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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29
    F코드(4)
    ninita

F코드

기타를 칠 줄 알았으면 하는 오래된 소망은, 그림을 잘 그렸으면 좋겠다는 것처럼 나한테는 로망에 가까운 일이다. 중 3 때 마지막 시험을 끝낸 후, 기타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 열심히 한다고는 했지만 F코드를 제대로 짚을 정도로는 하지 않고 겨우 한 달 만에 내팽개쳤었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스무살 하고도 몇 살쯤 더 먹었을 무렵부터 다시 기타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집에 내 기타가 남아있을까? 이번에 집에 가면 찾아보고 혹 있으면 들고 와야겠다, 그렇게 맘을 먹었다. 하지만 웬걸. 집에만 오면 기타 찾는 걸 잊는 것이었다. 그렇게 또 몇 년이 흘렀다. 며칠 전에 꿈처럼 멍하게 기타 생각이 둥실 떠오르길래 냉큼 엄마한테 물어봤다. 엄마 옛날에 나 갖고 놀던 기타 아직도 있나? 어쩌면 피아노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거 작은 방 농짝 위에 있잖아, 하는 거다.

 

아, 있었다. 예전 그대로, 가방엔 지퍼가 떨어진 채로, 주머니에 있던 피크가 어디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신이 날 수가. 인터넷을 뒤져 겨우겨우 튜닝은 했어도 기억나는 코드가 하나도 없어 그냥 조카랑 기타 몸통을 두드리고 놀기만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기타첫걸음교본을 사왔다. 얼마나 가겠냐 싶으면서도, 다시 찾은 기타인데 오래오래 갖고 놀아야지, 하는 거다. 쉬운 코드들 먼저 짚어보는데 그럭저럭 소리가 나는 게 신기하고 재미나다. 하지만 역시 복병은 F코드. 아무 소리도 안 난다. 손이 아프도록 연습해야 한다는 사실은 예전에도 알고는 있었다. 그래도 혹시 왕도가 있을까, 그냥 심심풀이로 F코드를 검색해 보니, 검지에 굳은살 배기도록 연습하란다. <미저리>의 한 구절도 나온다. 세상에는 내가 할 수 없는 수백만 가지 일이 있어. 커브 볼은 못 쳐. 팔팔하던 고등학교 때도 못 하던 거야. 물새는 수도꼭지 못 고쳐. 롤러스케이트 타기나 기타로 F코드 잡고 제대로 소리내는 거 못 해. ㅎㅎ 그래, F코드란 그런 거다.

 

근데, 그거 말고도 사는 데 F코드가 참 많다. 오기가 생기다가도 제풀에 죽어버리고 말게 되는. 이번에는 어떻게 될 지?

 

(문득, N'aitun에서 본 재즈기타 공연이 생각난다. 베이스기타 주자는 오동통하니 배가 뽈록 튀어나온 참 귀여운 남자였는데, 흘러내리는 얇디 얇은 기타를 계속 추어올리면서도 참 멋진 연주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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