되었다. 이석기 의원을 방어하기는커녕 체포동의안 국회통과에 군말 없이 동조했으며, 이후 재판 결과는 형법상 내란죄가 국가보안법보다 더 강력한 탄압 무기임을 보여주었다. 

이석기 의원은 2심 재판에서 징역 9년과 자격정지 7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사노련 사건에 적용된 국가변란 선전․선동죄만 해도 처벌의 수준은 비교적 가벼웠다. 구속영장은 두 차례나 기각되었고, 국가보안법을 확대․해석한 탓에 법리적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반면 형법에 근거한 내란죄는 달랐다. 법정구속 상태에서 재판이 시작되었고 무엇보다 사회와 완전히 격리시킬 수 있는 중형 선고가 가능해졌다. 수십 년 동안 죽어있던 내란죄를 부활시킨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형법상 내란죄의 ‘국헌문란’이 국가보안법상의 ‘국가변란’ 못지않게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란 점이다. 특히 내란선동죄는 ‘내란에 대해 고무적 자극을 주는 일체의 언동’만으로도 위법이라 판단한다. 이는 구체적인 행위와 무관하게 국가권력이 누구든 자의적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이석기 의원도 내란음모는 무죄지만 내란선동에서는 가까운 장래에 내란 범죄를 결의․실행할 개연성이 인정된다며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전통적인 우익세력은 물론이고 자유주의 세력은 한 목소리로 현 체제에 도전하는 사상은 모두 처벌 대상일 뿐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이른바 내란선동죄의 등장은 효력이 줄어 이제 높은 형량을 내리기 힘든 국가보안법을 대체하여 반정부·반체제세력에 대한 더 강력한 탄압 무기가 이미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새로운 사회를 꿈꿀 수 있는 자유

국제언론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언론 자유는 2004년 26위에서 2014년 68위로 곤두박질쳤다. 최근에는 메신저 사찰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 대한 검열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지 오래지만 모바일 메신저까지 실시간으로 감청이 가능하고 실제 피해 사례까지 알려지면서 ‘사이버 망명’은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검열 강화로 국민의 입을 어떻게 해서든지 틀어막겠다는 심산이다. 

이런 양상은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1980년대 이후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의 심화로 반세계화 운동 비롯해 대중투쟁이 활성화되면서 이른바 선진민주주의 국가들에서도 민주주의는 크게 후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2001년 9․11테러를 기점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 삼아 애국자법(정식명칭은 테러대책법)을 선포했다. 부시 정권에서 오바마 정권으로 집권세력이 교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애국자법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전화, 이메일, 의료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 대한 사법집행기관의 감시권한은 대폭 강화되었으며 심지어 영장 없는 도청까지 합법화되었다. 개인 정보 및 자유, 인권 침해 소지가 다분하지만 미국은 반정부세력들을 겨냥한 공안통치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수많은 질문을 던져야 했다. 2008년 촛불투쟁 때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노래를 부르며 민주공화국의 의미를 곱씹어봐야 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세월호 참사 속에서는 ‘국가란 무엇인가?’하고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답답한 현실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전반에서 민주주의의 후퇴는 어느새 만성화되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사회에 불만을 표시하고 불온세력으로 찍혔다가는 징역살이까지 각오해야 하는 세상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정지시킨 과거 유신 체제의 긴급조치 시대를 떠올리게 하며 시계 바늘을 거꾸로 되돌리고 있다. 

국가보안법 뿐 아니라 내란죄 같은 과거의 망령이 되살아나 횡횡하는 요즘, 이제는 우리 스스로 사고의 폭을 확대시켜야 한다. 돈과 권력을 움켜쥐고 사회적 생산의 다수를 장악한 이들에 맞서 진짜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과감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자기부정에 빠진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그들만의 철옹성을 구축한 부르주아 정치체제가 더 이상 대안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애국자법이 보여주듯 집권세력의 교체가 민주적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민중이 정치의 주체로 자각하는 만큼 힘을 발휘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회를 꿈꿀 수 있어야 한다. 가만히 있으라고 국민에게 윽박지르며 자본을 비호하기에 바쁜 현 체제의 ‘정상’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망과 대안을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사상의 완전한 자유가 최소한의 민주적 권리로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 나아가 정치사상의 자유는 그것을 실행할 혁명의 권리로 뒷받침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되찾아야 할 민주주의다. 


김성렬 tjdfuf@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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