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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아끼라구?

처음에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냥 허탈하게 웃어넘겼는데 곱씹을수록 기분이 상한다.

나보고 말 좀 아끼란다. 뭐 내가 좀 말이 많긴 하고 덕분에 실수도 많이 하는 걸 아는지라,

내가 또 무슨 실수했나해서 뭐가 문제냐고 물었다.

 

요지는 이랬다. 일전에 다른 부서 직원들과 있는 자리에서 어떤 분이 그 부서 사람들에게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 "그래도 너희는 달마다 자기 이름 찍힌 책 나오고 보람차다."

이 말 틀린 말이 아니다. 일이 고된만큼, 그리고 그 일의 결과로 나온 책들이 정말 좋은책이라서

무척 보람차고, 또 많은 걸 배울 수 있다. 나도 안다. 누가 그걸 모를까. 그 부서 직원들도 다 알거다.

근데 그 말을 누가하느냐는 좀 다른 문제다. 그 말을 한 그 분 또한 같이 고생했다는 것도 잘안다.

하지만 그 분 위치에서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아무리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꼭 필요한 과정이라해도 이런식으로 희생을 당연한것처럼

물타기해버려서는 안된다. 거듭된 야근으로 얼굴이 초췌해져 있는 사람들에게 할 말이 아닌거다.

 

그래서 덜컥 말해버렸다. "나는 내 이름 찍힌 책 안나와도 좋으니 야근 안하면 좋겠다."고

솔직히 빈정댄거다. 지금 생각해보니 빈정댄 거는 잘못이다.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그저 내 기분 풀이만 한 거니까. 아예 똑바로 말했어야 했다.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주 못된 말이 될 수 있다고. 좋은 책 만드는 건 보람있는 일이지만, 그 보람을 미끼로

직원들에게 고된 노동이 당연한 것처럼 그렇게 포장해서는 안된다고.

 

암튼 그 말이 좀 퍼졌나보다. 그래서 어떻게 했길래 이런 말이 나오냐고들 하셨나보다.

그리고 결국 나한테까지 말이 들어왔다. 입 좀 다물라고. 내가 뭐가 문제냐고 물었다.

나는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으신다. 옛날이 어쩌고, 지금은 상황이 어쩌고.

그러면서 이것과는 또 상관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으신다. 

다른 상황들을 들먹이며,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좋지만 예전 사람들의 노력이 어쩌고 저쩌고...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내가 이해한 바로는.

기분들이 나쁘신게다. 일개 신입 직원이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게 싫은가보다. 그저 좋은 일 하는 곳이니까, 조용히 좋은 결과물 만들기를 바라나보다.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이 많으면 당연히 야근도 하고 주말근무도 하고 그러길 바라나보다.

근면, 성실, 자기희생....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복종, 순종. 이러길 바라나보다.

내가 아직 활동가 티를 못벗어서 여기의 문법을 모른다고 한다. 이제 알아가야한다고 한다.

 

이따위 소리 지겹게 들어왔다. 학교에서, 감옥에서.

근면, 성실, 자기희생, 복종, 순종. 이따위 것들 가장 강요하는 곳이 어디겠는가. 군대다.

이거 뭐 군대놀이하자는 건가. 회사라면 차라리 업무와 능력으로 평가하든지.

일 못 했으면 그걸로 나물하고, 일 너무 못해 회사에 손해 입히면 월급 까던지.

이건 뭐 군대도 아닌 것이 태도를 가지고 시비를 걸어오냐는 말이다.

업무시간 근무태만도 아니고 초과 근무에 대한 태도를 가지고 이런 말을 들으니 짜증이 더 난다.

 아. 나도 안다. 우리 회사, 대한민국 회사치고 괜찮은 편이다.

권위적인면이나, 군대같은 모습도 대한민국 평균에 비해 훨씬 없다.

그래서 더 짜증난다. 안 그런 곳에서, 안 그런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말 좀 아끼긴 해야겠다. 말 조심해야겠다. 회사에서 장난치는 말도 안해야겠다. 높으신 분들 앞에서는 업무에 관련된 이야기만 해야겠다. 이런 기분 잡치는 소리 듣고 싶지 않다. 트집 잡힐 부분을 최소로 해야할 시기가 다가올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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