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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법 개정, 투기의 합법화다"

"농지법 개정, 투기의 합법화다"

희망을 찾는 농업 살리기<7> 무너지는 삶의 근간

 

프레시안 2005-06-07 오전 10:00:32

 

<프레시안>은 '환경과 농업을 살리는 건강한 농지제도 개편을 위한 연석회의(농지제도 연석회의)'와 공동으로 최근 농지법 개정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통해 촉발된 우리나라 농업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을 공론화하는 기획을 마련한다.
  
  이번에는 고려대 강수돌 교수가 글을 보내왔다. 그는 현재 조치원에 있는 고려대 서창캠퍼스 주변 마을에 초고층 아파트를 지으려고 하는 건설사들의 움직임에 "현재 기업도시, 행정도시등 경제 살리기란 미명하에 개발독재식의 난개발이 재연되고 있다"며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강 교수는 이번 글에서 농사를 짓지 않는 도시사람들의 농지 소유를 허하고, 농사 짓는 이들을 농토에서 쫓아내려고 하는 일련의 농업 포기 정책이 어떻게 전국토를 투기장으로 만들고, 농업과 농촌을 피폐화시키는지 조목조목 설명한다. 편집인.
  
  '투기 합법화'한 농지법 개정, 오는 6월 임시국회 처리
  
  2004년 11월부터 정부는 농사를 짓지 않는 도시사람들도 사실상 무제한으로 농지 소유가 가능하도록 농지법을 개정하려 시도하는 중이다. 저항하는 여론 탓에 2005년 6월 임시국회로 법안 처리를 미루어 놓고 있는 상황인데, 농지소유제한을 완화하고 농지에 도시자본을 끌어들여 경기를 부양할 수 있다는 식의 기본 사고는 크게 변할 것 같지 않다.
  
  이에 10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는 ‘환경과 농업을 살리는 농지제도 개편을 위한 연석회의’(이하 농지법 연석회의)와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은 정부의 농지법 개정 움직임, 쌀시장 개방 협상에서의 이면합의, 잇달아 드러나고 있는 정부의 농업 포기 정책 등을 심도 있게 점검하고 우리 삶과 우리 사회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의미를 돌아보고 빈사 상태에 처한 우리 농업의 회생을 위한 대안은 없는지 진지하게 모색하는 중이다.
  
  사실 작년인 2004년 2월에 나온 ‘농촌ㆍ농민 종합대책’은 농촌과 농민을 살리기 위한 대책이 아니라 농촌과 농민을 영원히 역사에서 사라지게 하기 위한 10개년 계획을 담고 있는 로드맵이다. 이에 따르면 1948년 제헌헌법에서부터 현재 헌법까지 유지되어 온 경자유전 원칙이 무참히 깨지고 있다. 올해부터는 그나마 정부가 농민 보호를 위해 시행해온 벼 수매제를 사실상 폐지할 것이라 한다.
  

ⓒ프레시안

  "농림부, 농촌 지역의 '개발' 주관부서로 등장"
  
  돌이켜보건대, 2003년 9월 10일, 멕시코 칸쿤에서 이경해 열사가 WTO의 자유무역 체제와 쌀 개방에 반대하며 자결한 것은 이미 이러한 세태를 미리 내다본 일이었다. 이 세계사적 사건에 대한 일말의 성찰도 없는 채 2003년 10월의 국무회의에서는 ‘농립어업인의 삶의 질 향상 및 농어촌지역개발 촉진에 관한 특별법’이 얼토당토 않게 ‘삶의 질 법’이라는 이름으로 통과했다.
  
  한마디로, 농림어업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면 돈이 안 되는 농어촌 지역을 ‘개발’하여 농림어업인을 농어촌 본연의 터전으로부터 떠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행자부가 아니라 농림부(농업기반공사)가 농촌 지역(전국의 읍ㆍ면) ‘개발’의 주관부서로 등장하게 되었다.
  
  마침내 2003년 11월에는 농업을 그만두는 고령 농업인에 대해 보조금(헥타르당 월 24만원을 70세까지)을 지불하는 제도를 발표했다. 이런 방식이 쌀 개방 협상, 한-칠레 FTA 등 저항에 직면할 때마다 농림부는 폐농에게 돈을 주는 식으로 입막음을 하는 방법으로 정착되었다.
  
  그리고 2004년 2월, ‘농촌ㆍ농민 종합대책’이 나왔다(한-칠레 FTA 발효 1개월 전). 이제 더 이상 ‘소규모 가족농’이 아니라 ‘대규모 기업농’만이 기계화, 효율화, 경쟁력을 담보하는 것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국가 정책으로 제시된 것이다. 이러한 기계화와 개발 개념이 우리 삶의 터전인 농촌과 농촌공동체를 초고속으로 파괴하고 있다.
  
  "농지법 개정, 투기자본의 농촌 유입길 틔우나"
  
  2004년 6월부터, 삶의 질과 무관한 ‘삶의 질 법’이 시행되었고, 같은 맥락에서 7월에 농지법 개정안이 입법 예고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만약 정부의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그간의 경자유전 원칙은 완전히 포기되고, 도시인들이 농사를 짓지 않아도 농지를 가질 수 있게 되어 도시의 투기 자본이 농촌으로 유입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업들도 농토에 공장을 지을 수 있게 되니 도시 공단 지역에서 노조 문제나 노사관계 악화 등 문제가 생기면 얼마든지 옮길 수 있게 된다.
  
  현재의 이런 형국은 한 축에 규모농, 화학농, 특화농이 버티고 있고, 다른 축에 가족농, 생태농, 다품종농이 버티고 맞서 싸우려는 모양새다. 사실 전자가 정책적으로는 승리한 상태다. 이런 분위기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선도하는 IMF, 세계은행, WTO 체제가 선도하는 바이기도 하다. 이제 자본은 농업이든 교육이든, 의료든 문화든 그 어느 분야를 가리지 않고 돈벌이만 되면 무조건 들어가서 깨부순다. 농촌의 땅들이 자본에 의해 돈벌이의 대상으로 전락할 때 그것은 결국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제 과연 무엇이 민초들의 건강한 살림살이를 담보하는 것인가?
  
  이런 식으로 경자유전 원칙이 파기되어 도시인도 농지를 살 수 있게 되면 시골 농촌은 물론, 산간벽지까지도 도시의 투기꾼들에게는 좋은 투자 기회가 될 것이다. 땅과 사람의 근원적 관계는 파괴되고 오로지 돈과 돈의 물신적 관계만이 온 사회를 휩쓸 것이다. 그만큼 우리와 우리 후손들은 병든 사회에서 살게 된다. 과연 제대로 살 수나 있을까?
  
  "자연과 공동체 관계 희생시켜 얻은 이익, 공무원과 토지ㆍ건설자본이 뜯어먹어"
  
  지금 시점에서 농지 땅값이 평당 5만원을 넘어가면 농사짓는 것보다 땅으로 팔아넘기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들 한다. 투기 자본이 아파트를 짓든 다른 개발을 하든 농촌으로 몰려들면 땅과 함께 성실히 살아온 농민들의 마음은 땅을 떠난다. 뭉칫돈이 두 눈과 마음을 가리기 때문이다. 이제 자연과 공동체적 관계를 희생시키고 거대하게 창조되는 높은 개발 이익을 일부 토지주와 공무원, 사업주들이 게걸스럽게 뜯어먹는다.
  
  내가 사는 충남 연기군 조치원읍 신안1리 마을은 바로 이러한 건설자본과 투기업자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행정도시 바람이 부니까 가장 먼저 설치는 이들이 건설자본이라는 이름의 투기꾼들이다. 그들은 비교적 싼 값에 땅을 산 뒤 주변 경관이나 기존 주민들의 삶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2-3년간 고생하여 1,000세대 이상의 아파트 단지를 지은 뒤 250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린다. 20%만 남는다 해도 무려 500억원을 버는 셈이다. 한 달에 1천만 원 벌기란 서민들에게 불가능한 일인데, 그 어려운 1천 만원을 버는 이가 일 년 모으면 1억이다.
  
  이런 사람이 꼬박 500년간 한 달에 1천 만 원씩 모은 돈이 500억 원이 된다. 한 세대가 한 달에 1천만원씩 50년을 번다 할 때, 무려 10세대나 그렇게 많은 돈을 번다는 뜻이다. 이렇게 고수익을 올려주니 농촌은 오늘날 아파트나 골프장 등의 개발 붐 때문에 과히 전쟁 중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게다가 혹시 농업자본가들이 많은 땅을 사서 농업노동자를 고용하고 기계화 농업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농업 뿐만 아니라 농업적인 인간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 전체를 훼손하는 일이다.
  
  "마음의 고향 잃기 전에 '농지 투기법' 막아야"
  
  왜냐하면 농업이란 단순히 땅을 파서 농작물로 돈버는 이상의 근원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농업이란 한마디로 천지인의 협동과정이다. 이것이 기계화나 자본화 영농으로 전개된다면 결국은 천지인의 협동이 아니라 자본에 의한 천지인의 파괴로 갈 것이 뻔하다.
  
  이렇게, 이번 경자유전 원칙의 공식 파기는 농민의 농지 소유권에 대한 파기를 넘어, 땅과 사람과의 밀착된 관계에 대한 공식적 파기 선언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이제 먹을거리를 자립하기를 포기한 데서 올 경제적, 생태적, 보건적, 안보적 측면의 문제 상황을 넘어가는 문제까지 제기한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들에게는 피폐한 도시적 삶의 방식이 주는 비애와 공허함에 대한 완충물로 농촌에서의 삶의 경험이 어느 정도 윤활유 역할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식으로 농촌의 땅과 밀착된 살림살이 방식이 기계화나 산업화로 말미암아 영원히 사라지게 될 때 우리는 어디로부터도 ‘마음의 고향’을 찾기 어렵게 된다. 이제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갈 삶의 에너지는 과연 어디서 나올 것인가? 이런 측면에서 나는 농지법 개정을 단호히 반대한다! 그리고 이와 뜻을 같이 하는 모든 사람들과 연대할 것이다!
   
 
  강수돌/고려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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