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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시민들, 그리고 사이버사찰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4/11/13 16:29
  • 수정일
    2014/11/13 16:35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얼마 전 정부의 사이버사철에 대응하기 위해 <사이버사찰긴급행동>이 꾸려졌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져 있는 글을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의 오진호 집행위원이 기고해주었다. 기고에 감사하며, 기고글은 사노신의 입장과 다를 수 있다. (사진 출처: 참세상) [사노신]



세월호 참사. 책임을 묻기 위해 사람들이 움직였다. “가만히 있으라”는 2014년 저들의 외침에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응답한 시민들은 유모차를 끌고 나오기도 했고, 청계광장에서 촛불을 들기도 했다. 국화꽃을 들고 도심을 걷기도 했으며, 어딘가를 선도투쟁으로 점거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속에 청와대 만민공동회와 6.10청와대 만인대회가 있었다.


세월호 정국이 가라앉음과 동시에 예정되었던 탄압이 시작됐다.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민주적이지 못한 정권은 사회 곳곳에서 비민주의 씨앗을 뿌렸음을 드러냈다. 특히 지난 10월 1일 정진우 동지의 카카오톡 압수수색 규탄 기자회견은 사이버 공간이 얼마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드러냈다.
 

쉽지 않은 기자회견


9월 16일자로 정진우 동지가 카카오톡 압수수색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서를 받았음을 듣자마자 머릿속은 복잡했다. 카카오톡이 안전하지 못한 공간이라는 이야기들은 활동가들 사이에서 오고갔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수사기관이 봤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바쁘게 공동으로 대응할 동지들을 만나 논의하고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기자회견을 준비하면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은 것은 ‘이 이슈로 어떤 운동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가 아니라, ‘기자회견에 기자가 얼마나 올까?’였다. 당시 사이버망명은 시작되고 있었지만 얼마만큼의 이슈를 만들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충분히 이슈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대응 역시 일회성 이상으로 할 수 없다.


그러나 기자회견이 다가오면서 나의 예상은 완전히 깨졌다. 자료를 미리 주면 단독으로 크게 다루겠다는 언론에서부터 기자회견 당일 자리를 가득매운 기자들과 방송 카메라까지, 언론에서만 보던 ‘열띤 취재경쟁’을 몸으로 느끼며 ‘카카오톡’이 얼마나 중요한 이슈였는지를 다시 한 번 느꼈다.
 

10월 1일, 그 이후


9월 16일 대통령의 한마디에서 시작된 사이버사찰은 거짓을 말해온 검찰과 다음카카오에 의해 확대됐다. 감청이 불가능하다는 다음카카오의 거짓말에서부터 다음카카오가 대화내용을 선별해서 줬다는 검찰의 거짓말까지. 의혹은 늘어갔고, 불신은 커져갔다. 검찰은 내뱉은 말을 주워담기 바빴고, 10월 1일부로 합병된 다음카카오는 시작부터 떨어지는 주식을 초조한 마음으로 바라봤을 것이다. 

결국 다음카카오 이석우 대표는 잔다르크가 되겠다는 기세로 “감청 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겠다는 결정이 실정법 위반으로 문제가 된다면 … 벌은 제가 받을 것”라고 밝혔지만 실상은 다르다. 지난 10월 9일 정진우 동지는 다음카카오와 검찰에 “압수수색 집행에 협조한 과정을 정확하고 상세하게 밝힐 것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답은 제대로 밝힐 수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10월 13일에는 항의하러 간 시민들에게 다음카카오 관계자는 “정진우씨에게 다 알려드렸다”며 또 다른 거짓말을 했다.

 

쟁점은 압수수색


이석우 대표의 발언 이후 쟁점은 흐려지고 있다. 검찰총장이 “열쇠공을 불러서 직접 문을 따는 것처럼” 감청을 감행하겠다고 밝히면서 쟁점은 감청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10월 1일 기자회견이 문제제기한 것은 ‘압수수색’이지, ‘통신제한조치(감청)’가 아니다. 제기되지 않은 문제인 ‘감청’으로 쟁점을 흐리는 것은 압수수색에 대한 논란을 피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메신저 업체가 수사기관에 제공할 수 있는 정보에는 ‘통신자료’와 ‘통신사실확인자료’가 있으며, 업체에 발부할 수 있는 영장에는 ‘감청영장(통신제한조치)’, ‘압수수색영장’이 있다. 감청의 경우 통신비밀보호법에 허가할 수 있는 사유들이 정해져있어 압수수색에 비해 허가를 받는 것이 상대적으로 복잡하다. 그러나 압수수색의 경우 형사소송법에 따라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만한 정황이 있고, 해당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에 한정하여” 할 수 있는데 이 규정에 의해 압수수색은 실제로 매우 광범위하고, 손쉽게 발부되고 있다. 

통계를 봐도 압수수색에 대한 문제는 감청 이상으로 심각하다. 다음카카오가 밝힌 바에 따르면 2014년 상반기 요청받은 감청영장은 61건이었지만 압수수색영장은 2,131건이다. 어디까지가 감청이고, 어디까지가 압수수색인지에 대한 기술적 논란도 있지만 핵심은 수사기관이 무분별하게 개인정보와 대화내역까지 사찰해 왔다는 사실이다.

 

정보인권에 대한 천박한 이해를 드러낸 수사기관


사태를 여기까지 악화시켜온 수사기관의 태도는 적반하장이다. 검찰은 사이버사찰을 쟁점화 시킨 정진우 동지에게 “정당한 과학 수사에 대해 근거 없는 비난으로 국가적 혼란이 야기되고 선량한 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며 괘씸죄를 적용하라는 내용의 ‘보석취소 청국 신속결정 촉구 의견서’를 제출했다. 정진우 동지의 카톡 내용을 보수언론에 공개하는 적극적인 언론대응도 불사한다. 개인의 대화내용을 본인의 동의 없이 언론에 공개하는 이들의 모습은 본인들이 정보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갖고 있지 않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이전까지 수사기관이 해왔던 수사방식에 비하면 양반이다. 사건의 황당함으로 따져보자면 카카오톡 압수수색보다 더 심각한 사례들이 많다. 일례로 몇 년 전, 전교조 서버를 압수수색 할 때 수사기관은 전교조 서버를 직접 압수하지 않았다. 원격 압수수색이라 하는 신종 수사기법을 사용했는데 그 수사기법을 사용한 곳은 ‘영등포 인근 PC방’이었다. PC방에서 서버의 내용을 통째로 볼 수 있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디지털 공간의 민주주의


이번 사태는 후퇴하는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디지털 영역과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수사기관은 지속적으로 사이버 영역을 들여다보고, 이를 통제하고 싶어 했다. 국정원 댓글이나 새누리당이 선거대응을 하며 SNS나 일베를 활용한 사례는 이들이 집단적‧ 조직적으로 디지털 공간을 점유하고 싶었음을 보여준다.


메신저는 이미 우리 삶 속으로 깊게 들어와 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각 투쟁사업장 공대위는 단체카톡방을 열어 일정을 공유하고, 투쟁계획을 토론한다. ‘운동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전화로 대화를 나누기 보다는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선호한다. 정보공유와 고민상담은 인터넷 게시판을 지나 단체카톡방으로 그 공이 넘어왔다. 사이버 망명에 가장 먼저 합류한 이들은 판‧검사, 금융인, 그리고 교수라고 한다. 

이제 정권과 수사기관은 전화통화를 감청하거나 편지를 압수수색 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메신저 회사에 팩스 한 장을 보내면 그 사람이 나눈 공적, 사적인 대화 모두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단체카톡방에서 정권을 비판하건, 풀리지 않은 사건들에 대한 의혹을 던지건 정권이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21세기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데 있어 사이버 공간이 가장 중요한 통로일지도 모른다.

 

망명을 넘어선 우리의 행동


‘사이버망명’이 300만을 넘었다. 자국 브랜드 선호도가 유난히 높아 가전제품, 자동차, 심지어 컴퓨터 프로그램까지 외국산이 끼기 어려운 한국 사회에 이례적인 현상이다. 이제 막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들은 “이제 막 카톡에 익숙해지는데 다들 다른 메신저를 쓴다. 그건 또 어떻게 다운 받냐”며 답답함을 토로한다. 많은 이들이 카카오톡과 작별하고 싶지만 이미 수 십 개의 단체카톡방과, 이를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적 관계망 때문에 결국 양다리를 걸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도 부지기수다.


이 혼란을 멈추기 위해서는 정보주체인 시민들이 자신의 정보가 광범위하게 수집되고 남용되는 것을 스스로 알고 통제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법제도적 대안과 이를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 현행법에 따르면 ‘송수신이 완료된 전기통신’에 대한 압수수색은 형사소송법, 감청과 ‘통신사실확인자료제공’은 통신비밀보호법, ‘통신자료제공’은 전기통신사업법의 적용을 받는다. 디지털시대에 법이 뒤쳐지면서 통일적으로 규율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이메일, 메신저에 일반적인 압수수색과 동일한 요건과 절차가 적용되면서 정보인권은 심각하게 침해받는다. 법제도 개혁이 절실한 이유다.


이에 오랜 기간 정보인권 운동을 해왔던 단체들과 시민사회가 마음을 모아 <사이버사찰긴급행동>을 꾸렸고, ‘사이버사찰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1만인선언’ 등 작지만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감시받지 않을 권리가 보장받는 세상을 위해서는 망명을 넘은 실천이 필요하다. 검찰과 권력의 수사권 남용에 맞서 수사기관의 사이버 사찰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수사기관의 정보취득을 엄격하게 제한된 범위에서만 허용되도록 통제하는 ‘사이버사찰금지법’을 만들기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

오진호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네트워크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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