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Bar·게임룸·노천탕' 모텔이 변하고 있다

변하기는...

 

'Bar·게임룸·노천탕' 모텔이 변하고 있다
[이코노믹리뷰] 2005/09/12 09:04
모텔이 변하고 있다. 모텔하면 어두컴컴한 복도와 다른 사람의 흔적이 남은 듯한 찜찜한 침대,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야릇한 소리를 떠올렸다간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서 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받기 십상이다.

요즘 20~30대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모텔들은 수중안마 기능이 있는 월풀 욕조와 초고속인터넷이 가능한 PC, 대형 벽걸이 TV와 홈 시어터 시스템은 기본으로 갖춰놓고 있다. 좀 인기있는 모텔들은 객실별로 테마에 맞춰 인테리어를 꾸미는 한편 연인들을 위한 와인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실제로 역삼동의 J 모텔의 경우 고객들의 취향에 따라 객실에 당구대를 설치하거나 커플이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PC를 두 대 설치하는가 하면 서초동의 N모텔은 로맨틱한 분위기를 즐기는 커플을 위해 장미 모양 욕조에 장미꽃잎을 띄워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테마에 따라 객실 분위기를 다르게 꾸며놨다.

최근 영화 《연애술사》의 배경으로 이용돼 유명해진 대구의 한 모텔 역시 객실을 ‘베르사이유의 장미’와 ‘아! 먼로여’ ‘조선남녀상열지사’ ‘장밋빛 인생’등 다양한 컨셉트로 꾸며 놓았다. 이 모텔의 객실에는 컨셉트에 맞춘 테마의상까지 준비되어 있어 모텔을 찾은 고객들은 새로운 분위기 창출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아! 먼로여’ 룸의 경우 바람에 치마가 올라가는 장면으로 유명한 마릴린 먼로의 사진 속 치마가 준비되어 있다. 이 룸을 찾는 여성 고객은 그 자리에서 마릴린 먼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원의 한 모텔은 객실 내에 실내수영장을 갖추고 있는가 하면 장흥의 한 무인 모텔은 객실 전용 노천탕까지 갖추고 있다.

요즘 모텔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객실 인테리어는 복층 구조의 객실.

모텔 이용자들이 모텔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카페 모텔가이드(http://cafe.daum.net/motelguide)의 시삽 채경일씨는 “최근 젊은이들이 모텔에서 파티를 여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복층 구조의 객실을 채택하는 모텔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모텔들이 고급화, 차별화하는 큰 배경은 성에 대해 개방적인 요즘 젊은이들의 태도가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모텔가이드의 사용자 후기를 싣는 게시판에는 ‘욕실에 TV가 있어 너무 좋았다’ ‘남친이 팔을 다쳐 함께 월풀 욕조 등을 하지 못해 아쉬웠다’ ‘거품 욕조가 마음에 들었다’ ‘예약 손님에게만 제공되는 선물이라며 건네 받은 와인을 들고 남친과 욕조 안에 들어가 있으니 너무 행복했다’같은 내용의 글들이 부지기수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커플이 함께 모텔에 출입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보다 일종의 놀이로 여기고 있다는 반증이다.

젊은 커플들이 마땅히 즐길 만한 놀이거리가 없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도 이런 고급화한 모텔들이 인기 있는 이유다.

서초동 나인스 모텔의 서재룡 차장은 “요즘 젊은이들이 휴일에 만나 영화보고, 차 마시고 PC방 가며 데이트해도 5만~6만원은 쉽게 나간다”며 “이 모든 것을 모텔에서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데다 단 둘이 있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젊은이들 사이에서 모텔이 인기를 끄는 것 같다”고 말한다.

요즘 인기 있는 최신식 모텔의 가격은 4~6시간 정도 객실을 사용할 수 있는 대실의 경우 3만~6만원, 숙박의 경우 6만~12만원 정도. 객실의 등급이 높아질수록 1만~2만원씩 가격이 올라간다. 하루 데이트를 이곳에서 모두 즐긴다고 할 때 결코 비싼 값은 아니다.

이처럼 모텔들이 대형화, 고급화하면서 모텔을 차리는 데 드는 비용도 늘어났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서초동의 한 모텔 관계자는 “주차장을 제외하고 땅값과 건축비, 인테리어 비용으로 120억원이 소요됐다”며 “예전에는 30억~40억원이면 러브호텔 하나 짓는 데 충분했지만 요즘은 강남에서 웬만큼 차별화된 모텔을 지으려면 100억원도 부족하다”고 말한다.

거금을 투자한 만큼 장사도 잘될까. 이 관계자는 “주말이면 객실 점유율이 300%, 주중에도 150%까지는 간다”며 “투자대비 연 수익률로 계산하면 15%는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강남구 역삼동의 한 테마모텔 관계자도 “주말에는 숙박이건 대실이건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방을 구할 수가 없을 정도”라고 귀띔한다.

이처럼 모텔들의 시설이 고급화, 대형화하면서 파티용으로 모텔을 이용하는 젊은이들도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가까운 여자 친구들끼리 모텔을 찾아 자그마한 파티를 갖는 경우가 차츰 많아지고 있다는 것. 이 같은 추세에 맞춰 강남의 한 모텔은 여성들끼리 속옷만 입고 모임을 열 경우 객실요금을 할인해 주는‘속옷파티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이쯤 되면 모텔에 대한 기존 관념이 뿌리째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음지를 전전하던 모텔이 바야흐로 양지로 나오고 있는 중이다.

[INTERVIEW] 모텔정보카페 운영자 채경일씨

“요즘 모텔, 특급호텔보다 낫지요”

2000년부터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모텔 사용자들이 모텔정보를 교환하는 인터넷카페 ‘모텔가이드’를 운영하고 있는 채경일 씨(32)는 국내 모텔문화의 변화를 이끌어 낸 장본인 중 한 사람이다.

채씨는 카페를 개설한 이유에 대해 “영국 유학 당시 주말에 놀러다닐 때 우리나라 벼룩시장 같은 ‘숙박정보지’ 덕을 톡톡히 봤는데 귀국해 보니 우리나라에는 대형 호텔 외엔 제대로 된 숙박정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사용자들끼리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카페를 개설했다”고 말한다.

“카페 개설 초기에는 참여가 저조했지만 이젠 사용기를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등 공감대가 형성되어 많이 자리가 잡혔다”고 말하는 채씨는 요즘 모텔들이 고급화, 대형화하며 양지로 나오고 있는 데 대해 “수요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느냐”며 반문한다.

“예전 칙칙한 여관 입구에서 ‘가네, 못가네’ 하며 손을 끌어당기는 것과 요즘의 젊은이들을 비교해 보라. 변화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의 숙박문화는 그런 변화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고 모텔이 그 틈새를 파고들었다”는 것이 채씨의 지적이다.

오히려 채씨는 요즘 한결 밝아지고 양성화된 모텔들을 보면서 한국형 숙박문화의 한 장이 열리는 것 아닌가 하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 널리 알려진 호텔의 경우 전체적으로 ‘크다’의 느낌만 있을 뿐 내부의 경우 천편일률적으로 정형화 되어 있다. 오히려 모텔의 경우 일반 호텔보다 개성 있게 잘 꾸며 놓은 곳이 늘어나고 있다”며 “중요한 건 인식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 채씨의 지적이다.

이형구 기자(lhg0544@ermedia.net)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