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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시간

알람소리에 잠을 깬다.

따뜻한 이불속에서 나오기 싫어 밍기적거리다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깨운다.

창문을 열면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가 방으로 들이닥친다.

노래를 튼다.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오소영이나 이장혁을 듣는다.

기분이 좋은 날엔 조동진이나 이적을 듣는다.

위로받고 싶은 날엔 시와나 옥상달빛을 듣는다.

세수를 어푸적 어푸적 하고 감자를 볶거나 두부를 부쳐 아침을 먹는다.

국물없이도 밥 잘먹는데, 전날 술을 많이 마시면 국물 생각이 간절하다.

설거지를 하고, 양치를 하고 머리를 감는다.

이 때까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 내 입은 굳게 닫혀있다.

 

하루 종일 말을 하지 않고 지냈던 시절이 있다.

다른 것 때문에 힘들긴했지만, 침묵이 힘들지는 않았다.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들은 질문이 되어 내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아침마다 나는 생각이 많아 진다.

감옥간 조은은 잘 지내고 있는지, 영국간 오리는 잘 지내고 있는지, 얼굴 못 본지 꽤 된 울 엄마는 잘 지내고 있는지, 단체교섭은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을지, 오늘 저녁엔 사람들이 우리집에 오기로 했는데 떡볶이말고 다른 메뉴 뭐를 준비할지, 주문한 하이미스터메모리 앨범은 왜 안오는지, 창언이 결혼식가서 언제올라올지, 갯마을하진이 삽화가는 누가 좋을지, 내가 상처 준 사람들은 잘들 살고 있을지, 내년 프로야구는 어떻게 될지, 겨울엔 가스값이 얼마나 나올지...

 

자전거를 타고 회사 가는 길, 포장된 차도를 벗어나 논둑길로 접어들면서 비로소 첫마디를 내뱉는다.

내 첫마디는 언제나 노래다. 날마다 노래와 함께 내 말은 시작된다.

심학산을 표지석처럼 앞에두고 금빛 논을 가르며 아무도 나를 보지 않고 아무도 내 목소리를 듣지 않는 곳에서 나는 목청껏 노래한다. 아침에 일어나 아껴둔 목청을 마치 다 써버리기라도 할 듯이.

 

침묵의 대가로 노래가 주어진다면, 썩 괜찮은 거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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