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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버리면, 희망이 없고나...

누군가와 채팅하면서 나누었던 대화이다.  매일매일 희망을 가지고 살면 세상이 조금 아름답게 보이거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보다 나은 내일이 있다는걸 보야줘야 하는거 아니냐는 말들을 들으면서 나는 속으로 개뿔~! 이랬는데, 역시나 마음을 어떻게 먹고 사느냐는 일은 어쩌면 조금 다른 일들이 펼쳐 질지도 모른다는 '착각'아닌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최면 효과가 있는듯 하다. 희망을 가지고 살자! 가 그/녀의 모토인데 비하면, 나는 사는게 별 희망이 없어서 재미도 없고 그냥 빨리 죽는게 낫다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는데...이말은 알고보니, 절대 근거가 없는 말이 아니었다는 거다.  오늘 [창작과 비평] 2006년 가을호를 읽다가 문뜩 발견한 글이 있는데 그야말로 '위로'가 되는 말이 있었다..

 



"한국이 어려울 때 노동운동을 지원해주던 '인간의 대지'라는 독일 NGO가 있어요. 저와 친한 그 단체의 활동가가 이런 얘기를 해주었어요. 자기랑 같이 68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꼽아보니까 나중에는 3분의 1 정도가 자살했더래요. 68운동이 실패하고 자본주의 씨스템이 완벽하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들은 자기 삶의 의미에 대해 상당히 치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에 반해 우리는 아버지, 어머니 때문에 살아야 하고, 자식 때문에 살아야 하고....." - 도전인터뷰, 여성운동의 중심에 물음표를 매긴다. 중, 정현백의 말에서 발췌.

 

내가 자살을 할 생각이 들 만큼 나의 삶에 치열했는가는 의문이지만...난, 저 말이 참 이해가 간다.  생각했던대로 삶이 움직여지지 않을때--누구에게나 다종다양한 원인은 있겠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한번씩 드는 생각이지만,  삶의 최후의 순간은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존중 받아야 한다고 본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20대에 최고라는 어느 통계를 보더라도 꿈많고 할일 많은 20대에 자살을 결심한다는건, 그만큼 삶이 주는 '희망'을 갖지 못했다는 반증 일테니까. 

 

삶에서 희망을 잃어 갈때는 역시 다양한 쟝르에서 발생 한다.  목숨바쳐 가면서 시대의 모순과 불리함에 맞서 싸우다가도 어느 순간 그 싸움이 허망하게 끝나버렸을때 일 수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를 목숨 걸 정도로 사랑 했는데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목숨을 버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심지어 살려고 발버둥 쳤는데도 세상이 나를 외면 하면서 아무도 관심 가져 줄지 않았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굶어 죽기 싫어서 먼저 자살을 감행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가장 중요한것은 그 마지막 순간의 주체적인 방법에 대해 폄하는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어머니 아버지 때문에 살아야 하고, 자식 때문에 살아야 하고...그럼 나를 위해서는 언제 살아야 한다는 말인지...

 

내가 오늘 하고자 하는 얘기는 결코, '자살'이 아니다.  사람에게 살게 하는 힘과, 도무지 예측하기 힘든 저 무소불위의 작태들 어떤식으로 풀어나가야 조금 더 살맛이 나는 세상을 만드느냐이지.  조금 부연을 하자면, 인간 관계에서 역시 마찬가지의  썰을 풀 수 있겠다.. 연결이 되는 얘기인지, 안되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든, 사물에게든, 이론이든, 그 무엇인가에 대한 애정이 깊으면 깊을수록 배신감 내지는 실망이 크다. 그러므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때의 좌절감은 때로는 존재를 상실케 하는 행위로 표현할 수 있다는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얘기다.  오늘 당신의 고양이 포스팅,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에서도 말하듯이 상대방하고의 관계에 있어서 최선이고 나발이고를 떠나, 내가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다면 적어도 나의 감정에 충실해야 하는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상대방이 받아 주든가 말든가의 문제는 나중 문제 라는 것이다.(받아 줄건지, 안받아 줄건지까지 까지 생각하다간 버스는 떠나고 만다..)  나는 적어도 최소한 나의 머리가 아닌 뜨거운 가슴이 시키는대로 움직였을 뿐이니까.(그렇다고 상대방에게 모든걸 떠다 미는건 아니다.)  여기서는 굳이 사랑이라는 말을 들이밀지 않아도 된다..  관심의 척도는 너무나 다양해서 어느것 한가지로 딱잘라서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너와 나의 궁금증 내지는 '비밀의 공유'정도에서 친밀도는 자꾸자꾸 높아지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머리를 뱅뱅 돌았다..  비밀의 공유까는 아니더라도 내가 가지는 궁금증에 대해서 대답해 줄 수 있는 정도까지도 딱 잘라서 경계선을 그어 버린다면 더이상 무엇을 공유하고, 무엇을 위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또다른 비유를 들자면, 관계의 그림은 너무도 다양해서 몇가지로만 한정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친구가 됐든, 애인이 됐든, 부모가 됐든,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지는 관계가 있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 관계를 먼저 설정 해 놓지 않고 일어나기가 일쑤이다. 친구이기 때문에 사랑하고, 연인이기 때문에 사랑하고, 친구가 아니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아니라는 거다.  그러므로 당근 사랑의 표현은 관계의 설정이 다르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는 말인데...먼저 관계를 설정하고 거기에 맞춰 사랑이니, 연정이니, 우정이니를 끼워 맞춰야 하는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얘기이다. 자판기에서 커피 뽑듯이 내가 원하는 메뉴가 쑥쑥 나오도록 우리의 마음도 그렇게 움직여지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사람의 마음이라는게 그게 아니지 않은가..

 

굳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나는.  내 감정에 어떻게든 충실하면 그만인거고, 못받아 들이면 마는거고..여기서 서로가 입을 상처에 대해서 너무 민감해 지다 보면 그거 고민하느라 하루해가 지기 십상이다. 우리가 서로를 얼만큼 위로 하면서 애정표현을 하느냐의 문제에만 파묻혀도 시간은 늘 모자랄텐데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고 느끼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세상 살면서 가장 힘든게 '사람관계'라고 누군가 말했듯이 우리 앞에 희망이 보여지고, 기대를 갖게 하는 힘, 그건 바로 지겹도록 평생 가지고 가야 할 '사랑'이라는 이름이 아닐까?

 

*글 다쓰고, 뒤늦게 트랙백 겁니다.  당신의 고양이 에게..^^ (관련된 글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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