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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나라② 요람에서 무덤까지 ‘삼성’/ 홍성태

<안국동窓> 삼성의 나라② 요람에서 무덤까지 ‘삼성’

 

홍성태(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삼성 사장단이 대책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고려대 사태’를 계기로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는 ‘삼성 경계론’에 대한 대응책을 찾아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괜히 ‘학위장사’에 나섰다가 꼴이 우습게 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 결과가 재미있다. 삼성 사장단은 ‘상생․나눔경영의 확대’라는 걸 해결책으로 제시한 모양이다. 이런 걸 가리켜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고 하는 게 아닐까?

보도에 따르면, “삼성 사장단은 삼성경계론의 실체를 사회․경제적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비판여론으로 규정했다”고 한다. 똑똑한 사람들답게 ‘사회․경제적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제법 어려운 말을 쓴 모양인데, 쉽게 말해서 ‘삼성 경계론’은 ‘질투심의 발로’라는 뜻이다. 겨우 이런 결론을 내리려고 대책회의까지 열었단 말인가? 이 사람들이 과연 수십억 연봉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가? 이 오만한 나르시스트들을 어찌해야 하는가? 돈이 너무 많다 보니 세상이 너무 하찮게 보이는 ‘정신병’에 걸린 것이 아닐까?

삼성 사장단은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성장한 이상 단 1%의 반대세력이 있더라도 포용해 진정한 국민기업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박차를 가한다”고 결의를 다졌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삼성 사장단은 삼성경계론을 ‘단 1%의 반대세력’의 질투에서 비롯된 무고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진단 위에서 자신의 포용력을 과시하는 것이 삼성 사장단의 결의이다.

참으로 안하무인의 집단이다.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하는 것은 고사하고 잘못을 지적하는 여론을 이상한 쪽으로 몰아갔다. 여기에 삼성 신문이 빠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중앙일보는 6월 1일자에 ‘나눌 줄 아는 거인 삼성’이라는 제목으로 삼성을 엄호하는 기사를 실었다. 삼성문화재단 등을 통해 삼성이 이 사회에 베푸는 돈이 얼마나 많은데 삼성을 비난하느냐는 주장이다. 이렇게 많이 베풀고 있지만, ‘상생․나눔경영의 확대’를 통해 더 베풀어서, ‘단 1%의 반대세력이 있더라도 포용’하려는 삼성은 참으로 위대한 기업이라는 주장이다.

삼성은 스스로 ‘세계 최고의 기업’ 운운하지만, 과연 무엇에서 ‘세계 최고’인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아주 여러 문제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두가지이다.

첫째, 불법증여를 통한 기업상속의 문제이다. 이재용 상무는 불과 16억원의 상속세를 내고 삼성재벌을 물려받았다. 법을 기만하고 우롱한 정도에서 삼성은 ‘세계 최고’이다. 이 사실을 그야말로 모든 국민이 알고 있다. 삼성재벌만이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잘못이 없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이건희와 이재용의 삼성이라는 것을 세상이 다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우긴다고 사실이 바뀌겠는가?

둘째, 이른바 무노조경영의 문제이다. 삼성재벌처럼 큰 기업이면서 노조가 없는 곳은 아마도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삼성재벌은 이 사실을 아주 큰 자랑으로 여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깊은 어둠이 도사리고 있다. 노조를 만들고자 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회유와 협박, 심지어 ‘유령 핸드폰’을 복제해서 자행된 위치추적 의혹에 이르기까지. 삼성재벌의 무노조경영은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 최고’의 추문일 뿐이다.

바로 이런 문제들 때문에 삼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그러나 삼성 사장단은 참여연대가 트집을 잡는 것을 빼고는 이 나라의 누구나 삼성을 최고로 여기고 아낀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착각은 자유’라지만 이 정도라면 상태가 너무 심한 것이 아닐까? 사실 이 착각은 ‘삼성 비판론’을 ‘삼성 경계론’으로 읽는 데서 시작되었다. ‘삼성 경계론’은 없다. ‘삼성 비판론’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삼성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다.

삼성재벌은 힘이 세다. 안경환 교수처럼 ‘양심적 인사’로 알려진 법학자가 삼성에 중앙 일간지에 삼성을 적극 옹호하는 칼럼을 쓸 정도로 삼성은 힘이 세다. 이로써 안경환 교수는 법학자로서의 양식을 크게 의심받게 되었지만, 삼성재벌로서는 상당한 원군을 얻어서 크게 기뻤을 것이다. ‘역시 우리가 잘못한 것은 없어’라며 자화자찬의 수렁 속으로 더 빠져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렇게 오만방자한 착각 때문에 ‘삼성비판론’은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

삼성재벌의 힘은 무엇보다 ‘돈’에서 나온다. 삼성재벌은 힘을 기르기 위해 ‘돈’을 어떻게 쓰는가? ‘돈’으로 ‘사람’을 산다. 먼저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지키고 거대한 잇권을 쉽게 손에 넣기 위해 정치권에 천문학적 뇌물을 상납한다. 이렇게 해서 다수의 정치인을 ‘삼성맨’으로 만든다. 정경유착과 불법상속에 관한 여론의 악화를 무마하기 위해 문화재단을 통해 문화인들에게 돈을 준다. 이렇게 해서 다수의 문화인들을 ‘삼성맨’으로 만든다. 대학에 막대한 기부금을 제공하고 공공연히 학위장사를 벌인다. 이렇게 해서 다수의 학자들을 ‘삼성맨’으로 만든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때는 삼성을 비판하는 방송도 했던 중견 언론인이 삼성의 홍보를 책임지는 ‘삼성맨’으로 발탁되었다. 그는 삼성을 위해 자신의 재주를 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맥도 최대한 활용하게 될 것이다. 또한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에서 밝혔듯이 퇴직 판검사들을 ‘삼성맨’으로 발탁했다. 모두 수십억의 연봉을 받을 터이지만 삼성재벌로서야 ‘껌값’일 뿐이다. ‘전관예우’의 댓가를 따지면 더욱 더 그렇다. 삼성재벌은 이제 ‘전관예우 특별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이것이 ‘초일류기업’ 삼성재벌의 실상이다.

이런 식으로 삼성재벌은 이 나라를 ‘삼성의 나라’로 만들었다. 이제 그 오만방자함이 하늘을 찌를 지경에 이르렀다. 공정위의 조사를 받던 중에 일개 직원이 증거자료를 들고 내빼는 짓을 상습적으로 저지르지 않나, 금감위는 삼성이 원하는 내용으로 금융산업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려고 하지 않나, 삼성재벌의 힘 앞에서 나라의 기강이 어처구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번의 삼성 사장단 회의에서도 명확히 드러났듯이 삼성재벌은 이미 이 나라가 삼성재벌을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정부고 법원이고 학계고 언론이고 시민단체고 모두 삼성재벌을 떠받들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곧 모든 사람들이 삼성병원에서 태어나, 삼성학교에서 배우고, 삼성기업에서 일하고, 삼성은행과 거래하고, 삼성이 지지하는 정치인들을 국회의원이며 대통령으로 뽑고, 삼성병원에서 장례를 치르는 세상이 올 것이다. 아니, 우리는 이미 상당한 정도로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이 나라가 완전히 ‘삼성의 나라’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것은 ‘돈’이 지배하는 나라, 곧 ‘돈 나라’이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인터넷 참여연대 2005.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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