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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노무현’ 김두관 전장관, 정무특보로 청와대 입성

군수 출신 지방자치 전문가의 입성은 일단 진보

 

 

 

‘리틀 노무현’ 김두관 전장관, 정무특보로 청와대 입성
대통령 정무특보로...당정관계, 합당론 변화 잇따를 듯
2005-05-16 13:53 이기호 (actsky@dailyseop.com)기자
[기사 대체: 2005-05-16 14:59]

‘리틀 노무현’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장관이 대통령 정무특보좌관으로 청와대에 복귀한다.

청와대는 16일 브리핑을 통해 이날 중앙인사위원회 위원장과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 인사에 대해 논의하고 조창현 현 중앙인사위원장의 연임과 김 전 장관의 정무특보의 내정사실을 밝혔다.

김만수 대변인은 “‘모범적인 지방행정가’라는 평을 받으며 참여정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발탁되어 국정개혁을 추진한 바 있다”며 “당정에 걸쳐 경험이 풍부할 뿐 아니라 성격이 소탈하고 지역구도 해소와 국민통합 및 정치개혁에 대한 강한 신념을 지니고 있어 정무분야에 대해 대통령을 잘 보좌할 것”이라고 기대를 밝혔다.

▲ 대통령 정무특보로 임명된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자료사진) ⓒ 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김 대변인은 “김 전 장관이 행정, 당내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필요사항이 있을 때 자문역할을 잘 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지만 “대통령의 자문역할이지 상설적인 역할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당정분리원칙의 변화라는 시각을 경계했다.

김 대변인은 정무특보직을 다시 부활시킨 이유를 묻는 질문에 “상설 근무체제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에 자문에 응하는 역할을 할 뿐”이라며 “앞으로 이런 역할에 대한 기대가 있을 것 같아서 마련된 것”이라 강조했다.

뻔한 낙선 각오하고 지역주의 극복 위해 노력

김 전 장관의 정무특보 발탁은 민주화운동과 농민운동을 거쳐 95년 민선1기 남해군수에 전국 최연소로 당선되어 재선하면서 혁신적 행정스타일과 정책추진을 인정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리틀 노무현은 내게 너무 과분한 평가”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지만 낙선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민주당 경남지사 후보로 출마하는 등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노력해온 점 등 노 대통령과 비슷한 인생의 궤적을 보이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이 이론적 근거를 제공해온 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서 실무과정을 담당하며 대통령과 인연을 쌓아 참여정부 초대 행자부장관에 오르기도 했다. 지방정부의 경험과 참여정부의 주요과제인 지방분권에도 탁월한 식견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한나라당의 공세로 장관에서 물러날 당시 노 대통령이 다른 장관직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김 특보는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라며 이를 거절했다. 김 특보는 경남지역을 책임을 지겠다며 고향을 내려가 4·15총선에 나섰지만 지역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낙선했으며 지난 4·2 전당대회에서 초반 돌풍을 일으켰으나 막판 151표 차이로 아깝게 상임중앙위원직을 놓치기도 했다.

‘당정관계’ ‘합당론’ 변화 불가피

하지만 당정분리원칙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는 청와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김 정무특보의 복귀에 따라 김 신임 특보의 역할이 어느 정도 수준에서 이뤄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단 청와대는 당정분리원칙에는 전혀 변화가 없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이미 정무특보를 지낸 이강철 씨를 시민사회수석으로 다시 임명했고 이어 참여정부 초대 행자부장관을 지낸 김 정무특보를 다시 복귀시킴에 따라 당정관계에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김 정무특보가 그동안 우리당과 민주당의 합당에 반대해왔다는 점에서 당분간 민주당과의 합당론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 이기호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유시민-김두관의 가능성   /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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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춤 고건·이명박, 여전 박근혜, 반토막 정동영

노무현이 당선되던 그날, 나는 다음 대선은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의 두 사람의 싸움이 될꺼라고 예측한 바 있다. 사꾸라 논쟁 날리며.... 김원웅 vs 손학규

내 예측대로 될 가능성은 현재로써는 별로 없어보이는데 그래도 살아 움직이는 생물 정치의 내일은 모르는거 아닌가(tomorrow never knows)?

 

현재로써는 일단 팬클럽 간의 싸움 김근태 vs 박근혜가 가장 유력할 듯...

딴나라 당원인 울 아버지의 아노미... 딴나라에서는 절대 여자 안된다. 근데 설상가상 저쪽은 경기고-서울대 남자 후보!

 

그러니 아부지... 박사모가 장악하기 전에 당비내고 진성 당원 좀 되시라... 언제까정 무임승차?...

 

 

 

 

 

주춤 고건·이명박, 여전 박근혜, 반토막 정동영
3월과 비교, 차기 대권 주자들의 5월 기상도 천차만별
2005-05-17 08:36 이석원 (galamoi@dailyseop.com)기자
‘주춤한 고건과 이명박, 여전한 박근혜, 반토막난 정동영. 아직 오를 기미가 없는 김근태와 손학규.’

'한겨레'가 보도한 차기 대선 주자들의 최근 상태다. '한겨레'가 지난 13일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플러스’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대선 예비후보 선호도를 지난 3월 조사와 비교한 것이다.

한겨레에 따르면 이번 조사에서 고건 전 국무총리는 26.2%의 지지율로 주요 예비후보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3월과 견주면 3.1%포인트가 떨어졌지만, 여전히 다른 예비후보를 압도하는 수치다. 정당 지지자별로 봤을 때 한나라당 지지자(26.2%)보다 열린우리당 지지자(29.1%)들의 호응도가 다소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16.6%의 지지율로, 3월(17.7%)에 견줘 하락폭이 크지 않았다. 유력 후보 가운데 유일하게 제자리를 지킨 셈이다. 한겨레는 4·30 재보궐선거에서 큰 승리를 거둔 효과를 당 안에서 뿐 아니라, 당 밖에서도 보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지지도가 13.1%에서 10.4%로 하락한 것은 이른바 ‘청계천 비리 의혹’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한나라당 지지자 가운데 이 시장을 선호하는 이들이 20.2%에서 16.8%로 줄어든 것으로도 설명된다.

그러나 정작 한겨레의 보도에 의하면 가장 타격이 큰 쪽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다. 3월의 10.8%에서 5.1%로, 절반 넘게 지지세가 줄었다. 리서치플러스 쪽은 이를 ‘침투현상’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지난 4·30 재보선의 ‘여당 전패’라는 결과가 유권자들 사이에 퍼져 들어가면서, 여당 유력 후보의 지지세를 크게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여기에 철도공사(옛 철도청)의 러시아 유전개발 의혹도 지지율 하락을 거든 것으로 보인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과 손학규 경기도 지사,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등의 지지세는 여전히 3%를 넘지 못했다.

이번 조사에선 ‘모름 또는 무응답’이라고 답한 부동층이 3월(16.9%)에 비해 배 가까운 30.2%로 크게 늘어났다. 여야에 걸친 각종 의혹사건으로 정치에 대한 염증이 늘어난 탓으로 보인다. 이번 여론조사의 오차한계는 95% 신뢰수준에서 ±3.7%포인트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 이석원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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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과 이영표는 쌍둥이?

일단 재미로...

다만 고정민이 박그네보다는 한 100배 1000배 이쁘다. 잘못된 캐스팅

 

 

유시민과 이영표는 쌍둥이?
유명 정치인 연예인 닮은 꼴 패러디 유행…김근태는 트위스트 김, 이명박은 이을용...
2005-05-17 10:07 이기호 (actsky@dailyseop.com)기자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과 제일 닮은 유명인은 누구일까?

유명 정치인과 닮은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를 패러디한 사진이 인터넷상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유시민과 닮은 유명인’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패러디카페와 정치포털사이트 서프라이즈 등 유력 사이트에 등장한 패러디는 네덜란드 프로축구리그 에인트호벤의 이영표 선수를 유 의원의 닮은꼴로 꼽았다.

이 네티즌은 이외에도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손학규 경기도지사, 이명박 서울시장 등 차기 대권주자들과 닮은 유명인들을 잇달아 게재해 네티즌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다.

맨 먼저 등장한 박 대표의 닮은꼴 연예인은 현재 MBC에서 방송중인 ‘제5공화국’에서 박근혜 역을 맡은 탤런트 고정민. ‘TV소설 분이’ ‘허준’ ‘꽃보다 아름다운 그녀’에 등장했던 고 씨는 박 대표 역을 맡아 ‘닮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상시 정치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손 지사의 경우 ‘미술관 옆 동물원’ ‘신라의 달밤’ ‘신석기 블루스’의 주인공인 영화배우 이성재. 특히 약간 고개를 숙인 모습이 절묘하게 들어맞고 있어 등장인물 중에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세 번째로 등장한 김 장관은 원로배우 트위스트 김을 닮은 것으로 분류됐다. 전체적인 이미지가 비슷하고 특히 헤어스타일이 흡사해 비교적 우수한 ‘캐스팅’으로 꼽힌다.

유 의원과 더불어 2002년 월드컵 4강의 주역인 축구선수를 닮은 것으로 선정된 이 시장은 미국과의 예선전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해 역적위기까지 갔다가 이후 맹활약으로 터키리그까지 진출했던 이을용 선수다. 두 사람 모두 눈이 작고 코와 입의 생김새도 비슷하다. 차이를 찾자면 이 시장의 양쪽 눈의 생김새가 다른 ‘짝눈’이라는 정도. 이외에도 역시 축구선수인 이천수 씨가 이 시장과 ‘동류(同類)’로 꼽힌다.

유 의원의 경우 ‘초롱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영표 선수와 닮았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시원하게 터뜨리는 미소가 영락없이 비슷하다는 평이다.

이 패러디에는 등장하는 5명의 인물 외에도 역시 유력 대권후보인 이해찬 국무총리가 탤런트 최주봉 씨와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것으로 구분된다. 외모 뿐 아니라 충청도 말투도 비슷하다.

박찬숙 한나라당 의원은 ‘복길엄마’로 유명한 탤런트 김혜정, 이인제 자민련 의원은 한화이글스의 투수 노장진, 추미애 민주당 전 의원은 ‘한 상궁’ 양미경,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은 ‘금홍아 금홍아’의 영화배우 이지은이 닮은꼴로 유명하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이명박 시장과 더불어 이성재와 닮은 것으로 꼽힌다. 이는 이 의원과 이 시장이 닮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흥미를 자아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유명한 사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탤런트 이덕화, 박용식 씨가 대표적인 ‘유사인물’로 현대사를 묘사한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한다.

▲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유명 정치인들과 닮은 연예인들의 얼굴을 비교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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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알도표] 독도 사실은 ②

적절한 논평. 이는 또한 도쿄 재판 개판으로 한 일본의 문제이기도...

어디가나 극우수구 또라이 쉐끼덜. 일본 극우와 한국 극우의 연결 포주 문선명

 

 

 

 

독도 사실은 ②
2005-05-17 09:53 박대령 도표만평가 


ⓒ 데일리서프라이즈 < 박대령 도표만평가의 다른기사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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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과 우리당, 병신과 머저리

머저리 열우당... 정말 열우스럽지 않은가?

다만 창 제거의 박살모 변수도 고려

 

 

한나라당과 우리당, 병신과 머저리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병풍 특검, 열린우리당은 수용해야만 한다
2005-05-16 20:05 서영석 정치전문기자 (du0280@dailyseop.com)
이청준 선생의 소설 중에 ‘병신과 머저리’란 게 있다.

30년도 전에 읽은 소설이라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대략 형과 아우가 주인공인데, 전쟁을 체험한 세대인 형과 미체험 세대인 동생을 내세워 두 인물의 아픔을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병신은 정신적 상처가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제대로 된 분출구가 어디인지 모르는 형을 가리키는 말이고, 머저리는 아픔의 원인조차 알지 못하는 동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상 네이버 지식검색)

이회창 씨 아들 정연씨의 병역기피 의혹과 관련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공방을 보면 정말 이청준 선생의 소설 제목 그대로란 생각이 절로 난다.

병풍 사건으로 상처를 입었으나 그 원인이 이회창 씨 자신의 아들 단속 잘못이란 점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세상에 널리 알린 김대업 씨를 원망하는 한나라당이 이청준씨 소설에 나오는 병신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또한 선거에 일정하게 도움이 됐던 병풍 사건의 본질이 이회창 씨 개인에 대한 비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자로서는 결격사유로 유권자들에게 비쳤다는데 있다는 점을 알지 못하고 야당이 하자니까 무조건 반대부터 하고 보는 열린우리당은 이청준 선생 소설의 머저리에 해당하지 않는가.

정말 이청준 선생이 먼 미래를 내다보고 오늘날의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행태를 빗대 소설을 쓴 것이 아니냐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병풍 사건은 반드시 특검을 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하자는 특검 그대로라도 좋다.

우선 김대업 씨가 주장했던 바, 이회창 씨 아들 정연 씨의 병역비리를 감추기 위해 했다는 은폐대책회의의 존재 여부는 반드시 특검대상이 돼야 한다.

지금까지 언론에 거론된 사람들로 은폐대책회의 관련 특검을 한다면 증인으로 채택돼야 할 사람들은 대략 이렇다.

김길부 전 병무청장. 고흥길 한나라당 의원. 황우여 한나라당 의원. 권영해 전 안기부장. 김광일 전 청와대 비서실장.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 여춘욱 전 병무청 차장. 박기석 전 병무청장 비서실장. 당시 병무청장 수행비서와 운전기사 및 비서실 여직원. 그리고 김대업 씨가 있다.

두번째는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이른바 테이프 조작사건이 있다. 또한 한나라당이 병풍을 조작이라고 주장한 것과 이에 대한 오마이뉴스의 반대주장 등도 특검 대상에 당연히 포함돼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도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를 특검한다면 누가 증인으로 신청돼야 할까. 지금까지 언론에 거론된 사람들로 대략 짚어보면 이렇다.

테이프를 함께 조작했다고 주장했던 금모 씨.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 김문수 한나라당 의원. 그리고 김대업 씨가 있다.

마지막으로 정연 씨의 병역비리가 과연 사실인지 여부를 반드시 따져야 한다. 이회창 씨 본인과 부인, 그리고 아들 정연 씨 및 수연씨가 증인으로 채택돼야 할 것이다.

대통령 후보의 아들이 병역을 기피했다는 의혹을 받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다면, 그리고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권력층들로 은폐대책회의를 가졌다는 주장이 나왔다면, 공소시효는 지났다 하더라도 이 문제 자체에 대한 진위도 반드시 특검 대상에 들어가야만 한다.

김대업 씨의 폭로 등 모든 후폭풍이 바로 병역을 기피했을 것이란 의혹 속에서 나온 것인 만큼 반드시 그 사실여부는 가려져야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2002년 병풍 수사 당시 사실 여부를 가릴 수 있는 핵심적인 증인들이 검찰 소환에 응하지 않고 도피했다는 사실은 지금 묻혀 있다. 특검은 이들을 소환해 반드시 진실 여부를 가려야 한다.

이건 정치적 손익 여부를 떠나 제대로 된 나라라면 반드시 밝혀야 할 사실들이다.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이 김대업 씨와 관련이 있다느니 어쩌니 하는 얘기들도 특검을 하면 다 나올 사실들이다.

▲ 서영석 정치전문기자 
항간에는 한나라당의 특검 요구가 이회창 씨의 정계 복귀를 무산시키려는 박근혜 대표 측의 음모란 얘기도 나돈다. 반대로 한나라당이 대법 판결을 빌미로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에 흠집을 내기 위해 특검을 하려한다는 얘기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의도가 있으면 어떤가. 병풍 사건의 진실을 특검을 통해 밝히는 것이 유권자들을 위해서도 좋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정말 이회창 씨가 억울한 것인지, 아니면 억울할 것 하나도 없는 일인지 파헤치면 나올 것 아닌가.

한나라당도 병풍 특검을 하자는 초심을 잃지 말고 말을 바꾸지 말아야 할 것이며, 열린우리당 역시 한나라당이 하자고 하는 일이라도 옳은 일이면 과감하게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야 실추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 서영석 정치전문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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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입술에 침이나 바르시지

울지아나, 썩 좋은 글...

미국식 자유주의와 유럽식 복지주의 사이의 기로에 선 대한민국 현주소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

그렇다. 교육이 곧 정치라는 것은 세상이 다안다

 

 

조선일보, 입술에 침이나 바르시지
2005-05-17 11:02 하재근 컬럼니스트
저녁나절, 외출 전에 한나라당이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내놓는다는 뉴스를 봤다.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주도록 하고, 입시에 고등학교별 특성을 반영하게끔 한다는 내용이었다. 한나라당이 매를 버는구나 하며 집을 나섰다.

밤에 집에 들어와서 조선일보 사이트부터 접속했다. 교육분야에서 한나라당이 이 정도 들이댔으니 필시 조선일보에서 사설이나 칼럼으로 받쳐줬을 거란 생각에서다. 아니나 다를까. ‘교육 논쟁의 탈선’이라는 제목의 사설이 떡하니 걸려있다.

가끔 조선일보는 ‘성실’이란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케 한다. 어쩌면 이렇게도 꾸준히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자기 할 일을 챙길까. 한발한발 내딛으며 악착같이 전진하는 조선일보. 교육 이슈를 누가 신경이나 쓴다던가. 그래도 조선일보는 교육을 놓치지 않는다. 교육분야 마스터플랜을 실현시키기 위해 조선일보는 10년째 뛰고 있다.

95년 벽두인 1월 11일자 칼럼에서 조선일보는 ‘세계화’에 걸맞는 교육개혁을 주문하고 나섰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이번 법안을 주도한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은 지난 10년간의 교육정책을 평가하며 교육개혁의 1단계는 완수됐다고 말한 바 있다. 이제 2단계로 간다. 바로 고교 평준화 폐지와 대학 자율화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 등 대한민국의 수구기득권집단은 지금 두 개의 떡을 양 손에 들고 있다. 하나는 ‘과거’, 하나는 ‘미래’다. ‘과거’는 박정희를 돌아보며 TK 군사독재 꼴통들을 껴안고 있고 ‘미래’는 자유주의에 입각한 국가 대혁신이다.

수구집단이 미래를 취한다는 건 모순인 것 같지만 그것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일 때는 인과율에 입각한 필연이 된다. 조선 봉권 지배층 --> 친일파 --> 숭미 군사독재 --> 자유주의 세력, 이런 수순으로 착착 진화하는 것이다.

과거에만 안주하던 수구집단이 미래의 도전에 직면한 것이 노태우 정권 이후다. 초유의 여소야대 정국에 그들은 정치권 민주세력의 한 축인 김영삼계와 제휴할 수밖에 없었다. 그 김영삼계가 문민정부를 세운 후 자유주의 개혁을 입안했다.

그것이 바로 ‘세계화’고 조선일보 95년 벽두의 칼럼은 박정희, 전두환의 나라인 대한민국을 ‘세계화’에 입각한 나라로 혁신하는데 가장 본질적인 관건이 되는 지점으로 ‘교육’을 지적한 것이었다.

문제의식은 간단하다. 과거엔 부귀를 정당화하는 기제가 봉건적 신분제였다. 해방 후 그것이 깨졌다. 그러자 등장한 것이 총칼로 사람을 쳐죽이고 군홧발로 짓이기는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파쇼기제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 87년 민중의 저항으로 깨졌다.

어떡하지? 기득권을 지켜야 하는데, 봉건적 신분제도 안 돼, 못사는 것들 때려죽일 수도 없어, 어떡하지? 이 때 이들은 미국을 떠올린다. 미국? 얼마나 좋아. 부자들의 천국. 군바리가 국민들 때려죽이지 않아도 부귀가 지켜지는 곳. 어떻게?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로.

사회체제를 사적경쟁의 원리로 싹 바꾸는 것이다. 수구기득권 집단이 이룩한 부귀권력은 경쟁원리에 의해 모두 정당화된다. “우리가 누리는 부귀? 우리가 경쟁해서 쟁취한 거야. 니네도 꼬우면 경쟁해서 이겨. 공동체? 내가 내 능력으로 경쟁해서 얻은 건데 공동체를 왜 신경 써?”

이렇게 병영사회에서 자유주의에 입각한 미국식 시장사회로 싹 바꾸려는 기획의 주체세력으로 나선 것이 김영삼 문민정부와 경실련이었다. 이들이 지금 한나라당이 쥐고 있는 ‘미래’라는 한 손의 떡이다. 공동체적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손학규와 박세일이 한나라당의 미래인 것이다.

수구기득권 집단의 목표는 첫째, 자신들의 부귀권력을 정당화하고, 둘째, 그것을 자식들에게 세습하는 거다. 어떻게 하면 가장 쉽게, 가장 안정적으로 이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여기서 교육의 중요성이 등장한다.

철저하게 서열화되어 있는 한국의 대학체제를 이용해서 자유주의적 신분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고교평준화를 폐지하고, 공교육을 해체하며 대학을 사립화, 자율화하여 절반은 한국식(서울대의 존재), 절반은 미국식(사립학교)인 새 시대의 신분기제를 만든다. 그것이 박세일, 안병영 등이 입안한 5.31 교육개혁의 정신이고,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까지 애매한 형태로 이어져오는 중이다.

원래 한나라당의 목표는 완전 자율화였으나(그래야 화끈한 돈지랄이 가능하니까),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최소한의 공공성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이 이른바 3불정책의 의미다. 교육이 부모의 돈지랄을 통해 자식에게 부귀권력을 세습하는 신분기제로 전락하는 걸 막겠다는 최소한의 저항이 바로 3불정책인 거다.

그러나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극단적인 대학서열체제를 이대로 둔 상태에선 그 어떤 교육개혁을 해도 의미가 없다. 이것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도 교육분야가 파행에 파행을 치닫는 이유다.

내신 위주로 가면 아이들한테 뭐가 더 좋아질까? 내신이든 단판 시험이든 뭐가 됐든 간에 대학서열체제가 있는 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서열에 아이들을 편입시키기 위한 변별력이고 그 변별을 위해 아이들은 죽어나가게 되어 있다. 바로 부귀권력을 세습시키기 위한, 신분을 가르기 위한 변별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직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저 즉자적으로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만을 호소할 뿐이다. 그것을 교육부의 내신강화 정책에 대한 저항으로 호도하면서 수구집단은 이 틈을 타 2단계를 실행하려는 것이다.

조-한 기득권 카르텔에게 내신강화가 절대 안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신이 강화되면 귀족학교가 사라지고 강남의 집값이 떨어진다. 다시 말해 고교 평준화의 원칙이 강화된다. 이렇게 되면 교육을 신분세습의 기제로 쓰려는 목표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명문고 주위에 잔뜩 몰려있는 이 땅의 지도층 나리들의 재산도 축나게 된다.

그래서 저들은 이번 혼란을 기민하게 이용 내신강화를 막고, 오히려 이 혼란을 고교서열화, 대학의 미국식 자율화의 기회로 삼으려는 것이다. 이것이 한나라당이 말하는 고교별 특성이란 말의 실체다. 수구집단이 사용하는 ‘특성’이란 말은 항상 ‘서열’로 번역해서 읽어야 한다. ‘특목’고가 현실적으로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웃기는 건 이번 조선일보 사설의 결론이다. 제목이 ‘교육논쟁의 탈선’인데, 뭔 소리인가 하면 작금의 교육논쟁이 교육자체가 아니라 사회개조논쟁으로 탈선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치이슈’화 됐다는 거다.

교육 부문이 가장 적나라한, 본질적인 정치투쟁의 장이란 건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조선일보가 알고, 내가 안다. 교육을 부귀권력세습의 신분기제로 만들려는 자들과, 진정한 인간, 인재, 시민을 기르는 장으로 만들려는 집단간의 정치투쟁인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 미국식 자유시장체제로 갈 것인가, 서유럽식 복지사회체제로 갈 것인가를 가르는 투쟁의 장이 또한 교육분야다.

야수의 사회로 갈 것인가, 인간의 사회로 갈 것인가. 입시기계인가 창의적 인재인가. 서열화인가 평준화인가. 돈지랄인가 공공성인가. 수직적 신분구조인가 수평적 다양성인가. 귀족인가 민중인가. 소수인가 다수인가.

문제의 본질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조선일보여. 교육문제는 교육문제일 뿐이라고? 입술에 침이나 바르시지.


외부 필자의 컬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 사이트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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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모 &quot;박근혜 대통령에 이명박 총리 멋질 것&quot;

제발 그렇게 좀 공개적으로 러닝메이트 나와라. 신나찌 스킨헤드 딱 그 수준이다.

 

 

 

박사모 "박근혜 대통령에 이명박 총리 멋질 것"
정광용 회장, 이 시장 대통령론 일축
  오동선(ohds2002) 기자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정광용 회장이, 한나라당내 차기 대권 주자 가운데 한 명인 이명박 서울시장에 대해 대통령보다는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총리를 하면 좋을 것이란 주장을 펼쳐 당내 논란이 예상된다.

정 회장은 17일 평화방송 라디오 시사 프로 <열린 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 인터뷰에서 "한나라당 내 박 대표의 라이벌인 이명박 시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추진력이 대단한 분"이라고 추켜세운 뒤 "박근혜님이 대통령이 되고 이명박 총리가 되면 얼마나 멋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이명박 시장은 총리감은 되도 대통령감은 못된다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어 이 시장측의 반응이 주목된다.

진행자가 "이명박 시장측에서는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에 박근혜 총리면 좋다고 주장하지 않겠는가?"라고 질문하자 정 회장은 "이명박 시장과 박근혜 대표와의 지지율을 보거나 그분들이 제시하는 국가 비전을 보거나 할 때 그 부분은 좀 표현이 이상하다"며 이 시장 대통령론을 일축했다.

정 회장은 "박근혜 대표님이 대통령이 되시는 순간 안정된 정치가 이룩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명박 시장께서는 총리가 되셔서 청계천 그거 하시는 것처럼 같이 하신다면 멋진 그림이 그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당내 소장파의 대통령 출마 가능성에 대해서는 "당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나올 수 있을지 그것은 의문"이라며 소장파의 당선 가능성에 강한 회의감을 나타냈다. 정 회장은 "거기서 거론되는 분이 누군지 모르지만 박근혜 대표처럼 국민적 인지도와 호감을 가진 분이 나와 줄지 그것은 상당한 의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박사모 회원들의 인터넷 글에 대한 소장파들의 강한 반발과 관련해서는 "우리들도 제대로 못 찾아내는 글들을 그분들이 희한하게 잘 찾아낸다"며 "의정활동을 해야 하고 소중한 세비를 타시는 분들이 일개 팬클럽에서 들어와서 그런 것을 뒤지고 있다면 그게 더 한심한 일이 아닌가?"라며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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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모 회장 "대선 뒤 노사모처럼 징그럽게 남지 않을 것"


2005/05/17 오전 10:56
ⓒ 2005 OhmyNews
오동선 기자는 평화방송 라디오 시사프로 <열린 세상 오늘>의 PD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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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받아가랏


 

연수야, 비틀즈 cd 받아가랏-1. 파란 시디


2장의 시디가 준비되어 있다. 수령은 나중에 할지라도 일단 설명부터 한다. 먼저 나의 설명 그담에 음반사 부클렛 설명이다.


일단 파란 시디부터 먼저 듣도록 한다.

 

Beatles 파란 시디 1 plus

99년 크리스마스 때 발매된 21세기형 히트곡집이다. 본시디에는 영국 1위곡 20곡, 미국 빌보드 1위 싱글 20곡 해서 총 28곡의 영미 1위곡이 수록되어있다. 2000년도 한해에만 미국에서 900만장 이상 팔렸으며 우리나라에서도 50만장 이상이 팔린 베스트 셀러이다.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도 받았다(세상에 해산한게 몇 년인데).


비틀즈는 당연히 5대 명반을 들어야겠으나 이 음반은 아직 개념이 탑재되지 몬한 초심자에게 좋은 컴필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 공개된 싱글이 동시에 발매된 앨범 컨셉의 표본이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참고로 비틀즈 5대 명반

65 아마도 가장 위대한 명반 Rubber Soul(19)

66 록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앨범 Revolver(14)

67 비틀즈의 농축된 재능이 만들어낸 불가사의 Sgt.Pepper's-(1)

68 비틀즈의 섬광이 극치에 달한 명반 white album(8)

69 해산 직전 그룹이라고는 도저히 믿을수 없는 음반 Abbey Road(9)


기타 모든 앨범들이 서양 롹 역사에 있어서 모두 시금석이다. 영화 패닉룸을 보면 당뇨병에 지쳐 쓰러져 가는 딸에게 조디 포스터는 비틀즈의 모든 앨범을 순서대로 외우게 한다)


이하 수록곡을 소개한다(앞으로 사상 최초라는 레토릭이 지겹게 등장할꺼다. 그러나 사실이다).

1. Please Please Me : 62년말 싱글 Love Me Do로 데뷔한 비틀즈의 2번째 싱글로 63년초 영국 차트 1위곡이다. 이곡으로 비틀즈는 영국을 정복하게 된다. 물론 동명의 데뷔 앨범도 63년 내내 계속 영국 앨범 차트 석권(비틀즈 초기 음악의 특징은 흑인의 리듬앤블루스, 백인의 컨츄리앤웨스턴 등 온갖 종류를 비틀즈 작곡 롹 형식으로 전부 끌어들이는데 있다)


2. From Me To You : 63년중 비틀즈의 3번째 싱글로 영국 및 유럽에서의 인기 굳히기 곡이다. 7주 1위


3. She Loves You : 4번째 싱글로 선 주문 31만장에 영국 판매량 160만장 기록했으며 63년 중반 영국 및 유럽을 석권한 곡이다. 이로써 Beatlemania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64년 미국 진출후 빌보드 1위... 트레이드 마크 예! 예! 예!  놀라운 작곡


4. I Want To Hold Your hand : 역사적 싱글로 비틀즈의 5번째 싱글. 63년말 영국에서 'She Loves You'의 바통을 이어받아 정상을 차지했고(선 주문이 무려 94만장) 64년 미국의 최초 1위곡이다. 갑자기 한옥타브 상승하는 작곡이 독창적이다. 영국에서는 동시에 발매된 2집 With the Beatles 또한 데뷔작 Please Please Me를 누르고 앨범 차트 정상에 등극한다(원래는 이 곡 대신에 With the Beatles 앨범의 첫곡인 It Won't be Long을 싱글 컷하려고 했다 함).


5. Can't Buy Me Love : 64년 4월 4일 동시에 영/미 차트 정상을 점령. 작곡자인 폴이 단독으로 부른다. 비틀즈는 64년 4월 4일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대기록을 세우는데 하루 차트 100위권 안에 비틀즈의 노래가 9곡이 랭크되었으며 1-5위까지 모두 비틀즈였다. 또한 7주를 1위 차지한 I Want To Hold Your hand를 끌어내린 곡은 바로 She Loves You였으며(2주 1위) 이를 끌어 내린 곡 또한 Can't Buy Me Love로 비틀즈는 14주 연속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의 대기록을 세운다(이 기록은 1990년대 위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 보이스 투 맨의 end of the road가 15주 연속 1위로 갱신된다).


6. A Hard Day's Night : 비틀즈 주연의 동명 영화 삽입곡으로 역시 동시에 영/미 차트 1위를 차지. 작곡자 존 레논의 더블 트랙 보컬이 특징. 영화는 영국 노동 계급 청년들을 잘 그려냈다고 호평받았으며 3집 OST 앨범 A Hard Day's Night은 최초로 Lennon-McCartney 작곡 컴비의 자작곡으로만 채워진 앨범이다.


7. I Feel Fine : 1964년 겨울 크리스마스 싱글로 이곡과 싱글 B면곡인 폴의 She's A Woman이 연말 차트에 올라 비틀즈는 한해 30곡을 차트로 올리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곡 I Feel Fine의 기타 피드백은 살아생전 레넌이 그렇게 자랑해마지 않았듯이 녹음 역사상 최초의 것이다. 또한 이곡의 연주도 멀티 기타 더빙에 기반해 있다. 아아 블루 노트의 도회적 세련미...


8. Eight Days A Week : 크리스마스 4집 앨범 Beatles for Sale 중의 1위곡. 폴의 작곡인데 존이 리드 보컬을 맡은게 특이하다. 전형적인 초기 비틀즈 롹 패턴 작곡이다. 이 시기 비틀매니아 열풍에 당사자 주인공들은 완전히 Knock Out된다(Beatles for sale 앨범은 가장 아름다운 커버 아트의 앨범으로 알려져 있는데 얼굴들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9. Ticket To Ride : 중기 비틀즈를 알리는 묵직한 사운드의 곡으로 링고의 드럼 테크닉이 뛰어나다(실제 이곡은 모든 드러머들이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다). 작곡자 존은 이 곡의 헤비 메틀의 원형이라고 자랑스러워 했는데 65년 중순임을 감안하면 확실히 오바다.


10 Help! : 비틀즈 영화 제2탄의 타이틀 송으로 여름을 강타했다. 비틀매니아 열풍에 지친 존은 이곡을 자전적인 애절한 블루스 곡으로 만들고자 했으나 싱글 발매 스케쥴에 쫓겨 결국 롹으로 편곡했다. 그 염원은 80년 존의 암살 후 티나 터너의 헌정을 통해 실현되는데 작곡 자체를 원채 잘해서 어느 버전에서나 빛을 발한다. independence, insocure 등 3음절 이상의 단어들이 등장하며 밥딜런의 영향을 받은 존의 사색적 가사쓰기로의 변화의 시도를 잘 보여주는 곡이다(65년 중반 비틀즈 5집 Help 앨범은 ticket to ride, help, yesterday 등 3곡의 빌보드 1위곡을 담고있으나 비틀즈 앨범 중 가장 맥이 빠진 앨범으로 평가된다).


11. Yesterday : 미국에서만 발표된 싱글. 2500여 차례 커버되어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곡. 이 곡으로 폴 매카트니는 25세 이전에 빌보드 1위곡을 10곡 이상 보유한 아티스트라는 대기록 또한 세운다. 프로듀서 George Martin의 권유로 사상 최초의 현악 4중주를 어시스트했는데 처음에 폴은 만토바니(Mantovani)식으로 될까봐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좋았고 향후 비틀즈가 기타 2대, 베이스, 드럼 식의 고전 롹큰롤 패턴에서 자유로워지는 계기가 된다. 폴 혼자만 녹음했기에 최초로 비틀즈 해산설이 나돌도록 한 곡(좌우간 기자 새끼들이란).


12. We Can Work It Out : 6집 Rubber Soul 앨범과 동시에 발매된 싱글이다. 이곡으로 비틀즈는 I feel fine부터 이곡까지 6연속 발매 싱글 빌보드 1위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이 또한 90년대 위트니 휴스턴에 의해 갱신ㅠ.ㅠ). 발표 당시 미국에선 사이먼 앤 가펑클의 'Sounds Of Silence'와의 '번갈아 1위 경쟁'으로 화제. 사이먼 앤 가펑클의 것이 1966년 1월1일 먼저 정상을 차지했으나 'We Can Work It Out'이 이후 2주간 1위를 넘겨받았고 다시 1월 22일 'Sounds Of Silence'가 정상을 뺏었으며 다음주에는 다시 'We Can Work It Out'이 1위를 탈환하는 정상의 곡예전을 펼쳤다. 결과적으로는 3주 정상을 밟은 비틀즈의 승리!


13. Day Tripper : 폴의 We Can Work It Out'과 함께 양면 A싱글이었고 시원한 기타 리프가 돋보이는 곡. 서로 A면을 차지하려 경쟁하며 존과 폴의 경쟁심이 처음으로 노출됨(원래 불씨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있었슴. 10대의 존의 밴드에 얼굴도 엘비스 같고 노래도 잘하며 또한 작곡도 잘하는 놈이 들어왔을 때 존의 입장에서 과연 이놈을 받아들여 말어)


14. Paperback Writer : 66년 중순 7집 Revolver 앨범과 동시에 발매된 싱글로 영미 동시 차트 1위. Revolver의 다이나믹함을 대변하는 곡. 반면에 코러스 하모니는 그 나름대로 비치보이즈 수준 이상을 보여주었다. 링고의 드럼이 빛을 발하는 싱글 B면의 존의 Rain 또한 비틀즈의 가장 뛰어난 싱글 B면으로 평가받음.


15. Eleanor Rigby : 66년 앨범 Revolver 수록곡으로 영국에서는 양면 싱글 'Yellow Submarine'과 함께 1위에 올랐으나 미국에서는 뒷면에 실려 11위에 머물렀다. 폴의 작곡으로 yesterday를 업그레이드했으며 나오자마자 작곡자들이 격찬해마지 않은 곡. 이제는 완벽한 하나의 실내악이다. 소외에 대해 다룬 가사마저 뛰어나다.


16. Yellow Submarine : 동명의 애니메이션 영화(비틀즈는 정말 안한 게 없다!) 테마 곡으로 영국에선 'Eleanor Rigby'와 양면 싱글로 발표되어 등정(登頂)했으나 미국에서는 아깝게 2위. 폴이 링고를 위해 만들어준 곡으로 동요이나 중요한 것은 당시로써 혁명적인 사운드 테크닉! 당시에는 컴퓨터가 없을 때이며 모두 수작업으로 연출했다(앨범 커버를 연상케하는 사운드 콜라쥬!   앨범의 커버 아트는 66년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17. Strawberry Fields Forever : 67년초 싱글 양면인 Penny Lane과 함께 사상 최고의 싱글로 평가되는 곡이다. 실질적 고아인 존의 어린 시절 도피처인 구세군 사원 Strawberry Fields에 관한 곡으로 처음에 발라드로 시작해 사이키 아트의 전형을 보여준다(군악대 북장단에 불쑥 튀어나오는 현악음 등). 존의 목소리가 늘어지듯 들리는 것은 서로 다른 key의 두 곡을 기술적으로 스피드 조절하여 붙였기 때문이다. 이후 사상 최고의 명반인 Sgt. Pepper 앨범의 서전!(앨범의 피날레이자 비틀즈 최고의 걸작곡으로 평가되는 심판날의 장관 A day in the Life도 솔직히 이곡보다는 떨어진다는 것이 사견이다)


18. Penny Lane : 뒷면의 'Strawberry Fields Forever'와 함께 팝 역사상 최우수 싱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역시 고향 리버풀 추억을 담은 폴의 곡으로 ‘양귀비를 팔고 있는 예쁜 간호사’ 음침한 극장에서 여친과 몰래하는 ‘four of fish and finger pie’ 등의 가사가 재미있다.


19. All You Need Is Love : 67년 후반 Sgt.Pepper 앨범 발매 직후 전세계의 TV가 링크하여 방영된 프로 [Our World]에 출연하여 실황 녹음한 기념비적인 곡. 약 4억 인구가 시청했을 것으로 추정. 당연히 영국에서 1위, 미국에서도 한달 뒤 1위. 히피의 테마인 사랑을 메시지로 담은 곡으로 프랑스 국가부터 자신들의 she loves you까지 네곡을 짜깁기했다. 존이 리드보컬(67년 비틀즈의 앨범 역량이 Sgt.Pepper에 결집되었다면 당시의 싱글들은 Magical Mystery Tour OST에 모였으며 이 편집반은 Penny Lane, All You Need Is Love, Hello Goodbye 등 3곡의 빌보드 1위곡을 담고있다).


20. Lady Madonna : 1950년대 로큰롤의 영웅 패츠 도미노(Fats Domino)를 떠올리는 쾌활한 곡조로 폴의 구르는 듯한 보컬이 매력. 68년 영국에선 정상을 밟았으나 미국에서는 4위.


21. Hey Jude : 68년 비틀즈는 아티스트들의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 창작을 위해 아티스트 사상 최초로 자체 레코드 회사를 설립하는데 이것이 바로 Apple Corp.이다(당시 존은 내츄럴 소샬리스트답게 사회주의 회사를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경영 초보들인 비틀즈가 직접 운영해 막대한 퍼주기 적자로 비틀즈 해산을 앞당겼으며 여적찌기 스티브 잡스의 컴퓨터 회사 Apple-McKintosh와 상표권 분쟁 중이다. 이 회사에서 최초로 나온 싱글이 바로 이곡 Hey Jude이다(앨범은 동시에 나온 2장짜리 white album)

폴이 이혼이 임박한 존의 아들 줄리안을 위해 만들어준 곡으로 존은 그 메시지를 요코와의 결혼을 폴이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했다you have found her, now go and get her.... 러닝타임 7분10초로 그때까지 1위에 오른 곡으로는 팝 사상 가장 길었던 곡. 또한 8주간 차트 1위에 올라 당시로써는 최장 빌보드 1위 기록. 원래 존은 자신의 Revolution을 싱글 A면으로 하려 했으나 이곡을 듣고 바로 포기!


22. Revolution : Hey Jude  싱글의 뒷면 곡으로 비틀즈 싱글 중 가장 시끄러운 곡. 68년 앨범 the Beatles(앨범 표지에 아무 것도 안씌여있어 일명 white album)과 동시에 발매된 싱글로 68혁명에 관한 존의 내적 갈등을 담고 있는 곡이다.


23. Get Back : 영/미 모두 1위에 오른 마지막 곡. 건반주자 빌리 프레스톤이 참여했고 폴이 작곡과 보컬을 주도했다. 그룹의 헤게모니가 완전히 폴로 이양됐음을 웅변하는 곡. 69년초 이곡의 옥상 공연(사상 최초의 게릴라 컨서트) 이후로 비틀즈는 실질적으로 해산한 바나 다름없게 된다(비틀즈를 다시 담으려는 폴의 노력은 점점 let it be가 된다).


24. The Ballad Of John & Yoko : 영국의 마지막 1위 곡. 멤버 중 존과 폴만이 참여한 곡으로 가사에 '예수'가 나오는 바람에 69년 중엽 라디오에서 금지되는 수난을 겪었다. 제목만 발라드이지 배경 비트는 엘비스의 록큰롤Don't be Cruel이다. 미국에서는 8위.


25. Something : 비틀즈 싱글 최초로 존과 폴 아닌 조지 해리슨이 쓴 곡. 애초 미국에서는 'Come Together'와 별도로 발표되었으나 곧바로 양면 싱글이 되어 정상에 등극했다. 프랭크 시내트라가 '지난 50년 동안의 가장 위대한 러브 송'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곡(존과 폴이 작곡한 것으로 오해하곤 했지만). white album에서 Eric Clapton이 기타 리드를 잡은 곡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그리고 포크록인 Here comes the sun을 거치면서 조지가 이렇게 성장했다. 70년 해산 직후 조지 해리슨은 사상 최초로 그룹 싱글/앨범 1위, 솔로 싱글/앨범 1위의 그랜드 슬럼을 기록하게 된다.

26. Come Together : 위의 Something과 함께 69년말 실질적인 마지막 앨범 Abbey Road 의 수록곡이자 싱글곡. Abbey Road 앨범의 백미는 B면의 오페라이지만 존의 정치 지향을 담은 이곡 '단/결/하/라' 하나만으로 앨범 가치를 평가하는 이들도 많은 듯...


27. Let It Be : 초기 비틀즈로 돌아가자get back는 폴의 노력이 이제는 내버려둬let it be로...  아! 피아노 코드 7개만 가지고 만든 폴의 천재적 작곡 능력!  70년 초 미국에서 6위로 데뷔하는 싱글 사상 신기록을 낳으며 정상을 차지했다. 당시 존의 솔로 싱글 instant karma와 경쟁하였다.


28. The Long & Winding Road : 20번째 마지막 빌보드 1위곡. 63년 실질적인 활동을 시작하여 70년까지의 온갖 기록과 역사를 대변하는 곡(비틀즈 멤버들 그 누구로부터도 관심을 끌지 못한채 거의 방치되다시피한 공식적인 마지막 (편집)앨범 Let it be에는 타이틀 곡 및 The Long & Winding Road, Get back 등 3곡의 빌보드 1위곡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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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atles, The / Beatles 1 [Emi 명반 재발매 시리즈]


자켓사진 - 음악창고
Beatles, The / Beatles 1 [Emi 명반 재발매 시리즈]

제작사 : EMI
발행일 : 2000/11/13
장르 : Rock / Metal
형태 : 1 CD
제조국가 : Holland
수입품

01   Love Me Do 

02   From Me To You 

03   She Loves You 

04   I Want To Hold Your Hand 

05   Can't Buy Me Love 

06   A Hard Day's Night 

07   I Feel Fine 

08   Eight Days A Week 

09   Ticket To Ride 

10   Help! 

11   Yesterday 

12   Day Tripper 

13   We Can Work It Out 

14   Paperback Writer 

15   Yellow Submarine 

16   Eleanor Rigby 

17   Penny Lane 

18   All You Need Is Love 

19   Hello 

20   Lady 

21   Hey Jude 

22   Get Back 

23   The Ballad Of John & Yoko 

24   Something 

25   Come 

26   Let It Be 

27   The Long & Winding Road 


전량 EMI 수입으로 유럽서 제작하고 아시아 국가에서 프린트. 



비틀즈는 기념물이 아니라 엄연한 '진행형'이다. 최신 히트곡 이상으로 그들의 음악은 우리 곁에 실재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비틀즈를 추종하고 그들의 곡 패턴을 재현하려는 신세대 밴드가 어디 하나 둘인가. 과거이자 현재이며 동시에 미래인 존재가 비틀즈다. 이번 베스트 앨범은 다시금 그들의 시공초월과 영생(永生)을 확연히 드러내 보인다.


어찌 보면 이번 앨범은 연대기인 [1962-1966](레드), [1967-1970](블루), [Past Masters Volume 1]·[Past Masters Volume 2]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음반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차트 정상이란 대기록으로 공인된 곡만을 엮어놓았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야말로 '서구 음악 영토 정벌'의 발자취로서는 최적의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따라서 비틀즈와 비틀즈 현상을 알려거든 이 앨범부터 시작해야 한다. 또한 비틀즈 곡에 대한 영국과 미국의 미묘한 시각차를 엿볼 수도 있다는 것도 이번 앨범이 갖는 매력이다.


먼저 'I Want To Hold Your Hand', 'She Loves You', 'Help!', 'We Can Work It Out', 'All You Need Is Love' 등 13곡은 영국과 미국의 팬들이 이구동성으로 환영했던 곡들이다. 또한 'Can't Buy Me Love', 'A Hard Days Night', 'Paperback Writer', 'Hello Goodbye', 'Hey Jude' 같은 곡들은 타이밍이 약간 달랐던 영국과 미국에서 거의 같은 날짜에 발표되어 양국의 차트 정상에 동시 등극했다. 영/미를 포괄하는 비틀마니아를 웅변하는 곡들인 셈이다.


그러나 두 나라간에 차이를 보인 곡도 많아 영국에서 1962년 발표되었던 첫 싱글 'Love Me Do'는 영국인들 사이에서 반응이 시원찮았던 반면 2년여가 흐른 뒤 미국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또 'Eight Days A Week'와 'Yesterday' 두 곡은 아예 미국에서만 단독으로 발표되어 1위를 기록했다. 'Penny Lane', 'Come Together/Something', 'Let It Be', 'The Long And Winding Road' 역시 미국에서만 정상을 밟은 곡들이다. 이 가운데 양면 싱글인 [Come Together/Something]의 경우 영국에선 1962년 'Love Me Do' 이래 처음으로 1·2위에 오르지 못한 채 4위에 머무는 푸대접(?)을 받기도 했다.


이와 반대로 'From Me To You', 'Yellow Submarine', 'Day Tripper' 'Eleanor Rigby' 'Lady Madonna', 'The Ballad Of John & Yoko' 등 6곡은 영국에서만 정상에 올랐다. 미국에서 'From Me To You'는 41위에 머물렀으며 'Day Tripper'도 'We Can Work It Out'의 뒷면에 실려 5위로 만족해야 했다. 'Yellow Submarine'는 아깝게 2위에 머물렀고 'Eleanor Rigby'는 이 싱글의 뒷면 곡으로 11위에 그쳤다.


'From Me To You'가 예시하듯 '영1위/미41위'는 두 나라의 정서적 편차를 확연히 드러내는 부분이다. 또 유사한 클래시컬한 곡임에도 'Yesterday'는 미국에서만, 'Eleanor Rigby'는 영국에서만 1위를 차지했다는 것도 다소 의아한 사실이다.


찬란한 넘버원 행진

1. Love Me Do : 영국에서는 62년 10월 발표되어 17위에 오르며 비틀마니아의 서곡을 울린 곡. 드럼을 세션맨 앤디 화이트가 대타로 연주해 화제를 모았다.


2. From Me To You : 미국에서 'I Want To Hold Your Hand'가 비틀즈 광풍을 상징한다면 영국에선 이 곡이다. 무려 7주간 정상을 차지했다.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의 편지 칼럼 'From You To Us'에서 제목을 빌렸다고 한다.


3. She Loves You : 선 주문 31만장에 영국 판매량 160만장 기록. 폴 맥카트니의 윙스(Wings)가 1977년에 발표한 'Mull Of Kintyre'가 깨기 전까지 싱글 최다 판매기록을 보유했다. 영국에서는 총 6주간 1위. 미국은 2주.


4. I Want To Hold Your hand : 역사적 싱글. 영국에서 'She Loves You'의 바통을 이어받아 정상을 차지했고(선 주문이 무려 94만장) 미국에서는 비틀즈 현상이라는 신기원을 이룩했다. 7주간 1위. 존과 폴이 버스를 타고 가다 즉흥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5. Can't Buy Me Love : 동시에 영/미 차트 정상을 점령. 영국에서 발매 첫 주에 1,226,000장이 판매되었고 미국에서는 첫 주에 200만장이 팔려나감. 비틀즈 초기 로큰롤의 전형적 패턴.


6. A Hard Day's Night : 비틀즈 주연의 동명 영화 삽입곡으로 역시 동시에 영/미 차트 1위를 차지. 존 레논의 더블 트랙 보컬이 특징.


7. I Feel Fine : 1964년 겨울에 발매되어 영국에서는 선 주문 75만장에 5주간 1위였고 미국에서는 3주간 정상. 존이 리드보컬. 미국에서는 폴이 리드보컬을 맡은 뒷면의 'She's A Woman'도 4위까지 올랐다.


8. Eight Days A Week : 미국에서만 발표된 싱글로 템테이션스의 'My Girl'을 끌어내리고 정상에 올랐다. 1주일이 8일이라도 사랑을 위해선 부족하다는 내용. 초기 히트싱글에서 자주 구사된 '존-리드, 폴-백업' 보컬의 패턴을 취한 곡.


9. Ticket To Ride : 폴 매카트니가 리드 기타를 친 곡. 존이 작곡하고 노래한 흥겨운 로큰롤. 1965년 4월 영국에서 3주, 미국에서는 한달 지나 1주 1위.


10 Help! : 비틀즈 영화 제2탄의 타이틀 송으로 여름을 강타했다. 이 노래 히트 후 엘비스 프레슬리를 만났으며 영/미 똑같이 3주간 정상을 차지했다(영/미 같은 주간 1위로는 유일). 최근 폴이 "누군가의 구원을 요청하는 레논의 절실함이 지금도 메아리쳐 온다"고 말하면서 '비틀즈 베스트' 중 하나로 꼽은 곡.


11. Yesterday : 미국에서만 발표된 싱글. 2500여 차례 커버되어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많이 레코딩된 곡. 이 곡에서부터 폴 매카트니가 작곡 천재로 불리기 시작했다. 단 두 번만에 레코딩을 마쳤으며(첫번째 테이크는 [Anthology 2]에 실려있다) 폴은 처음부터 만토바니(Mantovani) 오케스트라 음악의 컨셉트를 구상했다.


12. Day Tripper : 영국에서는 'We Can Work It Out'과 함께 양면 싱글이었고 미국에서는 'We Can Work It Out'의 뒷면 곡이라는 불리함 때문에 5위에 그침. 폴과 존의 환상적 합작으로 로큰롤 리듬감이 압권.


13. We Can Work It Out : 존과 폴의 완벽한 공조체제를 과시한 건강한 메시지의 곡으로 발표 당시 미국에선 사이먼 앤 가펑클의 'Sounds Of Silence'와의 '번갈아 1위 경쟁'으로 화제. 사이먼 앤 가펑클의 것이 1966년 1월1일 먼저 정상을 차지했으나 'We Can Work It Out'이 이후 2주간 1위를 넘겨받았고 다시 1월 22일 'Sounds Of Silence'가 정상을 뺏었으며 다음주에는 다시 'We Can Work It Out'이 1위를 탈환하는 정상의 곡예전을 펼쳤다. 결과적으로는 3주 정상을 밟은 비틀즈의 승리!


14. Paperback Writer : 폴의 리드 보컬로 1966년 6월 동시에 영미 차트 정상을 밟은 곡. 당시 드물게 홍보 필름(뮤직비디오의 시작?)을 찍어 'Thank Your Lucky Stars'에 방송되었다.


15. Yellow Submarine : 동명의 애니메이션 영화(비틀즈는 정말 안한 게 없다!) 테마 곡으로 영국에선 'Eleanor Rigby'와 양면 싱글로 발표되어 등정(登頂)했으나 미국에서는 아깝게 2위. 존과 폴이 링고를 위해 만들어준 곡이다.


16. Eleanor Rigby : 영국에서는 'Yellow Submarine'과 함께 1위에 올랐으나 미국에서는 뒷면에 실려 11위에 머물렀다. 나오자마자 작곡자들이 격찬해마지 않은 곡. 기존 틀을 깨는 그야말로 폴의 '음악혁명'!


17. Penny Lane : 뒷면의 'Strawberry Fields Forever'와 함께 팝 역사상 최우수 싱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1997년 '모조'지 전문가대상 조사에서 비치 보이스의 'Good Vibrations'에 이어 2위였으나 팬들 리서치에선 1위. 이런 산뜻한 멜로디는 비틀즈(특히 폴) 아니면 누구도 만들지 못한다. 영국에서는 2위였지만 미국에서는 아쉬움을 메웠으며 뒷면 'Strawbery Fields Forever'도 8위에 올랐다. 한편 EMI는 이때까지 비틀즈 음반판매량이 세계적으로 2억장에 달했다고 발표.


18. All You Need Is Love : 전 세계의 TV가 링크하여 방영된 프로 [Our World]에 출연하여 실황 녹음한 기념비적인 곡. 약 4억 인구가 시청했을 것으로 추정. 당연히 영국에서 1위, 미국에서도 한달 뒤 1위. 히피의 테마인 사랑을 메시지로 담은 곡이다. 존이 리드보컬.


19. Hello Goodbye : 1967년 영국에서 7주간이나 1위를 차지한 메가 히트송. 미국에서도 3주간 정상을 점령했다. 폴이 주도적으로 작곡하여 리드 보컬을 맡은 곡.


20. Lady Madonna : 1950년대 로큰롤의 영웅 패츠 도미노(Fats Domino)를 떠올리는 쾌활한 곡조로 폴의 구르는 듯한 보컬이 매력. 영국에선 정상을 밟았으나 미국에서는 4위.


21. Hey Jude : 주지하다시피 폴이 이혼이 임박한 존의 아들 줄리안을 위해 만들어준 곡으로 존은 그 메시지를 요코와의 결혼을 폴이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러닝타임 7분10초로 그때까지 1위에 오른 곡으로는 팝 사상 가장 길었던 곡. 엘비스 프레슬리가 부른 유일한 비틀즈 곡이기도 하다.


22. Get Back : 영/미 모두 1위에 오른 마지막 곡. 건반주자 빌리 프레스톤이 참여했고 폴이 작곡과 보컬을 주도했다. 그룹의 헤게모니가 완전히 폴로 이양됐음을 웅변하는 곡.


23. The Ballad Of John & Yoko : 영국의 마지막 1위 곡. 멤버 중 존과 폴만이 참여한 곡으로 가사에 '예수'가 나오는 바람에 라디오에서 금지되는 수난을 겪었다. 미국에서는 8위.


24. Something : 비틀즈 싱글 최초로 존과 폴 아닌 조지 해리슨이 쓴 곡. 애초 미국에서는 'Come Together'와 별도로 발표되었으나 곧바로 양면 싱글이 되어 정상에 등극했다. 프랭크 시내트라가 '지난 50년 동안의 가장 위대한 러브 송'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곡(존과 폴이 작곡한 것으로 오해하곤 했지만).



25. Come Together : 존이 작곡해 부른 곡. 그의 사상이 담겨있으나 척 베리의 곡 일부를 표절했다 하여 고초를 겪기도 한 곡.


26. Let It Be : 존의 'Come Together'와는 기조가 다른 폴의 시각이 담긴 명곡. 영국에서는 2위였으나 미국에서는 6위로 데뷔하는 싱글 사상 신기록을 낳으며 정상을 차지했다.


27. The Long & Winding Road : 비틀즈답게 최후도 1위로 대미를 장식했다. 명 프로듀서 필 스펙터가 현과 콰이어를 동원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편곡해 뿌리의 느낌을 구현하려 한 폴을 당황시켰던 곡이다. 웅장미가 압권.


글 / 임진모

자료제공 / EMI


chang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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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les 빨간 시디 62-66


파란 시디를 충분히 들었으면 빨간 시디를 들어주면 되겠다. 비틀즈 음악을 전기-중기-후기로 나누지만 크게 나누면 전기 62-66과 후기 67-70이다. 본 음반은 이중 전자이며 파란색 ‘1’ cd로 보자면 거의 절반인 16번째 트랙 Yellow Submarine/Eleanor Rigby까지이다. 나중에 들으라고 한 이유는 비정규 outtatrack이 많이 담겨있기 때문이다(주로 anthology에서 선곡한).


트랙에 대해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01   I saw her standing there    62년 싱글 Love Me Do로 데뷔후 63년초 데뷔 앨범 Please Please Me의 첫곡이다. 비틀즈의 전속 프로듀서인 조지 마틴과 비틀즈는 항상 앨범의 포문을 여는 첫곡 및 클라이막스 끝곡에 롹큰롤을 배치하도록 했다. 폴이 15살에 작곡한 이곡은 아마 비틀즈가 어느 활동 시대에 발표했어도 히트했을 최고의 작곡이다. 64년 비틀즈의 미국 입성시 I Want To Hold Your Hand의 싱글 B면이기도 했다.

02   Twist and Shout   63년초 데뷔 앨범의 피날레로 에벌리 브라더즈의 커버버젼이며 존의 롹커이다. 64년 미국에서 4주간 2위에 머무르다가 결국 내려왔는데 당시 비틀즈 노래의 최대의 적은 바로 비틀즈 자신이었다. 사상 가장 잘된 리메이크 중 하나로 평가되는데 참고로 필자는 이곡보다 4집 수록곡 Rock'n'Roll music을 더 치겠다(옛날에 샴프 CF에 삽입된).

03   Please Please Me : 비틀즈의 2번째 싱글로 63년초 영국 차트 1위곡이다. 이곡으로 비틀즈는 영국을 정복하게 된다. 물론 동명의 데뷔 앨범도 63년 내내 계속 영국 앨범 차트 석권(비틀즈 초기 음악의 특징은 흑인의 리듬앤블루스, 백인의 컨츄리앤웨스턴 등 온갖 종류를 비틀즈 작곡 롹 형식으로 전부 끌어들인데 있다). 본 버전은 초기 데모 버전이다.

04   From Me To You : 63년중 비틀즈의 3번째 싱글로 영국 및 유럽에서의 인기 굳히기 곡이다. 7주 1위. 당 버전은 앞부분 하모니카가 삭제된 different mix 버전이다.

05   She Loves You : 4번째 싱글로 선 주문 31만장에 영국 판매량 160만장 기록했으며 63년 중반 영국 및 유럽을 석권한 곡이다. 이로써 Beatlemania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64년 미국 진출후 빌보드 1위... 트레이드 마크 예! 예! 예!  놀라운 작곡

06   I Want To Hold Your hand : 역사적 싱글로 비틀즈의 5번째 싱글. 63년말 영국에서 'She Loves You'의 바통을 이어받아 정상을 차지했고(선 주문이 무려 94만장) 64년 미국의 최초 1위곡이다. 갑자기 한옥타브 상승하는 작곡이 독창적이다. 영국에서는 동시에 발매된 2집 With the Beatles 또한 데뷔작 Please Please Me를 누르고 앨범 차트 정상에 등극한다(원래는 이 곡 대신에 With the Beatles 앨범의 첫곡인 It Won't be Long을 싱글 컷하려고 했다 함).

07   It won't be long     영국 정규 앨범 2집 With the Beatles이자 미국 데뷔 편집 앨범인 Meet the Beatles(2란성 쌍둥이?)에서 쭉 3곡을 골라보았다. 앨범 오프닝인 이곡은 예! 예! 예! 초기 비틀즈를 잘 보여주는 곡이다.

08   Roll over Beethoven     척베리의 50년대 클래식을 리메이크한 곡으로 리드 기타리스트 George Harrison이 부른다. 그 밖에 척베리의 원곡보다 더 뛰어난 리메이크로 4집의 Rock and Roll Music이 있으며 BBC라이브 앨범 중의 Johnny B Goode, Sweet Little Sixteen(비치보이스 surfin USA의 원곡인)도 들을 만하다.

09   All My Loving     또다시 폴의 작곡 기량을 보여주는 곡으로 존의 웨스턴식 기타 또한 흥겹다. 이 트랙은 64년 2월 역사적인 미국 데뷔 무대인 Ed Sullivan show에서 골라보았다(당시 미국 범죄 발생율 zero라는 대기록이 또한 산출되었다).

10   Long Tall Sally     동명의 EP의 타이틀 곡으로 리틀 리차드의 원곡을 그보다 더 잘 소화해냈다. 한큐에!

11   Can't Buy Me Love : 64년 4월 4일 동시에 영/미 차트 정상을 점령. 작곡자인 폴이 단독으로 부른다. 비틀즈는 64년 4월 4일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대기록을 세우는데 하루 차트 100위권 안에 비틀즈의 노래가 9곡이 랭크되었으며 1-5위까지 모두 비틀즈였다. 또한 7주를 1위 차지한 I Want To Hold Your hand를 끌어내린 곡은 바로 She Loves You였으며(2주 1위) 이를 끌어 내린 곡 또한 Can't Buy Me Love로 비틀즈는 14주 연속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의 대기록을 세운다(이 기록은 1990년대 위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 보이스 투 맨의 end of the road가 15주 연속 1위로 갱신된다). 이 트랙은 컨츄리앤웨스턴 스타일의 데모 버전이다. 원작이 뛰어나니 어느 버전이든 좋다. 이곡 포함해 A hard day's night 수록곡을 쭉 4곡 소개한다.

12 A Hard Day's Night : 비틀즈 주연의 동명 영화 삽입곡으로 역시 동시에 영/미 차트 1위를 차지. 작곡자 존 레논의 더블 트랙 보컬이 특징. 영화는 영국 노동 계급 청년들을 잘 그려냈다고 호평받았으며 3집 OST 앨범 A Hard Day's Night은 최초로 Lennon-McCartney 작곡 컴비의 자작곡으로만 채워진 앨범이다.

13   And I Love Her     초기 폴의 걸작 발라드. 보사노바 리듬 및 악기편성을 시도해봤다. 이정도면 클래식 아닌가? 뒷부분이 한마디 더 긴 독일 rare트랙이다.

14   If I fell     폴에 뒤질새라 존의 발라드. 존과 폴이 함께 부른다.

15 I Feel Fine : 1964년 겨울 크리스마스 싱글로 이곡과 싱글 B면곡인 폴의 She's A Woman이 연말 차트에 올라 비틀즈는 한해 30곡을 차트로 올리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곡 I Feel Fine의 기타 피드백은 살아생전 레넌이 그렇게 자랑해마지 않았듯이 녹음 역사상 최초의 것이다. 또한 이곡의 연주도 멀티 기타 더빙에 기반해 있다. 아아 블루 노트의 도회적 세련미... 피드백 직전 뭐라고 속삭이고 있었을까?

16 Eight Days A Week : 크리스마스 4집 앨범 Beatles for Sale 중의 1위곡. 폴의 작곡인데 존이 리드 보컬을 맡은게 특이하다. 전형적인 초기 비틀즈 롹 패턴 작곡이다. 이 시기 비틀매니아 열풍에 당사자 주인공들은 완전히 Knock Out된다(Beatles for sale 앨범은 가장 아름다운 커버 아트의 앨범으로 알려져 있는데 얼굴들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17 Ticket To Ride : 중기 비틀즈를 알리는 묵직한 사운드의 곡으로 링고의 드럼 테크닉이 뛰어나다(실제 이곡은 모든 드러머들이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다). 작곡자 존은 이 곡의 헤비 메틀의 원형이라고 자랑스러워 했는데 65년 중순임을 감안하면 확실히 오바다.

18 Help! : 비틀즈 영화 제2탄의 타이틀 송으로 여름을 강타했다. 비틀매니아 열풍에 지친 존은 이곡을 자전적인 애절한 블루스 곡으로 만들고자 했으나 싱글 발매 스케쥴에 쫓겨 결국 롹으로 편곡했다. 그 염원은 80년 존의 암살 후 티나 터너의 헌정을 통해 실현되는데 작곡 자체를 원채 잘해서 어느 버전에서나 빛을 발한다. independence, insocure 등 3음절 이상의 단어들이 등장하며 존의 사색적 가사쓰기로의 변화의 시도를 잘 보여주는 곡이다(65년 중반 비틀즈 5집 Help 앨범은 ticket to ride, help, yesterday 등 3곡의 빌보드 1위곡을 담고있으나 비틀즈 앨범 중 가장 맥이 빠진 앨범으로 평가된다).

19 Yesterday : 미국에서만 발표된 싱글. 2500여 차례 커버되어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곡. 이 곡으로 폴 매카트니는 25세 이전에 빌보드 1위곡을 10곡 이상 보유한 아티스트라는 대기록 또한 세운다. 프로듀서 George Martin의 권유로 사상 최초의 현악 4중주를 어시스트했는데 처음에 폴은 만토바니(Mantovani)식으로 될까봐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좋았고 향후 비틀즈가 기타 2대, 베이스, 드럼 식의 고전 롹큰롤 패턴에서 자유로워지는 계기가 된다. 이곡은 현악없는 take1이다. 가사가 쫌 다르지. 현악을 입혀 정식 발매된 트랙은 take2이다. 폴 혼자만 녹음했기에 최초로 비틀즈 해산설이 나돌도록 한 곡(좌우간 기자 새끼들이란...).

20 Day Tripper : 65년말 Rubber Soul 앨범과 동시에 발매된 이 싱글은 폴의 We Can Work It Out'과 함께 양면 A싱글이었으며 시원한 기타 리프가 돋보이는 곡이다. 서로 A면을 차지하려 경쟁하며 존과 폴의 경쟁심이 처음으로 노출됨(원래 불씨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있었슴. 10대의 존의 밴드에 얼굴도 엘비스 같고 노래도 잘하며 또한 작곡도 잘하는 놈이 들어왔을 때 존의 입장에서 과연 이놈을 받아들여 말어)

21   Drive My Car : 이하 65년말 Rubber Soul 앨범 수록곡을 쭉 7곡 배치한다. rolling stones 잡지의 평대로 아마도 가장 위대한 앨범일지도 모르는 Rubber Soul은 66년 차기작 Revolver와 함께 초기 비틀즈의 정수로 평가된다. 듣고 춤추기 위한 노래집이 아니라 본격적인 감상용 앨범에 도전했으면 이 음반을 들은 밥딜런은 '이제 귀엽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말이군'이라고 반응했다고 한다. Help! 앨범의 연장선상에서 Rubber Soul 앨범은 포크록적인 따뜻한 느낌을 주며 반면 후기 Sgt.Pepper의 가교격인 Revolver 앨범은 차가운 일렉트릭 느낌이다. 그러나 어느 앨범도 단 한곡도 버릴 것 없이 포진되어 있다는 것은 공통점이다(마치 전곡이 히트곡집을 연상케하는 듯한). 더벅버리를 벗어버린 앨범 커버도 Beatles for sale에 견줄 수 있을 만큼 참 아름답다.

동시발매된 싱글 Day Tripper의 연장선상이자 앨범의 첫곡인 Drive My Car는 록큰롤임에도 불구하고 폴의 불협화음 작곡 그리고 leg time 연주 등의 변화하는 비틀즈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22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 : 존의 혼외정사에 관한 블랙 유머이다. 드라이한 가사가 바로 무라카미 하루끼의 동명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다. 막상 이곡이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리드 기타리스트 George Harrison이 도입한 인도악기 시타 연주에 있다. 향후 이러한 움직임을 Raga Rock이라고 부른다. 조지외 비틀즈 멤버들은 사상적으로도 인도 철학에 심취했으며 차기 Revolver에서 인도악기 도입은 더욱 전면화된다. 본 트랙은 96년 anthology에 담긴 데모 버젼으로 시타 연주가 더 전면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23   Nowhere Man : 비틀매니아 열풍 속에서 존의 상실에 관한 곡! 싱글 컷되어 빌보드 4위에 올랐으며 존,폴,조지의 3중창이 아름다운 곡이다. 차기 Revolver의 사이키델릭 I'm only sleeping은 연장작이다.   

24   Michelle : 폴이 샹송에 도전한다. 싱글 컷되지도 않았고 차트에 오르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미상을 수상한 폴 작곡의 절정! 막상 가사 면에서는 단지 감상적일 뿐이라고 비난을 좀 받은 바 있다.

25   Girl : 이번에는 존의 발라드이다. 국내에서 특히 인기를 얻었던 트랙으로 이 곡 또한 존의 블랙 유머로 가득차있다(아름다운 멜로디와 대비해). 여기서 girl은 기실 소녀가 아니다. 홍역을 치룬 '지금 비틀즈는 그리스도보다 인기있다' 발언 연장 선상에서 봐야한다. 노래 중 숨을 내쉬는 부분은 마리화나 흡입에서 따왔다. 배킹 보컬 중 tit, tit, tit, tit은 우리 말로 '찌찌'되겠다(전속 프로듀서 George Martin이 물었다. 너네들 tit이라고 그랬지? 비틀즈 왈 '아니요, dit이라고 그랬어요').

26   Think for yourself : 미국 데뷔 앨범인 2집 With the Beatles에서 최초의 작곡을 선보인 George Harrison의 2곡의 작곡 중 하나이다. 전작 Help앨범의 숨겨진 보물인 You like me too much의 연장 선상의 멜로디이다. 폴의 fuzz bass가 참신한데 막상 폴은 이후에 fuzz bass를 더이상 쓰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앨범 중 George의 또다른 작곡인 징글쟁글 기타곡 If I needed Someone도 3화음이 매우 뛰어난 러버소울 앨범 백미 중의 하나이다.

27   In My Life : 이제는 묘비명이 된 존의 자전적인 곡! 가사도 깊을 뿐더러 중간의 George Martin의 하프시코드 어시스트는 완벽한 실내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자전적 경향은 67년 존의 Strawberry Fields Forever/ 폴의 Penny Lane에서 계속된다.

28 Paperback Writer : 66년 중순 7집 Revolver 앨범과 동시에 발매된 싱글로 영미 동시 차트 1위. Revolver의 다이나믹함을 대변하는 곡. 반면에 코러스 하모니는 그 나름대로 비치보이즈 수준 이상을 보여주었다. 링고의 드럼이 빛을 발하는 싱글 B면의 존의 Rain 또한 비틀즈의 가장 뛰어난 싱글 B면으로 평가받음.

29   Eleanor Rigby : 이하 록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66년 Revolver 앨범의 수록곡을 쭉 5곡 배치한다. 앨범 수록곡으로 영국에서는 양면 싱글 'Yellow Submarine'과 함께 1위에 올랐으나 미국에서는 뒷면에 실려 11위에 머물렀다. 폴의 작곡으로 연전의 Yesterday에서 현악 4중주를 배치한 폴은 이곡에서 전면적인 현악4중주 곡을 선보여 나오자마자 작곡자들이 격찬해마지 않은 곡. 이제는 완벽한 하나의 실내악이다. 소외에 대해 다룬 가사마저 뛰어나다. 이 트랙은 98년에 나온 중기 비틀즈 모음 OST인 Yellow Submarine Songtrack 수록 리믹스곡으로써 앞의 파란 시디 수록곡이 오리지날 4트랙이어서 폴의 보컬이 왼쪽으로 치우친 반면 이곡은 16트랙 리믹스로 폴의 보컬이 중앙에 배치되어 있는 것이 차이점이다.

30   Yellow Submarine : 동명의 애니메이션 영화(비틀즈는 정말 안한 게 없다!) 테마 곡으로 영국에선 'Eleanor Rigby'와 양면 싱글로 발표되어 등정(登頂)했으나 미국에서는 아깝게 2위. 폴이 링고를 위해 만들어준 곡으로 동요이나 중요한 것은 당시로써 혁명적인 사운드 테크닉! 당시에는 컴퓨터가 없을 때이며 모두 수작업으로 연출했다. 이 트랙은 anthology에 수록된 redux 버젼으로 사운드 이펙트가 더 거칠고 전면적이다.

31   Taxman : 리드 기타리스트 George Harrison의 작곡 롹큰롤로 앨범의 오프닝을 장식하고 있다. 이어지다가 끊어지는 리듬이 참신하며 이 곡 외에 조지는 앨범에 두 곡을 더 수록하였는데 사이키델릭한 I want to tell you 외 본격적인 raga rock인 Love you to가 백미이다. 영국의 고율 조세 제도를 비판하고 있으며 가사 중에 당시 보수당 당수인 Edward Heath와 노동당 당수인 Harold Wilson의 실명이 모두 등장한다. 맨 앞의 세무원이 돈세는 부분의 고양이 소리도 사운드 이펙트이다.

32   Got to get you into my life : 앨범 중의 폴의 작곡(링고 보컬의 yellow submarine 포함 총 여섯곡)은 모두 뛰어나다. 이 곡에서 비틀즈는 brass rock까지 도입하였다. 70년에 해산한 비틀즈의 편집 앨범 중 가장 뛰어난 것은 조지 마틴이 직접 선곡한 76년 Rock and Roll music vol.1&2 편집 앨범으로 평가되는데 앨범이 빌보드 2위를 차지할 때 동시에 싱글 발매되어 차트 7위에 오른 걸작이다(싱글의 뒷면은 최초의 헤비메틀 Helter Skelter-white album 수록곡).

33   Tomorrow never knows : Revolver 앨범의 맨 마지막 곡으로 향후 어떻게 될지 모르는 John의 서전이다(예컨대 67년 Sgt.Pepper, 68년 white album...). 63년 본격 활동하여 예/예/예를 외치던 애송이들이 불과 3년만에 이 경지까지 왔다. 어떻게 3년전 밴드와 같은 밴드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곡의 가사는 티벳 고전인 '사자의 서'에서 빌어왔으며 C장조 한 화음을 바탕으로 당시의 첨단 사운드 이펙트가 총동원되었다(예컨데 싱글 Rain의 뒷부분 테잎 역회전 효과의 전면화). 애초 john의 프로듀서 George Martin에 대한 요청 '불교승 수백명이 경전을 읊는 배경 효과를 만들어주세요'에 못미칠지는 모르겠지만(당시 시대적 기술적 한계로 인해...) 66년 이정도의 이펙트는 사상 최초의 사이키델릭/프로그레시브 롹의 효시로 자리매김되는데 부족하지 않다. 이후 67년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에서 이런 사운드 이펙트는 더 전면화된다(리볼버 앨범 수록곡 중 직접적인 마약LSD 복용의 고백인 She said She said도 유사한 분위기의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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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les, The / 1962-1966 (Digital Remaster)

제작사 : EMI
발행일 : 1993
장르 : Rock / Metal
형태 : 2 CD
제조국가 : Holland


01   Love Me Do 

02   Please Please Me 

03   From Me To You 


04   She Loves You 

05   I Want To Hold Your Hand 

06   All My Loving 


07   Can't Buy Me Love 

08   A Hard Day's Night 

09   And I Love Her 


10   Eight Days A Week 

11   I Feel Fine 


12   Ticket To Ride 

13   Yesterday 

01   Help! 

02   You've Got To Hide Your Love Away 


03   We Can Work It Out 

04   Day Tripper 

05   Drive My Car 

06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 

07   Nowhere Man 

08   Michelle 

09   In My Life 

10   Girl 

11   Paperback Writer 

12   Eleanor Rigby 

13   Yellow Submarine 

 

 

출처:http://izm.co.kr 임진모

The Beatles/1962-1966(1973) / Beatles

The Beatles/1962-1966비틀스가 영국에서 '비틀마니아'를 야기하기 전 영국은 내각을 들쑤신 이른바 '프로퓨모 스캔들'이라는 정계 추문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 명의 매춘부에 의해 근엄한 의회가 농락당한 이 사건으로 영국인들은 정치에 깊은 회의에 빠졌다. 누군가 이 분위기를 전환해야 했다.

미국도 곤란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민주화의 거대한 우산이 돼주었던 케네디 대통령이 63년 12월 괴한의 총격에 암살되었다. 공민권운동과 반전운동에 힘을 모았던 대학생과 지성인 등 민주세력은 걷잡을 수 없는 무력감과 절망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이제 미국의 정치와 사회는 그들에게 희망과 기대를 줄 수 없었다.

비틀스는 양국의 이런 슬럼프 시점에, 어떤 사람도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얘기하지는 못하던 시점에 불쑥 등장했다.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의 이 네 마리 영국 리버풀 출신 딱정벌레는 사회적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즐거운 이야기들 그리고 신나는 음악을 뿌려댔다. 유쾌한 자들이라곤 그들 밖에 없어 보였다.

하지만 곧 양국 전체가 이 '근사한 4인'(Fab Four)의 일거수 일투족을 쫒으면서 침묵에서 깨어나 흥분과 함성을 회복했다. 애초에는 10대 소녀들의 집단 히스테리로 시작됐으나 잠시 후엔 전 세대와 계층이 비틀마니아에 포위되었다. 영국은 63년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3개월 사이 하루 걸러 한번 정도로 그들의 기사가 전국의 일간지 1면을 장식했다. 64년 3월 미국에 가서 마이애미를 거쳐 뉴욕에 당도했을 때 비틀스는 존슨 대통령마저 압도했다. 당시의 빌보드지 보도.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지난 주말 이 곳을 방문했지만 그의 도착 기사는 비틀스 공습에 가리워지고 말았다. 아무도 대통령의 방문은 몰랐지만 영국의 비틀스가 뉴욕에 왔다는 사실을 놓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비틀스는 단순한 음악적 현상이 아닌 '사회적 현상'이었다. 그러나 언론과 지식인들은 이런 측면에만 접근했으며 그들의 실력은 다소 과소평가한 점이 없지 않았다. '네 손을 잡고싶어'(I want to hold your hand)가 평지풍파의 회오리를 일으켰어도, 그들의 곡이 64년 4월 4일자 빌보드 차트의 1위부터 5위까지를 잠식했어도 제도권의 지배적 의견은 비틀마니아가 반짝으로 끝나리라는 것이었다(이 때 차트 순위는 1위 'Can't buy me love', 2위 'Twist and shout', 3위 'She loves you', 4위 'I want to hold your hand', 5위 'Please please me'였다).

초기의 단순한 로큰롤은 사회적 폭발에 눌린 탓에 큰 음악적 주목은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은 이제까지 미국인들이 접해보지 않은 독특하고 개성적인 로큰롤이었다. 거기에는 영국 특유의 셔플 감각이 뒤섞여 있었으며 무엇보다 '젊은 피'로 가득했다. 그리고 아주 신선했다.

사실 음악 수요자들은 처음으로 '밴드'가 연주하는 로큰롤을 접하게 된 것이었다. 이전의 로큰롤 스타들은 거의가 솔로 아티스트들이었다. 넷이서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드럼을 울려대며 '헬프'(Help!)'고된 날의 밤'(A hard day's night)을 연주하는 것은 엄청난 중량과 파괴력을 발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뉴욕 타임스'는 “소녀들이 비틀스의 격렬한 몸짓과 포효에 묘한 성적 매력을 느낀다”고 분석했다.

비틀스 팬들 중에는 의외로 나중의 예술성이 강한 작품보다는 초기의 순수한 로큰롤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바로 이 앨범이 그런 비틀스의 순수한 폭발력을 간직한 곡들의 집체다. 예상보다 뛰어난 연주 앙상블과 곡 감각(단순한 코드로 좋은 곡을 쓰기란 더 어렵다)을 들려주는 초기 작품들은 어떻게 그들이 '록 르네상스'를 주도한 그룹으로 평가되는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롤링 스톤'지는 이 앨범을 명반으로 선정하면서 “이즈음 비틀스가 만들어낸 노래들은 좋지 않은 것이 단 한 곡도 없다”고 했다.

비틀스의 경이로운 승전보는 그들 내부에서 모든 발표곡을 주조해냈다는 점 때문에 더욱 가치를 발한다. 그들이 리버풀의 캐번 클럽과 독일 함부르크를 오가며 웅지(雄志)를 키우던 시절에는 남의 곡을 많이 연주했다. 하지만 그들은 곧 모방의 틀에서 벗어나 창조의 세계로 들어갔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 컴비라고 일컬어지는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그 창조의 주역이었다.

이 두 장 짜리 CD의 스물 여섯 곡 모조리 존과 폴이 공작(共作)해냈다. 의도적으로 남의 곡을 불러 히트시킨 곡 예를 들면 '트위스트 앤드 샤우트'나 '슬로 다운'(Slow down) 그리고 팀 동료 조지 해리슨의 노래로 차트 2위까지 오른 곡'비밀을 알고싶나요'(Do you want to know a secret)는 배제하고 존과 폴의 작품들로만 꾸민 것이다. 오로지 존과 폴의 초기 음악세계를 전달하자는 의도다.

두 사람은 설령 혼자 곡을 다 썼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레논 앤드 매카트니'의 작사.작곡으로 내거는 계약을 맺었다. 사실 CD2의 '갈 곳 없는 인간'(Nowhere man)은 존의 곡이고 '페이퍼백 라이터'(Paperback writer)는 전적으로 폴이 썼지만 발표는 둘의 공동 작품으로 했다. 그러나 '네 손을 잡고싶어'나 '우리는 해낼 수 있어'(We can work it out)는 명실상부하게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 컴비 플레이의 진수를 시범하고 있다.

비틀스는 존과 폴의 전작(全作)이라는 패턴을 확립함으로써 많은 동시대의 뮤지션들에게 '컴비 작업'의 필요성과 효율성(작사와 작곡의 로열티 배당에 따른 갈등이 비교적 적다)을 일깨웠다. 롤링 스톤스도 믹 재거와 키스 리차드 커플, 후도 로저 달트리와 피트 타운센드 컴비 그리고 훗날 이글스도 돈 헨리와 글렌 프라이 컴비의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비틀스의 업적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이 미국을 정복하면서 롤링 스톤스, 후, 데이브 클락 파이브, 허먼스 허미츠, 애니멀스 등 무수한 영국의 로큰롤 그룹들이 대서양을 건너와 미국을 마치 자기네 땅처럼 요리했다. 팝 음악 관계자들은 그 현상을 영국의 침공(British Invasion)이라 불렀다.

비틀스는 62년과 66년 사이 쉴 새 없이 히트포격을 가하면서 록이 단지 미국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으며 또한 단순한 로큰롤만 할 줄 알았던 더벅머리들이 고품격의 예술도 한다는 사실을 웅변했다. CD2의 앨범 <러버 소울>(Rubber Soul)에서 골라낸 '여자'(Girl) '미셸'(Michelle)'내 인생의 길목에서'(In my life)와 같은 곡은 이미 인기 스타가 아니라 아티스트로 성숙했음을 알리고 있다. 그들이 록의 원시성에만 매달리지 않고 더 높은 곳으로 향한 천재들이란 사실은 '예스터데이'(Yesterday)'엘리너 리그비'(Eleanor Rigby) 등 클래시컬한 곡에 나타난다.

대중음악의 제반 측면에서 흔히 록은 비틀스에 의해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앨범은 그들의 음악이 초창기부터 얼마나 새로운 것이었는가를 뚜렷이 제시하는 역사적인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과연 이것이 사실인지는 60년대의 다른 그룹들의 베스트 앨범을 같이 들어보면 수긍하게 될 것이다.


Rubber Soul/ Revolver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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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les, The / Abbey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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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les, The / White Album - 30th Anniversary Limited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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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les, The / Yellow Submarine,Songtrack


Sgt. Pepper's 67/ Magical Mystery Tour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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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the Beatles 63/ Beatles for sale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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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it be 70 ... Naked 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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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les, The / Live At The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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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병풍 특검’ 요구의 속내는...

오우 딴나라... 이렇게 깊은 뜻이...

연일 깨지기만 하더니 많이 컸다.

 

 

 

한나라 ‘병풍 특검’ 요구의 속내는...
“세번째 실패는 없다” 박근혜 승부수?
[분석] 이회창 복귀 차단, 이미지 쇄신 ‘두마리 토끼몰이’
2005-05-15 12:00 동성혜 (jungtun@dailyseop.com)기자
재보선에서 압승을 거둔 한나라당이 국회운영은 물론 정국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의제(아젠다) 선점 작업을 치밀하게 이끌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 9일 대법원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아들 병역비리 은폐의혹, 이른바 '병풍사건'에 처음 의혹을 제기한 김대업씨와 이를 보도한 일부 언론사에 1억6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러시아를 방문하고 귀국길에 나선 대통령을 향해 지난 13일 과거 16대 대선에서 야당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사건에 대한 특검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것도 현재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관련되지 않은 이회창 전 총재와 관련된 사건에 대해서 특검을 요구하고 나서자 정치권에선 이에 대한 배경이 무엇인지를 두고 말이 무성하다.

▲ 지난 13일 한나라당은 병풍을 포함한 지난 16대 대선에서 야당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사건이 공작정치였다며 특검을 요구하고 나섰다. ⓒ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박항구 기자 
대통령의 귀국일을 일부러 택일한 것이야 정치적 목적을 극대화하기 위한 야당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회창 전 총재에 대한 정계 복귀설이 여의도 일각에서 피어오르는 국면에서 의원 개인이 아닌 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요구했다는 점은 한나라당의 복심에 일반의 관심을 집중시키게 충분하다.

그렇다면 왜 이 시점에 이회창 전 총재와 관련된 3대 사건을 공작정치라고 규정하면서 정부와 노 대통령을 압박하는 것일까.

이 같은 외부의 시각이 부담스러웠던지 당 핵심 관계자는 "그동안 박근혜 대표가 재선거 지역 방문 때문에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별다른 언급이 없었던 것"이라고 밝히고 "그동안 김무성 사무총장과 강재섭 원내대표가 계속 거론했었다"고 갑작스런 움직임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가 말한 당내 거론은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난 9일 김무성 사무총장이 오전 회의에서 이를 언급하며 "공작정치가 심판을 받은 것이다"고 밝힌 것을 두고 한 말이다.

하지만 김 사무총장의 말 외에 당은 뚜렷한 움직임이 없었다. 당보다는 조선∙동아 등의 보수언론에서 당시 사건을 다시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동아일보는 10일자 사설에서 "병풍은 분명히 16대 대선의 주요 변수 가운데 하나였다"며 "혹시라도 '아니면 말고'식 폭로로 대선의 판세가 바뀌었다면 이는 절차적 민주주의와 법치의 뿌리를 뒤흔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미래를 위한 진상규명은 차치하고라도 사과라도 하는 것이 최소한 정치 도의에 합당한 일이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11일 한나라당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강재섭 원내대표가 "지난 대선 때 병풍사건, 기양건설 사건, 설훈의원 20만 달러 사건은 국민들을 기만해서 소위 공작에 의해서 표를 모은 전형적인 사건"이라며 "지난 시절의 과오에 대해 적어도 노무현 정권은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특검제 통해 한나라당에 덧씌워졌던 부패∙비리 이미지 벗을 수도

회의석상에서만 언급하던 당 지도부는 대법원 판결 5일이 지난 13일 오전, 본격적으로 특검제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당 관련자는 "박 대표 측에서는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계산을 했을 것이다"면서 "솔직히 섣부르게 당이 나서면 예전의 부패와 비리 이미지를 되살릴 수도 있고 이회창 전 총재의 정계 복귀설이 슬슬 나오는 상황에서 다시 이런 사건을 다루기도 모호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 전 총재의 측근들이 당의 미온적인 태도에 드러내고 불만을 표출한 상황에서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었을 것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박 대표 측이 손익계산을 끝낸 것 같다며 "특검제가 이뤄지든 이뤄지지 않든 박 대표에게는 대권 후보로써 입지를 굳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고 풀이했다.

이유는 지난 16대 대선이 '공작정치'였음을 부각시켜 한나라당에 덧씌워졌던 부패와 비리 이미지를 이참에 말끔히 털어낼 수 있고 두 번이나 대선에 실패한 패배 내지는 피해 의식도 함께 버릴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이다.

또한 특검이 이뤄진다 해도 박 대표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이회창 전 총재와 정부여당의 싸움이 되기 때문에 손해 볼 게 없다는 인식도 한 몫 한 것 같다.

재선의 한 의원은 "박 대표가 이 전 총재에게 러브콜을 한 것 같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는 "이 전 총재의 '킹메이커'론이 솔솔 나오는 것은 그가 보수 세력을 결집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라며 "박 대표로써는 이 전 총재의 억울함을 풀어주면서 박 대표 자신이 대권 주자로써 외연을 더욱 넓힐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라고 관측했다.

▲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자료사진) ⓒ 데일리서프라이즈 박항구 기자 
이 전 총재 복귀 차단 조치 측면도 있어

한편 당 일각에서는 실제 이뤄지기 어려운 특검제를 주장한 당 지도부의 모습에 대해 오히려 이 전 총재의 복귀설을 확실히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보는 견해도 있다.

두 번의 대선 실패를 직접 경험했다는 사무처 한 직원은 “박 대표 입장에서는 ‘창사랑’의 적극적인 행보 등 이 전 총재의 복귀설이 계속 거론되는 게 그리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면서 “오히려 이 문제를 적극 제기함으로써 이 전 총재의 복귀를 확실히 차단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병풍 사건’을 다시 거론하면 결국 이 전 총재 본인은 물론 아들의 병역 문제가 논란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 전 총재로써는 상처를 두 번 입는 꼴이다고 해석했다.

이는 전여옥 대변인이 14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밝힌 내용과도 같은 맥락이다.

6월 국회 정국 주도권 차지 위한 포석

전 대변인은 방송에서 이 전 총재의 복귀설에 대해 “이 전 총재는 권력도 잃었고 명예도 잃었고 어떻게 보면 정말 수천만 발의 총탄을 맞아서 완전히 전사하다시피 한 분”이라며 “이런 분의 명예회복이라는 측면으로서는 얘기할 수 있겠지만 이를 이용해서 이 전 총재가 정계복귀를 하려는 길 닦기라고 본다면 그 분에게는 엄청난 상처”라고 말했다.

또한 전 대변인은 “지금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

외부인사 영입위원장인 김형오 의원 역시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전 총재의 정계복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거듭 반대 의사를 밝혔다.

어쨌든 박 대표는 이번 특검 주장을 통해 정국 주도권을 잃지 않는 한편 자신들이 만든 판도 하에서 향후 6월 국회를 이끌고 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천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이 전 총재의 복귀설과 관련해서는 최대한 그를 우군으로 활용할 수 있는 ‘킹 메이커’로써의 역할로 한정시켜 자신의 1인자 위치를 공고히 한다는 것도 담겨 있는 듯하다.

결국 17대 총선 후 1년 동안 주로 여당에게 의제를 선점 당해 항시 이끌려 다니는 부정적인 모습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한나라당의 최근 스탠스는 특검제를 통해 이회창 전 총재와 정부 여당을 동시에 제어하는 일거양득의 경제적 정치로까지 연장되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 동성혜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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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함이 일상화 되어가는 사회

그렇다. 현재 우리 수준이다. 내 집값 떨어진다구 단지내 영구 임대 주택 입주 반대하고 철조망 치는거 당연하게 생각하는 인간들... 우리의 이웃이다(그런 부모 밑에서 애새끼들이 영구 임대 주택사는 여학생 왕따시키고 성희롱하고 성폭행 했다고 해서 그 애새끼들 과연 죄책감 느낄까). 정신개조 앞으로 10년 지켜보겠다.

 

그나저나 진보누리 글 좀 제발 좀 블로그에 붙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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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제  (2005-05-15 14:30:50, Hit : 103, Vote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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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인함이 일상화 되어가는 사회

잔인함이 우리 문화속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리하여 잔인함이 이제는 일상생활이 되어간다. 조그마한 약점만 보이면, 조금만 육제척인 힘, 물리력, 또는 권력의 힘에서 우위에 있는 놈들은 그 힘의 차이를 결코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반드시 육체적, 정신적 폭력을 휘두르고야 만다.

오늘 이런 글을 올리는 이유는, 어제 KBS 9시 뉴스에서 본 기사 때문이다. 보도내용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오갈데 없는 장애인이나 노인들을 돌보는 무허가 복지시설이 1,200여군데에 달한다고 하는데, 이중 800여군데를 양성화 하여 정부에서 번듯한 건물을 지어주고 운영자금도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동네 아줌마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장애인들이나 노약자가 들락날락하면 그 주위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반대 데모를 일삼고 구청에 몰려가 항의를 하는 것이다. 더욱 기가찬 일은, 그런 어처구니 없는 항의를 듣고 구청이 공사를 중단시켜버린 것이다. 이 뉴스에서 2가지를 반드시 짚어야한다.

1. 장애인, 노인들을 위한 복지시설을 "혐오시설"로 파악하여 공사자체를 훼방하는 이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들 피해자들의 행복추구권 뿐만 아니라 시민적 권리 자체를 박탈하려는 중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흑인들을 몰아내려고 흑인들이 다니는 교회에 불지르고 다니던 KKK같은 놈들, 아니 유태인들에게 별을 달고 게토로 내몰던 그 인종주의자 나치놈들과 하등 다를바가 없는 인간말종들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뉴스에서는 NIMBY현상이라고 말도 안되는 용어로 보도가 되었다. 님비라는 것은 쓰레기 하치장이나 공항같은  같은 공해시설을 말할때 쓰이는 용어이다. 그렇다면 KBS의 입장에서는 장애인들이 공해덩어리로 인식되었단 말인가? 데모하고 자빠진 아줌마 개년들이나 보도하는 KBS놈들이나 기본 인식은 범죄적 수준이었다.

2. 일반적인 인식이 이러하다보니 공공 기관의 결정도 한심하기 이를데 없다. 구청이란 놈들이 항의하러 온 아줌마들을 계도하기는 커녕 그들의 눈치나 보면서 공사를 중단시킨 것이다. 역시 약한자의 복지는 강한 범죄자들의 조그만 이익보다 더 하찮게 취급되어 버렸다. 정말 제대로 된 공권력이라면, 공사현장을 방해하는 그런 정신나간 범죄자들은 경찰이 체포하고, 체포에 저항하거나 장애인을 공격하기라도 할 시엔 바로 발포하여 이맛박에 구멍을 내버려야한다. 경찰의 총, 군대의 총이란 바로 외부적으로는 국경을 지키고 내부적으로는 이런 범죄자를 처단하라고 있는 것이지, 민주화를 요구하는 자기나라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누라고 있는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담보로 자신의 조그마한 이익을 실현하려는 이런 범죄자들을, 공권력은 반드시 최고수준의 물리력으로 다루어주어야한다.

이 보도기사는 우리에게, 약한자는 무조건 짓밟고 보는 잔인한 문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정신지체 초등학생을 수년동안 성폭행한 동네 남자들, 출장 마사지 여자들만 골라서 죽인 유영철, 뚱뚱한 여자를 놀려대는 코미디물, 백화점 아가씨에게 함부로 말 틱틱 놓고 쌍스럽게 구는 고객들, 임대 아파트 주민들과 같이 어울리지 않으려고 아파트 중간에 콘크리트 장애물을 설치하는 정신나간 것들, 화가 난다고 학생들에게 마구 몽둥이를 휘두르는 선생놈들, 군기 잡는다고 후배(?)를 쥐어 팬 개그맨, 불법체류 노동자라고 월급 떼먹고 안주는 사장놈들, 신입사원들에게 자기 할 일을 떠맡기고 놀러나가는 회사 상사,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어온, 잔인함의 일상화라는 모습이다. 이러한 잔인함, 약자를 짓밟지 않고서는 넘어가지 않는, 꽃을 꺾지 않고서 그냥 봐줄 수 없는 이런 모습이 대물림을 하는 한, 절대로 우리는 절망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위대한 광주민중항쟁 25주년이 다 되어간다. 우리는 그날, 학살원흉들과 끝까지 타협없이 싸우고 도청을 사수한 사람들이 대학교수나 야당 지도자 따위가 아니라, 이른바 "공돌이", "공순이", "날품팔이" 등으로 불리면서 사회적인 멸시를 받던 그 사람들이었으며, 시민군 부상자들에게 헌혈을 하려고 줄을 섰던 사람들 중에는 많은 수의 이른바 "특수직업여성", 즉 "창녀"들이 있었음을 오늘 다시 기억해본다. 이들이야 말로 가장 위대한 영웅들이 었음을 기억하며, 이들, 가장 차별받고 억압받던 이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이루고자 했던 사회란 차별이 없는 사회, 일상적 폭력이 없는 사회였음을 다시 짚어 보자. 이제는 절망을 넘어, 희망을 보고싶다.
* 진보누리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05-1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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