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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육] 서평: 우리는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원한다!

<자유의 새로운 공간 (갈무리)> 서평 - 이광석 우리는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원한다! 우리교육(99년 1월호 게재) 9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도 운동의 차원과 지향에 변화가 일고 있다. 운동의 역사적이고 정세적인 쇠퇴가 모순을 혁파하고자 하는 실천적 인간 본성을 사그러지게 할 수 없듯이,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새로운 물결의 파장은 이탈리아의 아우토노미아(autonomia) 운동과 프랑스의 1968년 5월혁명에 개입했던 신좌파들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아우토노미아의 가장 널리 알려진 이론가인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와 프랑스 신좌파 운동가들 중 가장 실천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펠릭스 가따리(Felix Guattari)의 공저인 {자유의 새로운 공간}은, 바로 이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던 핵심적인 동인이다.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아우토노미아 운동은 1950년대말에서 70년대말까지 학생, 여성, 인종, 동성애 등의 부문운동이자 비정당적 소수집단의 자율적 저항 운동을 가리킨다. 실지 가따리도 아우토노미아 운동의 일환이었던 독립 라디오운동에 가담하였고, 귀국후 파리에서 '라디오 93'의 운영을 돕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그는 단일체적 정치 정당을 신사회운동의 참여민주주의에 기반한 '욕망의 미시정치'로 대체하기를 고대했다. 이렇게 본다면 그들은 인식 기반과 정치적 관점 모두에서 공유된 정서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역사적으로 68년 프랑스에 일어난 5월혁명은 그들에게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시발점이 된다. 이들이 새로운 근거는 기존 좌파들의 노동계급 중심, 거시정치 중심, 대중과 전위의 이분법, 중앙집중적 조직형, 단일의 분파적 기획 등을 거부하는데 있다. 이들은 5월혁명을 통해 사회적으로 다양한 소수자들(학생/여성/환경/동성애/인종/문화운동)의 주체적 '욕망'에 직접 노출됨으로써, 자본/사회주의 공히 개인과 소수를 억압하는 기제였다고 주장한다. 이제까지 양체제의 초월적 권력은 모두 개인/사회, 사적/공적, 가족/국가, 여자/남자, 하위/상위 등 단순화된 이원론의 위계적인 대립구도를 통해 대중의 순응을 강요했다고 본다. 그래서 그들은 복수적인 것에 대비된 '단수적'(singular)이고, 몰적인(molar) 것에 대비되는 '분자적'(molecular) 욕망이 자유롭게 발현되는 커뮤니케이션 투쟁을 선택한다. 단수적이고 분자적인 투쟁이란 주체의 이질적이고 고유한 특질을 상실하지 않는 자율적 과정이다. 이들은 새로운 자율적 주체들의 목소리를 담은 정치적 실험 속에서 위계적이고 초월적인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감지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통일되고 고정된 이미지로 정형화할 수 없는 것들의 분출을 통해 진정한 저항의 가능성을 찾아보려 한다. 문제는 각각의 분출된 욕망들을 어떻게 연합하고 조직화할 것이냐이다. 이 말은 곧 소수적인 것을 분자적 그물망으로 어떻게 정치 세력화할 것인가의 질문이다. 물론 이들에게 전제는 전통적으로 실천적 운동의 폐해였던 동질성이나 위계적/양가적 가치에 의해 억압되는 조직적 조건은 철저히 배제한다는 것이다. 가따리와 네그리의 경우에는 과거의 노동자 중심주의적 담론을 버리면서, 새로운 연합의 가능성을 노동계급, 제 3의 생산부문들, 모든 유형의 주변화된 소수집단들의 연합을 통한 운동과 저항의 구성적 과정으로 언급하고 있다. 즉 "진정한 문제는 동일화의 체계를 창안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주체적 세력들을 차이의 그물망으로 연결하는 과정 속에서, 그리고 동시에 자본주의적 권력의 여러 블록들을 파괴하는 과정 속에서 존재하는 모든 사회적 세력들의 다가적 참여의 체계를 창안하는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각각의 운동체들이 이행의 동일한 프로젝트를―사회주의 이건 공산주의이건―향해 가기보다는, "반체제적 담론 배열들의 초한적(超限的) 연결망"을 통한 "직접적 투쟁의 경험만이 그것들의 윤곽을 결정할 것"이라 본다. 결국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대안적인 사회의 청사진을 구상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과정적이고 복수적이고 풍부한 해방적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발현하고, 이를 분자적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생산적 협력'의 운동이다. 한국 사회에도 이미 통신 동호회, 마니아들, 동성애자 모임, 언더그라운드밴드 등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소수의 문화 주체들이 권력의 경계와 여백을 따라 '자유의 새로운 공간'들을 만들어나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전에는 억압되어 있었던 각 개인들의 창조적 에너지의 잠재력이 단수적이고 자율적인 방식으로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과연 새로운 정치적 대안 세력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일단 보류하기로 하자.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 책의 필자들이 지적하듯, "집단적 잠재력은 단수적인 것이 자유롭게 될 때에만 비로소 실현될 수" 있으며, 자유의 새로운 형식은 이 속에서 마련된다는데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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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대학원신문]: 엔트로피의 전자적 파장을 높여라!

엔트로피의 전자적 파장을 높여라! 이화여대 대학원신문 (98년 12월 게재) 이광석 네트의 디지털 정보가 여러 개의 조각들(packets)로 쪼개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주소지를 찾아다니다 결국 하나의 정보로 합쳐지듯, 광통신에 떠다니는 각양각색의 정치적 주장과 논쟁의 경합(flame wars)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전자게시판에서, 뉴스그룹에서, 채팅공간에서 이합집산하며 꾸물꾸물 전자조직을 구성한다. 물리적/물질적 공간이 주던 지역적 한계는, 전자공간의 네트워크적 속성으로 말미암아 그 틈새가 메워지고, 그 외연을 비트로 확장시킨다. 전자네트워크로 인해 전세계의 내노라하는 비정부기구들(NGOs)의 활동 폭이 더욱 커져가고 있다. 범지구적으로 집단과 집단, 조직과 조직의 연대와 연합의 활로가 새롭게 펼쳐지고 있다. 이제 권력과 자본이 새롭게 직면한 문제는 이같은 네트워크형 조직들을 재흡수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NGOs의 힘을 확장하는 비트적 공간이란 바로 이 굳건한 현실에서의(on the ground) 투쟁을 대체하기 보다는, 현실의 투쟁을 가시화하고 이를 엮어내는 전자적 격자인 셈이다. 대 항 집단들이 시도하는 아래로부터의 횡단적 연결이, 그 수위에서 ''가상코뮨''(virtual commune)이나 붉은 기가 휘날리는 ''제 5인터내셔널''(fifth international)의 이상적 전망으로부터, 마을공동체의 신화에 사로잡힌 비트적 연장물, 즉 가상공동체라는 조금은 철부지한 영토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나, 이와 같은 미래적 전망은 실천 주체들이 가늠하는 구체적 현실과의 목적의식적 결합 속에서만 가능하다. 어쨌거나 네트 문화정치의 미래 기획에 있어서 이 모든 동적인 실천의 움직임들이 현재 정보자본주의를 배회하는 유령임에는 분명하다. 네트워크 공간에 대한 디지털적 해석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는 수많은 그룹들이 번창하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극소전자혁명에 의한 ''비트뱅''(Bit-bang)의 파고가 좀 더 특이하게 네트행 동주의에 영향력을 발휘한 사례로는 맨 먼저 사빠띠스따의 정보 게릴라전을 꼽을 수 있다.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EZLN)은 지구촌의 이름없는 남부 멕시코 치아빠스(Chiapas) 지역의 라깡도나(Lacandona) 정글에서 나와, 최근 20여년간 지속된 멕시코 정부와 해외 다국적자본의 억압과 침탈에 분노하여 봉기를 일으켰다. 이들의 유명세에는 매체에 비친 부사령관 마르꼬스의 인텔리적 카르스마도 한몫 했으나, 기실 그 근저에는 기술적으로 글로벌 투쟁의 촉매제가 되었던 커뮤니케이션 전략과 수많은 정보 네트워크의 확장 능력이 존재했다. 그들은 지배력에 대한 국지적인 물리적 저항과 실천 활동과 함께, 전세계적인 전자 게릴라전을 펼칠 것을 제안한다. 그들은 지배의 약호를 교란하는 각 집단들의 해방적 디지털 약호들이 미시적 정치 투쟁의 전략으로 기능할 수 있고, 이 흩어진 해방의 약호들을 엮을 수 있는 힘은 네트를 통해 거둘 수 있음을 우리 모두에게 인지시켰다. 즉 그들은 조직화의 주요 매체로써 인터넷이 갖는 속성을 충분히 활용하여, 현실의 게릴라전과 말과 이미지의 정보전을 동시에 병행하는 방법을 시사했던 것이다. 이것이 한 이름 모르는 치아빠스 지역을 보편적인 실천 사례로써 짚어보게 만드는 근거이다. 두 번째 사례로써 버클리 대학의 대학원생들이 정치토론을 통해 만들어낸 배드 서브젝츠(Bad Subjects)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지식인들이 전자공간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적절한 실천 지침과, 21세기 지식인 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BS는 새로운 사이버영토가 사회적 불평등과 불의를 제거하기 보다 실천의 엘리트 영역으로 남아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들은 온라인 실천을 통해 유용한 정치 조직체 건설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현재 또 다른 좌파적 냉소주의 혹은 주변화에 다름 아니라고 얘기한다. 현재 사이버공간이 비록 이윤의 장으로 활용된다 하더라도, 현재 진행형의 새로운 인간관계의 네트워크이기에, 반자본주의적 경제 공간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사이버공간에서의 정치적 잠재력의 추동이 최종 목표가 아니며, 그 공간을 현실세계의 사회변화를 위한 추진력으로서 활용하는 것을 그 궁극에 둔다. 이들은 현재 인터넷 웹상의 잡지, 즉 웹진을 40호까지 발행하면서, 신좌파적 기획, 다양한 의사소통로, 체계적인 웹진 발행 등등으로 인해, 그리고 사이버공간에서 대중적이고 진보적인 입지를 확보한 그룹이라는 점에서, 어느 웹진 보다도 중요한 관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래 운동의 새로운 징후로 해커 전위대와 전자프런티어재단(EFF)을 들고자 한다. 이들은 20세기의 막바지에 등장한 새로운 실천 부류들이다. 또한 어느 개인 혹은 단체들보다도 훨씬 기술적 이용에 능숙한 전문가 부류들이다. 10대를 중심으로 한 해커들은 그들 자신의 윤리, 즉 컴퓨터 접근권, 정보의 공개성, 권력의 분권화 등 그 진보적 측면을 지닌다. 문제는 이같은 해커들의 아나키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본성을 그들의 개별성과 계급적 특권에서 분리하여 사회적 저항으로 접합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한편 권력에 의한 해커의 억압적 조건을 간파한 일부 지식인들이 전자 시민단체를 결성하게된 계기는, 1990년 미국에서의 일명 ''선데블 작전''(Operation Sun Devil)이라 불리는 디지털 지하세계에 대한 대검거 작전이었다. 이들은 해커들에 대한 정부의 과잉 검거, 수색과 압수가 부당하게 인권과 표현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바로 EFF는 이같은 해커사냥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시민자유론자들의 단체이다. 예컨대 검거 중 보여주었던, 컴퓨터장비와 데이터 압류, 출판 등의 표현물에 대한 제한, 부당한 폭력 등에 맞서, 그들은 기금 모금, 법적 행동과 후원 등으로 정세를 반전시켰다. 이같은 정부의 독단적, 억압적, 비합의적 월권에 반응하여, 네티즌들을 보호하는데 사법적, 제도적 투쟁을 거쳤던 사람들이 모였던 것이다. 특히 그 구성원들의 명망성으로 이름을 날리는 EFF는 암호화, 표현의 자유 등의 주장을 통해 전자 시민권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우리 실정에서 보면 최근 도청, 감시카메라, 전자주민카드 등 시민의 사생활과 관련된 문제들을 쟁점화하는데 요구되어지는 전문 시민단체들이 아쉽다고 볼 때, 이들의 사안별 공론화와 일정 부분 정책에 현실화시키는 입안 능력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눈여겨볼 점이 많다.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이같은 실험들의 밑바닥 정서에는 단수적 욕망이 자유롭게 발현되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투쟁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 실험은 다양한 공간에서 소수적 주체들의 목소리를 담아 권력의 정보에 충돌시키는 커뮤니케이션 행위인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지배적인 스펙터클에 대한 ''교란'', ''단절'', ''중단'', ''전복''이다. 이는 공학적 저항이자, 소위 정보이론에서 얘기하는 엔트로피(entropy)의 요소들이다. 섀논-위버(Shannon-Weaver) 송수신 모델에 기초해보면,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엔트로피가 크면 클수록 전적으로 혼동된 무작위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증대한다. 송/수신 모델에서 송신자에서 수신자로 이르는 정보 전달과정이 위계적 질서 혹은 초코드화(overcoding) 과정이라면, 이를 흩뜨리는 파장이 엔트로피이다. 그렇다면 엔트로피는 정보/권력에 대한 다양한 도전적 소음/힘이다. 소음/힘이 증가할수록 정보/권력은 증가하나, 그것이 어느 임계 수준을 넘어버리면 정보/권력은 ''교란''에서 ''단절''과 ''중단''을 거쳐 정보/권력 모델 자체가 ''전복''되어 버린다. 소음/힘은 분자적 활동의 집합화이자 반(反)정보이며, 정보/권력은 대중매체 등에서 나오는 초코드들이다. 권력의 초코드화를 다양한 소음/힘들의 연합으로 전복하는 것이 이들 대안 기획의 핵심이다. 이제 90년대 새로운 엔트로피의 생성 가능성은 인터넷이 마련하고 있다. 인터넷은 다양한 소음/힘들의 흐름을 거대한 저항의 파장으로 전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이다. 그러나 인터넷에 열광하기 보다는 현실에 정초한 새로운 네트 저항 실험들의 발굴 작업과 동시에 인터넷 정치의 가능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21세기 정치 지형속에서 엔트로피의 집단적 표현 형식에 대한 새로운 징후를 전자 저항 실험들 속에서 읽어내어 이론화하는 것과 이들의 집합적 실천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에 모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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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문화정치: 2장]: 최초의 정보게릴라 운동: 사빠띠스따(Zapatista)의 네트전

[사이버문화정치] (1998) 제 2 장 최초의 정보게릴라 운동: 사빠띠스따(Zapatista)의 네트전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EZLN)의 정치력은, 비트에서 비트로 연결되는 조용한 힘의 축적에 의해 세워졌다." ― 부사령관 마르꼬스(Marcos) 1) 사빠띠스따의 역사와 목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실행 개시일인 1994년 1월 1일,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은 남부 멕시코 치아빠스(Chiapas) 지역의 라깡도나(Lacandona) 정글을 나와 인근의 주요 도시들을 장악했다. 부사령관인 마르꼬스를 포함한 소수 인텔리 지도자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부가 원주민 농민들로 구성된 이들의 작은 봉기는, 멕시코 전역은 물론, 전세계로 그들의 활동을 알리기 위한 서곡에 불과했다. 멕시코는 1980년대초에 시작된 재정 위기 이래로, 보호무역주의에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펼쳐왔다. 하지만 국민경제를 개방하고, 수출의존적 성장을 추진하면서, 멕시코 정부에 의한 노동자, 농민 압박이 점차 극도에 이르게 된다. 특히 신자유주의 개혁은 제도혁명당(PRI)과 함께하는 살리나스(Salinas) 정권의 재임기간(1988-94)에 정점에 이른다. 농업 분야에서, 살리나스의 NAFTA 대비 프로그램은 멕시코에 해외 투자가들을 끌어들이고, 미국과 캐나다와의 보다 확고한 경제통합을 가속하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그로 인해 멕시코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글로벌 자본의 침투는 과거 수십년간 멕시코 소농민들의 농지 박탈, 궁핍과 함께, 사회적인 양극화와 환경파괴를 자행했고, 결국 이 응축된 모순의 폭발이 1994년 벽두에 발생하게 된 것이다. 달리 보면, '사빠띠스따'의 근원이 1911년 멕시코 혁명의 원주민 영웅, 에밀리아노 사빠따(E. Zapata)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은, 원주민·농민운동의 역사와 함께, 오랜 기간에 걸친 그들의 억압적 상황을 반영한다. 결국 사빠띠스따 봉기의 연원은 20세기초의 농민 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가장 가깝게는 최근 20여년간 멕시코 정부와 해외 자본의 억압과 침탈에 대응한 치아빠스의 신(neo)사빠띠스따 혁명으로 요약될 수 있다. 사빠띠스따의 대안과 목표는 과거 레닌주의적 기획을 철저히 거부한다. 오히려 그들 자신의 계급적 다양성에 기반한 풀뿌리 대중조직의 기초 위에, 그들 자신의 민주주의적 자치공간을 원한다. 그 속에서 권력으로부터 배제되고, 억압박는 광범위한 대중의 결속, 그리고 이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과 상호 부조의 통일이 중요하다. 유럽에서 최근 나타나는 민족·인종적 분리주의와 대별해 볼 때, 그들의 차이점은 자본과의 고리를 단절하고, 공동의 연대를 달성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들은 저개발국들의 자본주의적 개발 논리를 벗어나, 그들만의 자율적이고 상호 협력적인 자치권을 이룩하고자 한다. 현 멕시코정권에 의해 사빠띠스따적 의의를 축소하려는 시도에 대한 저항과 함께, 전세계적에밀리아노 사빠따 '야만적 자본주의'에 대항한 투쟁은 자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같은 국제적 반응의 원인은, 대체로 자국내 현대화 프로그램이 농민과 원주민을 배제하는 배타성에 대한,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미국중심의 신세계 질서의 규정성에 대한 반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게릴라운동의 지역적 특수성, 즉 원주민의 정체성 회복과 농민의 토지 획득을 넘어서서, 그리고 제국주의와 그 이론적 표현인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지배형식에 맞서,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무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들의 '간대륙주의'(intercontinentalism)는 "희망을 근거로 한 인간의 존엄한 삶"을 지키기 위한 것이자, 스스로를 다른 지역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시도에 반대하는 것이다. 한편 사빠띠스따 봉기는 최초의 정보 게릴라운동이라는 점이다. 그들에게 기술적으로 글로벌 투쟁의 촉매 역할은 커뮤니케이션 전략에서 시작했다. 그들에 대한 지지를 조직화하는 주요 매체로써 인터넷이 갖는 속성을 충분히 활용하여, 현실의 게릴라전과 말과 이미지의 정보전을 동시에 실행했다. 이것이 한 지구촌의 이름 모르는 치아빠스지역을 보편적인 실천 사례로써 짚어보게 만드는 근거이다. 2) 게릴라 실천운동의 특수성을 보편성으로 (1) 사빠띠스따의 커뮤니케이션 전략 "인터넷과 사이버공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체로 광범위한 수의 자율적이고 상호 연결된 개인들에 의해 창조되는, 경합의 지형으로 간주되어야만 한다. 오늘날 그 경합은 다면적이며, 의심할 바 없이, 사이버공간을 에워싸서 그것으로부터 이윤을 수취하려고 하는 기업의 노력과 그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이버공간을 정교화하고, 또 그것을 이용하려는 수백만의 사람들의 독립적인 노력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사빠띠스따는 지역적 기초를 글로벌 운동과 결합시키는 '전자미디어 이벤트' 전략을 취한다. 역으로 볼 때, 이미 그들은 현대 지형에서 지역적 투쟁의 고립성이 패배의 운명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깊이 깨닫고 있었다. 멕시코 사회를 비롯한 전세계와 소통할 수 있고, 대중과 지식인의 상상력을 사로잡을 수 있는 능력으로 인해, 그들은 일개 지역의 소규모 투쟁을 전세계 정치의 전면으로 나서게 만들었다. 그 이면에는 네트 전략이 존재한다. 미국내 국가안보의 두뇌집단들이 모여있는 랜드연구소의 연구원, 론펠트(D. Rondfeldt)가 다른 맥락에서 그 현상을 지적했듯이, 사회적 '네트전'(netwar)은 21세기의 새로운 초국적 정보전쟁의 원형이며, 사빠띠스따는 그 실천의 전범이다. 마르꼬스전세계적 연대를 도모하는데, 네트는 최상의 도구였다. 사빠띠스따의 미디어 '이벤트'는 네트 이외에도 다양한 차원에서 그들만의 전술 감각이 동원되었다. 우선 사빠띠스따의 부사령관이자 대변인, 마르꼬스의 역할과 이미지. 자의건 타의건 마르꼬스가 뿜어내는 미쟝센 효과들(예컨대 출신배경, 스키 마스크, 파이프, 인터뷰의 셋팅 등)을 통한 미디어 '이벤트'의 활용은, 그를 포함한 사빠띠스따 그룹의 혁명적 이미지를 대중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전세계의 모든 사람이 똑같이 마스크를 걸침으로써 사빠띠스따가 될 수 있다. 둘째, '이벤트'적 차원과 함께 동원되는 것으로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구사를 들 수 있다. 물론 정글에 있는 사빠띠스따의 성원 모두가 그 매체들을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여유를 지니지 못하며, 더불어 그들의 메시지가 정부의 군사적 포위망을 뚫고 손으로 직접 전해져야만 하는 것은 분명하나, 이는 멕시코와 해외 비정부기구들(NGOs)의 연대 운동을 통해 전세계로 전달되었다. 초보적 형태의 팩스, 전화에서, 투쟁현장 비디오의 신속한 제작과 유통, 오디오 테잎과 씨디롬에 담긴 인터뷰와 음악, (비)합법 라디오와 커뮤니티 텔레비전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술적 기제들이 동원된다. 특별히 네트의 매체적 기제로는 기간의 논문을 모은 전자책, 투쟁자료의 영구 보존을 위한 FTP나 고퍼사이트의 구축, 웹페이지를 통한 홍보, 비공식적 토론과 논쟁을 위한 포럼 등이 만들어졌다. 셋째, 지역적·국제적 네트연대의 형성. 1990년대 사빠띠스따의 변화는 치아빠스와 멕시코 지역을 엮는 대안적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인 라 네따(La Neta)의 구축과 IGC와 같은 전세계 NGOs와의 연결을 꼽을 수 있다. NGOs는 사빠띠스따의 외곽에서 그 공동체의 말들과 메시지가 사이버공간의 외진 구석까지 확산되도록,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멕시코 정부의 무력진압을 무위화하도록 이끌었다. 마지막으로, 메시지의 신속성과 그 확산. 기존 대중매체가 가지지 못한 네트에서의 신속한 정보유통은, 전세계적 공감대와 연대를 위한 조건이 되었다. 이어 이들 정보에 관심을 갖는 단체들이 사빠띠스따의 정보를 수집, 정렬, 편집하여 알렸고, 추가정보까지 덧붙여 재확산시켰다. 이와 같이 글로벌한 수위에서 진행된 무수한 정보원의 끝없는 가지치기가 종국에는 미세한 글로벌 직조 구조를 만들어냈다. (2) 사이버전(cyberwar)의 궁극적 의미 1996년에 이어 97년 여름, 사빠띠스따는 신자유주의가 강요하는 지구화에 반대하고, 인간의 존엄성, 희망, 삶의 기치아래 소집한 1, 2차 대륙간 회의를 개최함으로써, 세계 각지의 풀뿌리 활동가들이 참석하는 결집력을 과시했다. 이 새로운 인터내셔널은 실재하는 차이들을 벗어나, 모든 개인들, 집단들을 아우르며, 세계 전역의 저항과 반역으로부터 생겨났다. '복수의 울림들과 목소리들의 네트워크', '어조와 수준이 다양한 여러 목소리들의 네트워크',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대항한 저항과 희망의 네트워크. 이들 네트워크의 현실적 차원은 두 가지 핵심적 네트워크를 통해 구성되었다. 하나는 '개개의 투쟁들과 저항들의 집합적 네트워크', 다른 하나는 '전자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 전자는 지배적 권력자가 없는 다양한 저항의 연결체이고, 후자는 유연성과 가변성을 지닌 현실적인 전자 직조구조이다. 응집력있고 글로벌한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적 현실에 대응할 수 있는 조건은 네트워크적 실천을 통해 마련된다. '말들의 전쟁', 혹은 사이버전은 "총알보다 더욱 강할 수 있다". 정보와 상호작용을 통해 개개의 투쟁들과 저항이 엮일 수 있는 가능성이 배가된다. 물론 사빠띠스따 내부에서 사용하는 모뎀, 팩스, 이메일이라는 외양이 그들 투쟁의 의미일 수는 없다.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통제권이 생산수단의 통제권을 대체할 수는 없다. 즉, "네트는 민주주의, 혁명 그리고 자기결정에 대한 새로운 정치적 논의들을 위한 새로운 공간을 제공해 주지만, 존재하는 차이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해 주지는 못한다. 네트는 다만 그러한 해결책들을 향한 모색을 가속화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네트는 여러 실천 도구들 중 단지 한 측면만을 보여준다. 가장 중요하게는 현실속에서 농민들의 사투를 건 게릴라전이 그 중심에 있을 수밖에 없고, 네트를 사용하여 말하는 주체들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같은 네트의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고, 네트의 가능성을 열려고만 한다면, 그 안에서 자율적인 실천들과 가치들의 반항은 반복적으로 통제 메커니즘을 벗어날 수 있다. 특히 네트의 변형적 이용이 객관적으로 개방성, 자율성, 즉시성, 소통성 등의 특성을 지닌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사빠띠스따의 기치, 즉 통치와 권력에 대한 전면적 거부, 자율과 자치에 입각한 글로벌 연대 등과 만날 때에만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즉 현실 공간에서의 실천 내용이 네트의 유연적 속성과 조우할 때만이, 식민화된 자본주의 공간으로부터의 완전한 탈주의 가능성이 열린다. 1. EZLN은 본래 하나의 정치·군사적 게릴라 집단으로 출발했지만, 원주민 투쟁과의 결합 과정에서 원주민 봉기 조직의 군사부대로 스스로를 전화시켰다.(이원영, [사빠띠스따의 '간대륙주의'와 '민족 자율' 문제], {사빠띠스따}, 갈무리, 1998, 380쪽.) 2. 신자유주의 정책과 꼭 어울리게, 살리나스대통령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교육받은 경제학자이다. 70년대 이후 저개발국가내 통치엘리트들의 재생산이 미국의 고등교육기관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상기하라. 3. NAFTA에 따른 멕시코의 신자유주의적 재구조화 과정에 대해서는, Barkin, D., "Mexico's Integration into the North American Economy", in Callari, A., Cullenberg, S., & Biewender, C. (eds.), Marxism in the Postmodern Age: Confronting the New World Order, NY: Guilford Press, 1995, pp.472-479 참조. 4. 신자유주의 개혁프로그램은, NAFTA를 통한 국제 경제와의 통합과 더불어, 구체적으로 국영기업의 사유화, 수입관세 삭감, 외국인의 기업소유권 제한 철폐, 농민 보조금 삭감, 농가 신용프로그램 수정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특히 치아빠스 농민과 원주민들이 반발한 직접적 원인으로는, 우선 1992년에 이루어진 농지개혁법(27항의 수정)을 들 수 있다. 정부는 과거 1917년 농민과 원주민들의 혁명을 통해 얻은, 토지의 코뮨적 공동소유권(ejidos)을 농지의 효율성이라는 명목하에 사유화하여, 이를 쉽게 처분할 수 있게 조항을 바꿨다. 이로 인해 초래된 토지가격의 하락, 거대 지주와 자본에 의한 토지 취득 등은 농민과 원주민들을 토지로부터 박탈당하는 현실을 만들어냈다.(Roman, R., & Arregui, V., E., "Zapatismo and the Workers Movement in Mexico at the End of the century", Monthly Review, Vol.49, No.3, July-August 1997, pp.99, 115 참조.) 둘째로는 멕시코의 주농산물인 옥수수와 커피 분야의 타격을 들 수 있다. 북미와의 자유무역 여파로, 특히 치아빠스 지역의 농산물인 옥수수와 커피는 미국의 거대 자본과 경쟁이 될 수 없었으며, 게다가 정부의 농민보조금 삭감으로 인해 이중고를 당해야만 했다.(Otero, G., Scott, S., & Gilbreth, C., "New Technologies, Neoliberalism, and Social Polarization in Mexico's Agriculture", in Davis, J., Hirschl, T., & Stack, M., (eds.), Cutting Edge: Technology, Information, Capitalism and Social Revolution, London: Verso, 1997, pp.264-5 참조.) 5. Otero, Scott, & Gilbreth, ibid., p.254. 6. 이원영, 앞의 논문, 403-438 참조. 7. Cleaver, H., "The Zapatistas and the Electronic Fabric of Struggle", /이원영·서창현역, [사빠띠스따들과 투쟁의 전자적 직조 구조], {사빠띠스따-신자유주의, 치아빠스 봉기, 그리고 사이버스페이스}, 갈무리, 1998, 192쪽 수정하여 인용. 8. Arquilla, J. & Ronfeldt, D., "Cyberwar is Coming!", 1993 참조. 9. 멕시코 정부의 정보에 따르면, 그는 멕시코와 파리에서 사회학과 커뮤니케이션을 수학한 후, 멕시코의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가르쳤고, 1980년대초에 치아빠스 지역으로 들어간 것으로 추정한다.(Castells, M., The Power of Identity, Vol. II., Oxford: Blackwell, 1997, p.76.) 그래서 까스텔은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마르꼬스가 군사적 전략가로서의 의미를 보여주는 징후가 없는 반면, 그의 엘리트적 능력에서 나오는 전자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활용에 대한 탁월함에 그 비중을 두고 있다.(ibid., p.79.) 10. Castells, M., ibid., pp.79-80 참조. 국내에서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관련하여 학생운동권에서 사용했던 시위 도구들의 상징성과 비슷하게, 치아빠스 농민들의 마스크는 멕시코 원주민의 문화 의식(ritual)의 재발현임과 동시에, 그룹의 각 주체들이 공유하는 평등성, 저항 정신을 표현한다.(p.80.) 11. Cleaver, H., 앞의 책, 216-9쪽 참조. 전통적 매체에서 전자매체로, 혹은 전자매체에서 전통적 매체로 가는 다양한 사빠띠스따의 매체전술은 여론 형성의 새로운 형식을 보여준다. 12. 라 네따는 치아빠스 지역의 NGOs와 다른 멕시코 지역의 수많은 인권 조직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이다. 13. 이원영, 앞의 논문, 403, 406-7쪽.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사빠띠스따의 실천적 대의인 네트워크 개념을 보드리야르의 저항매체적 실천 개념에다 일치시킬 수 있는 지점이 발생한다. 보드리야르의 '응답없는 발언'을 복구하는, 네트 저항의 현실적 근거의 사례! 14. 이원영, 위의 논문, 407-8쪽. 15. Castells, M., op. cit., p.81. 16. Cleaver, H., 앞의 논문, 209쪽. 한편 북미 지식인들의 사빠띠스따 평가와 관련하여, 네트의 기술적 속성을 극찬하거나, 심지어 '포스트모던 정치운동'으로 보려는데 대한 비판적 문제 지적은, Nugent, D., "Northern intellectuals and the EZLN", in Wood, M., E. & Foster, B., J. (eds.), In Defense of History: Marxism and the Postmodern Agenda, NY: Monthly Review Press, 1997, pp.164-173 참고할 것. 여기서 필자는 지식인들이 '담론의 정치'를 주장하기 이전에, EZLN을 제대로 이해하고, 과장없이 독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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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문화정치-6장] 네트의 시민운동가들: 전자프런티어재단(EFF)과 그 구성원

*제 1996년 책 <사이버 문화정치(문화과학)>의 디지털본을 유실하고, 다른 곳에서 이 문서만을 발견했습니다. 참고바람. 6장. 네트의 시민운동가들: 전자프런티어재단(EFF)과 그 구성원 1. 전자 결속의 희망 근대사회 이래로 시민사회의 영역은 공론장(public sphere)으로서 보다는, 어지 중간한 선에서 국가 권력과 대중을 화해시키거나 조율시키는 역할을 담당해왔다. 국가 권력의 입장에서 보자면, 시민운동은 혁명이란 완벽한 체제 이탈을 막는 도구로 양성화시키는 측면이 강했고, 민중적 시각 에서 보자면 의회적, 합법적 틀거리 속에 그들의 주장이 이입될 수 있다는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시민운동은 여타 실천 지형에서의 역량에서 보다 그들 국가의 성격에 크게 좌우되며, 그 합 의 과정이야 어떻든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가치가 그나마 유지되는 국가일수록 시민운동 영역과 쉽게 결합되는 측면이 강했다. 요컨대, 국가권력의 여하에 따라 시민권은 수축/팽창하거나 권력 의 경계 외곽으로 밀린다. 그들에게는 주로 정책적, 입법적, 행정적 현안에서의 여론화를 통한 법 안 수정 작업이 주목표가 되며, 운동의 전술은 대중매체 활용, 거리 시위, 팜플렛 배포, 피켓 동 원, 연구실 실험 등 다양하게 펼쳐진다. 그들은 물리적 폭력성을 응축한 도구들의 과격한 사용을 철저히 배격한다. 근대적 폭력 수단을 무장해제 시킴으로써, 시민운동은 체제 혹은 제도권에 대 한 영향력을, 그리고 보다 원활한 대중적 입지를 획득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한편 그들은 특 수한 지반성에 기초한 집단적인 주장을 통해 대중성을 확보한다. 이들은 이해에 기반하여 혹은 인구통계학적 변인에 따라 정체성을 구획 짓고, 자본/노동 대당관계에서의 근본적 모순만큼이나 스스로를 동등하게 취급하려 애쓰며, 자신의 가치를 옹호하고 변호한다. 이제는 이들 집단이 가 진 태생성과 함께 사안별, 이슈별 공동화가 오히려 대중에게 적극적인 소속 의식을 심어준다. 역 사적 맥락 하에서 보자면, 뭉뚱그려 좌파라 호명되던 일단의 그룹들은 시민운동권과의 연동이 가 장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계층이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이 급진적 인자들은 종종 명분상의 이유로 제도권과 자연스레 공동 전선을 형성하거나 편입되는 경향이 있었다. 일부는 정치권력과 노선상의 부조응으로 인해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의 길을 찾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시민운동권 내 부에서 자유주의적 좌파라고 불리길 바라는 엘리트 상층부가 개혁적 정당과 조우하는 경우는 다 반사이다. 정권의 측면에서 보아도 시민운동 진영을 합의와 동의의 기제로 끌어들이는 일은 중요 하며, 여론정치를 이끄는데 중요한 동력이 된다. 어쨌든 비합법적 수단을 통한 총체적인 전망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실천 방식의 변화를 꾀하는 시민운동권의 움직임을 읽어낼 필요는 있다. 과거와 달리 시민 계급·계층간 이동성에 의한 집단화는 더욱 극대화되는 추세이다. 네트의 디지털 정보가 패킷(packet)으로 쪼개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주소지를 찾아다니다 결국 하나의 정보로 합쳐지듯, 광통신에 떠다니는 각양각색의 정치적 주장과 논쟁의 경합('flame wars')은 살 아있는 유기체처럼 전자게시판에서, 뉴스그룹에서, 채팅공간에서 이합집산하며 꾸물꾸물 전자조 직을 구성한다. 물리적/물질적 공간이 주던 지역적 한계가, 전자공간의 네트워크적 속성으로 말 미암아 그 틈새를 메우고, 그 외연을 비트로 확장시킨다. 전자네트워크로 인해 전세계의 내노라 하는 NGO의 활동 폭이 더욱 커져가고 있다. 범지구적으로 집단과 집단, 조직과 조직의 연대와 연합의 활로가 새롭게 펼쳐지고 있다. 이제 권력과 자본이 새롭게 직면한 문제는 이같은 네트워 크형 조직들을 재흡수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나는 당연하게도 NGO 의 힘을 확장하는 비트적 공간이 바로 이 굳건한 현실에서의(on the ground) 투쟁을 대체하기 보다는, 현실의 투쟁을 가시화하고 이를 엮어낸다는데서 그 공간적 실천의 출발점을 두고자 한 다. 대항 집단들이 시도하는 아래로부터의 횡단적 연결이, 그 수위에서 '가상코뮨'(virtual commune)이나 '제 5 인터내셔널'(fifth international)의 붉은 기가 휘날리는 이상적 전망으로부터, 마을공동체의 신화에 사로잡힌 비트적 연장물, 즉 가상공동체라는 조금은 철부지한 영토관에 이 르기까지 다양하나, 이와 같은 미래적 전망은 실천 주체들이 가늠하는 구체적 현실과의 목적의식 적 결합 속에서만 가능하다. 어쨌거나 네트 문화정치의 미래 기획에 있어서 이 모든 동적인 움 직임들이 현재 정보"자본주의를 배회하는 유령"임에는 분명하다. 80년대 극소전자혁명에 의한 '비트뱅'(Bit-bang)의 파고가 좀 더 특이하게 네트행동주의 (net.activism)에 영향력을 발휘한 사례는, 자유주의적 시각의 변종들이 우글대는 미국에서 시작 되었다. 네트를 아직 개척되지 않은 미 서부에 비유하여, 이 공간에 대한 디지털적 해석과 새로 운 가치를 창출하려는 수많은 그룹들이 번창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특징적인 면모를 지닌 집단 은 단연 '전자프런티어재단'(EFF: 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이다. 최근 네트의 정치, 사회, 문화적 가치 논쟁과 관련하여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으나, 보다 이들을 차별화하는 것들은 크게 정치적, 현실적 영향력과 그 구성원들의 엘리트적 명망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국내에서도 EFF의 활동에 대해서 간헐적인 언급이 있었으나, 이 단체의 출생 배경과 현실 활동, 그리고 그 구성원들의 면모에 대한 논의를 좀 더 장황하게 풀어갈 필요가 있다. 2. 사이버엘리트들에 의한 EFF 결성 60년대말 해커들은 순수한 정보욕에서 출발하여, 70년대 정보공유 정신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80년대 이후 대다수가 디지털자본으로의 병합이 이루어졌고, 그 주변에 디지털 지하세계의 탕아 들이 잠복하고 있는 형세였다. 이 문제아들의 정치적 성향에서 비롯된 사회적 해킹, 혹은 프리킹 으로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사례들이 급증함으로써, 특히 미국방성을 비롯한 정부기관, AT&T 등의 전화 회사, 물리학이나 핵개발 관련 연구소 등이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이런 상황 에서 해커에 대한 대대적 진압은 필수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1990년 일명 '선데블 작 전'(Operation Sun Devil)이라 불리는 디지털 지하세계에 대한 대검거 작전이 수행되었다. 일반 적으로 네티즌에 대한 억압적 상황을 상시 검열과 불시 진압으로 가름해 본다면, 해커단속은 전 국적인 규모로써 후자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해커들은 이 사건을 통해 철없는 문제아에서, 현대문 명에 도전하는 사회의 불순세력으로 급상한다. 시크릿 서비스의 잇따른 해커들의 검거, 수색과 압수가 이루어졌고, 개중에는 부당하게 혐의를 받고 재판에 기소되는 해커들도 존재했다. 스털링 은 선데블작전의 공세로 자국내 상황이 '해커 히스테리'적 분위기였으며, 궁극적으로 미사법부와 디지털자본이 사이버공간에 내린 1차 경고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S279) 경고는 좀 더 강한 경 고와 폭력이 장차 동원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경고는 매카시의 마녀사냥만큼이나 정치적인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바로 EFF는 이같은 해커사냥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시민자유론자들의 단체이다. 예컨대 시크 릿 서비스가 검거 중 보여주었던, 컴퓨터장비와 데이터 압류, 출판 등의 표현물에 대한 제한, 부 당한 폭력 등에 맞서, 그들은 기금 모금, 법적 행동과 후원 등으로 정세를 반전시켰다. 이같은 정부의 독단적, 억압적, 비합의적 월권에 반응하여, 네티즌들을 보호하는데 사법적, 제도적 투쟁 을 거쳤던 사람들이 모여 만든 것이 EFF의 출생 배경이다. 그래서 EFF는 일명 '해커 변호재 단'(hacker defense fund)이라는 별칭도 얻게 된다. EFF의 초대 설립 멤버는 제리 버만(J. Berman), 마이크 고드윈(M. Godwin), 존 페리 바를로우(J. P. Barlow), 미첼 케이퍼(M. Kapor), 스튜워트 브랜드(S. Brand), 에스더 다이슨(E. Dyson), 존 길모어(J. Gilmore), 워즈 니악 등으로 구성되었다. 비영리, 비정파적 조직으로서 EFF는 기본적인 시민권 보호를 최우선으 로 삼고, 보다 나은 방식으로 사이버공간을 규제할 수 있는 법들을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부당하게 기소되는 해커를 변호하는 법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EFF는 1992년 이전에 미국시민 자유연맹(ACLU: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의 행동가였던 버만이 맡고 있는 워싱턴 사무 실에 추가로, 현재 법률고문인 고드윈을 고용하여 새로운 지부를 세움으로써 풀뿌리 행동주의자 들의 강력한 조직으로 진화한다. 어느 정도 EFF는 두 가지 행동주의적 접근을 수용하려고 노력 했다. 그 단체는 새로 세워진 캠브리지 지국 중심의 '풀뿌리 모델'(grassroots model)과 애초 워 싱턴 본부에서의 '로비 모델'(lobby model)이라는 두 가지 모두를 채택함으로써 정치 행동의 효 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1993년에 EFF는 대정부 로비활동, 법률작업 등으로 활 동 영역을 축소하고 캠브리지 사무실에서 철수한다. 1994년 미국내 절충적인 전화법안에 대한 지 지로 인해, EFF의 '로비 모델'은 행동주의자들에게 거센 비난을 받으면서, 재정 문제와 회원들의 사분 오열로 조직적 문제를 떠안게 되었다. 그 후 버만은 EFF를 떠나 민주주의/기술 센터(CDT: Center for Democracy and Technology)를 만들고, EFF는 미서해안의 베이 지역으로 이동하여, 다시금 풀뿌리적 기초를 고려한 효율적 행동주의 조직으로 거듭나게 되고, 현재까지 이르고 있 다. 문제는 그들이 일차적으로 프라이버시, 액세스, 자유 의사표현과 같은 실리콘 밸리의 디지 털 기업의 시각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후에서 살펴보겠지만 그들은 일종의 시장 지향 적 정치행동주의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이 생각하는 자유롭 고 개방된 조건하에서의 사이버공간 구축만이 시장 체제와 어울릴 수 있다는 확신에 EFF도 동 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미국 의회내 민주당-실리콘 밸리-EFF의 삼박자의 구성은 국가-자본-시민의 3요소를 대표하는 21세기 정보초고속도로의 주체로 정리되고, 동시에 현실 미래적 비전으로 자리잡기 위한 냄새를 풍기게 된다. 어쨌든 EFF의 영향력 하에서 수많은 사이버 시민단체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자국내 EFF-오스틴 등과 국외의 EF-오스트렐리아, EF-캐나다, EF-아일랜드, EF-일본, EF-노르웨이, EF-스페인이 만들어졌고, 또 다른 비슷한 류 의 시민단체들, 즉 CDT와 그 소속단체인 CIEC(the Citizens' Internet Empowerment Coalition), VTW(Voters Telecommunication Watch), 원래는 NTE(Not the EFF)이라는 명칭을 지녔던 뉴욕의 SEA(Society for Electronic Access) 등이 생겨났다. 3. 자유방임의 전자프런티어 정치학 EFF는 그들의 활동을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누고 있다. 첫째, 근본적인 시민권의 보장 을 위해 노력한다. 둘째, 네티즌의 권익을 대변한다. 셋째, 커뮤니티를 구축한다. 먼저 시민권과 관련한 그들의 활동은, 네트 범법자 재판에 대한 스폰서 역할, 법적 권리에 문제가 있는 회원에 게 자유로운 전화서비스 제공, 시민권과 관계하는 정보백서 발간 등으로 압축될 수 있다. 네티즌 의 권익은, 예컨대 '공통된 소통원칙'(common carriage principles)에 입각한 자유로운 의사 표현, 네티즌의 정보접근권 확보, 네티즌의 사생활 보장, 정보생산물의 자유로운 분배 등에 입각하여 정책적·사법적·기술적 수단을 동원하거나 이를 지지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커뮤니티의 구축 은 우선 풀뿌리 조직의 건설과 이에 대한 지원, 그들에 대한 법적·기술적 자문, 그리고 EFF의 다양한 매체전술, 기관 발행물을 통한 선전으로 구성된다. 그들의 매체 전략은 다양한 채널에 걸 쳐 있다. 그들의 가장 큰 소구 대상은 온라인 공동체들이다. 신생 혹은 기존 정보시민단체들과 경험을 공유하고 확대하기 위한 작업으로, 그들은 기관지인 계간 <이펙터 EFFector>와 전자 뉴 스레터인 <이펙터 온라인 EFFector Online>을 발행하고 있다. EFF는 자신의 FTP, 고퍼, 웹 서 버를 운영하면서 전자도서관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엄청난 관련 문서들을 저장하여, 서치엔진 등을 통해 열람할 수 있게 해놓았다. 또한 유즈넷의 뉴스그룹(comp.org.eff.talk)과 함께 인터넷 포럼을 구성할 수 있게 하여, 웰(WELL), 컴퓨서브(CompuServe), 제니(GEnie), 워먼스 와이어(Women's Wire) 등의 네트워크에서 풀뿌리 활동가들의 논쟁장인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다. 전자적 홍보와 구분하여 그들의 온라인 행동주의의 가능성은 전자메일 캠페인과 온라인 정치 조직화의 사업에 서 이루어진다. 한때 국내에서도 크게 알려지게 되어 큰 호응을 받았던 블루리본 캠페인, 그리고 FBI의 반테러법안에 반격하여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는 컴퓨터 전문가모임'(CPSR: Computer Professionals for Social Responsibility) 등의 시민단체들과 함께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외 쳤던 '골든키 캠페인'(Golden-Key Campaign)은 바로 이러한 네트 시민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써 평가할 수 있다. EFF는 사이버공간을 비적대적 방식으로, 그리고 약간은 질서 잡힌 개척지로 여기면서, 그들 자신이 컴퓨터 사용자와 법 집행자들간에 논리적 가교 역할을 한다고 자임한다. 그리고 이들은 상대적으로 제도권의 정당 정치에 입각하여 네트를 주목하지는 않는다. 정당 정치가 정부의 위계 구조를 반영한다면, 컴퓨터를 매개로 한 사이버행동주의는 어떠한 제도 정당이나, 위계구조, 기성 원칙을 위배한다. 사이버행동주의자들은 정교한 철학이나 강령을 구성하려 애쓰기보다는, 관성화 된 신념체계를 정보와 주장의 사이클로 대체하여 그에 걸맞는 네트망을 구축한다. 일반적으로 테 크노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경향성을 공유하고 있다. 60년대 히피의 변종들은 비합법적 해커들만 이 아니다. 산업시대의 잉여가치를 탈산업시대의 가치체계로 포섭하려고 실리콘 밸리에 들어가거 나, 혹은 합법적 시민운동 지형을 통해 구체적인 자유주의 정신을 선전하려는 일군도 있었다. EFF의 구성원들은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같은 역사적 맥락은 EFF의 구성원들 의 면모에서도 잘 드러난다. 특히 EFF의 마담격인 바를로우는 대단히 특이한 인물 중 하나이다. 그는 1980년대 후반에 공화당원으로 활동했으며, 한때 히피 록그룹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의 작사가이자 와이오밍주의 목축업자이기도 했다. 스털링에 따르면, "그는 시인과 같은 간 결하고 다채로운 문체를 소유했다. 그는 또한 저널리스트의 날카로움, 즉석에서의 기지, 그리고 개인적 매력으로 볼 수 있는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다"(S235). 바를로우는 사이버공간을 디지털 추상공간의 은유에서 미서부 시대의 전자적 개척지로 표현함으로써, 네티즌들에게 그 공 간을 현실로 사고할 수 있게 하는 문필가적 역량을 발휘했다. 그는 사이버공간을 정착될 과정으 로서의 개척지며, 산업시대의 무분별하고 힘센 이주민들에게 네트의 원주민들이 위협받는 공간으 로 바라본다. 그가 보기에 수세기전부터 '산업시대의 정권'이 자행한 물질세계의 통치권은 사이버 공간에 통용되서는 안되는 '프런티어'이어야 한다. 그 곳은 질서, 권위, 통제 등의 물질공간의 속 성이 온존하고 확대되는 곳이 아니라, 사이버공간 자체의 불문법, 즉 계약, 관계, 사유 등으로 이 루어진 질서 잡힌 '마음의 문명'이 세워질 곳이다. 그리고 그에게 사이버공간의 정보는, 끊임없이 이동하고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체험되는 '활동'(an activity)이며, 자유롭게 복제되고 변화하는 '생 명체'(a life form)이며, 소유라기 보다는 '관계'(a relationship)이다. 이같은 정보의 영상화된 조 합으로써 사이버공간은 과거의 권력/자본이 아직까지는 배제된, 희망의 설원으로 남아 있다. 한 편 그의 절친한 동료이자 네트시민운동의 거물로 알려진 케이퍼도 현실에서의 사업가다운 기질 과 자유주의적 성향이 그의 바탕을 이룬다. 바를로우보다 케이퍼는 더욱 대단한 재력가다. 그는 EFF 설립 후에 미국내 상위 1-2%에 들 정도의 거부였고, 첫 해 약 25만 달러의 EFF 예산을 순 수한 사비로만 충당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S286) 앞서 EFF의 두 가지 모델 중 '로비모델'을 들었던 것처럼, 미국의 특수한 전통 하에서 EFF의 의회로비는 주요 법안처리와 관 련하여 중요한 실천 영역을 차지한다. EFF 노선 안에서 이 두 모델 중 어떤 쪽을 택해야할지 조 직내 진통을 겪기도 했지만, 만약 현실적으로 그들이 자금력과 지명도가 없었다면 EFF의 성장이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구성원들의 경제적 능력은 대외적 효과 면에서 정적인 상관 관계를 지녔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케이퍼는 비관료적 면모와 함께, 미국의 자유주의적 전통을 '제퍼슨 자유주의'(Jeffersonian Liberalism)로 표현하는데 앞장선다. 제퍼슨주 의의 핵심은 엘리트주의에서 평등주의로, 위계적 질서에서 탈중심화된 구조로 변화하는 개인주의 적 자유주의의 이상 실현이다. 그에게 사이버공간이 바로 이 제퍼슨주의를 발현할 토양이 된 다. 문제라면 전자공간에는 권력의 과도한 개입과 자본의 상업화가 자유주의를 억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볼 때 궁극적 장애물은 거대기업이며, 사적 기업들의 시민권 부식에 대한 정부의 감독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더불어 정부는 네티즌의 자유를 가로막아서도 안되며, 공익을 고려하는 선에서 최소로 개입하고, 조정하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바를로우는 기술적 관점에서, 암호화 기술과 패킷전환 아키텍쳐가 결합되어 수많은 네티즌에게 퍼져나간다 면, 이같은 권력의 통제권은 상실될 것으로 예견한다. 즉 사생활을 보장해줄 수 있는 기술적 프로그램의 확보를 통해서 보편적 자유가 실현될 것이라 보고 있다. 요컨대, 네트 공간안에서 표 현의 자유, 암호화를 통한 사생활 보장, 비차별적 액세스권, 정당한 지적 재산권 설정, 거대자본/ 권력으로부터의 네티즌 보호 등등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사회적 자유주의의 실천 대상들이다. 아직까지는 더 지켜보아야 할 상황이지만, EFF가 시민운동단체로서 성공한 요인은 크게 보 면, 보수화된 미국내 정서에서 그들의 자유론적 논지가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 일정 정 도 미행정부와 밀접한 공조 관계를 지닌다는 점, 미래적 전망에 있어서 EFF내 구성원들이 정보 사회론의 제도적 지형을 형성하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엘리트들이라는 점, 재정상의 능력을 통해 시민운동의 난점을 뛰어넘었다는 점 등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4. 사이버공간의 독립선언? 하이퍼 미디어연구소의 바브룩은, 바를로우의 [사이버공간의 독립선언]을 '캘리포니아 이데올 로기'의 파산 선고라고 단정한다. 여기서 '이데올로기'의 발원지는 미서안의 실리콘 밸리이며, 그 연합전선은 신우익(클린턴/고어 행정부, 민주당, 기술관료 등)과 미서안의 하이테크기업들, 그리 고 시민운동 진영으로 짜여진다. 이들 가상계급 전선에게는 새로운 제퍼슨 민주주의의 부활에 대 한 약속이 내부의 결속을 유지했다. 그러나, 바브룩은 그들 사이에서 '이데올로기'적 모순, 즉 신 좌파인 EFF를 비롯한 사이버 시민운동단체들의 급진성, 그리고 신우익과 자본가들의 보수성 사 이에서 빚어진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전자의 자유 정신에 입각한 '사회적 자유주의'와 후자의 자유시장 원리에 입각한 '경제적 자유주의'가 '하이테크 제퍼슨 민주주의'라는 지주로 버티다, 결 국 후자의 승리로 끝나버렸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연합을 끝장낸 정책적 현실물은 1995년의 전 기통신 개혁법안의 통과이다. 탈규제의 수사와 시장지상주의로 가득찬 이 법안은, "큰 것은 더욱 크게, 그리고 더욱 수직적으로 통합되도록 의도된" 기업논리의 대변자(by and for business) 구실 을 했다. 즉 급진/진보의 내용은 대중성으로 귀결되고, 급진적 히피 출신의 신좌파의 자유주의 전통이 우파적 시장경제의 이상에 압도당한다. 그래서 바브룩은 바를로우의 [선언]이 신좌파적 입지의 상실에 기초한 선언이라고 주장한다. 즉 우파와 좌파간의 동침을 가능하게 했던 신좌파적 자유정신이란 단서조항도, 시간이 진행함에 따라 우파적 상업화 논리의 헤게모니에 밀려, 결국 초현실의 지점, 즉 전자개척지의 목가적인 카우보이가 되기를 부르짖는 도피성 [선언]을 작성하 게 만들었다고 본다. 이제 그는 사이버공간의 '코요테'라 불린다. 바를로우는 "디지털 도시 안에 서 삶의 사회적 모순에 직면할 수 없게 된 가운데, 이제 전자 개척지에 사는 가상 카우보이들과 합류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고독하게 테크노 벌판을 어슬렁거리는 테크노히피가 된 것이다. 이러한 정황 하에서 그나마 현실에 개입하려 했던 좌파적 사이버히피들은 사이버공간의 변방에 내몰리고, 이미 그리고 점차 네트 홍보자들의 신화가 현실을 독점하게 된다. 미국의 히피적 전통 도 현실적으로는 사회성을 결여한 자유지상주의로, 신우익의 경제적 자유주의의 우세 논리로 귀 착된 것이다. 바브룩의 평가와 함께, BS 편집자인 조셉 로커드(J. Lockard)의 견해도 눈여겨볼 만하다. 로 커드는 바를로우가 '반사회적 단자론(monadism)'에 기반하고 있다고 본다. 즉 사회적 욕구와 인 간의 상호의존 보다는 사적인 전자 정보에 대한 보안망을 치는데 치중하는 행위는 고립과 특권 에 기반한 정서라고 말하면서, 이는 결국 반공동체적이고 자유방임적인 전자프런티어 정치의 고 립적 효과로 드러난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그의 [선언]에서 얘기하는 '테크노 개척정 신'(techno-frontierism)은 이른바 '추한' 역사로부터 도망가기 위한 행동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다. 본인이 볼 때, 보통 디지털공간의 '개척지 은유'는 건설, 완성되어야 할 것으로 디지털공간을 바 라봄으로써, 현실적으로 곧장 자본주의적 식민화와 결합하는 경향이 강하다. 바를로우는 추상적 으로 테크노 개척지를 자유와 정신의 공간으로 논함으로써, 식민론자들에게 무력화되고 만다. 다 시 말해, 그는 공간을 현실/가상으로 이중화하여, 은유적 가상공간을 실제의 탈공간 영역으로 간 주함으로써, 가상공간을 현실 공간의 역학과 동떨어진 환상의 어떤 곳으로 놓고 있다. 이 부분이 그의 신좌파/히피적 자유주의의 속성에서 연유한 논리적 귀결인지도 모른다. EFF의 구성원들을 살펴보면, 앞서 보았듯이 정치적 근원에서 그들은 히피의 급진성을 거세하여 사회성이 결여된 자 유지상주의의 신좌파적 사고와, 정부와 하이테크 기업의 신우익적 행동 방식이 뒤섞인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결국은 그의 이상과 무관하게, 사이버공간의 미래 전망은 현실적으로 최소한의 정부권력/기업논리 개입론, 더 나아가 클린턴/고어 행정부의 구상에 입각한 '정보초고속도로'로 귀착되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미국내 네트 시민단체들은 복지, 환경, 국방, 과세 등의 정치적 문제를 등한시하 고, 일종의 기본권 운동으로 그 급이 격하된 측면이 강하다. 그리고 EFF의 사례를 통해 보았지 만, 시민단체의 이상이 정부와 자본의 논리에 말려드는 형세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보 여준 장점은, 미래 비전과 관련하여 시민단체가 적극적인 제도 개입을 할 수 있다는 것, 가상공 간의 시민 조직이 현실적으로도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사안별로 대중의 실천력을 몰아갈 수 있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오히려 시민단체들의 목적 의식적인 네트적 결합을 도모함에 있 어서 봉착하는 문제는, 특히 기술과 관련된 자금, 그리고 지속적 정보 흐름의 유지에 필요한 '학 습곡선'(learning curve)과 시간 등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문제점들은 단기적으로 현 시민단체들 을 괴롭힐 수 있는 난제이며, 일정 정도 인터넷이 범용화되면 풀릴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요 컨대, 변화되는 현실 지형에서 이제는 한 집단이 지닌 급진성의 추상화 정도가 문제가 아니라, 그 집단 속에서 모색하며 이루어내는 사안들의 관철이 전술적으로 더욱 중요해진다고 볼 때, 후 자에 가까운 EFF는 새로운 사이버 시민운동의 성공적 사례로써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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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대학원신문] 현단계 한국사회의 대안문화

115호 [문화기획] IMF 시대의 문화 - ③`현단계 한국사회의 대안문화 주류를 치받는 대안문화, ‘다르게 행함’에서 비롯될 것 이광석/ 네트분석가 작년 말부터 시작된 금융 위기의 한파로 크게 타격받는 부분은 대중문화 영역이다. 한 연구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IMF이후 소비지출 가운데 가장 먼저 문화비에 대한 지출을 줄이겠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65% 이상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말은 곧 일반 서민들의 생활비 항목에서 문화는 늘 사치비용으로 남아있다는 말일 게다. 마찬가지로 LG, 대우,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영상사업에서 손을 떼거나 투자 규모를 축소하고 있다. 경제기반이 흔들리는 차에 기업의 구조조정과 맞물려, 문화 영역을 군살로 취급하겠다는 것이 기업들의 반응이다. 그러고 보면 호·불황 여파에 따라 춤추는 대중문화의 숙명은 아직까지 문화가 대중의 것으로 전유되고 있지 못함을 반영한다. 더 근원적으로 따지자면, 이같은 대중문화의 휘청거리는 몸짓이란 철저히 시장 경제학의 원칙에 문화를 포섭시킨 결과이기도 하다. 90년대 이후에 들어서야 대중들이 맘 편히 향유하던 문화 영역이, 애초부터 자본에 의한 ‘경제적 문화활동’ 혹은 ‘문화적 경제활동’으로 굳어졌던 것은 아니었던가를 되짚어보아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 한술 더 떠 한국 경제와 동반 하락하는 최근의 대중문화산업의 침체 국면에 반발하여, 문화계 행정관료나 유관 유학파 출신들이 내놓은 ‘문화경제학’이란 아이디어다. 한마디로 문화를 확실하게 돈벌이로 만들어, 기업에겐 돈이 되고 대중에겐 양질의 문화적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논리이다. 그 동기는 시장경제 내에서 문화를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의 상술적 테크닉에서 출발한다. 최초 이 용어를 사용하였던 존 러스킨(J.Ruskin)의 고민은 산업혁명기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 때문이었다. 그는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의 보장을 위해 자본주의의 피비린내 나는 이윤 논리에 반하여 생산자들에게 문화적 가치를 향유할 권리를 외쳤던 것이다. 러스킨의 사고가 사회적 문화권을 주장한 것이었다면, 현재 국내에서 압도하는 이같은 아이디어는 경제적 문화권의 논리이다. 돈벌이로 전락한 문화 최근 문화경제학의 논리가 더욱 활개치는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IMF라는 심각한 외환 위기를 맞이하여 대중문화의 싹들이 잘려나가는 상황에서, 관료와 자본 공히 국가 경쟁력을 확대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아예 문화를 사업의 주요목표로 삼겠다는 의도이다. 1998년 문화관광부가 발행한 ‘통계로 보는 문화산업’이란 보고서를 보면, 문화산업 시장규모가 97년에 대략 16조 6천억원(추정치)에 이르고 있는데, 돈이 되어도 한참 되는 영역이란 것을 보여준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90년대초 이후로 성장한 대중문화가 자생적이고 자율적 토양이 미처 정착되기도 전에 IMF의 한파에 넉다운되었다가, 이제는 완전한 경제 마인드의 수용을 강요받는 사정에 이르러 사망선고를 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올 만하다. 물론 돈도 벌고, 문화도 향유하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는 반론이 일 수 있으나, 문화는 시장의 성격과 자주 충돌한다. 수많은 소수들이 집합화된 형태가 대중이라면, 대중들의 취향이나 목소리가 다를 것이고 문화의 향유 근거들도 다양할 것이다. 문화 생산과 유통을 틀어쥐고 문화의 방향을 잡아나가는 일부 입심좋은 기호제작소들의 논리란 독점의 논리이다. 그들에 의해 독점된 문화가 현실의 대중을 현혹하다보면 방향은 산업적 통계치와 단일의 문화적 포맷으로 잡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문화적 대중은 스펙타클에 끌려다니는 불특정 다수의 집합적 군상이 아니다. 이제 한국사회에도 자생적으로 그리고 주체적으로 문화를 생산하고 즐기는 마니아들과 소수문화집단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에게 문화경제학은 억압의 조건들이다. 그래서 문화에 대한 계몽주의적 대중관, 일의적 문화정책, 대중산업적 지향은 극복되어야 할 것으로 상정되어야 한다. 주변화되지 않는 대안 이른바 ‘대안’(alternative)은 주류를 흠모하거나 대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주류에 대당 관계로써 위치할 수 있는 힘도 없다. 대안은 현실의 주류와 맞먹는 ‘주류적 대안’이 목표도 아니며, 이미 ‘주류적 대안’이 되었을 때는 주류에 합류해 버리는 경향이 강하다. 대안이 대안 능력을 상실해버리면 ‘주변’이 된다. ‘주변’은 주류에 저항하기 보다 주류에 빌붙어 기생한다. 주변화되지 않는 대안은 주류의 장점을 익히나, 동일한 패턴과 규범에 따라 행동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안은 주류화와 주변화라는 양 극단의 불안정한 위치에 놓인다. 물론 추상적 대안과 달리 현실적 대안의 조건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 보통 주류를 그리워하는 대안문화는 소수적 목소리를 주류에 편입시켜 버린다. 이로써 대안의 위치는 주류의 파장만을 유연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주류에 대항하여 대안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위로부터의 독점/시장 권력(potestas)을 소수 문화집단들의 힘(potentia)의 집합된 발현으로 극복하는 것. 이것은 일반화되고 보편화된 문화라고 알려진 권력의 담론에 대해, 다양한 공간에서 소수적 주체들의 목소리를 담아 권력의 정보에 충돌시키는 커뮤니케이션 행위에 가깝다. 신좌파 미디어운동가이자 철학자였던 펠릭스 가따리(F.Guattari)는 이같은 대안실험의 가능성을 ‘분자혁명’으로 표현한 적이 있다. 가따리는 권력에 맞서면서도 다양한 주변자들, 소수자를 중심으로 전자적 아고라(agora)를 구축함으로써, 개인들을 주류문화가 강압하는 ‘욕망 모델들’에서 해방시키고자 했다. 그가 보기에 자본주의는 단순히 과거 산업시대의 대규모 강제적 억압만으로는 이제 통제가 불충분하다. 단지 커다란 사회적 총체뿐만 아니라, 출생부터 자본주의적 욕망의 모델에 대중을 편입시키는 체제로 보았다. 이미 코드화 되어있는 의미작용(signification)에, 그어진 선(line) 안에 대중을 가두어두는 것을 문제시하였다. 그래서 그는 권력의 담론이 강요하는 그어진 선 밖에서, 성립된 주체를 벗어나, 그리고 초코드적 의미작용에 반발하여 ‘무수히 다양한 분자적 욕망’ 에너지를 해방시키길 바란다. 그는 단수적이고 소수적인 욕망들을 다양성으로, 유동성으로, 시공간적 가변성과 창조성으로 드러내는 대안문화가 가능함을 주시했던 것이다. 한편 소수자들의 대안문화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기는 하지만, 지배문화에 대한 사회·문화적 정의는 여전히 유보된 채 남게 된다. 저항의 과정과 자생성의 분출로는 지배/주류 문화에 대한 타격은 어림없다. 지배/주류에 대한 교란과 소음만 있을 뿐이다. 저항과 대안의 지배적 주류화가 빗나간 전략이라면, 지배/주류에 대한 전국적 수준의 저항과 대안은 각 단위들의 연대와 네트워크화로 가능하다. 단위적 저항과 전국적 저항의 투쟁과 쟁점 모두는 중요하다. 이를테면 소수문화집단들의 전국적 저항의 예로는 그 투쟁의 결과들을 국가 문화정책에 투과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가따리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인습적인 형식과 장르 바깥에서 대안적 문화와 담론 양식을 지속적으로 제공함과 동시에, 이들의 연대를 통해 주류문화에 대한 도전과 이에 따른 정책적 입법화를 함께 도모해야 한다. 가따리가 문제시했던 단일화된 지배적 문화양식과 정책의 조건들은 아직도 살아 있다. 핵심적으로 변한 것은 대중의 환경이다. 인터넷의 보편화, 마니아들의 성장 등을 포함한 근본적인 사회·문화적 양식의 격변을 보여주는 징표들이 등장했다. 이러한 조건들은 시장/독점망에서 비어져 나오는 대안문화의 집합적 연대의 불꽃을 피우게 한다. 특히 네트는 기술적인 가능성과 함께 발·수신자 없는 발언의 가능성을 모두를 포괄한다는 점에서 ‘발언에 대한 독점’뿐만 아니라 ‘기술수단에 대한 독점’의 탈주에 공히 가능성을 높게 두고 있다. 예컨대 주류문화에 대한 기술적 저항으로 시민운동진영에서의 캠코더를 이용한 다큐멘터리 제작, 소수문화 운동가들의 커뮤니티 라디오, 웹진 등의 전자출판, 언더그라운드 밴드의 독립 CD 제작, 컴퓨터 해커들의 사회적 해킹, 가상공동체들의 사이버 결사와 집회, 멕시코 사빠띠스따의 정보게릴라전, 노동자들의 정보교육운동 등이 다각도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정치실험들은 지배적 약호에 대한 저항 뿐만 아니라 기술적 수단을 소수문화집단들이 적극적으로 자기가치화하는 사례로 평가되어야만 한다. 처음부터 기술적 독점에 대한 저항을 통해 지배적 수사에 대한 독점 자체를 차단하여 주류에 거역하는 자발적인 대안문화를 발현시키는 운동은 수사적, 기술적 저항 모두를 토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저항의 형식 변화가 이루어진 데는 대안문화 형성에 있어서의 주체 변화가 이미 자리한다. 과거 한국사회에서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분출했던 문화투쟁은 노동자 문예운동을 필두로 하여, 비디오, 영화, 사진, 팩스, 판화, 벽화, 깃발 등의 다매체를 동원한 민예총과 대학서클, 예술가 집단 중심의 예술운동과 진보적 문화운동 등으로 표출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 대안문화 구성체들은 재정의 열악함, 대중 기반의 취약성, 그리고 일괴암적인 체제 이행의 지향성만을 내다보고 진보적 가치와 대중적 가치를 분리하여 사고함으로써, 대중적 가치에 편입되거나 급진적 가치만을 부르짖으면서 근근히 유지하거나 사라지는 수모를 겪었다. 거시적, 일방향적, 계몽적, 단선적인 위로부터의 문화운동관이 문제였던 것이다. 노동자를 포함한 대중들은 계몽의 대상이었지 문화생산의 주체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리고 조직적 대의에 소수의 목소리를 스스로 감춰야 했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혁명과 변혁을 얘기하지도 않으며, 그같은 감성과 대의에 호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정세는 과거에 비해 한결 나아졌다. 사회화된 권력의 파장이 엄청날수록 물러날 곳 없는 문화 주체들의 갈등과 꿈틀거림이 격해지고 도도해지기 때문이다. 주류문화에 억압된 ‘욕망’을 탈주하려는 수많은 소수문화들이 자생하며 버팅긴다. 노동자를 포함한 학생, 여성, 동성애자, 빈민, 양아치, 삐끼, 청소년, 게임돌이, 소수 마니아 등등. 이들은 자신만의 문화적 포물선을 그리면서 주류의 지형에 흠집을 내고, 그 그어진 경계를 지워버린다. 주류에 대한 저항함수로서 소수문화 앞으로 지배적 문화는 소수집단들의 문화를 수용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 반대로 이들 소수문화들은 주류문화의 물신들을 골고루 먹어치운다. 일본의 닌텐도세대인 ‘오타쿠’처럼, 이들은 문화소비자이자 생산자이다. 주류를 먹고 사는 대안적 문화 형성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주류문화를 즐기다 주류에 포섭되는 경우를 쉬 볼 수 있다. 그러나 쉼없이 팽창하는 단수적 문화 행위자들은 기업문화의 폭격에 맞서 여기저기 참호를 구축하며, 문화 생산/소비자 관계 구조의 대안적이고 모범적 모델을 제공하고 있다. 이젠 다르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다르게 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경제적 논리에 문화적 가치가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도, 주류에 억압받는 소수 집단들의 욕망분출의 통로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작업이다. 결국 주변화하지 않는 대안문화의 구성여부는 소수집단들의 주류에 대한 저항함수로 보아야 하며, 수많은 욕망들을 생산하고 결집하는 데 달려 있다. [중앙대대학원 신문, 200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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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대학원신문] 뉴미디어, 문화와 하이테크의 결합

[문화기획] 미디어로 사회읽기- ④뉴미디어, 문화와 하이테크의 결합 아날로그 권력체계에 흠집내는 디지털세대의 테크노문화 실험 이광석 지난 몇 년 전에 우리에겐 ‘X세대’, ‘신세대’라는 미확인세대의 유행어가 풍미한 적이 있다. 아직까지도 상품광고에서 줄곧 써먹는 이 정체불명 세대 지칭의 정확한 경계선은 없다. 이와 같은 용어의 발원지에는 저 바다 건너 미국적 전통이 놓여 있다. 미국에서 비롯된 새로운 세대의 명칭은 다양하다. ‘X세대’를 포함하여, ‘영상세대’, ‘닌텐도세대’, ‘비디오세대’ 등등의 새로운 조합어들이 창궐한다. 그에 대칭하는 기성세대는 베트남전 이후의 ‘베이비붐 세대’로 뭉뚱그려진다. 말하자면 영상문화와 더불어 사고하고, 길들여지고, 생활하는 세대가 바로 새로운 하이테크의 세대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반전운동 등을 통해 알려진 히피적 전통을 지닌 세대다. 전후 히피세대는 노자의 도가에 심취하고, 점성술에 의지하고, 피부문신과 LSD를 즐기며, 권위와 자본주의 기계를 경멸한다. 물론 아버지와 아들간에 유전자 요인이 승계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영상세대 또한 아버지세대의 모습을 닮고 있다. 일종의 문화적 유전자(밈, meme)를 담지하는 것이다. 하이테크 문화평론가인 마크 더리(M. Dery)에 따르면, 6~70년대 사이키델릭(psychedelic) 문화와 90년대 사이버델릭(cyberdelic) 문화를 구분하는 가장 큰 준거틀로 테크놀로지의 수용 여부를 들고 있다. 요컨대, 현대의 새로운 세대는 테크놀로지와 80년대 대항문화의 새로운 통합을 의미하는 반면, 60년대 대항문화는 촌스럽고 낭만적이며, 반과학적이고 반기술적이다. 이들 영상세대는 정보화사회의 그늘에서 태어나, 세기말의 정신적 혼돈이라는 토양에서 자라나는 문화라는 의미에서, 보다 미디어 친화적이다. 그들은 60년대 이후의 히피적유산을 계승하고 있지만, 히피들보다는 훨씬 복합적이고 심화된 기술의 대항문화적 통찰력을 지닌 집단이다. 90년대 사이버델릭 문화와 닌텐도세대 이 새로운 닌텐도세대는 기성의 제도와 권위를 부정한다. 그들의 차별성은 기술과 영상을 즐긴다는 데 있다. 국내에도 한 때 일본에서 유행한 ‘다마고치’게임이 히트한 적이 있었다. 스크린 안에 새, 물고기 등을 키우고, 번식시키고, 어떻게 하면 빨리 죽일 수 있는가를 즐기는 초등학생들, 우주전쟁과 국지전을 순수한 디지털전쟁의 유희 속에서 즐기는 세대가 바로 닌텐도세대인 것이다. 위험스러운 사실은 문화란 현상이 ‘삶의 방식’이라면, 삶이란 구체적 현실에 도사린 구조적 변인들이 너무 크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전에 볼 수 없었을 정도로 전세계 자본의 ‘창조적 파괴’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초국적 미디어기업들은 이미 상업 전략과 테크노문화를 결합시키고 있다. 소비문화가 80년대의 가장 특징적 현상이자 자본시장의 텃밭이었다면, 이제 90년대 이래로 21세기의 자본문화전략은 테크노상품에 근거한 문화전략이 된다. 뉴욕대 교수인 앤드류 로스(Andrew Ross)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는 “강건한 신세계의 지속적인 기초를 제공하는 테크노문화와 자본의 불경스런 결혼”에 이른다. 소위 ‘디지털계급’ 혹은 ‘가상계급’에 의해 구상되고, 짜여진 새로운 판(version)이 테크노문화의 상스러운 얼굴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 소비시장의 아날로그 상품들을 그야말로 부드럽게 하고(softening), 디지털화한(digitizing) 상품으로 재생산하여, 새로운 시장에 그럴듯하게 패키지로 포장하여 전시하는 일이다. 예컨대, 상품문화의 테크노적인 혼합은 통칭하여 ‘사이버펑크 토탈패션’이란 미명하에 등장한다. 사이버펑크와 테크노아나키즘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우리는, 관객이 컨베이어벨트를 통과하는 쇼를 관람하듯, 테크노문화를 소비하는 디지털 관음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 샌디에고의 노교수 허버트 실러(Herbert Schiller)는 이러한 미디어 전략을 ‘토탈 혹은 원스톱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명명했다. 즉 개념화 단계에서 최종 생산, 배달 단계에 이르기까지 그저 미디어자본이 만든 메시지와 이미지를 소비하고, 디지털계급들이 만들어내는 스펙터클을 그저 숨어서 지켜보는 주체들만을 양산한다고 말한다. 물론 기성세대의 아날로그적 관성과 중독증은 디지털 소비문화에 이르면, 한차원 더하여 순응적이고 나약한 모습으로 허우적 거린다. 하지만 디지털문화를 소비하는 다양한 하위집단들 중에는 디지털 자본 환경에 도저히 훈련시키기 어려운 ‘지하의’천덕꾸러기들도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가장 도전적인 그룹은 아나키의 자유분망함과 디지털 정보의 공유를 꿈꾸는 새로운 세대들, 이른바 ‘해커’(hacker) 혹은 문화적 의미로는 ‘사이버펑크’(cyberpunk)라고 불리는 유대인의 하이테크 자손들이 존재한다. 사이버펑크는 사이버(cyber)에서 발생하는 하이테크 하위문화와, 펑크(punk)에서 유발되는 밑바닥 거리문화의 결합물이다. 다시 말해 사이버펑크는 도시 거리문화에 뿌리를 둔 공격적이고 반권위주의적인 펑크적 감수성에, 기술과 인간 사이가 해체될 고도의 테크놀로지 미래를 결합하고 있다. 한편 기술적인 인물보통명사로서 사이버펑크는 ‘해커’의 문화적 대체어이다. 즉 히피의 테크노변종이 해커이자 사이버펑크이다. 사이버펑크는 테크놀로지의 세례를 받았으나, 기술적 미래의 부정적 잠재력과 긍정적 잠재력 모두를 강조한다. 사이버펑크는 컴퓨터를 해방적 추동력과 억압적 장치의 성격 모두를 지닌 야누스적 기계로 간주한다. 작년에 FBI의 끈질긴 수사망에도 18년 동안 굳건히 우편폭탄을 실어나르다 붙잡힘으로써 유나바머(Unabomber)의 반문명주의는 막을 내렸다. 테크노문화에 대한 비적응의 극단적 전형이자, 자본주의의 물질문명에 대한 기성세대의 분노를 표출했던 인물로써 보자면, 조금은 측은한 희생자였다. 어쨌거나 현실에는 이런 구식 러다이트의 빗나간 발악보다는, 해커 혹은 사이버펑크의 문화정치가 그 대중적인 세련됨을 돗보인다. 해커 사회에서 정보와 컴퓨터는 곧 권위의 기반이다. 해커들은 컴퓨터를 사용하여, 예컨대 패스워드 파괴, 트랩도어(trap doors), 트로이목마(Trojan Horse) 등의 기술을 개발하고 전수한다. 그들이 보여주는 것은 권위에 대한 기술적 도전이자, 테크노아나키즘의 실현이다. 해커들 대부분은 해킹을 게임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열광적인 SF 소설의 독자들이다. 그들에게는 해킹의 게임과 사이버펑크 소설이 사회적 실천의 의미와 뒤섞여 있다. 디지털자본가들에게 이들은 골치아픈 존재이다. 디지털 저작권, 보안 등 상품화될 가치들이 있는 것들의 웬만한 것들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막론하고, 모두 다 변형시키고 풀어헤친다. 닌텐도세대의 자유로움이 현실적인 이윤논리를 부담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네트를 방랑하고, 얘기를 나누고, 미지의 것을 탐험하고, 놀길 원한다. 자기만의 영상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고, 공유하는 행위가 그들이 지닌 원칙이다. 독식, 독점, 권위, 논리, 이성보다는 공유, 자유, 개방, 감성이 그 우위에 선다. 분명한 사실은 이들 네트세대가 인터넷이나 영상을 통해 접하는 가공된 현실이란, 그들 자신의 삶이자 현실이란 점이다. 이들에게 영상은 삶의 경험과 기준이다. 텍스트에 친숙한 부모세대는 네트를 두려워한다. 부모세대는 네트를 수렁으로 보며, 자신의 자식들이 그 수렁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과거의 세대는 자신의 두려움을 자식에게 전가한다. 통신모뎀을 빼앗고, 심한 경우엔 컴퓨터 자체를 못쓰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디지털상품의 광고주들도 기성 세대에 대한 급진적인 설득 작업을 펼 수밖에 없다. 그 유명한 최불암이 컴퓨터 광고에 나섰다. 최불암은 컴퓨터에 빠져 정신을 못차리고, 자식은 졸린 눈으로 아버지인 최불암에게 안자느냐고 짜증스럽게 묻는다. 이에 대한 최불암의 응답, “너나 먼저 자, 임마”. 이 배꼽잡는 말은 자식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오히려 기성권위에 대한 도전장이다. 부모들이여, 아이들에게서 컴퓨터를 빼앗지 말라! 당신도 최불암 정도로 컴퓨터에 빠질 수 있다. 두려움은 버려라. 아이들은 수렁에 빠진 것이 아니라, 영상과 네트가 그들의 삶일 뿐이라고 부르짓는 것이다. 새로운 네트세대의 무질서 속에서도, 그들에게 내려오는 하위문화적 원칙은 있다. 컴퓨터 접근권을 완전하게 보장하라, 정보를 무조건적으로 공개하라, 모든 권력을 분권화하라, 디지털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권력과 투쟁하라, 권력 체계에 소음(noise)을 되먹임(feedback)하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라(DiY), 극단의 스릴을 즐겨라(surf the edge). 이들의 강령은 크게 보면 두 부분이다. 정보의 자유와 권력의 해체. 그들을 하위문화로 보는 근거는 결국 디지털 정보 독점에 대한 저항과 자유로운 유통의 정신이다. 물리적으로 굳게 잠겨있는 모든 통제권과 이로부터 나오는 약호의 일방성과 규제를 거부하고 공개하려는 것은 신선한 정치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 문제라면 이들이 경제적 지위나 신분에 구속받지 않으면서, 단지 정보의 활용 능력에 의해 이합집산한다는 점에서, 과연 대항문화적 주체가 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대항문화 주체를 향하여 사실 21세기는 기성 권위의 힘으로 미래를 헤쳐나가기에는 밑천이 부족하다. 개인의 창조성과 실험성이 미래 준비의 자산이 된다. 여기서 테크노문화 세대의 자기 스스로의 개성과 자유를 발산하는 방식은 매우 중요해진다. 빠르게 적응하고, 혼란스러우나 스스로의 동일성을 찾아내며,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그들의 행동 양식이 장점이 된다. 특히나 대안적 미디어 전략과 관련하여 거대 자본에 의한 첨단장비에 밀리고 있는 실정을 고려한다면, 그들의 테크노문화 실험은 하위문화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그들은 최선의 문화정치적 비전을 산출해내는데, 충분조건은 아니더라도 필요조건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들의 자유스러움이 앞서 우려한대로 개인 중심의 말초적 디지털 ‘몽환’(hallucination)으로 빠질 수도 있다. 또한 그들의 개성과 자유가 디지털기업이 이끄는 스타일 정치문화의 미끼로 이용될 수도 있다. 신세대 욕망을 자극한 상품의 미끼라는 유혹이 도사릴 수 있는 것이다. 자본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별짓는 그들의 영역화의 작업은 그래서 중요하다. 한편에서는 문화정치학의 새로운 정초와,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문화 실험의 사례들의 발굴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요컨대, 문화의 집단적 표현 형식의 새로운 징후를 읽어내어 이론화하는 것과 테크노문화적 실천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 테크노 시대의 문화집단에 대한 지형짜기와 그 집합적 실천의 모색, 이것이 21세기 문화정치의 화두이자 출발이다. [중앙대 대학원 신문 111호] (200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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