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표와 측근 3인방. 왼쪽부터 유승민 대표 비서실장, 박대표, 김무성 사무총장, 전여옥 대변인. | |
“대표 측근 3인방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되는 게 없다.” “3인방에 의해 박근혜 대표는 장막이 쳐져 있다.” 한나라당 안팎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이다. 한나라당의 많은 의원들은 “이대로 가면 또다시 ‘2002년꼴’이 난다”고 걱정한다. 물론 ‘2002년의 꼴’이란, 이회창 당시 총재가 대세론에 함몰돼 측근에 둘러싸여 있다가 대선에 실패했던 것을 말한다.
실제로 최근의 여론조사는 이런 우려의 현실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7월 말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차기지도자 여론조사에서 고건 전 총리에 이어 줄곧 2위를 고수하던 박근혜 대표(12.9%)가 처음으로 이명박 서울시장(15.1%)에게 역전되었다.
2004년 12월부터 2005년 7월 말까지 세 차례의 조사에서 박근혜 대표는 19.2%→15.5%→12.9%로 하락세를 보인 반면, 이명박 시장은 같은 기간 9.9%→10.9%→15.1%로 상승세를 보였다. 정당 지지율에서는 한나라당 26.9%, 열린우리당 20.5%로 나타났다. 집권·여당의 실정(失政)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정체 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 대표를 ‘인(人)의 장막’으로 둘러싸고 있다고 비판받고 있는 3인은 김무성 사무총장, 유승민 대표비서실장, 전여옥 대변인이다. 이들 중 비판의 화살은 김 총장과 유 실장에게 가장 많이 쏟아진다.
3선인 김무성 의원은 2005년 1월 한나라당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김무성 의원이 사무총장이 된 이후 대표 비서실에선 “사무총장이 박 대표에게 올라가는 모든 정보를 차단하고 권력을 독점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김 총장은 회의석상에서 다른 견해가 나오면 즉각 “○○○ 의원, 이런 자리서 왜 쓸데없는 소리야”하는 식으로 현장에서 제압한다. 이런 일이 빈번하다보니 의원들은 회의에서 입을 닫고 있기 일쑤다.
한 중진 의원은 “사무총장은 2002년 대선 패배의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면서 “그런 사람이 자숙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지금 다시 박근혜 대표의 최측근으로 행세하며 또다시 한나라당을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무성 총장은 2002년 대선 정국에서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최측근 그룹에 속했다. 2002년 5월부터 2개월간 이회창 대통령후보 비서실장을 맡았고, 2002년 9월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선기획단 기획위원 겸 미디어대책본부 본부장을 지냈다. 한나라당은 미디어대책에서 민주당에 참패했고 두 번째로 권력을 내줬다.
김 총장은 통일민주당 당료로 출발해 청와대 비서관과 내무차관를 거쳐 15대 국회의원이 됐다. 이후 한나라당이 이회창 체제로 바뀐 뒤에는 이 총재의 최측근이 된다. 그러다 박근혜 대표 체제에서는 가장 힘센 사무총장이 된다. 한 당직자는 “김 총장은 장사논리로 정치를 재단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이 당직자는 “김 총장에게서 이념과 철학을 발견하기 어려운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석에서 “한나라당의 당권을 잡는 게 나의 꿈”이라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한다고 한다.
유승민 비서실장 역시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총재의 최측근 중 한 명이었다. 그가 한나라당의 싱크탱크라는 여의도연구소장에 부임한 것은 2000년 2월. 미국 위스콘신메디슨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정치권에 들어오기 전까지 주로 정부 산하 경제관련기구 연구원으로 일했다. 현실정치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던 그는 여의도연구소장직(職)을 2003년 9월까지 무려 3년7개월이나 맡았다.
한나라당 내에선 “유 비서실장 역시 2002년 대선 패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대선 당시 여의도연구소장으로서 이회창 대통령후보의 경제정책 특보를 지냈다.
2002년 12월 대선의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면 행정수도를 충청권으로 옮기겠다”고 공약하자 이회창 후보는 이를 “수도가 옮겨가면 집값이 떨어진다”고 반격했다. 국민 대다수가 집값이 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회창 후보는 이처럼 어이없는 반격 카드를 꺼냈다. 당시 한나라당 대선캠프의 관계자나 한나라당 출입기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수도가 옮겨가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논리는 여의도연구소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밖에도 유승민 의원은 ‘대표비서실장으로 제 역할을 못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야당대표 비서실장이면 박근혜 대표에게 당 바깥의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 다양한 의견을 듣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 비서실장의 장점은 성실성과 꼼꼼함이다. 그러나 종합 정리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결정적으로 정치적 상상력이 부족해 야당 대표의 비서실장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다.
왜 박근혜 대표는 한나라당과 이회창씨를 실패하게 만든 두 사람을 중용할까? “박근혜 대표와 이회창 전 총재가 ‘출신 성분’ 탓에 좋아하는 사람이 비슷하다”고 분석하는 당내 인사도 있다. 이 인사는 “김 총장과 유 실장 역시 부유한 집안 환경으로 인해 밑바닥의 정치 민심을 모른다”고 지적한다.
한나라당 출입기자들은 전여옥 대변인을 ‘박 대표의 비서실장’이라고 부른다. “한나라당에선 당대변인은 없고 비서실장만 두 명”이라는 소리도 나온다. 전 대변인은 정치경력이 1년6개월밖에 되지 않지만 박 대표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한 출입기자는 “전 대변인은 대변인 역할보다는 박 대표를 따라다니는 데 열의를 보인다”고 지적한다.
전 대변인을 향한 비난은 지난 6월의 ‘문제의 발언’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다음 대통령은 대학 나온 사람이 돼야 한다”는 말은 공당(公黨)의 대변인으로 해서는 안되는 발언이었다. 이는 지난 총선 직전 정동영 열린우리당 당의장을 자진사퇴케 한 “60~70대는 투표 안해도 괜찮다.… 집에서 쉬셔도 된다”는 발언과 버금가는 중대한 잘못이었다.
그런데도 박 대표는 전 대변인을 감싸안았다. 이는 여의도연구소의 4·30 재보궐선거 문건유출 사건으로 윤건영 소장을 경질한 것과 좋은 대비가 된다. 문건 유출은 해프닝에 불과하지만 ‘대학 나온 대통령’ 발언은 당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전 대변인의 실언으로 한나라당이 유탄을 맞고 있다”고 걱정했다.
실무자로서 유신헌법의 기초작업에 참여한 김기춘 의원은 한나라당에서 수구적 이미지가 강한 정치인이다. 그런데도 박 대표는 당내의 반발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김기춘 의원을 여의도연구소장에 임명했다. 박대표의 이런 인사 스타일은 당의 결속력을 해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무성 총장, 유승민 비서실장, 전여옥 대변인 3인은 박근혜 대표를 정점에 놓고 정립(鼎立)한 모습이다. 의원들과 당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세 사람은 ‘박근혜 대세론’을 공고화하기 위해 의원들을 줄세우거나 아니면 내치고 당을 사조직화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이 어떻게 보든 당내의 세력경쟁에서 우위만 점하면 된다는 것으로 보인다. 경선을 하되 결과가 뻔한, 드라마도 감동도 없는 경선구도를 만들겠다는 게 이들의 목표라는 얘기다.
한 소장파 의원은 3인방의 모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담담하게 그들이 하는 것을 관조하고 있다. 3년 전 이회창씨를 에워싼 그룹들이 자신과 나라도 망하게 했으나 지금은 다르다. 계속 그렇게 하다가는 이제는 자기들만 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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