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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위를 내려오며

수능시험 한 달 남짓 남은 10월의 주말 팔공산 갓바위는 소원을 비는 손바닥으로 장터처럼 붐빈다 저 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듣고만 있어도 피곤하겠다며 되먹지못하게 감히 부처님 걱정하는 이 놈의 중생은 세속적인 욕망으로 부처님을 괴롭히는 치들을 한심한 듯 쳐다보다가 다소 철학적인 소원을 빌어보고 우쭐해한다 팔 백 오 십 미터의 관봉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올라갈 때 그리했던 것처럼 순식간에 내려오다가 힘겹게 땀 흘리며 걸어오는 너를 만난다 햇볕을 머금은 이마의 땀방울은 구슬처럼 빛나고 슬픈눈이 간직한 이야기들을 차마 묻지 못하고 나는 그만 풀썩 무릎이 풀려버렸다 부처님 앞에서도 당당히 꿇지 않던 무릎인데 갓바위 정도는 가뿐하게 오르내리던 종아리인데 바짓 가랭이 움켜잡힌 것처럼 아무 저항도 못하고 엉거주춤 주저앉은 나를 너는 지나가며 아무말도 하지 않고 나는 바라보며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마치 그 계절에 그랬던 것처럼 그것이 우리의 이별의 이유였다 저 멀리 하늘, 구름이 산을 힘겹게 넘고 있다 --------------------------------------- 갓바위 부처님앞에 바글거리는 인파에 질려서 내려오던 길에 갑자기 어떤 상황에 대한 상상력이 발동되었다 소설의 도입부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내가 소설쓰는 사람도 아니고 그냥 지나가면 이 느낌을 잊어버릴꺼 같아서 기록을 남겨야 겠다고 생각했다 쓰고 나서 보니 잘 모르겠다. 그 때의 내가 느꼈던 것들이 잘 표현되었는지,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 느낌을 다시 떠올릴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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