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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커 칼럼] 터미네이터 IV: 매트릭스, 종합정보인지 리로디드

터미네이터 IV: 매트릭스, 종합정보인지 리로디드 이광석 / 네트워크 편집위원 요 새 미국에서 돌아가는 판이 허구천지다. 미 국방부가 9-11 동시 다발테러 이후 구상했던 전국민 감시체제 ‘종합정보인지’(TIA)는, 워낙 시민들의 반발이 심하자 ‘테러분자 정보인지’로 옷을 갈아입고 활보한다. 지가 무슨 변신맨이라고 이름을 살짝 바꿔 행세하고, 의회 통과에 부딪히면 지 한몸 동강내서라도 끝까지 살겠다고 몸부림에, 후미진 데선 지처럼 흉악스러운 것들을 마구 복제해 퍼뜨리고 다닌다. 이만하면 터미네이터 투, 쓰리가 아니라, ‘포’쯤에 나오는 공포의 사이보그 수준이다. 미시민자유연맹(ACLU)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국방부 정보인지가 예상외의 큰 반발을 받자, 국방부와 국토안보부가 자금줄을 대고 한 민간 회사를 끌어들여 일명 ‘매트릭스’(MATRIX)라는 시스템을 추진하고 있다. ‘주정부들 상호간 반테러리즘 정보교환’ 체제란 풀이말만 봐도 그 쓰임새가 눈에 확 들어온다. 맏형 종합정보인지의 축소판이다. 전국민 감시 시스템 종합정보인지의 후속탄, 매트릭스는 개인의 각종 신상 정보부터 가족, 이웃의 신상 정보까지 두루 포함한다. 주 단위로 분산됐던 신원정보를 통합하고 실시간 검색할 수 있는 지방 정부간 네트워크인 셈이다. 지방 정부와 사기업이 합동으로 자료를 축적하고, 이에 연방 정보기관들의 정보 접근권까지 주어졌다. 매트릭스가 테러 혐의자를 추려내는 방식은 말많은 ‘데이터 마이닝’이다. 요 방법에 걸리면, 일상의 궤만 벗어나도 가차없이 조사 대상이다. 데이터에서 금맥을 발견하듯 마구 수집된 개인 정보를 통계값으로 환산해 이례적 수치가 발생하면 테러 혐의자로 분류된다. 수치 오류가 생겨봐야 흔한 통계 오차에 불과하고 인권이 다치는데는 전혀 무관심하다. 매트릭스의 또 다른 위험성은 연방 수준의 입안보다는 개별 주들을 설득시키며 여론의 주위를 무마하는 방식에 있다. 국방부 종합정보인지의 경우 우리의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처럼 전국민 비난 여론을 면치 못했던 반면, 매트릭스는 여론의 포화를 거의 피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곱개 주들이 이 시스템을 승인했고, 인구수로 따지면 전체 미국인의 25%를 넘는다 한다. 큰 잡음 없이 영향력을 슬슬 키우고 있다. 말할 권리를 잃고 ‘입 닥치고 사는’ 미국인들은 ‘미국인이 아니다’. 요즘 시민자유연맹의 연예인 출연 광고는 빅 브라더와 리틀 브라더들이 설쳐대는 미국 내 현실의 살벌함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더욱이 공화당 영웅 슈왈츠네거까지 주지사 당선으로 이 리로디드한 미친 매트릭스 사이보그를 막으러 영영 “아윌 비 백”(나, 다시 돌아올께!) 하지 않을 것 같다. 당장은 크게 믿을 구석도 끝간 곳도 없다. <네트워커, 2003. 12. 제 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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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커 칼럼] 동시상영: 수렁에 빠진 탕아, 카피랩터의 품에 안기다

동시상영: 수렁에 빠진 탕아, 카피랩터의 품에 안기다 이광석 / 네트워크 편집위원 저 작권에 죽고 사는 카피랩터들의 잔혹무대 1, 2탄이 부족해, 동시 상영까지 덤으로 가세한다. 일대일 엠피3 파일교환의 이단아, 냅스터가 동시상영 무대의 주인공이다. 갔다고 생각했던 풍운아가 살아 돌아왔다고 야단이다. 예수의 재림 마냥 10월 29일 냅스터는 부활했다. 부활을 알리는 각종 메시지는 냅스터의 전성기를 연상케 한다. 29일 ‘와이어드’(wired.com) 뉴스 서비스에 접속하자마자 냅스터의 마스코트가 브레이크댄스를 추며 사람들의 시선을 이끈다. 같은 날 방송에서도 머리 큰 냅스터가 음악에 맞춰 바람을 잡으며 새로운 온라인 파격 서비스를 받아보라고 부추긴다. 개장에 맞춰 부활 기념 특별 음악 공연도 준비했단다. 또 한번 냅스터의 새 시대인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왕년의 인기는 추억일 뿐, 오늘엔 부질없다. 냅스터가 ‘냅스터 2.0’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하지만, 과거의 냅스터는 흔적이 없다. 이미 2001년 7월 법원의 판결로 문을 닫았을 때, 그리고 지난 해 9월 파산 신청을 했을 때 완전히 냅스터는 사라졌다. 지금의 냅스터 2.0은 이름만 빌린 빈 껍질이다. 지난 해 11월 ‘6백만불의 사나이’만큼의 돈을 들여 소프트웨어 제작사 록시오가 냅스터를 살려냈다. 과거의 자유로운 파일교환의 정서와 혼은 개봉 후 제거됐다. 살려낸 냅스터는 그저 얼마 전 시작한 애플의 아이튠스(iTunes)를 흉내내 한 곡당 1,100원 정도에 다운받고, 1만여원에 회원서비스를 받는 이른바 온라인 유료 음악 서비스 그대로다. 냅스터 2.0만의 새로움이란 아이튠스보다 1만 곡 정도 더 많은 음악 목록을 지닌다는 판촉뿐이다. 여기에 더욱 꼴사납게, 최근 <오마이뉴스>와 시민단체 웹사이트들의 사내 접속을 차단해 온 삼성전자가 냅스터 명의를 빌려 엠피3 재생기를 만든다고 기웃거린다. 음반업자들의 저작권 공세 속에 무너져 내린 냅스터가 6백만불에 개조되고 삼성전자의 우스꽝스런 판촉 메달까지 단다. 그냥 그저 보냈더라면 인터넷의 자유 정신으로나마 기억될 냅스터가 본전도 못찾고 추한 꼴로 연명한다. 카피랩터들이 냅스터를 고사시키려 할 때 당시 6천만명의 이용자들이 드나들었다 한다. 그후 이용자들은 그누텔라, 모르페우스, 그록스터 등의 파일 교환 장소들로 이합집산 했다. 그리고보면 진정 냅스터 2.0이라 불릴 것들은 당시 피난처지, 지금의 정신나간 홑껍데기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이제 어쨌거나 원하던대로 카피랩터들은 눈에 가시였던 냅스터를 잡아 그 혼을 빼 재기불능의 온순한 양으로 만들었다. 남은 것은 제 이, 제 삼의 신종 냅스터들을 길들이는 방법이다. 강수를 내밀며, 9월에 261명, 이번 냅스터 2.0 개장 다음날 80명을 더 저작권 위반혐의로 기소했다니 당분간 카피랩터들의 유혈 세상이다. <네트워커, 2003. 11. 제 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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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커 칼럼] ‘카피랩터’의 잔혹마당 2탄

‘카피랩터’의 잔혹마당 2탄 식탐하다 돌씹다 이광석 / 네트워크 편집위원 전 미음반산업협회는 도를 지나쳐 9월 8일 저작권 위반 혐의로 261명의 이용자를 무더기로 기소했다. 희생양들의 선발 기준은 의외로 간단했다. 카자아, 아이메쉬, 그록스터 등 대여섯의 일대일(P2P) 파일교환 서비스의 이용자들 중 1천 곡 이상의 엠피 파일을 컴퓨터에 저장한 ‘강성’ 이용자에 한해, 무작위 샘플링을 벌여 집단 기소했다. 물론 ‘사면’의 축복도 내린다. 시장의 법칙을 거스르는 파일교환 행위를 두 번 다시 않겠다고 반성하고 ‘준법서약’하면 과거의 죄과는 덮어준다. 랩터의 알을 훔쳐 호되게 당하고 살아남은 쥬라기공원의 인간들 마냥, 속죄하고 빌면 인정머리 없는 ‘카피랩터’(지난 호 1탄 참조)도 참을 줄 안다고 감언한다. 처음에는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대일 파일 교환 서비스 회사들이 카피랩더의 표적이었다. 그도 여의치 않자, 다음엔 인터넷서비스 제공업자들에게 이용자 신상정보를 내놓으라 엄포를 놨다. 약발이 재차 부족해지자, 아예 직접 나서서 정보 이용자들을 잡겠다 사냥을 벌인다. 음반협회가 이용자들의 사냥을 모의한 지가 지난해 여름부터라니, 그 동안 효과 분석서부터 나름대로 다 재고 꾸민 일이다. 랩터는 교활하다. 비록 식탐에 눈이 어두워 결정적일 때 실수를 범하지만, 그 사냥 과정만은 잔인하리만치 치밀하다. 덩치 큰 먹이감보다 이용자들을 각개로 잡겠다고 나서면 뭔가 얻을 잇속이 분명해서다. 어차피 음반시장의 침체는 파일 교환 변수보다 시장 내재적인 문제라는 점을 그들 스스로도 잘 안다. 전반적인 자본주의 경기 하락에 의한 문화상품 소비 위축, 디브이디(DVD)와 같은 다른 동급 대체 매체들의 소구력 상승, 가격 하락 단행에도 여전히 비싼 음악 씨디 가격 등 악재들이 제거되지 않으면 음반 시장 침체는 반영구적이다. 자연히 그들이 살길은 파일 교환을 막고 불법화하려 바둥대기 보다는, 이용자들을 놀래켜 파일교환을 시장 틀 안에 끌어들이는 방법뿐이다. 이것이 지난 1년간 카피랩터들이 모의해 얻은 결론이다. 누구는 지금을 ‘종획(Enclosure)운동 2기’라 부른다. 물론 1기는 양을 치던 공유지를 대지주들이 제멋대로 사유화해 농민으로부터, 토지로부터 박탈했던 18세기 영국 암흑기를 지칭한다. 반면 2기는 미국 내에서만 1천만이 넘는 파일교환자들을 전자 공유지로부터 겁을 줘 내쫓고, 새롭게 상업화된 전자 텐트 안으로 이들을 우격다짐으로 밀어 넣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늘 잔혹은 코미디와 통한다. 잔인한 현대판 엔클로저가 펼쳐지는가 했더니, 벌써 코미디 한편이 이어 나온다. 261명 가운데 한 여성이 카자아에서 2천 곡 이상을 저장했다는 혐의로 카피랩터들의 불법 파일교환 기소 대상자로 지목됐다. 곡 당 벌금이 1억 5천 만원이란다. 그런데, 그 여성은 칠순이 다 되가는 할머니에 컴맹에다 카자아란 프로그램을 깔 줄도 모르고 이도 전혀 작동 않는 애플 컴퓨터를 소유한다. 사냥감으로 완벽한 부적격자다. 랩터들의 과잉 식탐으로 돌까지 와드득 씹은 격이다. 이후 노인에 대한 기소를 슬그머니 취하했다고 한다. 이제 숫자상 한 명 줄어든 260명이 카피랩터들의 공식 먹이감이다. 앞으로도 종종 돌을 씹으며 전혀 무관한 생사람을 잡겠지만, 식욕이 완전 사라지면 모를까 이들의 피의 향연이 순순히 끝날 듯 싶진 않다. <네트워커, 2003. 10. 제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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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커 칼럼] 카피라이트의 잔혹 랩터들 (Copyraptors)

카피라이트의 잔혹 랩터들 (Copyraptors) 이광석 / 네트워크 편집위원 살 벌한 세상이다. 멋모르고 음악 파일을 주고받는 청소년들은 5년의 감옥형에 25만 달러의 벌금을 내야 한다. 미 하원에 계류중인 소위 ‘저자ㅤㅉㅗㄲ소비자ㅤㅉㅗㄲ컴퓨터소유자 보호 및 보안법’(ACCOPS)의 흉악스런 정체다. 이 법이 발효되면, 인터넷을 통해 파일을 주고받던 미국인들 중 약 6천만 명 정도가 범죄자가 된다. 파일 교환에 대한 본보기식 각개격파는 간담이 서늘할 정도다. 지난 6월말 경 전미음반산업협회(RIAA)는 ‘강성’ 사용자들의 마녀사냥을 공식 선포했다. 사냥 방식은 주로 손해배상 청구와 이용자 신원 공개요구에 집중한다. 발부된 소환장만 수천 여 건에, 대학 캠퍼스의 불시 수색에, 컴퓨터 압수와 영장 발부는 기본이다. 파일 교환이 수시로 이뤄지는 ‘불온의 범죄현장’격인 대학 캠퍼스는 60년대식 곤봉과 군홧발이 난무하는 대신, IP 추적으로 수갑차고 벌금 채무자가 된 대학생들로 그득하다. 대학가의 영원히 시들지 않는 공권력의 추태가 재현된다. 사태가 이쯤되니 신원공개를 요구하는 음반협회의 발칙한 요구에 1백여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들이 분노, 반기를 든다. 인터넷 업체들뿐만 아니라, 메사추세츠공대(MIT)나 보스톤 칼리지 등 대학들도 협회의 소환장에 불복하거나 맞고소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미 음반업계는 사이좋던 컴퓨터ㅤㅉㅗㄲ가전업체들과 싸워 결별에 들어간 전력이 있다. 언제나 음반협회는 레코딩이 가능한 기술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고 봉합하는데 골몰해 왔다. 사사건건 가전업체들의 기술 개발에 개입해 사방 쪼아대니, 누군들 버틸 재간이 있겠는가. 결국, 가전업체들은 음반협회에 끌려다니며 각종 기술에 저작권 코드를 심어봐야 소비 심리만 위축시키고 전혀 사업에 득 될 것이 없다는 점을 간파하고, 바로 질 나쁜 폭군으로부터 멀어졌다. 철석같이 제 편이라 믿었던 인터넷 서비스와 가전업체 등이 차례로 등을 돌린다. 무엇보다 협회가 날리는 협박장에 이용자와 관련 시민단체들의 분노도 극에 달했다. 이토록 사방에 원성이 자자하지만, 협회의 해법은 늘 폭력적이다. 엄청난 돈을 들여 파일 교환 불법 캠페인을 벌이고, 속임수의 가짜 엠피 파일을 온라인에 다량 유포하고 파일 교환에 감시 프로그램을 심어 신원을 조회하며 미친 듯 용을 써보지만, 정작 주위를 찬찬히 살피는 아량은 없다. 음반업체 등 저작권 수호자들은 사용자와 현실 변화에 모질 정도로 둔감하다. 엠피 플레이어, 각종 디지털 녹음장치, 파일 교환 서비스 등 생경한 것들이 일상이 됐음에도, 독오른 눈으로 칼자루만 잔뜩 긴장해 움켜쥐고 있다. 이들은, 애초 저작권이라는 것이 전적으로 창작물에 대한 보상을 분할해 나눠먹는 이들을 위한 독점 사유권이 아니며, 이를 정당하게 쓰는 모든 이들의 공적 권리란 점을 쉽게 까먹는다. 마치 ‘쥬라기공원’에서 잔인하고 영리하게 하나씩 이용자들을 괴롭히고 잡아 먹어치우지만, 결국 티라노에 까불다 내동댕이쳐지는 랩터들마냥 처신한다. 시장의 법칙과 재산권을 들이밀더라도 상식을 따르고 상황 변화를 인정하는 장사꾼들이 되지 못하면, 그 족속은 ‘카피랩터’에 불과하다. <네트워커, 2003. 9. 제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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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커 칼럼] 사팔뜨기 응시 권력

사팔뜨기 응시 권력 이광석 / 네트워크 편집위원 현 대 권력의 통제욕은 크게 두 가지다. '코드'와 '응시'. 코드가 독점/배제의 논리라면, 응시는 관찰/감시의 논리다. 소수의 권력자는 독점과 관찰 수단을 통해 다수를 겹겹이 배제하고 감시한다. 유무형의 재산과 정보에 대한 독점적 접근은 코드의 논리로 구성되고, 이 코드의 논리를 깨는 불순 행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선 끊임없는 응시가 필요하다. 돈을 찾으려면 암호를 쳐야하고 접속을 위해선 신원이 확실해야 하고 답글 한마디 달려 하면 주민번호가 필요하다. 뭘 하나 쓰려는데 방벽이 쳐져 있고 이를 열심히 뚫어 여럿이 같이 쓰다 엉겁결에 잡혀간다. 코드 권력이 잘 작동하는 예다. 근무 중에 들락거린 웹 페이지를 다 알고 있다며 사장이 내게 경고 편지를 날린다. 알지도 못하는 보험회사가 우리 가족 신상을 들먹인다. 술이 과해 인사동 골목에서 한참 토하는데 어찌 알았는지 종로구청 직원이 튀어나와 인터넷에 생중계 된단다. 도대체 방범 CCTV를 270여대나 어디에 감쪽같이 숨겨놨을까 찾으려 두리번거리다 강남 경찰서에 잡혀갔다. 응시 권력이 잘 작동하는 예다. 응시 방식의 변화는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NEIS에서 보듯, 기술적으로 개별과 분산에서 통합과 재분류가 가능해지면서 통제 능력이 훨씬 신장됐고, 밖으로 드러났던 것들이 은밀해지고 시야에서 사라짐으로써 자신이 권력의 관찰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응시의 이같은 교묘한 변화는 체제 코드의 좀 더 안정적인 재생산에 기여한다. 코드 유지를 위해 권력은 한 노동자의 일터에서, 퇴근 후 공원을 지나다, 백화점에서 카드 결제하면서까지 어디서든 뜨거운 응시의 눈길을 보낸다. 특히 요즘 문제되는 응시는 노동자와 소비자를 관찰하고 감시하려는 자본욕보다 시민에 대한 국가의 통제 욕망이 설쳐대는 특이한 경우다. 무엇보다 광장이라 불리는 공적 공간에서의 '원치 않는' 응시의 범람은 시민에 대한 전근대적 국가 폭력의 새로운 변종으로 자리잡는다. 부르조아 민주주의가 성숙할수록 이들 시민 영역보다는 노동자와 소비자로 등장하는 개인의 관찰과 감시에 집중하는 법이다. 성숙한 국가들은 시민권의 신장이 폭력적 응시를 참지 못하니 자연히 응시는 주로 자본의 입장에 충실하다. 이에 반해 우리 문민 권력자들은 아직도 군사 폭력의 공백에 허전해 한다. 폭력과 정치사찰 대신 응시를 선택했어도 과하고 서툴고 거칠다. 못된 옛날 버릇이 남아 더욱 그렇다. 이것저것 먼저 저질러보고 시민권의 반발력을 슬그머니 따져본다. 예서 다치는 것은 시민 인권이다. 일례로, 얼마전 미 회계 감사원이 하원에 제출한 워싱턴시 CCTV 운용 보고서 내용만 봐도, 테러범들을 잡겠다며 설치한 CCTV가 테러와 범죄 예방은 고사하고 도시 시민들의 공공 생활을 크게 위축시켰다고 혹평하고 있다. 그런데도 강남의 CCTV는 용감하게 전국을 꿈꾼다. 이래저래 느끼한 권력자들의 닭살스런 응시의 동기나 효과를 따져보면, 지긋이 시민을 향해 쳐다보기는 하는데 영 사팔뜨기인 듯 싶다. 밖에서 그만둔 것 하느라 욕먹고, 실속도 없이 끈질기게 시민의 스토커가 되겠다고 우겨대니 말이다. <네트워커> (2003. 8. 제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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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커 칼럼] 9-11 이후: '1984'의 현실

9-11 이후: '1984'의 현실 이광석 / 네트워크 편집위원 9-11 동시다발 테러 이후 미 우익 매파들은 '빅브라더'로 둔갑했다. 타국민에겐 제국의 무력과 폭탄을 들이대고, 자국의 시민들에겐 온갖 감시의 제도와 기술로 옥죈다. 절차상의 민주주의를 갖추고 합리성이 통한다는 미국 사회에서 이젠 시민에 대한 국가 폭력이 일상으로 벌어진다. '경찰 국가'로서의 면모는 지난 5월말 의회에 제출된 사법부의 반테러 목적의 활동 보고서와 국방부의 감시기술에 대한 해명 보고서를 통해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9-11 이후 시민 감시를 상시화할 명분으로 만들어졌던 '애국자법'은, 4,500건의 무분별한 테러 파일들을 만들었고, 혐의만으로 50건에다 불법 체류자의 경우 762명의 물적 증거없는 강제 구금, 수백건의 영장 발부없는 압수 수색, 그리고 50여개 도서관들의 도서 대출기록 임의 조사 등에 악용됐다. 이는 사법부가 순순히 밝힌 공식 수치만 따졌을 때다. 9-11은 자본의 이권과 짝패를 맞춘 여러 감시 기술과 시스템이 국가 보안의 핵심으로 나서는 계기도 됐다. 대표적으로 국방부의 '종합 정보인지'(TIA) 체계는 미국 시민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거대 통제 기술로 아직도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패턴 인식 프로그램은 시민들 개개인의 신상 기록과 거래 내역들을 수집해 한데 모아 분석해 잠재적 위협 요인을 미리 막겠다는 야심찬 구상을 세우고 있다. 너무나 노골적인 정보 오남용과 인권 침해의 소지가 뻔히 보여서인지, 지금에 와선 '테러분자 정보인지'로 이름을 바꿔 단 채 활보하고 있다. 그 아류도 줄줄이 나온다. 바깥 세계의 '이방인'이 미국 영토를 밟으려면 여행객 감시 체계인 '비지트'(VISIT) 시스템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 유학생과 교환 방문객은 미국에 체류중인 이방인들을 사찰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비스'(SEVIS) 시스템에 등록·관리 받아야 한다. TIA의 일환으로 구상중인 '사전적격심사시스템'(CAPPS II)은 비행기 탐승객들의 신원 조회용 프로그램으로 개발되고 있다. 이에 수시로 벌어지는 인터넷 감청, 위성을 이용한 무선 감청, 바이오 신원 감지 기술 등을 덧붙여 보면, 부시행정부가 원하는 시민 통제욕의 끝이 가늠조차 힘들다. 노골적인 국가의 감시와 폭력에도 군말없이 순종하는 미국 시민들의 정서는 이를 묵인하는 가장 큰 악재다. 극단의 애국주의에 취해 하루아침에 동강난 자신들의 인권을 치유하거나 수습하려는 기미란 처음부터 없다. 국가가 나서 밖으론 수시로 적을 만들어 준전시 국가관리 체제를 꾀하고, 안에선 테러에 대한 심리적 두려움과 공포를 끊임없이 유포하여 감시와 통제의 명분을 쌓은 까닭이다. 자신의 신상 정보가 국가에 의해 늘 관리되고 감시의 족쇄를 차야한다는 사실을 하루속히 깨닫거나 분노조차 못한다면, 그 사회는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멈춰 있는 꼴이다. (<네트워커> 2003. 7.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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