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11 테러 때처럼, 허리케인 카트리나 참사가 미국의 정치지형을 바꿀지 모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9·11 테러가 미국사회의 보수적 분위기를 강화하면서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큰 정치적 이득을 안겨줬다면, 이번엔 정반대가 될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10일 공개된 여론조사에서 부시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2000년 집권 이후 처음으로 40% 밑으로 떨어지며 정치적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뉴트 깅그리치 전 공화당 출신 하원의장은 지난주 공화당과 백악관에 돌린 메모에서 “정부의 위기대처능력을 현대화하는 대담한 계획을 제시해야 다음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언론들이 전했다.
추락하는 부시=이날 공개된 3개 여론조사에서 부시는 모두 2000년 집권 이후 가장 낮은 국정지지율을 기록했다. 3개 중 2개에선 처음으로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졌다.
<뉴스위크> 조사에선 지지율 38%로 한달 전에 비해 4%포인트가 떨어졌고, <에이피통신> 조사에선 39%를 기록했다. <타임> 조사에선 42%로 간신히 턱걸이를 했지만 이것 역시 <타임> 조사로는 최저치이다. 재선 대통령의 첫해 임기에 지지율이 30%대까지 떨어진 것은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리처드 닉슨이 유일하다.
부시 대통령의 가파른 지지율 추락은 이라크 수렁에다 휘발유값 폭등, 그리고 카트리나 참사가 결정적 요인이 됐다는 게 언론의 분석이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 9일 마이클 브라운 연방재난관리청(FEMA) 청장을 카트리나 구호작업에서 전격적으로 손떼게 한 것은 현 정치적 상황에 대한 그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부시는 지난해 이라크 포로 학대 파문으로 위기에 몰린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감싸안는 등 웬만해선 각료를 바꾸지 않아왔다.
정치지형 흔들린다=문제는 지지율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다. 부시 공화당 정권이 추구해온 정책기조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 제기되면서, 공화당 우위의 정치구도가 흔들릴 수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망했다. 빈민층 흑인이 주로 숨진 뉴올리언스 참사는 정부가 소외계층에 무관심했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감세정책과 사회복지 축소를 줄기차게 추진해왔는데, 이런 정책은 정부의 관심 밖에 있는 소외계층을 늘리며 재난 위험을 높인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존 포데스타는 “부시의 보수주의는 개인주의와 사적 기업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 결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시민, 특히 극빈층에 대한 사회의 책임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었다”고 비판했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저소득층 의료보험이나 각종 재정지원을 축소하려는 공화당 예산정책은 사실상 불가능해질지 모른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망했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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