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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나는 술을 굉장히 좋아한다. 아니, 좋아했다.
술을 처음 마신 것이 아마 열일곱살때인가. 주민등록증이 나왔다고 집에서 축하주를 마셨던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 그전에도 귀밝이술이나 집에서 담근 포도주같은 것을 일년에 한두번 한모금씩 얻어먹어 본 적도 있긴 하다.
대학생이 되고 새터때부터 열심히 술을 얻어먹고 하긴 했는데, 별로 술이 맛있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었다. 그냥 사람들이랑 모여서 얘기하고 술마시고 하는 분위기가 좋았던 거고, 그러다보니 주는대로 넙죽넙죽 받아마시고 맛이 가곤 한 적도 여러 번이 있었지만.
근데 이십대 중반쯤 되고 나니 술이 꽤 맛있는거다. 날씨가 덥거나 집에 갈때면 맥주 한 잔이 생각나기도 하고, 고기를 먹거나 찌개를 먹을 때는 소주 한 잔이 생각나기도 하고, 며칠 안 마시면 아무거나 한 잔 먹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술마시러 간다고 하면 안 빠지고, 위스키 (한 티스픈도 아니고) 몇 티스픈 떠넣은 아이리시 커피가 제일 맛나기도 하고. 다행히; 주위에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널려서 그냥 따라다니기만 해도 술만큼은 잘 먹었던 것 같다. 음, 그중에 제일 좋았던 것은 저녁먹으러 가서 식사 나오기 전에 아직 빈 속에 소주 한 잔 털어넣는 것. 빈 속을 소주가 훑어내려가는 그 알싸한 느낌이 정말 좋았다. 이 얘기를 하면 다들 경악하는 표정을 짓더군.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P
지금은 술 안마신지 몇 달 됐다. 중간에 대강 분위기 맞추느라고 맥주 한컵이나 소주 반잔이나 먹기는 했지만 1월 1일부터 안 먹었으니까 다섯달인가. 신년계획으로 금주, 이런 이상한 것을 결심한 것은 아니고 그냥 이날부터 술이 안 먹고 싶어졌다. 예전에 지희언니가 금연할 때, 어느날 아침 일어났더니 담배가 안 피우고 싶어졌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딱 그런 기분이었달까.
작년에는 술마시고 나면 다음날 매우매우 힘들고(그래도 맛있었지만;), 사실 섣달 그믐께는 송년이다 뭐다 해서 일주일 정도 마구 마셔서 몸도 많이 힘들긴 했는데 그래도 어느날 일어나니까 이렇게 저절로 금주가 되는 몸이 되어 있다니 매우 신기했다. 지금도 신기하다.
작년까지는 하루라도 안 마시면 굉장히 궁금하더니 이제 몇달 안 마셔도 전혀 생각나지 않는 것을 보면 이제 영영 알콜과는 이별인가보다. 안녕, 알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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