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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가 (悲 歌)
곡기 끊고
참회하는 수도승처럼
그대 생각 접고
그대 얼굴 지운 줄 알았어요
행여 떠올릴 물건이라면
첩첩산중 깊은 골에 무덤을 쓰듯
감춰 버린 것도 한해를 넘겼어요
처음 만난 날
고이 심었던 민들레
찬바람 불 때마다
꽃씨로 토막토막 떨어져
저마다 날개달고 떠났는데
덩그라니 남은 몸뚱아리
거멓게 비틀어져서도
움켜쥔 뿌리를 놓지 못했나봐요
기억이란
얇디 얇은 실줄기로
어쩌다 한번 스쳐갈 때
더욱 잔인해져요
날도 서있지 않은
종이 한장에 손이 베이면
피 한방울 겨우 맺혀도
눈에 띄지도 않는 생채기
퍼런 멍자욱으로 변해야 사라지고
떠나보낸 꽃씨도
바람타고 도착한 곳마다 뿌리박혀
발길에 채이고 눈길에 걸릴만큼
질긴 생명을 이어가네요
보고 싶어요
겁에 질린 짐승처럼
내 몸에 박힌 털이
모두 곤두 설 만큼 두렵고
두번 다시 부딪칠리 없는
평행선이 되었다 해도
그대 향한 그리움 더는 지우지 못해요
또 보고 싶어요
이렇게 떨어져 뒤돌아 선 것이
서로에게 최선이라고 다짐했지만
그대도 나도 눈물 들킬세라
긴 작별 못했음을 알아도
내 영혼 산산이 깨지고
마지막 바램마저 은빛가루로 빻아
레테의 강, 거스를 수 없는 물결에 뿌린대도
세상의 모든 신이 정한 형벌을 견뎌낼 만큼
그대가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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