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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파의 부동산 시각, 천치? 악랄?

경제 아마추어가 쓴 지극히 기본적인 합리적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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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파의 부동산 시각, 천치? 악랄?
2005-06-23 12:45 하재근 컬럼니스트
난 뉴스를 잘 보지 않는다.

시사교양 프로도 안 본다. 그럴 시간에 재밌는 걸 찾아보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때로 시사문제에 대한 ‘무식’으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앞으로는 뉴스도 보고 시사교양 정보도 접할까 생각중이다.) 최근에 부동산으로 난리가 났어도 관련 기사를 읽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요전에 현재의 부동산 문제를 시장원리-공급확대로 풀자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적잖이 황당했다.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인가? 누가 이런 천치 같은 주장을 한단 말인가.

난 지만원, 신혜식 류가 그들 세계 내에서조차 꼴통 소수파인 것처럼 어떤 극단적인 소수 꼴통들이 짖어대는 소리일 거라 짐작했다. 아무리 대한민국 수구파들이 인면수심이라 해도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릴 정색하고 하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이름, ‘조선일보’. 조선일보에 대해선 방심할 수 없다. 조선일보와 한국 주류 집단은 언제나 우리의 상식을 뒤엎는 ‘서프라이즈’를 선사해오지 않았던가. 해서 난 설마하면서도 확인하는 마음으로 인터넷 조선을 살폈다.

내가 졌다. 완전 KO다. 조선일보를 잠깐만 봤는데도 시장원리-공급확대를 주장하는 칼럼을 두 개나 발견했다. 하나는 편집인 칼럼, 하나는 데스크 칼럼에서다.

더 알아보니 한나라당 의원도 공급확대를 주장하고 있고, 뿐만 아니라 번듯한 경제학자들까지 이런 주장에 가세하고 있다고 한다. 아, 쓰러진다. 잠시 동안이나마 이 나라에 최소한의 상식이 기능한다고 믿었던 내가 어리석었다. 난 너무 순진했다.

대한민국 부동산의 초고가 행진이 투기심리에서 기인한 거품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아는 일이 아닌가. 투기 거품을 시장원리로 잡는다? 시장참여자들의 광기로 시작된 폭탄돌리기를 폭탄 공급 확대로 잡는다? ‘악’ 소리 나게 하는 헛소리다.

우린 몇 년 전에 이와 유사한 광풍을 목도했다. 바로 코스닥 광풍이다. 대단치도 않은 IT기업들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면서 유동자금이 코스닥으로 다 몰렸었다. 코스닥 거품 조장과 붕괴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수구집단이 김대중 정권을 공격할 때의 단골메뉴 아닌가. 그런데 이제 와서 부동산 투기할 공급량을 늘리라고?

어느 IT 기업의 주가가 수십일 연속 상한가라더라. 누구누구는 기업공개로 자고 일어나니 돈방석에 앉았다더라. 어느 부실기업은 단지 업종에 IT를 추가하는 기획서를 제출했을 뿐인데 백배가 뛰었다더라. 코스닥은 물반고기반이라더라.

언론이 연일 이런 뉴스들로 도배하면서 유동자금을 끌어들이고, 그런 뉴스를 보고 너도 나도 쌈지돈 털어서 코스닥에 퍼붓자 주가가 오르고, 언론은 다시 그 걸 대서특필하고, 그 걸 보고 완전히 눈이 돌아간 사람들이 달라빚이라도 내서 코스닥에 털어 넣은 것이 당시 코스닥 광풍의 전개과정이다. 물론 끝은 파국이었다. 막판에 폭탄을 잡은 사람들은 황제주가 휴지 쪼가리로 전락하는 걸 보며 패가망신하고 더러는 목숨을 끊었다.

코스닥에 몰렸던 유동자금이 이젠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다시 폭탄돌리기를 하고 있다.

조선일보 등이 중대형 공급량을 늘리고, 신도시를 건설하라는 것은 코스닥 광풍 당시, 바른손 같은 투기 주식, 로커스, 한컴 같은 IT 종목을 무한 공급하라는 주장과 무엇이 다른가. 만약 그렇게 해서 코스닥 붕괴가 몇 년 유예된들 그것이 국민경제에 무슨 의미가 있나.

아, 물론 의미는 있다. 폭탄돌리기가 계속되면 전 국민이 금융대출을 받아 그 광풍에 동참하므로 자본이 무한공급되게 된다. 대출이 이익을 낳고, 그 이익은 다시 대출을 낳는 에브리바디 해피 순환구조에서 판은 점점 거대해지고 최후까지 쥐어짜서 더 이상 털어 넣을 돈이 없을 때 기념비적인 붕괴가 시작된다. 국민경제에 공황이 닥치는 것이다. 이것도 의미라면 의미겠다.

본질적으로 투기광풍은 시장원리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원리의 과잉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시장참여자들이 ‘내가 이런 행위를 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극히 합리적인 판단에 근거해 너도 나도 그렇게 행위하면서, 언론이 풍악을 울려대고 점차 사람들이 눈이 뒤집히면서 오로지 ‘내 이익’만을 맹목적으로 쫓는 현상이 투기 광풍이다. 이 걸 잡는 것은 시장원리가 아닌 정치적 교통정리밖에 없다.

우리 위대한 아담스미스 씨가 주장한 시장원리는 개개인이 각자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 행위의 결과적 선함을 믿는 것이다. 그러나 투기광풍이 부는 순간 그 개개인의 합리적 행위는 더 이상 공동체를 위한 선이 아니라 썩은 종양으로 자라기 시작한다. 그 종양을 도려내는 건 오로지 더 큰 이성의 합리적 행위, 즉 공동체의 이성, 정치권력의 개입뿐인 것이다.

이건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원칙론이다. 그런데 왜 수구집단은 정부의 개입을 불필요한 규제라고 일축하면서 시장원리-공급확대만을 외치는 것일까? 그들이 천치라서? 아니면 악랄해서? 전자일까, 후자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인간은 누구나 탐욕에 사로잡히는 순간 대뇌가 마비된다는 법칙의 관철? 아니라면 사람들을 호도해서 최후의 한 방울까지 빨아먹으려는 너무나 순수한 힘의지?

언론은 부동산 투기광풍을 조장했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강남 및 그 언저리 지역을 제외한 곳의 부동산가격은 안정되어 있는데도 그건 무시하고 강남 아파트 폭등 소식만을 스펙타클하게 연일 보도하면서 국민들의 얼을 빼놓은 책임 말이다. 코스닥 때와 무엇이 다른가.

또 참여정부의 지역균형개발까지 싸잡아 충청, 전라, 강원 소외지역 지가상승을 강남 문제와 뒤섞어 문제지점을 호도하는 저의도 수상스럽다. 행정수도 이전이 어떻게 투기를 조장하는 개발정책이 된단 말인가.

문제의 본질은 투기거품과 상대적 박탈감, 즉 사회의 양극화 심화다. 조선-한나라 등이 주장하는 시장원리로는 투기거품을 잡을 수도, 사회 양극화를 막을 수도 없다. 시장원리가 투기와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건 가장 기본적인 수준의 지성만 갖춰도 알 수 있다.

부동산 폭등은 IT버블 붕괴와 신자유주의-시장화의 필연적 귀결로서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즉 시장원리는 문제의 근원이지 결코 해법이 아니라는 소리다. 경실련은 미국 부동산 폭등을 들어 정부 보유세 정책을 치는데, 시장원리 자체를 치는 데까지 나가야 맞다. 물론 그 경우 미국식 시장주의를 신봉하는 경실련은 자가당착에 빠지겠지만.

문제가 두 가지라는 것에서 우린 딜레마에 봉착한다. 투기거품과 사회 양극화 문제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는 딜레마다. 어떻게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을까. 솔직히 난 그 해답을 모른다. 뉘라서 이 문제에 해답을 내놓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조선-한나라 등 수구집단은 살판이 났다. 사회비판세력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지금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으라고 난리다. 수구집단이 구사하는 어휘는 사뭇 선동적이다. 말끝마다 서민, 서민하면서 주택공급이 모자라서 가격이 올라간다고 국민을 선동하고 있다. 부동산거품을 지금 당장 잡을 수도 있는데 참여정부가 안 한다고 선동하는 것은 수구, 사회비판세력 동일하다.

모두들 문제지점을 호도하면서 선동에 집중하고 있다. 문제는 투기거품을 화끈하게 때려잡는 방법이 무엇이냐가 아니다. 그 방법이야 뻔하지 않은가. 공공화하는 것이다. 교육공공성, 토지공개념,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이다. 그런 게 문제가 아니다. 부동산은 복잡하다. 투기거품이 꺼지면 어떻게 될까?

투기는 탐욕의 폭발이다. 여기엔 폭등과 폭락밖에 없다. 괜히 폭탄돌리기라고 칭해지는 것이 아니다. 시장참여자들이 “여기선 더 이상 먹을 게 없다”라고 판단하는 순간 심리적 공황과 경제적 공황이 엄습한다.

그런 식으로 거품이 꺼지면 그나마 있던 중산층마저 붕괴하고 사회 양극화는 더 심화된다. 거품과 사회 양극화를 어떻게 동시에 잡을 수 있을 것인가가 포인트다. 그 얘긴 거품은 꺼트리되 경기는 냉각시키면 안 된다는 거의 미션임파서블에 가까운 미션을 돌파해야 한다는 소리다.

무한대출로 부동산 거품을 천정부지로 키웠는데 그 거품이 꺼지는 순간 대출은 부실화하고 수많은 가계가 파산지경에 직면한다. 물론 부동산 신화가 무너지면 공황이 온다거나, 일본식 불황이 온다는 주장에 반론도 있다. 우리의 금융, 대출구조는 당시 일본보다 건전하기 때문에 부동산이 무너져도 버틸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폭등이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만큼 미친 광풍이었듯이 무너질 때도 예측을 벗어날 수 있다. 누가 미래를 단언할 수 있단 말인가. 또 금융기관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해도, 국민들 개개인의 자산가치가 하락하고 은행빚만 남았을 때 터져 나올 심리적 공황은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그래서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은 한 마디로 ‘엉거주춤’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 당장 시장에 충격을 주는 정책은 극력 피하면서 금이야 옥이야 버블을 끌어안고 살살 달래는 것이다. 엉거주춤 반만 도입한 ‘모기지론’은 그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 보유세와 거래세를 통해 부동산을 연착륙시키겠다는 것이 참여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으로 보인다.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투기 광풍엔 폭등과 폭락밖에 없다. 모두가 미쳐돌아가는 놀음판이기 때문이다. 참여정부가 버블을 당장 붕괴시킬 의지가 없자 시장이 폭등으로 반응하고 있다. 어떻게 폭등과 폭락을 막으면서 이 폭탄돌리기를 연착륙시킬 수 있을까.

나로선 조금씩 조금씩 공공성의 원칙을 도입해야 한다는 원칙론밖에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개발이익, 투기이익, 부동산 보유 등에 모두 공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부동산 가격은 폭락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국민적인 합의가 필요하다. 결국 정치적인 문제인 것이다. 부동산 문제는 경제문제도, 시장원리도 아닌 선명한 정치투쟁의 장이다.

한편 조선과 한나라, 강남공화국 세력은 보유세 등에 결사적으로 저항하면서 현재의 부동산 문제는 맹목적인 투기가 아니라 정부의 규제에 의한 수요폭발일 뿐이니 공급을 늘리면 자연스레 해결될 거라 강변한다.

주택공급물량이 이미 사상최대규모라는 분명한 사실을 이들은 외면하면서 말이다. 한국사람이 지금 집이 모자라서 이 난리를 친단 말인가?

그들이 공급확대를 외치지 않아도 시장요구에 의거해 충분히 공급은 이루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이루어 질 것이다.

‘굳이’ 공급확대를 외치는 것은 투기판을 더 키우자는 말로밖에 안 들린다. 그 경우 막판에 터지는 폭탄은 우리 국민 경제를 날려버릴 것이다. 정녕 아파트 몇 채 더 굴리기 위해서 나라 경제를 담보로 삼을 셈인가, 한국의 수구여.

강남 부동산 투기판에서 수요-공급의 문제로 볼 수 있는 것이 딱 하나 있긴 하다. 이 것도 매우 중요한 건데 요건 다음에. (한 번 더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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