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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7/03/23

<&quot;운보의 집&quot;은 잘 꾸며진 친일화가의 정원일지언정, 충북의 문화브랜드가 될수 없다.!

<"운보의 집"은 잘 꾸며진 친일화가의 정원일지언정, 충북의 문화브랜드가 될수 없다.!>



경남 합천군이 기존의 공원명칭을 '일해공원'으로 변경했습니다. '일해'가 누굴까요. 바로 쿠데타를 통해 민주화의 열기를 탱크로 짓밟아 버리고, 오월 광주를 핏빛으로 물들인 전두환의 호입니다. 합천군은 바로, 합천 출신인 전두환을 기념하기 위해서 전두환 공원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세상에 이게 말이나 되는 발상일까요! 저는 절대로 이런 발상엔 동의할수 없습니다. 대통령을 배출한 합천군민의 자존심을 기라자는 뜻에서 한다는 것인데... 정말로 충격적인 그리고 너무나 야만적인 발상입니다. 설령 일부의 군민이 전두환이 합천 출신임을 은연중에 자랑스러워 한데도, 이것은 너무나 야만적인 폭력입니다.

전두환의 탱크와 군홧발 아래서, 무참이 죽어야만 했던 오월 광주의 영령들.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한채 임신부 어머니의 뱃솟에서 대검에 찔려 죽어갔던 그 영혼들. 전두환 군부독재에 맞서 쓰러져간 수많은 영령들을 두 번 죽이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지역이라는 울타리와 근거지 이전에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에 살고 있는 공동체입니다. 공동체의 행복, 공동체의 안녕이 우선이지 작은 부락과 내 울타리안의 행복이 무조건 우선될 수가 없는 것이죠.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우리의 공동체를 파괴한 것에 대한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내팽겨진채, 대통령을 배출한 군민의 자존심을 운운하는건 절대로 용납될 수가 없습니다.

독일에서는 나치 잔재 청산을 위해, 나치와 관련된 인물이나 명칭, 하켄크로이츠(Hakenkreuz)라고 하는 철십자 상징의 공공연한 사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도 나치를 영웅시하거나 미화하는 것을 엄격히 법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특히 나치의 상징인 십자가 모양의 '하켄크로이츠'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물건에서는 절대 사용을 금기시하고 있다고도 하더군요.

왜 일까요! 이것은 정의의 문제이고, 공동체의 안녕과 평화를 위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 했지요. 과거의 역사(경험)속에서 평가하고 반성하고 그로부터 정의가 확립될때에만 미래에선 그런 불행을 반복하지 않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당 서정주는 자신의 친일 전력에 참여하게된 동기에 대해서, '일제가 그렇게 허무하게 패망할준 몰랐어'라고 라고 말했습니다. 그랬겠지요. 그랬으니까, 그 일제국주의가 영원할 것 같기에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제에 빌붙었겠지요. 만약 그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쯤, 모두다 일황의 황국신민이 되어있겠지요. 생각만해도 끔찍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우리의 역사를 자랑스러워 하고, 우리의 후세대에게 가르칩니다.

왜 일까요. 바로 우리의 공동체를 지켜내는 정의를 세우는 것이니까요.

운보의 업적은 뛰어납니다. 그러나, 훌륭하진 않습니다. 운보를 애기할 때, 한국의 피카소로 비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피카소는 약 3만여점의 작품을 남겼다하고 운보는 약 2만점을 남겼다 합니다. 운보도 피카소에 뒤지지 않을 만큼의 천쟁성을 어릴적부터 보여줬다 합니다. 그러나, 피카소는 훌륭해도 운보는 훌륭하지 않습니다.

그는 조국 스페인에서 프랑코 파시스트 군부 독재정권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내전을 일으겼을 때, 프랑코 파시즘의 난민학살을 그림을 그려 폭로했습니다. 그뿐일까요. 지구를 반바퀴나 돌아서 있는 한국전쟁당시의 양민학살을 폭로하는 그림 (Massacre in Korea)을 그려, 지구의 평화를 기원했지요. 잔인한 시대에 폭력에 반대하고 인간성을 옹호하는 진정한 예술가의 삶을 보여준 것이지요.

과연 운보는 어떠했나요. 운보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약자라서 그랬을까요. 운보는 이미 그 시대에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약자이기에 앞서 문화권력자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 지금에도 한국미술계의 살아있는 권력입니다. 지금의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여성이기에 사회적 약자일까요. 절대 아니죠. 그녀는 여성이기에 앞서,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권력을 좌지우지 할수 있는 권력자이지, 절대 약자는 아닙니다. 청각 장애인이라는 것을 빌미로 해서, 동정심을 통해 그의 친일행적을 가리려 했던 것을 얄팍함에 지나지 않습니다.

운보가 더더욱 비판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바로 미술계의 최고 권력자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스승인 친일화가 김은호로부터 면면이 이어져오는 한국 미술계의 최고 권력자들.

사회를 앞에서 선도하고 이끄는 지식인과 권력자들의 선동에 죄없이, 황국신민으로서 대동아공영권을 위한 양놈들과의 싸움에 얼마나 많은 조선의 젊은이들이  끌려갔을까요. 혹은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으면서 말입니다.  일개 국민의 밀정행위보다 더 위험한 것은 바로 지도층, 권력자들의 친일행위입니다.


그래서, 운보가 이룬 예술적 업적보다도 더 우리 공동체에게 유익한 것은 운보의 행위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대우속에서 우리 공동체의 사회정의를 세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눈앞의 경제적 이익이 있다 했습니다. 모든 자치단체간 전쟁이라고 까지 표현하시더군요. 그러나, 그런 눈앞의 경제적 이익보다 더 큰 공동체의 이익은 그의 친일행위에 대한, 정당한 역사적 평가입니다. 아니 그런데, 그가 충북을 대표하는 문화브랜드라니요. 그 문화브랜드를 경제적 이익으로 환원시키지 못하는 사태가 바로 "충북의 혼"을 도둑맞는 행위라니요.

우리의 후세대에게 무슨 말을 하시려는 것이지요. 바로 돈만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금전 만능주의 아닌가요. 아무리 죄를 져도, 돈만 된다면 모든 것은 용서된다는 가르침을 주려는 것인가요.

저는 반대합니다. 하이닉스 기숙사 용지로 청주시가 형질변경등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공사를 들어갈수 있게 해주었다는 신문 보도를 접했습니다. 이것이 맞는 것인가요. 그럼, 다른 기업들, 대기업은 아니지만 중소기업들은.... 그들에게도 똑같은 대우를 해줘야 하는 건 아닌가요.

그 이전에, 하이닉스가 아무리 발전한들 지역민들에게 골고루 그 해살이 비추어지는 가요. 하이닉스가 수조원대의 순이익으로 번창을 하는 순간에, 3년째 길거리에 나 앉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거리에 있습니다.
경제가 아무리 커지고 발전하더라도, 그 공과가 모두에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사회양극화가 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기업은 이윤은 더욱더 커져만 가는데 국민들은 가난해져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역의 발전을 이야기 할때, 경제적 성장을 이야기 할때도 언제나 우선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공동체의 이익입니다. 그 전제속에서 공동체의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더 유익한 것이 무엇이냐에 기반해서 우리 사회의 발전방향에 대해서 토론해야 합니다.

저는, 지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운보가 충북의 대표적 문화브랜드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동의 할수 없습니다. 그 이전에 운보의 친일행위에 대한 공동체의 평가가 우선이고, 그로부터 세워질 우리사회의 정의가 보다 많은 이들에게 유익함을 제공할 것입니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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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화가, 운보가 충북의 대표문화브랜드로 환생하다.

혹시, 청주 운보의 집을 아시는지요. 바로 친일화가로 알려진 운보 김기창화백의 미술관입니다.  운보의 집은 엄밀히 청주가 아니라,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 일대에 약 2만여평에 걸쳐 있습니다.  근데, 문제의 발단은 다른 게 아니라, 운보의 집을 관리하는 운보문화재단이 재정적 어려움에 봉착하면서 꼬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운보의 집 일부 시설물과 토지가 경매로 제 3자에게 넘어갔지요. 그리고, 소유권,경영권 다툼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관람의 제한이라든가 하는 파행운영의 상태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 다음입니다. 한국예총등 일부의 사람들이, 충북의 문화브랜드, 충북의 혼등 친일화가에 대한 온갖 자극적인 언어로 포장하더니, 운보의집 정상화 운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역에서 이에 대한 비판이 나오질 않는 다는 것입니다. 운보의 집이 아니 기념관이 들어설때만해도, 아니 몇년전 대청호 미술관에 운보의 작품이 걸릴때만 해도, 운보의 친일전력에 대한 비판과 역사적 평가를 요구하며, 수많은 안티 운보 운동이 진행되었던 것에 비하면, 모두가 조용합니다.

현재, 운보의집 정상화 추진위원회는 운보를 충북의 대표 문화브랜드로 키우자고 합니다. 매일, 수천명이 관광객이 드나들고 하는 이 보물덩어리를 왜 외지인에게 뺏기냐는 거죠. 그래서 충청북도가 나서서, 충북대의 대표문화브랜드, 관광브래든로 키우자는 겁니다.

참 어이가 없는 상황입니다. 이에, 이미 알려진 운보 김기창의 친일 전력을 상기하자는 의미에서 그의 친일행적을 요약해봅니다. 

 

 

"붓으로 화폭으로 진충보국하라" 운보의 친일 행적



민족문제 연구소의 방학진 사무국장은 "<천재화가> 김기창과 피카소의 차이점"이란 글에서 친일화가인 운보김기창의 친일행적에 대해 명지대 이태호의교수의 글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이 설명한다. 인용해본다.

" 스승인 이당 김은호와 더불어 사제지간이 모두 친일화가로 분류되는 그는 식민지 조즉의 현실에 눈 돌리기는커녕 그림을 통해 일제의 전쟁동원에 적극 협력하였다. 그에 대한 미술 전문가의 평가는 어떨까. 일제말 친일 미술전의 핵심인 '반도총후미술전'(半島銃後美術展)에 후소회 동문인 정우성과 함께 일본화부 추천작가로 발탁되었다.(1942∼44). 자연스레 친일파의 나락에 빠져든 것이다. 김기창은 일제 군국주의를 찬양·고무하기 위한 선전 작업에도 앞장섰다. 이는 우선 신문·잡지류의 대중매체에 실린 삽화를 통해 확인할수 있다.

{매일신보}에 게재된 【님의 부르심을 받고서】(1943.8.6), 조선식산은행의 사보 {회심,會心}지에 실린 완전군장의 【총후병사】(1944.4】 등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님의 부르심을 받고서】는 '축 입영( 祝 入營 )......' 이라는 어깨띠를 두른 학도병 좌우에 갓 쓰고 안경 낀 연로한 아버지의 수건을 쓴 어머니가 수묵소묘풍으로 그려진 삽화이다.

이는 1943년 8월부터 시행된 조선 청년 징병제를 선전하기 위한 작품이다. 종군하게 되어 감격스러운 듯한 학도병의 진지함과 장한 아들을 굽어보는 아버지의 표정에 선전효과를 높이려는 의도가 다분히 베어 있다. 훈련병을 그린 【총후병사】는 펜화에 담채를 가한 삽화이다. 완전군장으로 간이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병사의 옆모습을 포착한 것으로 얼굴과 주먹 쥔 손에는 성전에 참여한 멸사봉공의 굳은 의지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이태호(명지대 교수, 미술사, 친일파 99인 제 3권 중에서)




친일을 빠져나가기 위한 그의 변명


이에 대해 운보 김기창은 작품【총후병사】에 대해서 "정식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삽화에 불과해 친일한 작품으로 볼수 없다."고 친일작품행위를 부정했다.



운보의 변명이 거짓말임을 드러낸 【적진 육박】


그러나 이런 운보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일제시대 당시 남양군도에서 대검을 소총에 끼운 채 적진을 향하고 있는 일본군의 육박전을 묘사한 【적진육박】(1944)이라는 작품이 공개되면서 거짓말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 작품에 대하여 민족문제연구소는 “적진육박은 일제 군국주의를 찬양하고 소위 ‘황국신민’의 영광을 고취하기 위해 조선총독부의 후원을 받아 경성일보사가 1944년 3월부터 7개월간 서울에서 연 ‘결전’ 미술전람회에 출품됐다”고 밝혔다. 이 그림은 전람회에서 ‘조선군 보도부장상’을 받아 운보의 친일행각을 보여주는 증거가 됐다.”


친일행적에 대한 반성없는 운보, 그리고 그의 변명

▶ 1. 그땐 누구라도 어쩔수 없었지. (상황론) (한 일간지 기자와의 대담에서 밝힌 친일의 변)

"사람은 자기가 살아가는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물론 의지가 강한 자기 정신을 소유한 사람은 문제가 없지만 평범한 인간이면 누구나 환경의 지배를 받게되겠지요." ({경향신문}.1991.8.3 )

▶ 2. 적반하장 (1983년 <계간미술> 봄호 특집기회 '한국미술의 일제식민 잔재를 청산하는 길'에서 친일미술가들에 대한 실명을 공개한데 대해서)

성명광고 발표 '불신과 불화를 조장하는 저의를 묻는다.'(조선일보,동아일보, 1983.4.1)

▶ 3. 의연함 (1993년 당시 운보기념관 건립계획에 대한 지역시민사회의 반대운동에 대하여 )

"...(당시) 친일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은 실력 없었어. 당시 뽑힌 사람은 능력있는 사람들이인데 높은 나무가 바람을 많이 받는 것처럼 나는 지금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것..."




친일행적에 대한 뒤늦은 고백, 그리고 의구심


정운현(반민규명위)씨의 【양심선언을 한 친일전력자들】 (<세계와 나>. 1993.8)이란 글에서 김기창화백의 친일행정에 대한 고백, 아니 의의 아들에 의한 고백과 관련된 내용이 있어, 인용해본다.


"한편 여야의원들의 주도로 ‘이완용 명의 토지재산 국고환수 추진을 위한 공청회’가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개최된 지난 7월 1일, 한국화단의 원로중의 한 사람인 김기창 화백은 외아들 김완씨를 통해 자신에 대한 친일시비와 관련, “일제말기 친일활동을 한 사실이 있으며 이에 대해 역사와 민족 앞에 사죄한다”고 밝혀 이날 공청회와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물론 이날 운보(雲甫)의 친일고백은 처음 있는 일도 아니며 특히 최근의 친일논쟁이나 이날 국회에서 개최된 공청회와는 완전히 무관한 것이다. 운보가 이날 이 같은 친일고백을 한 배경에는 그의 작업실이 있는 지방에서 발생한 한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인데 사건의 전말은 대충 이렇다.

김화백이 친일전력을 고백한 이날 청주·청원지역 재야인사와 청원군에 따르면 김화백은 현재 거주지인 ‘운보의 집’ 일대에 모두 22억여 원의 사비를 들여 미술관·도예공방·휴양시설·교육시설 등을 갖춘 8만 7천 900여 평방미터 규모의 ‘운보기념관’을 짓기로 하고 농지·임야 등을 매입, 이달 초 도에 국토이용계획 변경신청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이 지역 재야인사들은 김화백이 일제 말기 총독부 문화정책에 앞장섰던 친일화가인데다 김화백의 기념관 건립예정지 주변이 의병장 한봉수 선생, 의암 손병희 선생, 단재 신채호 선생의 생가·묘소·사당 등이 몰려 있는 항일 독립운동의 성지인 점을 들어 기념관 건립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김화백측은 사태해결을 위해 서둘러 해명을 겸해 나름대로는 친일전력을 고백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운보의 아들 김완씨는 충북도 기자실에서 설명회를 갖고 “운보가 정상인이 아닌 장애인이라는 사실과 그가 예술가로서 이룬 업적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라며 이들의 이해를 촉구했다.

김씨는 또 “김화백은 당시 스승인 이당 김은호 화백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에서 비롯된 것일 뿐 독자적인 친일사상 행위는 없었다”며 “친일행위를 회개하는 뜻에서 오는 10월 5권으로 발간할 예정인 전작도록에 친일작품인 ‘님의 부르심을 받고서’ ‘총후병사’ 등을 수록하는 한편, 과거에 대한 고해성사 형식의 글도 실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화백의 친일고백과 관련, 일부 미술비평가 중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지는 사람도 더러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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