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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위로를 받으면서 근근히 살아남고,

감동을 받으면서 힘차게 살아가게 된다.

 

세상이 아무리 이상하게 변해도

감동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기때문에

희망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젊은 시절 "한 번 죽은 이들을 두번 죽일 수 없다"며, 인혁당사건으로 사형당한

사람들을 화장하러 가는 운구차 위에 뛰어올랐던, 덕분에 평생을 불편한

다리로 살아야했던 노신부가 청와대 앞에서 단식을 한다는 소식에

나의 눈은 눈물이 글썽인다.

 

지금은 구속된 김지태 이장님이 황새울 들녘을 가리키며

땅을 돈으로 환산하는 사람들에게 했던 그말.

"그 금액은 너무 어마어마해서 (아니 너무 작고 볼품이 없어서) 나는 상상을 못할 지경이니깐. 힌트를 드리자면 대추리·도두리 들판에서 지금껏 거두었던 벼의 낱알의 개수만 하다고나 할까. 그것을 일구기 위해 굽혔다 폈던 관절의 운동 횟수만 하다고 해도 될 것 같다. 한 가지 더. 그들의 시간, 한숨, 울음, 웃음, 그것을 내동 내려다보았을 별빛이나 시름을 달래주던 바람의 총량까지 합하면 대충은 나올 것 같다."

 

맞춤법도 틀려가며 난생처음 농사짓던 손으로 구호를 적어가던

대추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천성산 도롱뇽을 지키기위한 지율스님의 싸움과

차라리 법원이 맞고 자신이 틀려서 공사를 하면서도 천성산에 아무 피해가 없으면

좋겠다고 하시던 스님의 마음 씀씀이

 

자기 발로 걸어들어가는 감옥, 군대를 거부하는

병역거부자들이 세상을 대하는 마음씀씀이

 

남들 다 권력을 쫓아 명예를 쫓아 이름 날리러 청와대로 국회로

하다못해 시민사회단체들 대표로 승진할 때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꿋꿋히 그 자리를 지키는 이제는 중년에 가까워진 활동가들

 

분노할 줄 알고, 슬퍼할 줄 알고, 아파할 줄 아는 그러면서도

항상 나를 위로해주는 활동가들

 

무한대의 사랑과 무한대의 이해심으로 자신을 희생시켜가며

나의 삶을 가능하케는 우리 엄마 아빠

 

 

너무 많은 감동이 나를 평생 울게만든다.

세상의 더러운 것들이 눈물로 다 씻겨 내려간다.

나는 이 수많은 위로와 이 수많은 감동을 다 갚기 위해서

대체 얼마나 많은 인생의 나날이 필요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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