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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 지음/ 진웅기 옮김
출판사 : 범우사
2009년 1월 27일 00시 35분
설 연휴를 맞아 두 권의 책을 읽기로 하였다. 한권은 강신준 교수의 자본의 이해와 한권은 원숭이는 왜 철학 교사가 될 수 없을까라는 제목의 청소년 용 철학 교양 서적이다. 연휴의 첫날인 금요일부터 욕심을 내어 강신준 교수의 자본의 이해를 읽었다. 자본의 이해는 일요일 까지 욕심으로 다 읽었다. 그러나 외부 손님들이 많이 들락거리는 설에 철학 책은 어울리지도 않을뿐더러 휴대가 불편하다. 오랜 만에 들른 집에서 범우 문고의 작은 문고판 책을 발견했다. 라생문은 익히 어느 강연에서 죽음에 대한 짧은 단편임을 알고 있었으며 도서관에서 단편으로 읽은 기억이 있었으나 그 나생문을 쓴 작가의 단편을 모은 문고 판이 색이 바래 집에 있다니 참으로 이놈의 눈이라는 것이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 맞지 않은가? 이 문고판 작은 책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왔다. 누나가 아주 오래전에 사놓은 책이다.
어찌 되었든 라생문은 건너뛰고 수 페이지 분량의 짧은 단편들은 하나씩 읽어 갔다.
설날 큰집엘 가면 장가도 안 간 노총각에 대한 눈총이 예삿일이 아니다. 그럴라 치면 어느 곳에서 어떤 포즈로 있어야 할 지 안절부절 해진다. 큰집 작은방 한 구석에 둥지를 틀고 손바닥 만 한 문고판을 펼쳐들고 라생문을 건너뛰고 코라는 단편 소설부터 읽기 시작했다.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 큰 코를 가진 스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을 드러낸다.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조카들에게 둘러싸여 피식 피식 웃으며 책을 넘긴다.
두자춘, 밀차, 덤불속을 읽으면서 이외수가 생각났다. 그래도 이외수는 상상력이 현실과 동떨어진 다른 세계 속에서 펼쳐지는 것이지만 류노스케의 소설은 현실에 굳건히 발을 딪고 있다. 간결한 문체와 속도 있는 이야기 전개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세 번이나 부자로 살았지만 인간에 대한 실망으로 귀농한 두자춘 그리고 이를 일깨운 모성의 이야기, 밀차를 타고 싶은 소년의 호기심과 낯선 곳을 향하는 두려움을 생생하게 그린 밀차, 덤불속 죽음을 둘러싸고 보여주는 각자의 다채로운 진술이 황당한 덤불속, 그리고 마지막, 지옥 병풍을 그리는 화가 요시히데의 이야기인 지옥변, 모두 대단한 작품들이다.
36세의 나이로 신경쇠약에 빠져 자살을 한 작가 류노스케~
지옥병풍을 그리라는 영주의 명을 받은 요시히데는 지옥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괴상망측한 일을 다한다. 자기가 직접 보고서야 그릴 수 있다며 지옥을 현실에 연출한다. 온갖 악몽에 시달리기도 한다. 아마 요시히데의 악몽이 류노스케에게도 보이지 않았을까?
마지막 지옥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수레 위에서 불에 타 죽은 여인의 모습을 그려야 하지만 그리지 못하고 영주에게 부탁을 한다. 그리고 영주는 그 화가의 딸을 수레에 실어 불을 지른 다음 화가의 눈앞에서 화가에게 지옥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고 화가는 그림을 완성하고 이틀 후 자기의 집에서 생을 마감한다. 지옥 그대로의 모습이다.
얼마 전 있었던 용산 철거민들의 죽음이 떠오른다. 생지옥이 따로 없다. 류노스케는 현실의 생지옥을 본 것일까? 궁금해졌다. 자살이라는 그의 이력이 요시히데의 자살과 일치하는 듯 하다. 작은 한권의 책이 26일 설날 하루를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새 배를 하면서도 음식을 먹으면서도 나는 류노스케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였다.
오랜만에 본 소설~ 이런 단편은 정말 짱이다.
로마시대 정치가 키케로가 원로원 의원들을 상대로 내란 음모에 대한 신속한 대책을 설득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세사레 마카리의 그림. 경향신문 자료사진
키케로의 ‘공화국’ 필사본.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람‘인’과 사이‘간’이 모여 인간이 되었다.
인간 즉, 사람 사이
사람은 사이의 존재다.
아니 인간이라는 존재는 사이 그 자체다.
사이는 매개고 긴장이고 경계다.
현재가 과거와 미래의 매개고 긴장이고 경계이듯
인간의 삶은 어떤 것의 매개고 긴장이고 경계다.
그러므로 극단은 인간의 어떤 특수한 형태이다.
중심을 위해 극단은 꼭 필요한가?
이것은 나에게 아직 버거운 질문이다.
나는 어떤 것들의 사이에 있는가?
그것이 내가 물어야 질문이다.
국가주의와 무정부주의,
본질과 비본질,
목적론과 비목적론,
객관주의와 상대주의 등등...
*철학은 변화속에서 관념론과 유물론의 경계선 긋기
저자: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이영주 옮김
출판사:랜덤하우스중앙
날짜:2009.1.6(화)
요즘 태희랑 세계사 연표를 방 벽 한 켠에 그리고 있다.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를 읽고서 연표를 그린다. 46억 년 전 탄생한 지구. 세계사를 읽으면서 정말 화가 났다. 전쟁의 역사, 야만의 역사이다. 인간은 인류가 저지른 만행들을 곧이곧대로 직면하기 싫어서 민족이라는 가면과 종교라는 아편이 필요한 것이 분명하다.
민족은 인류의 야만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을 바탕으로 새롭게 인식되어야 하고 신앙은 인간이 처참한 인류사를 보고 부끄러워 자멸하지 않도록 맹목에서 벗어나 윤리라는 근본적인 철학적 물음에 답해야 하지 않을까?
셈계의 헤브라이인은 기원전 20세기 팔레스타인 지방에 정착했다. 헤브라이은 ‘강의 저쪽에서 온자’라는 뜻이고 팔레스타인은 ‘필리스티아인의 토지’라는 의미이다. 당시라도 서로 잘 살았으면 좋았으련만 바빌론 유수를 통하여 헤브라이인은 바빌론으로 끌려가고 그 고난 속에 유대교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2009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학살을 계속하고 있다. 어떻게 인간을 합리적 이성의 동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사유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도 야만의 세계사 속에 존재할 곳이 없다.
46억년 지구의 나이 중 빙하기 이후 농업혁명이 일어나 1만년 전 부터가 인간의 역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사 속에서 유심히 살펴본 것은 화폐의 역사이다. 화폐 전쟁이라는 책이 있다. 거액의 화폐를 쥐고 세계 역사를 움직이는 진짜 배후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에도 그에 대한 짧은 이야기들이 나온다.
1837~1901년 빅토리아 시대
공업력으로 세계를 압도적으로 선도한 영국은 대불활을 기회로 ‘금융대국’으로 전환하였다.
영국은 종래의 무역 수선의 발상에서 전환하여 대외투자로 이익을 확보하는 ‘금융 대국’의 길을 추구하였다....특히 수상인 디즈레이리는 의회의 승인을 얻지 않고 유대인 금융가인 로스차일드 상회로부터 400만 파운드를 빌려 1875년 재정난에 빠진 이집트이 태수가 프랑스에 매각하려고 하던 수에즈 운하 주식(총 40만 주 가운데 17만7,000주)을 매수하였다. 222p~223p
영국은 프랑스와의 7년 전쟁에서 승리하여 프랑스의 북미 식민지를 모두 빼앗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7년 전쟁으로 영국 본국의 채무가 배로 늘어 북미 식민지를 경영하는 비용을 식민지에 대한 본국 수준의 과세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241p
영국은 전쟁 비용 염출에 유대인 금융자본의 협력이 필요하자 1917년 외무장관 벨푸어는 아랍인 거주지인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지지했다. 320p
위의 예제는 영국의 경우이다. 이 밖에도 무수한 전쟁 비용에 의해 각 국의 국가 채무는 심각한 상황이다. 금융세계화는 어쩌면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카드 돌려막기의 세계적 모습일 것이다. 사람들은 막기가 힘들면 카드를 하나 더 만들면 되지 뭐 하겠지만 도대체 카드는 누가 만들고 어떻게 만들어지는 관심이 없다.
경제 불황이라는 시대에 부채 문제는 국제적 연대를 통하여 해결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한국의 국가부채도 2009년 310조 가량 될 것이라고 한다. 부채 탕감 혹은 부당한 국가 부채에 대한 지불 불이행 운동은 금융 제국에 저항하는 중요한 국제 연대의 고리가 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컴퓨터 옆에 붙어있는 세계사 연표를 흘긋 흘긋 쳐다보며......
세월 앞에 조급해 하지 않으며 그저 내 갈 길을 뚜벅 뚜벅 가리라 가슴 깊이 새겨본다.
2009년 “行福”(행복)합시다.
行福(행복)없는 幸福(행복)없습니다.
모두 行福(행복)합시다~
흔히 행복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뽑습니다. 돈, 명예, 권력 등 모든 수단도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이지 행복 그 자체는 아닙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幸福(행복)은 복된 좋은 운수 혹은 생활의 만족과 삶의 보람을 느끼는 흐뭇한 상태를 뜻합니다. 이런 행복은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요?
문득 행복의 幸(행)자가 행할 行(행)자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어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行福(행복)이라는 것이 있더군요. 삼복의 하나로 스스로 불도를 닦으면서 다른 사람을 이끌어 불도를 믿게 하여 얻은 복이랍니다. 복을 짓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복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고 행하면서 만든다는 것이지요!
거꾸로 이야기 하자면 불행은 복을 행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복을 행하지 않음으로 불행하다는 것이지요! 어떤 조건에서든 복을 짓고 행하는 것이 바로 행복의 원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복을 핑계로 어거지로 폭력으로 무언가를 강요하게 되는 것은 일을 행할 때 언제나 살펴야할 가장 경계해야할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 다 같이 복을 짓고 나누면 얼마나 행복할까를 생각하며 모두의 行福을 기원해 봅니다.
모두 행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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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넘 많은 책들을 읽는 건 아니오? 좀 천천히... ㅎㅎㅎ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