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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디지털세상] 08. 04 닌텐도의 장인 정신

2008년 4월호

닌텐도의 장인 정신
화투장 제작에서 게임 콘솔의 글로벌 기업으로
   

 

이광석  


미국 아이들이 지난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가장 받고 싶었던 물건이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DS 라이트’였다고 한다.
올 겨울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이 게임기가 동이 났었는데, 볼티모어에 사는 필자의 처남은 우리 애를 위해 이 휴대용 게임기를 사려고 서너 곳을 전전하다 가까스로 이를 구해, 그 인기를 실감한 적이 있다.
게임기가 동이 날 정도로 닌텐도가 지닌 위력이 도대체 뭘까?

최근에 노인의 치매에 좋다하여 닌텐도 게임기를 구입하는 장년층들이 늘고 있다 한다. 아이들의 정서를 망치고 공부의 훼방꾼이 게임이라는 통념을 뒤바꾼 닌텐도, 이들의 힘은 백 년이 넘게 오직 놀이와 게임 사업에 투자한 장인 정신에서 나온다.    
 

닌 텐도 기업의 전사는 18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후사지로 야마구치라는 사람은 ‘하나후다’라는 꽃그림이 들어간 48장의 화투 게임을 만든 장본인이다. 곧이어 그는 이를 일본 내에 대중화시키는 데 성공한다. 후사지로는 2002년까지 닌텐도를 이끌었던 히로시 야마구치의 증조 할아버지다. 후사지로가 만든 화투는 일제 통치이래 한국 일상 오락문화를 좀먹게 했다. 만든 당사자야 한국사회에 미칠 오염의 심각성을 알리 만무했겠지만 말이다. 당시 일본 야쿠자들이 화투장을 돈 내기 게임에 쓰면서 입소문을 탔다. 초창기엔 순전히 수공업으로 화투를 직접 제작해 보급하기 시작한다. 1907년 후사지로는 ‘닌텐도 카드게임 회사’를 만들어 화투를 대량생산할 설비를 갖춘다. 나중에 경영권을 승계한 손주 히로시는 1953년에 플라스틱으로 입혀진 내구성 강한 화투장을 만들면서 6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다. 이를 기반으로 60년대 초 러브호텔, 햇반, 택시운송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려 하나 고배를 마신 후, 히로시는 자신의 본업이 놀이사업임을 깨닫고 게임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컬러 텔레비전용 게임을 시작으로, 80년대 초 비디오 게임기 콘솔 시장을 개척하며 ‘(슈퍼) 닌텐도 오락기(NES)’ 혹은 ‘패미콤(Famicom)’ (일본에선 흔히 그렇게 불렀다, 가족용 컴퓨터의 합성어)을 내놓고 킬러 애플리케이션 (돈 되는 프로그램이라는 뜻) ‘슈퍼마리오형제’로 전 세계 흥행 대박을 친다. 2001년 게임큐브로, 그리고 최근에는 ‘위’(Wii)를 내놓고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3,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360과 콘솔 시장을 분할한 상태다. 휴대용 게임기로는, 89년 ‘게임보이’로 시작해 ‘닌텐도DS’를 출시해 경쟁사인 소니의 PSP를 멀리 따돌린 상태다. 게임보이는 러시안 벽돌쌓기 게임인 ‘테트리스’를 사들여 대중의 큰 인기를 얻는 데 성공한다.     

닌텐도의 성공가도엔 그만의 게임에 대한 철학이 있었다. 학부모들의 최대 관심사인 폭력, 특히 피 튀기는 장면의 배제는 다른 게임업체와 다른 모범을 실천했다. 비폭력 게임도 얼마든지 재미가 있다는 것에 덧붙여, 게임도 치매를 막고 두뇌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교육 효과까지 창출해낸다. 미국에서도 소비자단체들의 상대적인 호의를 등에 업고 게임의 긍정적 이미지를 설파하면서, 닌텐도 게임의 교육적 가치와 내용 안정성까지 인정받는 지위에 오른다. 전 세계 비디오게임 콘솔 시장을 소니, 마이크로소프트와 갈라먹고 있지만, 게임과 놀이의 장인 철학을 갖고 꿋꿋이 제 갈 길로 가는 회사가 닌텐도뿐이라면 지나친 과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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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디지털세상] 08. 03 애플이 문화가 될 때, 소니는 ‘스타일’이 되다

2008년 3월호

이광석 


기업 활동에 문화 마케팅이란 개념이 있다.
기업이 단지 소비자를 상품 구매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그들의 대중문화에 개입해 그 흐름을 타고 소비 수요를 창출하는 마케팅 방식을 말한다.
2008년 1월호에서 본 것처럼, 애플은 그 문화 마케팅 개념을 넘어섰다.
애플 스스로가 디지털 문화의 장을 선도하고 소비자들이 자신의 문화로 재생산하는 형국은 기업 마케팅 개념을 초월한다. 이번 호는 소니가 만드는 ‘소니 스타일’을 볼까 한다.
소비문화에 접속하는 정도로 치자면 소니는 애플의 한 수 아래이긴 해도 근 60여 년을 오락·문화 산업에서 잔뼈를 끼우며 나름 문화에 접속하는 데 일가를 이뤘다. 
라 틴어 ‘사운드’(sonus)와 ‘아들의 애칭’(sonny)을 합쳐 만들었다는 ‘소니’는, 1979년 워크맨으로 아날로그 시대의 사운드 문화를 주도하며 급속히 성장했다. 비디오 포맷 베타맥스로 타격을 받는 듯 했지만, 소니는 디지털 시대의 고화질 동영상 포맷, 블루레이 디스크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게다가 89년에 인수한 콜럼비아 픽쳐스의 <스파이더맨> 시리즈 등은 현재 가장 큰 수익원 구실을 한다. 94년에는 닌텐도와 결별해 자체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로 청소년의 영상 문화에 크나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엔 엔터테인먼트 PC를 기치로 바이오 시리즈 노트북을 출시하면서 전자제품 영역에서 그들만의 스타일을 세우고 있다. 애플 마니아가 아니라면, 일반 노트북 디자인에선 도시바나 필립스 등 다른 경쟁업체들이 대적하기 힘든 세련됨으로 승부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들이 시도하는 ‘소니 스타일’로 불리는 매장, 즉 소비 체험장의 물리적 공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미 애플도 비슷한 매장 전시를 통해 소비자들이 직접 기업의 전자 제품을 사용해볼 수 있는 체험 공간을 미국 전역에 확대하고 있는 추세다. 단순히 가전·전자제품을 파는 국내의 하이마트와 같은 토털 가전·전자제품 체인이 아니라, 기업이 만들어낸 전자제품의 상호 연동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스타일을 보여주고 체험할 수 있는 소니 마니아들의 공간을 창출하고 있다. 소니나 애플이나 매장이 입지하는 공간은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주요 쇼핑몰인데, 마치 옷이나 액세서리의 전시 공간처럼 전자 제품의 공간 소비를 통해 스스로의 유행과 스타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소니의 또 다른 강점은 게임 타이틀과 영화 콘텐츠를 자사의 세련된 전자 기기에 통합하고 어필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소니가 제작한 게임이나 영화를 블루레이 디스크에 담거나 체험 공간에 응용할 때, 전자 기기에 대한 인지 효과가 증대할 수 있음은 논의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흔히 우리는 삼성과 소니를 비교하곤 한다. 허나 기본적으로 국내 재벌에 부족한 것은 한우물을 파는 집중력이다. 몇 가지 상품의 매출에서 초일류 글로벌기업이 될 순 있어도, 돈이 된다면 문어발식으로 서민의 재래시장 물건까지 먹어버리고 건설, 보험까지 흡수하고 확장하는 재벌의 근시안을 가지고는 진정한 초일류로 도약하긴 멀어 보인다. 소니 스타일이 단순히 브랜드 이미지를 넘어서 문화적 스타일이 되고 액세서리가 된 데는, 전자·오락 영역을 넘지 않고 상도를 지키되 그 속에서 공격적인 기술개발과 디자인 혁신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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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디지털세상] 08. 02 표준은 기술의 진화 과정과 무관

2008년 2월호

블루레이와 HD디브이디 간 포맷전쟁  


뉴미디어평론가 이광석  


하나의 기술이 표준에 이르는 과정에 자연 질서에 흔한 적자생존의 법칙이나 보다 발전된 단계로의 기술 진화의 법칙이 딱히 들어맞지 않는다. 보다 나은 기술이 부족한 기술을 대체하고 여러 기술의 경합에서 최고의 기술이 선택된다면야 이는 상당히 합리적 과정이요, 민주적 선택이라 말할 수 있다. 허나 현실은 다르다.
부족한 기술이 최종 경합에서 이겨, 훨씬 우월한 기술이 사라질 운명에 놓이기도 한다. 합리적이고 똑똑한 것으로만 평가받지 못하는 것이 인간사이듯, 그 진리는 기술 표준에서도 매일반이다.


영 상과 음향을 담는 저장 그릇의 발전사를 봐도 그렇다. 80년대, 일본 소니가 밀었던 베타맥스 버전의 비디오테이프가 미국의 VHS에 밀려 사장된 것은 기술보단 시장과 힘의 논리 때문이었다. 물론 70년대엔 8-트랙 테이프를 대체해 카세트테이프가, 90년대엔 디지털 오디오 테이프를 컴팩트 디스크가 대신함으로써 음향 저장기술의 발전을 독려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체로 경합하는 기술이 있을 때, 기술의 표준화 과정은 시장에서 힘을 가진 집단들 내부의 힘겨루기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상례다. 베타맥스의 사멸이 그렇게 이뤄졌고, 2000년대에 접어들어선 또 다른 진흙탕 싸움으로 번질 태세다. 
차세대 동영상 매체의 포맷 전쟁이, 블루레이와 HD디브이디를 놓고 벌이는 기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베타맥스의 설움을 설욕하고자 소니와 필립스가 블루레이를 밀고, 그 상대편 HD디브이디에는 도시바와 마이크로소프트가 후원자로 버티고 있다. 이제까지 일반 소비자는 9기가바이트(GB)의 디브이디 포맷에 익숙했지만, HD디브이디의 경우 30GB까지, 블루레이는 이중 레이어인 경우 50GB까지 집적이 가능하다. 확실히 차세대 포맷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블루레이가 HD디브이디보다 그 집적량이 많고 두 포맷 간 화질의 차이가 없다면 왜 블루레이로 낙점되지 못할까? 그것이 기술 표준이 갖는 딜레마다.

HD디브이디는 기존의 공정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장점으로, 제조 원가를 낮춰 출고 비용을 현저히 낮춘다. 게다가 HD디브이디 플레이어 또한 가격 부담이 적다. 블루레이는 저장용량이 훨씬 크지만 새로운 제조 공정을 추가해야 하는 부담이 있고 아직까지 비용 부담이 크다. 기술이 좋지만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 시장에서의 반응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두 포맷 기술을 둘러싸고 당사자들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복잡다단해지는 것도 문제다. 예컨대, 지원 소프트웨어와 관련해 선 마이크로시스템스의 자바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컴퓨터와 전자업계에선 소니, 필립스, 에이서, 델, 애플 등이 도시바, 후지쯔, 레노보에, 영화 업계에선 월트 디즈니, 라이온게이트, 워너 브라더스 등이 파라마운트 스튜디오와 유니버셜에 맞서서, 서로 블루레이와 HD디브디이를 옹립하려 애쓴다. 이도 고정된 것이 아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경계를 넘는 얌체족도 있다. 지금의 형국은 불투명이요, 그 해결은 한쪽이 기싸움에 월등히 이길 때만 주어진다.

표준은 한 번 정해지면 관계된 이해집단에 내리 이익을 안겨줄 수 있기에 당사자 간에 첨예한 대립을 만든다. 자신의 포맷을 관철시키기 위해 제조업체가 영화 업계에 자금을 대는 경우도 있다한다. 그러고 보면 인류의 진전을 가져온다는 기술의 발전사에 표준만큼 왈패도 없거니와 그 과정은 가히 목불인견이라 심히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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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디지털세상] 08. 01 애플의 아이팟, 문화 현상으로 진화하다



2008년 1월호

트렌드라 하면 하나의 동향 혹은 문화의 일부로 자리잡아가는 흐름을 지칭한다. IT 트렌드는 새로이 개발된 기술에 대한 파악보단 그러한 기술이 어떻게 현실 사회, 문화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방점이 있다. 개개의 기술은 소비자가 등을 돌리면 쉽게 시장에서 사멸하고 그 기술 발전 과정을 간파하기 쉽지 않으나, 선도적 기술들의 사회문화적 영향력과 진화 방향 그리고 그 문화적 파급을 본다면 디지털 미래 예측력이 증가한다. 이는 IT 트렌드가 단지 기업 상품의 선전장이 아닌, 미래 문화의 방향과 보다 바람직한 정보사회의 미래 설계의 길잡이임을 뜻한다. 올 한 해 필자는 미국을 포함해 사회와 문화에 영향력을 미치고, 그 스스로 자신의 문화를 창조하는 정보통신기술의 경향을 살필 것이다. 이번 호는 애플의 얘기로 시작할까 한다.



소 니의 워크맨이 아날로그 오디오 문화의 전설로 기억된다면, 이젠 스티븐 잡스가 이끄는 애플사가 디지털 오디오 문화의 후임자를 자처한다. 워크맨처럼 아이팟(iPOD)은 한 컴퓨터사가 개발한 제품 이상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아이팟은 소비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선도한다. 애플의 이 조그만 장치는 아이도그(iDog)와 같은 캐릭터 스피커, 패션 케이스 등 다양한 기능의 수많은 액세서리들의 인접 수요를 엮고, 새로운 소비 문화를 연다.

아이팟이 나오기 전에 이미 애플은, 한창 말 많던 누리꾼들의 ‘불법’ 음악공유 문화에 상업 모델을 적용시켜 성공했다. 그렇게 난리를 치며 음반판매 손실을 누리꾼에게 전가하던 저작권자와 막무가내로 음악을 내려받는 누리꾼 사이의 이해관계를 비집고, 애플은 곡당 저가의 요금으로 그리고 아무 기술적 잠금장치없이 내려받기가 가능한 아이튠 음악제공 서비스로 큰 성공을 이뤄냈다. 애플은 누리꾼의 공유 문화를 거스리지 않는 범위에서 돈을 챙기는 방법을 모색했다. 애플이 그 험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공세에도 무너지지 않은 까닭은 애플의 문화 적응력에 있다. 이는 경쟁사들에 비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모두 가격이 싸지도 않을 뿐더러 성능도 떨어지고 아이비엠과의 연동에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맥북 컴퓨터 시리즈 이후로 인텔칩을 장착해 호환이 되긴 하지만)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 샌 조깅을 하는 사람, 버스에서 창가를 내다보는 사람,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 학생,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승객 등 어디서든 아이팟을 듣고 있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초등학생부터 아줌마까지 아이팟을 선호하는 이유가 뭘까? 이는 애플만의 독특한 상품 디자인의 힘일 것이다. 신기능의 수많은 엠피 플레이어가 등장하고 전화기와 결합한 엠피폰이 선보여도, 아이팟에 밀리는 것은 애플만이 지닌 묘한 매력 때문이다.

최근 만들어진 맥북 컴퓨터, 아이팟, 아이폰 등을 보면 간결하면서도 깔끔하고 편리한 인터페이스로, 향후 전자 제품의 디자인을 선도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경쟁사들이 부단히 노력하나 역부족인 그들만의 디자인은 곧 애플 마니아를 만들고, 아이비엠 가이와 애플 가이라는 이분법까지 만들어낸다. 디자인은 문화와 소통하는 영역이다. 소프트웨어에서 보이는 인터페이스의 창의성과 하드웨어에서 풍기는 세련됨은, 디지털 문화의 아이콘이 되고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로 자연스레 합류한다. 센스있는 한국인들에게 물 건너온 아이팟은 신종 명품 액세서리인 양 목에 걸리고, 아이폰을 사기 위해 밤새 미국 매장 앞에서 진을 치는 진풍경까지 벌어진다. 오늘날 애플이 가진 마력이다.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제품 구매 결정은 단지 성능, 가격 혹은 주변기능의 탁월함으로만 성사되진 않는다. 기술 발달로 제품의 가격대가 떨어지면서, 대개의 조건은 엇비슷해져 가는 것이 현실이다. 디자인과 인터페이스에 승부를 거는 애플에게 승산이 있는 이유다. 적어도 전자기술은 성능은 기본에다 패션 장신구로 어필하고 그 스스로 문화로 진화하는 능력에 생존 조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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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ID 기술의 가능성에 도전하기 (따뜻한 디지털세상 0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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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ID와 함께한 제주 여행기

예정보다 늦게, 아주 한밤중에서야 비행기가 나를 제주 국제공항에 토해 놓았다. 내리자마자 RFID 꼬리표가 붙어있어 위치추적이 가능한 내 수하물 꾸러미를 찾으러 향했다. 수하물 스크린에 내 좌석번호가 뜨면서 내 물건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나오고 있었다. 얼마 전만 해도 중간에 여행 짐이 바뀌어 다른 사람의 속옷을 들고 집에 들고와 어찌할까하던 곤혹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이야 짐 주인의 신원 확인이 RFID 칩에 의해 실시간으로 대조되어 이루어지니 전혀 그럴 걱정은 없고, 통관을 위해 세관카드를 작성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나가면서 꼬리표를 통관대에 장착된 리더기에 갖다대니 저절로 가방 속 내용물들에 뭐가 있는 지가 죽죽 입력되고, 신원이 일치되자 ‘통과’ 사인이 떨어진다. 해외에서 국내 이동통신 전화요금으로 로밍서비스를 받던 휴대폰의 배터리가 다 죽어가 공항내 잡화점에서 재충전하여 밖으로 나섰다.
공항 입구를 나오자마자 정체불명의 여러 곳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요샌 공간 위치추적을 통한 표적마케팅 업체들이 서로들 밀고당기는 경쟁이라, 도대체가 어찌 내가 있는 곳을 알아냈는지 주위 저렴한 호텔 가격 정보를 안내하는 메시지가 쉼없이 휴대전화 액정으로 넘쳐난다. 다들 살피려니 피곤이 밀려들어, 간단히 가격과 거리를 비교해 근처에 묵을 호텔 예약을 해놓았다.
비행기 이륙 전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AT&T 무선 인터넷 이용권을 사서 랩탑을 이용해 예약했던 자동차 대여 서비스 차량 조회 내역도 휴대전화로 같이 날아 들어온다. 앞으로 며칠 제주도 해변 여러 곳을 다닐 참이라 아예 차를 공항에서 대여하기로 했다. 공항 렌터카 서비스에 도착했더니, 차량 인수 절차는 의외로 간단했다. 한밤중이라 직원도 없었다. 달랑 RFID 리더기 하나 매달려 있다. 거기다 내 휴대폰을 갖다대보니 신용카드 결제부터 예약 확인, 그리고 차량 상태를 알리는 출고 증명 내역을 기록한 영수증이 빠져나오고 자동차 키가 슬롯 박스 안에서 툭하고 떨어졌다. 차를 몰고 호텔에 들기 전 와인 한 병과 면도기를 사기로 했다.
요 사이 이탈리아 와인에 입맛을 들이면서 잠들기 전 꼭 와인을 마시는 버릇이 생겼다. RFID 칩에 저장된 상품 정보 덕분에 특정한 와인의 숙성도나 가격, 원산지, 전문가의 평가 등을 꼼꼼히 읽고 익히는 버릇이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 면도를 하고 떠나려는 차에, 낯선 사람이 찾아왔다.
어제 그 편의점 직원이었다. 그 이는 무척 낯익은 내 서류가방을 들고 서 있다. 그 직원은 내가 위치한 곳을 찾기 위해 편의점 실내 감시 카메라로 얼굴을 확인하고, 그리고 이와 연동되어 있는 RFID 칩이 들어있는 면도기 케이스의 이동경로를 추적해 손쉽게 알아냈다고 말한다. 어제 편의점에서 면도기를 집으려다 몇 번이고 망설이던 기억이 퍼뜩 떠오른다. 하나는 쓰다 버려도 추적과는 상관없던 목욕탕 전용 일회용 면도기 한 다발, 다른 하나는 한 유럽 가전업체의 RFID 칩이 들어있던 면도기 사이에서 무엇을 살까 엄청난 갈등을 겪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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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에 있을 법한, 아니 우리 주위에서 이미 볼 수도 있는 RFID 기술 사례들을 마치 실화인양 살펴봤다. 분명 일부는 현실이 되어 우리 주위에 성큼 다가서 있다. 제주 국제공항의 수하물 처리 시스템 사례는 이미 응용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RFID 칩으로 가방 내용물을 인식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이는 또한 여러 복잡한 사생활 문제가 걸려 있기에, 실현 여부에 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휴대폰과 연결된 자동차 대여 서비스는 충분히 가능한 얘기고, 언젠가 실현될 수 있을 법한 얘기다. 면도기 칩으로 가방을 찾는다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이미 필립스가 물류관리 목적으로 이를 시행하고 있질 않은가? 예서 가방 주인을 찾는 설정은 선행으로 끝났지만, 물론 면도기 상품에 내장한 RFID 칩은 소비자의 위치 추적 등 프라이버시 논란을 낳기도 한다. 아무튼 이 새로운 기술은 앞으로 우리가 이동하는 공간 어디든 등장하고 삽입될 확률이 높다. 분명한 것은 이 새로운 기술이 삶의 편리를 높이고 인간과 사물, 사물들 스스로를 연결하고 소통할 수 있게 해 경제, 사회 각 영역에서 크게 이바지한다면, 우리의 정보환경에 제 2의 혁신을 일으킬 충분한 힘이 되리란 것이다. 이 글은 그러한 긍정의 기술적 가능성을 살펴보는데 집중해보고자 한다.         
우선 용어 정리를 시도하자면, RFID (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는 한국말로 무선주파수 식별 혹은 인증으로 옮길 수 있다. 아직은 통일된 용어 없이 그저 영어의 이니셜을 쓰니 여기서도 그리 쓰도록 하자. RFID의 기본 원리는 특정 전파를 쏘면 대상물에 부착된 꼬리표(태그)로부터 되돌아오는 신호를 분석하여 이의 정보를 식별해내고 판독하는 것이다. 이 고유 전자 식별과 안테나 혹은 코일이란 것이 달려있는 요 꼬리표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든 추적하고 식별하고 그 안에 담겨진 정보 내용을 수집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RFID 기술의 응용 범위와 가용 능력이 무한하다.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RFID 기술들


미국과 유럽의 대형 유통업체들이 주로 물류, 유통업무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도입한 RFID 기술은 이제 유비쿼터스 사회를 위한 기초로 각광받고 있다. 이미 국내에서 교통카드와 고속도로 통행료 결제에 사용하는 하이패스 카드 등에는 RFID 스마트 칩들이 삽입되어 범용으로 쓰인다.
어디 구간에서 들어오고 나며, 얼마만큼의 시간을 쓰고 어떻게 구간 이동을 하고 있는 지를 집적하는데 이 기술만큼 편한 것이 없다. 최근 한 전시회에서, 한 국내 통신사는 휴대폰을 통해 양주와 식품의 상태 여부를 확인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이는 거의 모든 상거래 제품으로 확대될 수 있다. 대형 할인매장의 쇼핑 카트에 RFID 리더기를 각기 장착해, 쇼핑 물목의 정보를 확인하고 이를 개인 카트에 담음과 동시에 결제가 이뤄지는 때가 멀지 않았다.
또한 늦은 밤 귀가하는 시민들이 택시 정보를 확인하거나, 버스 정류장에 부착된 태그로부터 버스 정보를 제공받는 RFID 대중교통 서비스도 이미 속속 나오고 있다. 횡단보도와 도로변 장애물 발견시 위험을 알리는 장애인 전용 태그 서비스는 이미 일본에선 실용 단계에 있다. 우리도 이에 대한 응용이 필요하다. 최근 영국에선 축구 등 스포츠 시즌 티켓 구입시 RFID 칩이 들어있는 스마트카드를 판매한다고 한다. 관객 팬의 성향들과 주로 몰리는 구단의 주요 매치 등을 파악하고 분석하는데 유용할 것이다.
우리에겐 몇 년 전부터 시작된 RFID 국가 시범사업도 주목할 만한 분야이다. 예컨대, 조달청의 물품관리 프로그램, 한국공항 공사의 항공수하물 추적통제 시스템, 산업자원부의 수출입 국가물류 인프라 지원,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광우병 등의 RFID 관리프로그램, 그리고 국방부의 탄약관리 프로그램은 이미 이 기술을 도입해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IT분야의 신성장 동력이자 중요한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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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으로 RFID가 대접받고, 거기서 더 나아가 ‘U-라이프’ 실현으로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람, 사람과 사물간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야심찬 국가 계획이 착착 진행 중이다. 구체적으로 정부와 정보통신부의 유비쿼터스 코리아 (U-Korea) 계획안과 U센서 네트워크(USN)라는 대규모 지능형 네트워크 공간 모델에 대한 기대감에 부응해서 RFID 기술의 영역이 커지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공 공기관들의 효율성 도모와 함께, 경제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RFID 기술 영역의 시장 가능성을 크게 점친다. 세계 시장규모가 2010년에 1백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이라 하니 잠재력이 큰 영역이다. 이미 해외 거대 글로벌기업이 점차 인프라 솔루션 분야, 센서, 칩, 태그, 리더 등 분야별로 진출해가는 상황이지만, 그 틈새를 찾아 미들웨어를 개발하거나 새로운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이 기술을 어느 나라보다 경제/사회 전반으로 확대할 때 물류비용 절감 효과가 막대하리라 본다. 초고속 통신망 사업에 연이은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활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한 15년전쯤 국내 최초로 한국마사회가 마필 관리를 위해 경주용 말들에 RFID 꼬리표를 달면서 이의 기술적 효율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니, 지금의 기대치는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이젠 낙농이나 야생 동물 등에 확대되고, 말없는 상품들과 대상물들에 적용되는 형국이니 RFID의 적용 범위는 끝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기술 능력의 확대로 RFID 칩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고 가격은 떨어지고 지능화하는 추세다. RFID기술의 발전 추이를 보면, 단순히 이 기술을 이용한 물품 인식에서, 현재의 감지 및 이동경로 추적 단계, 그리고 향후 사물들간에 이뤄지는 자율적인 인공지능 통신 단계로 점차 발전해 나갈 전망이다.  


선결되어야 할 문제들


RFID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RFID의 전파가 미치는 인체 위험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예측이 없다. 전파가 미치는 국민 건강 위험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고 충분히 평가하고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기술적으로 바코드를 대신해 사물들이 각자 고유의 변별력이 생기고, 정보가 작은 칩 속에 저장되고, 그 칩의 위치가 상시적으로 관찰 가능해지면 사회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최근 국내 프라이버시 침해 사례들이 기술적으로 고도화되고 지능화되는 추세를 감안하면, RFID 칩이 그 잠재적 복병이 될 확률이 크다. 누군가 RFID 칩을 내장한 대상물을 이동 중에도 소지한다면 그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예를 들어 최근 발급되는 미국 여권에 RFID 칩이 장착되고 있다. 그 안에 들어갈 정보의 축적도 문제지만, 개인은 고유의 식별자에 의해 이동 중에도 정보가 채집될 수 있다. 더 심한 경우 칩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몸속에 들어가 숨기도 한다. 몇 년 전 멕시코 정부가 법무장관을 비롯한 법무부 직원 수백여 명에게 신원확인용 RFID 칩을 이식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병원 환자들의 RFID 칩 이식은 아직도 미국에서 논란거리다.
기술적으로 일본의 히타치가 개발한 0.03 밀리미터의 초소형 RFID 칩인 일명 뮤-칩(μ-chip)은 128비트의 정보를 송수신할 수 있다 한다. 거의 눈에서 숨고 사라지는 기술의 수준에 이르렀다. 더군다나 정보 저장능력을 고려해보면, 이는 지구상 거의 모든 대상물에 고유 아이디를 부여 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 위험성을 쉽게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이 소형 칩은 연성 또한 강해 지폐에 내장할 수도 있다. 이미 유럽은 RFID 칩 내장형 지폐의 실제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한다. 뮤-칩을 장착한 지폐가 리더 즉 인식기를 통해 스치기만 해도 지폐의 진위 여부를 정확히 판독할 수 있고, 더불어 지폐의 유통경로까지 추적해 음성 자금도 손쉽게 잡아낼 수 있다고 하니, 그의 순기능이 돋보인다.
뮤-칩에서 보듯, 하나의 기술에도 그 순기능과 역기능의 가능성이 항상 공존한다. 지난해 과기부의 RFID 기술영향평가 심의에서도 드러난 바이지만, 이 기술이 지닌 생산성과 국민 복지 향상과 기여와 함께 프라이버시 침해 등의 문제가 항시 상존한다. 이의 쓰임새에 따라 개인 프라이버시의 크나큰 멍에가 되기도 하고, 유통과 물류 효율을 높이고 사회의 비용을 절감하는 우리에게 필수의 성장 기술이 되기도 한다. 멕시코의 생체 칩 사례나 미국의 RFID 칩 여권은 분명히 옳은 방향에서 진행되는 국가 사업들의 사례들은 아니다. 오히려 인권 침해의 오해와 결과들을 낳을 공산이 크다. 우리는 이런 전철을 밟아서는 곤란하다. 과기부의 권고에서처럼,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는 각 부처의 RFID 시범사업에 프라이버시 영향평가를 의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결과제는 RFID 기술로 다치는 시민들 개개인 신상을 보호할 수 있는 관련법 제정이 시급하고, 이 새로운 미래 기술의 순기능을 부각시키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투자 등의 국가 공공사업의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버려진 칩들과 리더기 등 전자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기술과 환경 친화적인 재료를 개발해야 한다는 과기부의 제안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물의 정보화’를 위한 RFID 기술 


정통부는 ‘전자태그의 보급이 ‘사물의 정보화’를 위한 첫걸음’이라 제안한다. 매력적인 문구다. RFID 칩과 U센서 기술을 통해 인간이 사물들에게 말을 걸고, 사물들끼리 서로 연결되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세상을 지칭하는 것이리라. 지난 10여년간 정부 주도의 정보초고속망 사업이 정보 속도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의 정보화 위상을 키우는데 공헌했다면, U-코리아 사업의 일환으로 벌이는 RFID 주요 사업은 사물들을 상호 연결하고 멍청한 사물들을 똑똑하게 바꾸는데 또 한번 크게 이바지하리라 보인다. 휴대폰과 인터넷이 그랬듯이 U-라이프를 위한 ‘사물의 정보화’는 우리에게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일상 공간 경험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기왕에 제대로 사물의 정보화 혁명을 일으키려면, 민간 유통, 물류 시장에서 RFID 기술의 성장을 독려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공공 부문에서 바람직한 RFID 적용 사례들이 많이 발굴돼야 할 것이다. 예컨대, 강서구청 등촌로의 가로수 5백여 그루에 지리정보시스템(GIS)과 RFID를 이용해 이의 위치, 수종, 병력 등을 모바일로 관리하는 첨단 가로수관리시스템 시범사업은 그 좋은 경우이다. 앞서 소개되었던 노약자나 장애인을 위한 거리 공간에서의 위험 감지 반응 시스템도 집중적으로 논의되어야할 사안이다. 사물의 정보화가 시민 영역의 발전과 편의성을 도모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RFID 기술 영역에서도 성장과 복지가 같이 가야 한다. 그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는 최소화하는 노력이 경주돼야할 것이다. 그럴 때만이 사물의 정보화란 매력적 문구의 의미가 우리 모두에게 진실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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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다

오늘 한 학교에서 총장 인터뷰를 봤다. 답답하다. 들러리를 선 느낌도 들고... 시스템에 들고자 또 다른 관문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내 모습이 서글프다. 상처받고 몸은 지친다. 이 세월을 얼마나 지속해야 할까? 좀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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