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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 애니콜에 혼을 불어넣다

뭐, 코리아 처자들 강한거야 세상이 다 아는 일

 

여인들, 애니콜에 혼을 불어넣다

'불량률 0.3%'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르포
신기의 손놀림으로 5초만에 불량 잡아내고
핵심공정 문제 생기자 밤샘 마다않고 해결
4300명 여사원들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구미=이광회기자 santafe@chosun.com
이인열기자 yiyul@chosun.com
입력 : 2005.09.12 18:29 18' / 수정 : 2005.09.13 04:29 15'


 


▲ 애니콜 생산라인의 ‘최종 수비수’ 최현미씨. 완성된 휴대폰 2대를 손에 들고 현란한 손놀림으로 문제점을 찾고 있다./ 이기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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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애니콜 불량률
1991년 경북 구미(龜尾)는 ‘낙동강 페놀사건’의 진원지였다. 2005년 9월의 구미는 ‘꿈의 도시’로 변신해 있다. 꿈은 모두의 것이다. 대학 진학을 포기한 농부의 딸들, 실직(失職)에 좌절한 사람, 장인(匠人)의 길을 선택한 기능공들…. 모두가 꿈을 찾아 구미로 몰려들고 있다. 구미시의 인구는 매년 1만명씩 늘어난다.

불황 속에서도 수출전선 구미는 활기차다. 작년 구미공단 생산액은 43조원. 그 중 272억달러를 수출해 161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대한민국 무역흑자 총액(298억달러)의 절반(54%)을 구미 혼자서 만든 것이다.

구미로 향하는 꿈, 그 한복판에 삼성전자 애니콜 사업장이 있다. 부지 15만8000평. 구미공단의 한 귀퉁이에 불과하지만 공단 전체 생산의 51%(21조9000억원), 국내 총수출의 11%를 만들어낸다. 매출액은 삼성전자 전체(57조)와 현대자동차(27조), 한국전력(25조)에 이어 4위다. 포항·광양을 합친 포스코(20조)마저 제쳤다.

세계를 석권한 ‘애니콜 신화’는 저절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불량률 0.3%. 초저(超低) 불량률의 세계 최고 공장을 만든 주인공은 명문대 출신도, 석·박사 연구원도 아니다. 고졸 출신의 4300명 생산직 여사원들이 바로 주역이었다.

제조동 2동(棟)의 애니콜 최신 모델 ‘SGH 640’ 생산라인. 공장 안에서 이곳은 ‘5초 라인’으로 불린다. 벽에 붙은 ‘Tact Time(대당 생산시간) 현황표’가 이유를 풀어주었다. ‘23초(1998년)→18초(2000)→11초(2002)→5초(2005)’.


▲ 애니콜 공장의 생산직 여사원들이 자신이 만든 휴대폰을 든 채 하늘을 올려다본다. 세계 최고의 휴대폰 공장을 만든 것은 현장 지식과 혼(魂)으로 무장한 이들 ‘여직원의 힘’이었다. /이기원기자
“7년 전엔 한 대를 만드는 데 23초 걸렸죠. 지금은 5초면 한 대가 뚝딱 나옵니다.”(무선제조팀 김종호 상무) 대당 생산시간 5초 공장은 세계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5초 라인’의 검사공정. 6년차 생산직 최현미씨가 로봇자동화 공정에서 떨어진 휴대폰 두 대를 두 손으로 들어 올린다. 키 판을 두드리는가 했더니, 진동모드 확인. 이어 뒤집더니 외관 하자 여부를 정밀 점검하고, 액정화면의 색감·카메라모드를 체크한다.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다. 하지만 가느다란 흠집조차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이렇게 최씨는 하루 한두 개 정도의 불량품을 잡아낸다.

구미사업장의 ‘애니콜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자주 한다. “애니콜엔 혼(魂)이 들어가 있다”고.

작년 12월, 사업장은 초비상이었다. 애니콜 핵심공정 라인의 노즐(로봇 팔)에 문제가 발생했다. 불량률은 높아지고 하루 125분씩 가동중단 사태가 이어졌다. 제조 라인을 교체하려니 라인당 40억원이 날아갈 판이었다. 진퇴양난의 상황.

해결사로 나선 것은 혁신팀(분임조) ‘아우성’ 소속의 16명 생산직 여사원들이었다. 이들은 3개월간 밤샘 근무마저 마다하지 않은 채 해답 찾아내기에 몰두했고, 결국 문제를 해결해냈다. 석·박사 학위의 고급 두뇌가 끙끙 앓던 것을 이들이 해낸 것이다.

무선 제조동에 들어서니 빼곡히 늘어선 간판이 눈길을 붙잡는다. ‘부품 두께를 0.3㎜에서 0.15㎜로 개선’ ‘라인 이동거리 줄이기’…. 생산직 사원들이 낸 아이디어로 효율이 올라간 수치가 빽빽하게 적혀 있다. 178개 분임조가 매년 700여개의 혁신 아이디어를 낸다. 하루 2건꼴이다.

김종호 상무는 “같은 설비를 갖고도 경쟁사들이 쫓아오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런 현장의 힘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고 제품의 경쟁력을 만든 것은 ‘여사원의 힘’이었다.

8년차 고졸 생산직 이옥규(27·‘아우성’ 분임조장)씨는 불량 휴대폰 수리에 관한 한 세계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자부한다.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체득한 손끝 기술, 책에는 없는 그만의 노하우가 그를 세계 1등으로 지탱해 준다.

4년차 김정아(23)씨에게 장래 꿈이 무언지 물어 봤다. 그랬더니 “(삼성전자) 사장에 도전하고 싶어요”란 당찬 대답이 돌아온다.

입사 9년차로 50여개의 혁신성과를 낸 김영진(28·여)씨는 ‘크레이지 걸’(미친 여자)로 불린다. 자기가 직접 붙인 별명이다. 그는 “최고가 되려면 미쳐야 한다”고 했다. 이해선(24·여)씨는 “야근으로 밤을 꼬박 새우고도 분임조 회의에 빠지지 않는 열정, 밥 먹을 때도 생산라인만 생각하는 분위기가 우리 사업장의 힘”이라고 말했다.

구미 애니콜사업장 생산직 사원들은 지난 4월부터 명함을 갖기 시작했다. 입사 3년차 김지은(23)씨는 “난생 처음 명함을 받아 가장 먼저 고향(경남 진주)의 부모님께 갖다 드렸다”고 말했다.

이들의 혼을 불러일으키는 동력은 ‘자율의 힘’이었다. 올해 구미사업장의 모토는 ‘초일류 자율현장으로 가는 자회사’. 여기서 ‘자회사’란 하청업체가 아니라 4300여명의 생산직 기능공을 지칭한다. “간섭과 통제가 아니라 스스로가 주인이 되라”(김혁철 상무·제품기술1그룹장)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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