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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FocuS]위키리크스, 자본가권력의 금기를 깨다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1/01/26 14:28
  • 수정일
    2011/01/26 14:28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작년 12월15일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가 2010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전 세계 수많은 네티즌들은 즉각 반발했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였다. 어산지는 온라인 투표에서도 1위에 올랐다. 올해의 인물이 갑자기 바뀌자 의혹이 제기됐다. <타임>은 도전보다는 안전을 선택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세계적인 이슈 메이커, 어산지에 대한 관심은 세밑까지 뜨거웠다.
해를 넘겨도 어산지에 집중된 세계의 이목은 여전하다. 어산지의 말 한마디가 뉴스가 되고, 화제를 낳고 있다. 특히 어산지가 신변 위협에 맞서 일종의 보험으로 내세운 ‘최후의 심판 파일’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최후의 심판 파일에는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알려졌는데, 인터넷을 통해 이미 배포된 상태다. 어산지가 암호만 공개하면 누구나 열어볼 수 있다.
인터넷 사용자 20억 명 시대, 위키리크스 사태가 불러일으킨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비밀문서 폭로 활동이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비밀주의와 정보공개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정보가 자본의 운동과 권력의 작동에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은 가운데, 위키리크스 사태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대판 로빈후드

 

작년 11월 무려 25만 건에 달하는 미국 외교전문을 폭로한 위키리크스는 지난 2006년 12월 어산지가 설립한 네트워크 조직이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 이름을 따왔다. 상근자는 10명 안팎이지만 전문적인 능력을 기부하는 협력자가 1000여 명, 각종 지원을 해주는 지지자가 1만여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을 만큼 국적을 초월한 최초의 네트워크 조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잇단 폭로로 위키리크스에는 ‘고발 전문’이란 말이 따라 붙는다. 어산지는 이런 위키리크스가 ‘과학적 저널리즘’을 개척했다고 자부한다. 과학적 저널리즘의 핵심은 뉴스를 제공할 뿐 아니라 그 근거가 되는 원문도 온라인에 함께 공개해 독자 스스로 진실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게 한다는 데 있다. 때문에 어산지는 위키리크스가 기존의 언론과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위키리크스로 새로운 형태의 언론이 출현했다고 말한다.
어산지의 남다른 열정은 그의 신념과 관련 있다. 어산지는 스스로를 ‘시장원리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에 동의한다. 어산지가 못마땅해 하는 건 시장이 아니라 왜곡된 시장 질서다.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시장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고 여긴다. 시장 참여자 사이의 정보 격차를 줄인다면 결국에는 국가와 기업에도 이익이 된다고 역설한다. ‘공정한 사회’야말로 어산지의 구호인 셈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유행했던 마이클 샌델의『정의란 무엇인가』가 떠올려지는 대목이다.
어산지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도 국가나 기업 자체가 아니다. 국가나 기업이 일삼고 있는 비윤리적인 행위다. 어산지는 자유와 정의가 결핍된 곳에서는 윤리적으로 무장된 시민의 저항이 불가피하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해커 시절에도 ‘뚫고 들어간 컴퓨터 시스템 망치지 않기’, ‘정보 변경하지 않기’, ‘획득한 정보 공유하기’ 등의 원칙은 지켰다고 한다. 윤리의 잣대로 어산지는 감춰진 정보의 공개가 부조리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네티즌들은 열광하고 있다. 어산지는 정의로운 반역자로 불리고 있다. 미국 정부의 탄압 공세에 순교자 이미지까지 덧씌워졌다. 그 영향력은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확대되었다. 작년 12월 7일 어산지가 영국 경찰에 체포되자, 유럽과 남미에서는 동시다발적으로 어산지를 지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어산지가 호주 출신 때문인지, 호주에서는 1,000여 명의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어산지가 보석으로 풀려나서야 집단행동은 잦아들었다.

 

 

△ 출처 : 민중언론 참세상

 

위키리크스 대전

 

위키리크스 사태가 뜨겁게 달아오른 데에는 미국도 한 몫 했다. 작년 11월 위키리크스가 미국의 외교전문을 공개한 건 2006년 이후 꾸준히 해오던 활동의 일부였다. 지난해만 해도 4월에는 이라크 민간인 학살 동영상을, 7월에는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학살 사례를 각각 공개했다. 미국이 벌이고 있는 전쟁의 추악한 진실은 다시 한 번 세상 밖으로 드러났지만, 그 당시 미국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미국은 태도를 싹 바꿔 발끈하고 나섰다.
미국은 위키리크스가 봐줄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고 보고 있다. 정부기관이나 공직자들의 비리나 비행을 폭로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매우 위험한 행위라는 입장이다. 통상 미국의 외교문서는 몇 십 년이 지나 관계자들이 죽거나 은퇴한 다음에야 공개되는데, 위키리크스의 이번 외교전문 공개는 최근 3년간 미국 외교의 실체를 낱낱이 보여주었다. 모르면 모르는 거고, 알아도 모르는 척 해야 하는 외교의 원칙을 위키리크스가 깨버렸다고 난리가 아니다.
미국의 탄압은 가히 전방위적이다. 미국 정부는 호주 국적의 어산지에게 국내법인 간첩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 중이다. 사법처리가 어려울 것이란 게 대체적인 전망이지만 만일 어산지에게 간첩죄가 적용되면 10년형에서 최고 사형까지 구형할 수 있다. 미 의회에서도 조지프 리버먼 상원의원을 중심으로 몇몇 의원들이 ‘반(反)위키리크스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법안에는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문건을 보도한 언론사에 대한 처벌까지 담겨 있다.
위키리크스에 대한 실질적인 압박은 사이트 폐쇄와 자금줄 차단이다. ‘아마존닷컴’, ‘테블로 소프트웨어’ 등 미국 서버 업체들은 위키리크스 사이트에 대한 서버 제공을 중단했다. 결제 서비스 업체 ‘페이팔’, ‘비자카드’는 위키리크스 후원금 계좌를 동결했다. 미국 최대 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도 위키리크스의 금융 거래를 차단했다. 어산지는 이 같은 탄압에 ‘디지털 매카시즘’, ‘비즈니스 매카시즘’이라면서, 위키리크스의 존재를 부정하는 미국에 강하게 반발했다.
위키리크스 사태는 시민사회 대 국가권력 간의 대결로 굳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면서 대결의 구도가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도 했다. 특히 러시아는 미국 외교가에서 푸틴 총리를 ‘부패하고 비민주적인 관료국가의 우두머리’로 묘사한 것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패권국가 미국을 향해 중국과 러시아가 동조하지 않는 목소리를 내는 모양새가 연출될 만큼, 이번 파문이 끼친 영향은 실로 전 세계적이었다.

 

아이러니

 

세계를 뒤흔든 위키리크스는 ‘폭로 저널리즘’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무게중심은 ‘폭로’ 쪽에 있다. 하지만 작년 4월까지만 해도 위키리크스는 폭로만 하진 않았다. 자신의 견해도 같이 밝혔다. 이라크 민간인 학살 동영상을 폭로하면서는 ‘부수적 살해’라는 제목을 단 편집 영상도 함께 공개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기존 매체와 차별화 하는 것에서 한 발 물러서기 시작했다. 자신의 입장에 비판이 뒤따르자, 이를 곤혹스러워했기 때문이다.
기존 매체와 협력하는 방향으로 폭로의 방식을 바꾼 위키리크스는 미국 외교전문 폭로에서도 관련 자료를 미국의 <뉴욕타임즈>, 영국의 <가디언>, 독일의 <슈피겔>과 같은 매체에 사전에 넘겼다. 일제히 보도되도록 시점만 요구했을 뿐 다른 모든 작업은 이들에 맡겼다. 위키리크스는 어디까지나 ‘정보의 유통자’로 남았다. 물론 폭로의 충격파는 컸다. 위키리크스가 정보 공개에 따른 책임을 분산하면서도 정보의 광범위한 확산을 노렸다는 점에서, 지금까지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들 매체가 주류 언론이란 점은 위키리크스에 족쇄가 될 수 있다. 사실 이번에 폭로된 미국 외교전문의 내용은 주로 외국 정상이나 국제기구 인사들의 사생활, 각국 외교 담당자들이 미국 외교 당국자들과 비밀스럽게 오간 얘기들이다. 25만 건 중 ‘외국전파금지’는 4330건, ‘비밀’은 1만 6652건에 그친다. 많은 수는 비밀로 분류되지 않은 것이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고, 미국의 격한 반응에 견줘본다면 대단치 않는 것들이다.
문제는 그런 정보마저 주류 언론에 의해 재구성되는 과정이다. 미국은 폭로에 가담한 매체들에 칼날을 겨누지 않았다. 보도 자제만 요청했다. 이들 매체에선 자체 검증팀을 가동시켰으며, 만에 하나 미국 안보에 위험이 되는 내용의 경우 미국 정부와 협의까지 했다. 국가 안보와 자기 검열의 울타리를 넘지 못하는 주류 언론의 한계는 여전했다. 위키리크스가 기존 매체의 영향력에 기대는 한, 위키리크스는 자신의 취지와 충돌하는 이들 매체의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위키리크스를 독단적으로 운영하는 어산지의 태도도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폭로의 날카로움은 위키리크스 외부를 향해서만 곤두서 있지, 그 내부에서는 전혀 다르다는 지적이다. 어산지가 위키리크스를 개인숭배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후원받은 자금의 사용처에 대한 의문도 잇따르고 있다. 일부 위키리크스 출신 활동가들이 위키리크스 내부의 실종된 민주주의에 반발해 새로운 정보공개 사이트 ‘오픈리크스’를 출범시킬 것이라는 얘기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자본, 권력, 비밀

 

 

△ 출처 : 민중언론 참세상

미국의 탄압에도 위키리크스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되레 더 많은 지지자를 얻었다. 미국의 사이트 폐쇄 조치에 위키리크스는 스위스 서버 업체 ‘스위치’의 도움으로 한 숨 돌리게 됐다. 사이트 주소는 wikileaks.org에서 wikileaks.ch로 바꾸었다. 후원금도 늘고 있다. 지지자들은 개인 블로거의 계좌를 통해 송금하는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위키리크스를 살리겠다고 나서고 있다. ‘용기에는 전염성이 있다’는 위키리크스의 구호는 현실에서 증명되고 있다.
위키리크스 사태는 온라인 세상에서 기존 권력이 항상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강력한 수호자’임을 자임해 온 미국의 위선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미국이 ‘위키리크스 때리기’에 몰두하면서는 국가 검열의 사유화가 어느 정도인지 그 실상이 확인되기도 했다. 누가 정부고, 누가 기업인지 모를 만큼 탄압에는 한 목소리가 났다. 위키리크스는 박멸해야 할 테러조직일 뿐이었다. 이 모든 게 ‘자유민주주의’의 나라 미국에서 벌어졌다.
이는 그 동안 기업이나 국가의 불법적 또는 비윤리적인 행위들이 얼마든지 합법으로 용인되어 왔음을 뜻한다. 기업과 국가 간의 단단한 유착 관계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비단 미국 뿐 아니라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다. 위선의 장막을 조금만 걷어낸다면 어디든 비리와 부패, 그리고 그것들을 비밀로 감싸는 침묵의 짬짜미를 확인할 수 있다. 위키리크스는 그 실체를 보여주었을 따름이다.
남한 사회에서도 비밀주의가 판을 치긴 마찬가지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은 끝내 공개되지 않았다. 한미FTA 재협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밀실 협상으로 진행되었다. 정권만이 아니다. 기업에서도 영업 비밀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시민사회단체들이 백혈병 관련 자료를 요구해도 수년째 영업 비밀을 내세워 뻗대고 있다. 유해 물질에 노출된 노동자들의 잇단 죽음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오로지 기업의 이윤만이 중요할 뿐이다.
어산지는 부조리없이 투명한 자본주의를 꿈꾸고 있다. 어산지는 부조리 없는 투명한 세상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자본가들의 사적 소유와 사유재산 보호를 신성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밀주의는 당연한 속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착한 자본주의’, ‘건강한 자본주의’가 실현된다 해도 지배 질서의 금기가 깨지지 않는 한 달라질 것은 없다. 어산지의 바람대로 정보 격차가 줄여질 수는 있어도 해소될 수는 없다.
위키리크스 사태는 정보공개를 세계적인 쟁점으로 부각시켰을 뿐 아니라 정보공개를 바라는 목소리가 대중운동으로 확산될 수 있는 가능성까지 보여주었다. 위키리크스 지지자들은 사이버 공간에 머물지 않았다. 어산지가 체포되었을 땐, 세계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시위가 조직되기도 했다. 앞으로도 정보공개에 대한 요구는 대중의 요구로 적극적으로 제기되고, 대중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강화될 필요가 있다. 정보공개 운동이 실질적인 대중운동으로 나아가게 될 때, 자본과 권력이 그토록 감추고 통제하려는 온갖 비밀의 실체 역시 대중 앞에 고스란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위키리크스 폭로, 어떻게 이뤄지나

 

하와이 말에서 ‘위키위키(wikiwiki)’는 ‘빨리빨리’란 뜻이다. ‘리크스(leaks)’는 유출, 누설을 말한다. 이런 ‘위키리크스(wikileaks)’에서 폭로하는 과정은 직접성, 익명성, 집단지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우선 누구나 쉽게 내부 고발을 위한 정보를 위키리크스에 제공할 수 있다. 이것이 직접성이다. 내부 고발자가 정보를 위키리크스에 올리는 순간부터는 익명의 인터넷 접속을 보장하기 위한 기술이 가동된다. 그 중 하나가 ‘토르(tor)’다. 토르는 적군에 노출되지 않는 통신을 위해 미 해군이 개발하다 중단한 것을 해커들이 재활용한 기술이다. 제출된 정보에 대해선 내부 고발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한 암호화 과정도 이어진다. 익명성이 보장된 다음에는 정보의 신뢰성에 대한 검증이 이뤄진다. 소수의 전문가들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 참여해 정보가 악의적인 것은 아닌지 검토한다. 집단지성의 단계까지 거치고 나서야 위키리크스는 그 정보를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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