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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을 만들다2-노동조합 준비 과정

수습사원이 해고당한 일을 겪고 나서, 자연스레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우리는 조심스레 서로 의견을 확인하고, 사람들에게 노동조합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해(2009년) 겨울 쯤 노동조합을 만들자는 뜻에 찬성하는 사람들 7~8명이 우리 집에 모였다. 그때까지는 따로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잠깐씩 나누었는데, 처음으로 다 같이 모이게 된 것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우리가 그날 우리 집에서 비공개로 모인 것에 대해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날 그런 식으로 비공개로 몇 명만 모인 것은 잘못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과론이지만, 어차피 얼마 안 가서 노동조합 만드는 사실을 아예 오픈해서 진행해도 큰 문제가 없었는데, 처음부터 지나치게 보안을 신경 쓰면서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소외받은 사람들의 마음은 생각보다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출판사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사람이 있다면, 이 부분을 이야기 해 주고 싶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아예 비밀로 할 것이 아니라면, 그냥 처음부터 확 공개해서 동네방네 노동조합 만드는 과정을 다 떠들고 다니라고. 그 편이 노동조합이 힘을 갖기도 쉽고, 회사가 방해하기도 어렵고(물론 교묘하게 방해하겠지만) 조합원들이 모두가 더 적극으로 노동조합에 참여하게 될 거라 생각한다.

 

물론 당시에 조심한 까닭이 있었다. 윤구병 대표이사가 진보인사로서 체면 때문에 대놓고 노동조합 만드는 일을 방해하지는 않겠지만, 노동조합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윤구병 대표이사는 내가 회사에 들어가기 직전에 보리 노동조합 출범을 축하하는 글을 썼다. 당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준비하고 있던 것을, 이미 만들어졌다고 잘못 알고 쓴 글인데, 그 글이 노동조합에 대한 윤구병의 시각을 보여주었다. 윤구병은 노동조합을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노동자들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자기 잇속만 차리는 이기적인 행동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글에서 그는 보리출판사의 자본은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이 아니며 이윤이 나면 주주들이 가지는 게 아니라 사회로 돌리는 그야말로 '공익'이라면서, 노동자들을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보리 주식의 98%를 가지고 있다는 '공익위원회'(스스로를 그렇게 부른다)가, 보리가 살림을 잘못해서 공익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지 못하면 돈 되는 책의 출판권을 다른 곳으로 옮겨 갈 수도 있다고 말한다. 나는 윤구병의 글이 노동조합을 축하해 주는 게 아니라, 책을 바깥으로 빼 갈 수도 있으니 너네 노조 하려거든 알고 해라, 이렇게 협박하는 글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실제로 보리출판사 매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던 ‘달팽이 과학동화’와 ‘개똥이 그림책’ 전집을 다른 출판사에 넘기는 것을 보았으니 그 협박이 단순한 협박으로 들리지는 않았다.

 

노동조합에 대해 공식적으로 이야기가 된 건, 우리 집에서 모이고 얼마 지나지 않은 회사 엠티 때였다. 2009년 윤구병 대표이사가 들어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그만 두었고, 그 자리에 들어온 신입사원이 수가 제법 되었다. 신입사원들끼리 엠티에 가서 보리정신에 대해 토론을 하고 오라고 엠티를 보내준 것이다. 우리는 실체가 없는 보리정신에 대해서 토론하는 대신 노동조합에 대해서 토론을 했다. 대부분이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공감했고, 우리는 노동조합을 본격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회사 인트라넷에 노동조합을 만들자며 전체 모임을 공지하고 첫 공개 공식 모임을 가졌다. 사람들은 모두들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공감했고, 그 자리에서 부서별로 노동조합 준비위원을 뽑았다. 준비위원회는 몇 차례 회의와 토론을 거치며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 나갔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노동조합을 어떻게 만드는지, 필요한 건 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기업별노조와 산별노조, 유니온샵과 오픈샵의 차이점, 기업별 노조와 산별 노조의 차이점 같은 기본적인 것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우리가 보리에 들어오기 직전에 보리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려다가 회사를 나간 선배도 만나고, 다른 출판사 노동조합이나, 노동조합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때마침 작은책에서도 노동조합을 준비하고 있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작은책은 보리에서 독립해 나가 보리와 관계가 밀접하기도 하고, 대주주가 사실상 같았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서도 여러 가지를 공조하기로 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나는 이때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대학 다니면서, 노동법 한 번 읽어보지도 않고 후배들한테 노동자 계급이니 혁명이니 떠들어 댔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주장하면 경제투쟁이라 얕잡아봤는데, 노동조합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준비위원회 안에서 어느 정도 공부가 끝난 뒤로 예비조합원들 교육을 계획했다. 노무사를 불러 예비조합원들과 노동법 교육을 받기도 하고, 창비 출판사 노조 분회장을 불러 출판사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회사의 협조를 받았는데, 업무시간에 회사 공간에서 교육을 진행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줬다.

 

노동조합 결성이 수월하게 진행되지만은 않았다. 우선 회사 운영위원회에 들어가는 부장급 이상 간부들을 노조원으로 받아들일지에 대해 의견을 정하지 못했다. 간부들을 경영진으로 봐야할지 노동자로 봐야할지 판단하기 어려웠고, 이 사람들이 노조에 들어와서 노동조합을 위해 활동할지 윤구병 대표를 위해 활동할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간부들이 노동조합에 들어오면 평직원들이 할 말을 제대로 못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결국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을 막지는 않지만, 적극 권유하지는 않기로 했다.

 

윤구병 대표이사가 먼저 유니온 노조를 제안하면서 간부들도 노동조합 준비모임에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의 우려는 어느 정도 현실이 되었다. 간부들은 대놓고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노동조합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노동조합을 꼭 지금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기도 하고, 노동조합은 쟁점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쟁점이 뭐냐고 묻기도 했다. 이미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뜻을 모으고 추진을 하는 중에, 논의를 되돌리는 듯한 질문을 하는 의도가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어느 부서장은 자기 부서 신입 사원들만 불러 불러서 노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용석이 하자고 해서 하는 것은 아닌지 물었다고 한다. 간부들이 방해를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그리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무의식적으로 그리 행동했을 거고, 자신의 행동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을 방해하는 거라는 걸 몰랐을 거라 생각한다. 보리의 경우는 처음부터 노동조합이 기정사실처럼 되면서 사람들이 많이 흔들리지 않았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노동조합을 만드는 과정이 훨씬 지난했을지 모른다.

 

노동조합 준비 과정을 돌이켜보면 아쉬운 점이 두 가지 떠오른다.

 

먼저 소외감을 느낀 사람들이 생겼다는 거다. 물론 일부러 소외한 것은 아니었다. 사소한 오해가 쌓이기도 했고, 우리가 많이 못 챙기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 직원이어서 그랬던 게 부끄럽다. 친한 사람이었으면 내가 개인으로라도 챙겼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그 직원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송하다. 노동조합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부분을 가장 신경써야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의 힘은 단결에서 나오는 건데, 조합원이 노조가 자기를 소외시킨다고 느낀다면 큰 문제가 아닌가.

 

그리고 회사 간부를 조합원에 포함시키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결과론이다. 나중에 자세히 쓰겠지만, 간부들은 조합 안에서 우리의 뜻보다는 윤구병 대표이사의 뜻대로 움직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윤구병 대표이사가 노조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회사 간부를 노조에서 무조건 빼야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마다 간부들의 업무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딱 정해진 정답은 없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굉장히 지극히 현실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상적으로 생각했다. 잘 되는 경우를 가정했다. 결과적으로 간부들을 조합원에 포함 시킨 것이 노조에게도 그 간부들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배제하라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함께 가는 것이 서로에게 더 좋을지, 아니면 적절한 거리를 두는 게 서로가 더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꼭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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