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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zco / 꼬리깐차에서 든 생각 1

 

꼬리깐차 QORIKANCHA는 께추아어로 golden courtyard, 실제로 잉카 시대 때는 금으로 둘러싸인 태양 신전이었다고 한다. 1650년과 1950년, 꾸스꼬의 기록적인 지진에도 거의 금 하나 가지 않고 살아 남았다는 꼬리깐차의 기저부 잉카벽은 매끈하고 아름답다. 이 사진은 거의 아무 것도 알아볼 수 없게 엉망이지만.. ㅡ.ㅡ

(잉카의 돌벽은, 건물의 쓰임새에 따라 꼬리깐차처럼 매끈하고 반듯한 벽이 있는가 하면, 제일 흔하게 볼 수 있는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돌들이 어울린 벽, 농경지 테라스의 벽에서 보듯 다듬지 않은 돌을 쌓아놓은 거친 벽 등 여러 가지 스타일이 있다.)

 

그러나 지금 볼 수 있듯 꼬리깐차는 기저부와 일부 벽만 남아 있고, 그 위엔 iglesia de santo domingo가 세워져 있다. 그 교회의 건축에 쓰인 것이 바로 잉카 태양 신전의 돌. 그보다 기가 막힌 건, 프란시스꼬 삐사로가 동생인 후안 삐사로에게 꼬리깐차를 주었고(무슨 권리로?), 후안이 죽을 때가 되어 도미니크 수도회에 기부했다는 사실이다.(이 역시 무슨 권리로?)

 

도미니크 수도회는 꼬리깐차의 입장료로 이 역사적인 유적의 관리도 하고 연구도 하고 지역 커뮤니티 지원 사업도 하고 문화행사도 한다고 선전하지만, 내 눈엔 너무 얄팍해 보일 뿐이었다. 제국의 정복자들과 동행해 하나의 문명을 파괴하는데 앞장섰을 뿐이면서 착한 주인 행세 하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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