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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사나우니, 술이 쉰다

개가 사나우니, 술이 쉰다


옛날 어느 주막에 주인의 말을 아주 잘 듣는 개 한 마리가 있었다. 이 개는 낮선 사람에게는 무척 사나웠지만 주막 주인에게는 더 없이 충성스러운 개였다. 주인은 사람들에게 친절했다. 술 빚는 실력도 훌륭했다. 그런데 주막을 찾아오는 손님이 없어 술이 오래 묵다 보니 맛이 시큼하게 변질되고만 것이다.


주인은 고민 끝에, 동네 노인에게 찾아가 물었다.


노인은 답했다.  개가 너무 사납기 때문에 아이에게 술을 받아오라고 시켜도 개가 무서워 주막집에 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주막집의 술은 맛있으나, 사나운 개로 인해 술은 팔리지 않고, 결국 쉬어버렸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한비자에 나온다.  고사성어로 ‘구맹주산’(狗猛酒酸)이다.


나는 현재, 깊은 고민을 안고 있다.  내가 속해있는 집단에서 ‘사나운 개’의 역할을 했다는 자괴감이 있다. 어는 순간, 내가 소통의 걸림돌이였을수 있다는 것. 이것을 자각한 것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 그 가치에 기반한 일의 방향을 고집했다. 대립이 발생했다. 점점 꼬여갔다. 어느 순간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고통스러워 했다.


드디어, 그 상처에 덧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는 뒷전으로 가고, 과정에서 발생한 앙금이 상처를 더 키운다. 그때서야, 뒤를 돌아본다.


이 갈등을 겪고 나서, ‘사람의 소중함’을 새삼, 더욱 큰 가치로 느끼게 된다. 그것이 제 아무리 올바른 가치에 바탕했더라도  ‘사람을 버리는 일’, ‘사람과 멀어지는 일’, ‘사람사이를 갈라놓는 일’은 옳지 않다는 것을 배운다.


어제, 쌍용자동차에서 또 하나의 슬픈 죽음이 있었다. 공권력 투입을 비관해, 노동조합 간부를 남편으로 둔 28세의 젊은 여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4살짜리 아이와, 아직 채 돌을 지나지 않은 두 아이의 엄마. 연일 집으로 날라오는 소환장, 가압류 통지문. 이 여인은 남편에게 ‘집으로 돌아와’란 통화를 마지막으로 이별을 고했다. 이른바, 비정리해고자인 ‘산자’였던 그의 남편. 노조 간부활동이 채 몇 개월도 되지 않았고, 정리해고라는 불의에 동의하지 않았던 그의 남편.


쌍용자동차 사측은 그녀의 남편과 농성정인 그의 동료들에게 하루종일  ‘오 필승 코리아’를 틀어됐다. 이건 인간이 할 짓이 못된다. 쌍용자동차가 정상화 된다고 하더라도, 이런 비인간적인 기업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이 기업에서 생산된 물건을 살수 있는 용기가 내겐 없다. 사람을 가르는 일. 나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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