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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보기 남세스럽다!

아이들 보기 남세스럽다!

 

여덟살난 아이의 앞니가 빠졌다. 첫아이의 이가 빠진것만으로 부모입장에선 그것이 신기하고 대견하기도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초등학교 1학년. 산수, 자연은 학교에서 배워도 글쓰기 교육만큼은 아빠가 같이해야지 마음먹고 예전에 눈여겨 봤던 책한권을 샀다.

 

머리말부터, 소개되는 시 한편이 있는데 너무나 정겹다. 그래서 옮겨본다.

“시험은 무섭다.

 

시험보고 매 맞고

통지표 맞고 매 맞고,

내 다리 장한 다리”   (초등학교5학년 학생의 시 ‘시험’).

 

 “ 딱지를 칠때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친구가 딱지를 친다. 내 딱지가 넘어간다.

윽, 내 마음도 넘어간다”(딱지)

 

눈을 감아도 이 아이의 표정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역시, 아이들은 꾸밈이 없고 솔직하다. 아이의 글쓰기 교육을 하겠노라고 나섰던 내가 쑥스러워지고 오히려 배우게된다. 위선적이고 교묘히 나를 합리화하는 식으로 글쓰기를 이용하는 어른(나)이 부끄러워진다.     

 

우리사회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너무나 부끄러운 것이 많은 사회다. 아니,  못된 짓을 참 많이 하는 사회다. 후라이팬의 도리뱅뱅이 처럼, 어릴 때 부터 피아노학원, 영어학원에 잡아돌린다. 아이들 건강은 뒤로한채 ‘돈’ 하나 때문에 불량식품을 쏟아낸다. 어른들이 만들어낸 금기와 이념으로 ‘초전박살, 멸공’을 주입시키며 호전성을 키우기도 했다.

 

우리사회의 미래라는 청소년에겐 밤 한시 까지 사육장에 가둬놓는다.  순응하는 아이, 말잘듣는 아이, 생각없는 아이가 모범생이라고 호도해놓고 다시 사육장으로 밀어 넣는다.

 

그런데, 우리의 청소년들이 단단히 뿔이 났다.

 

‘저 아직 15년 밖에 못살았어요’라며 울음 섞인 피켓을 들고 나왔던 촛불여학생은 처음엔 광우병 때문에 뿔났다. 그런데, 지금와서는 어른들이 벌이는, 그것도 단순히 어른이 아닌 ‘공권력’과 대통령같은 정치권력의 ‘치사찬란’함에 더 뿔났다.

 

수업중인 학생의 머리채를 잡고, ‘배후를 대라’며 경찰이 나선다. 교육감이 나서서 전교조 선생님들을 배후로 지목하고, 학생부장님 몇백명이 ‘오호담당제’의 감시조로 투입되어 외친다. ‘어서 빨리, 사육장으로 돌아가라고!’

 

아이들은 솔직하고 맑다. 꾸밈이 없다. 그 맑은 시각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세상은 정말로 못됐다. 그게 문제다.

 

그런데 더 문제인 것은 어른들은 자꾸 거짓말로 덮으려 한다는거다.

 

오늘도 정부는 추가협상 결과를 발표했지만 ‘추가협상’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보기가 정말로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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