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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현자파업...무제

인터넷을 뒤적이다 현자노조의 정리해고 반대투쟁과 관련한 글이있길래 옮겨 보았다. 현자노조에 있어 잊지못할 투쟁으로 기록될 이투쟁은 10여년 가까이 흘러오면서 조합원들의 기억속에만 남아있는 모습이다.

실패한 상흔은 오래 지속된다
- 98 현대자동차, 파업을 넘어서는 사람들이란 제목의 야후 블로그에 임인애(LAN(Labour Art Network) 대표) 라는 분이 기록해 놓은 것이다.

 

 

1. 들어가며

노동조합이 합법화되고 공식기구로 인정받는 만큼, 파업 또한 하나의 제도화된 투쟁의 수단이다. 비록 매스 미디어가 그것을 불법파업이라 보도하고 사법부가 탈법행위로 규정하더라도, 파업은 이미 사회적으로 공인된 쟁의의 방식이다.

물론 87년 여름 이전까지는, 자본의 병영적 통제, 노동자들의 무권리 상태였던 생산현장에서 노조결성 시도조차 번번이 좌절됐고, 노조라는 조직의 사회적 위상은 전무했다. 그러나 기업의 생산활동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면서 폭발적으로 전개된 87년 여름부터 89년 겨울까지 노동자들의 투쟁은 ‘노동조합’이라는 조직과 ‘파업’이라는 집단행동을 노사관계는 물론 한국경제와 사회적 관계에서 주요한 변수로 등장시켰다. 그렇게 87 대투쟁을 시작으로 지난 13년간 거듭된 파업은 이제 사회적 승인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고 사회 심리적인 승인 절차까지 통과한 파업의 권리는 여전히 불법의 메커니즘 속에 포위되어 있다.

관련법률의 복잡한 규정과 절차, 주무 감독기관의 재량권, 제도언론의 여론조작, 무노동 무임금, 노조재산 가압류, 노동자개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업무방해 등의 고소고발 등 파업을 향한 족쇄와 훈육장치는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파업은 아직도 불법을 감수하는 노동자의 결단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법이냐 불법이냐에 상관없이 파업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사회적 행동의 하나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런데 파업이란 행위가 사회 속에 정착되면서, 노조운동을 자본의 축적전략 속에 통합시키는 노사관계가 더욱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작동되기 시작했다.

노사정위원회라는 사회적 합의기구가 탄생하고 노동운동의 체제 내 포섭이라는 명백한 대세 속에서, 파업의 속성과 흐름이 바뀌고 있다.


“특정한 집단의 집합행동의 레파토리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예전의 집합행동을 겪었던 인원들의, 이와 관련한 축적된 경험이다”*주)

라는 틸리(Tilly)의 말처럼, 파업에 대한 한국노동자들의 판단은 87 대투쟁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노동조건의 변화와 민주노조 결성이라는 목표로 싸웠던 당시의 파업현장 곳곳에 공통적으로 내걸린 슬로건은 “인간다운 대우”였다. 요구사항이라고 하기엔 구체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모호하지만 오히려 생생한 느낌의 표현 속에 그때 파업의 질적 특성이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는 것이다. 정치하고 분명한 목표를 다듬을 겨를도 없이 인간다운 대우라는 추상적인 요구를 과감하게 내걸고, 최후의 수단으로, 최고의 행동으로, 예측불허의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돌진한 것이다. 결과는 당연히 효과적이고 결정적이었다. 파국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공장가동을 멈춤으로써 자본을 압박하는 파업의 의미가 그렇게 노동자들의 기억에 각인되었다. 인간다운 삶에 대한 열망, 수단과 목표를 가로지르는 격렬한 직접행동으로서 파업의 그림-87 대투쟁에 대한 집단적 기억이란 결국 한국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는 파업의 진정성에 대한 것이었고, 끝까지 싸운다는 감각과 에너지였던 것이다.

*주) C. Tilly, “Repertoires of Contentions in America and Britain,” in M. Zald and J. McCarthy (eds.), The Dynamics of Social Movements, Cambridge, Mass: Winthrop., 1979

그러나 20세기말 한국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전개된 파업들은, 극단에 선 노동자들이 끝을 모르고 덤비는 투쟁이라는 전통적인 의미로만 분석할 수 없는 복잡한 관계망을 가진다. 이제 파업은 핵심 컨셉과 치밀한 계획, 적절한 수위, 정세나 국면을 타고 잡는 일정이 필요한 하나의 기획이 되었다. 계획과 일정이 분명한 수단으로서 파업은 불시에 터져나오는 돌출적인 에너지가 아니라 충분히 예상가능한 행위가 되었다. 그래서 노동자의 파업과 자본이나 정부의 대응구도는 시시각각 톱니처럼 잘 맞물려 치고 빠지면서 전개되고 준비된다. 파업은 정부나 자본에게도 아주 중요한 기획이벤트가 되었고, 파업을 누가 일으키느냐에 대한 노동자의 독점권도 사라졌다. 급기야 98, 99년 구조조정이 걸려있는 파급력 있는 핵심 사업장 파업들에서 검찰이나 정부의 유도, 개입 혐의가 드러나기도 했다. “그거 우리가 했어!” 라는 어느 검찰 공안부장의 취중진담으로 새나올 만큼 일반적인 상황이다.

그리고 파업은 철저히 하나의 수단이 되어버렸다. “조합원동지들! 투쟁의 목적은 협상에 있다”

*주1), “교섭 자체를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 사용자들을 교섭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하여”

*주2), “파업은 목적이 아니고 수단입니다.”

*주3) 노조지도부들은 협상을 위한 압박과 수단으로 파업의 역할을 강조한다. 파업의 전시효과가 부상되고 역동성은 거세된다. 현실적으로는 양보교섭을 추진하면서 총파업투쟁을 선언하는 이중적인 행동이 불가피해지면서, 총파업 선언은 갑자기 유보되고, 마침내 철회된다. “양치기 소년의 악명을 벗고 외로운 늑대로 돌아가겠습니다”

*주4)라는 지도부의 발언은 이런 현상을 고백하고 있다. 단지 압박용이며 수단인 싸움에 누가 목숨을 걸겠는가. 그런데, 구호는 언제나 “목숨을 건 결사항전”, “물러서지 않는다!”이다. 파업은 끝까지 싸우겠다는 힘을 실감할 수 없는, 인위적으로 계획되고 조정되는 어떤 행렬처럼 전개된다.

*주1) 1998년 8월 22일자 현자노조 「중앙비대위속보」 87호.
*주2) 문성현 금속연맹 위원장, 1999년 12월 20일 현자노조 임시대의원대회 산별 교육에서.
*주3) 「4. 19 파업과 지하철 노동조합에 대한 배일도 위원장 인터뷰」, ꡔ말ꡕ지, 12월호.
*주4) 이갑용(당시 민주노총 위원장), 1998년 8월 23일 울산 태화강 고수부지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정치적 변수와 세력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덩치가 큰 파업일수록 언제나 납득할 수 없는 퇴각결정이 내려진다. 수단으로 동원되고 금기의 경계를 넘지 않는 선에서 시위되는 파업이 되풀이된다. 이런 파업은 협상에 대한 압박도 되지 못한다. 삶의 조건에 대한 변화는 더욱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분기가 시작될 때마다 총력투쟁 일정은 빼곡이 잡힌다. 하나의 싸움으로 끝장을 보지 않겠다는 계획으로 덤비는 이상, 파국을 부르는 돌출행위는 내부적으로 조절되고, 혹 예상을 빗나가는 움직임이 있더라도 웬만하면 진압 가능하다. 하나의 과정으로 상정되는 파업은 이제 자본이나 정부에게 그리 큰 위협도 되지 못하는 것 같다. “투쟁의 효과를 높이려고 머리에서 쥐어짜내는 교묘한 방법이 아니라 노동자 대중의 운동방식”

*주)이라는 파업의 의미는 완전히 뒤집어진다.

*주) 로자 룩셈부르크, '대중파업론', 풀무질, 1995.

노동자들의 열망에서 터져나온 다양한 에너지는 결코 계획되고 조정되며 결정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어느 순간 눈덩이처럼 굴러가며 사회적 지형을 균열시키고, 대규모 힘 대결로 나아간다. 이렇게 밀어붙일 때 비로소 노동조건, 삶의 조건이 변화된다. 노동운동의 진정한 시민권은 이런 과정 속에서 획득되었던 것이다. 한계상황까지 와야만 비로소 현상의 변화가 열리는 것이다. 제도나 정책, 법적 장치의 개선도 여기서 그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원래 압박은 이렇게 발생한다. 그런데 이런 특성들이 과잉행위로 규제되고, 87년의 감수성으로 파업대열에 참가한 노동자들의 에너지가 사회적 합의라는 규율 속에서 걸러져서 노조조직 내로 강제되고 가공되어 협상테이블 위로 올려지는 경로를 채택하는 파업에서, 평조합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찬반투표와 지침을 명확히 따르는 것뿐이다.


더 이상 파업은 최후의 수단도 최상의 도구도 아니다.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기억, 87 대투쟁의 감각으로 움직이는 파업이란 지금의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관례적인 ‘파업’을 지속하는 한, 새로운 계획은 입안될 수 없으며 변화란 불가능하다. 이제 세기말 현장의 파업과 정직하게 마주서기 위하여, ‘98 현대자동차 파업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동시에 파업에 대한 상상력을 복원하기 위하여 공식적인 체계를 벗어나는 움직임과 미세한 결들에 주목하고자 한다. 비록 그런 것들이 공적 영역에서 배제당하고 파묻혀 버렸지만, 왜 싸우는가,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던지는 구체적인 흐름이었기 때문이다.

2. 파업과 파업 너머

1) 게임의 룰

파업은 공장가동을 멈추면서 시작된다. 파업의 끝은 다시 공장을 돌리는 것이다. 파업은 조업을 전제로 한 생산활동의 일시정지이다. 파업의 끝, 곧 공장으로 복귀라는 전제가 분명한 싸움이다. 이것은 파업에 존재하는 확고한 게임의 룰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 규칙을 파괴하는 것은 파업이라는 질서를 벗어나는 싸움이다.

“공장을 완전히 내려 앉히고 떠날 것이다.”
“노동자 손에 회사 망하는 거, 똑똑히 보여주겠다.”
“그냥 갈 수 없다. 같이 죽자.”

*주)
*주) 1998년 8월 14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파업 농성장 평조합원 텐트.

“회사 또한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 진짜 현대자동차 간판도 같이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런 것 보여줘야 돼요. 그래서 남아 있는 겁니다.”

*주)
*주) 1998년 8월 21일, 파업 농성장 평조합원 텐트.

“더 이상 무얼 망설이는 거야? 갈껀데, 나는 갈 사람이야.”

*주)
*주) 1998년 8월 21일, 파업 농성장 3지대 사수대 텐트.

“더 이상 미련도 여한도 없다. 후회없는 한판 싸움을 하고 싶다. 그리고 간다.”

*주)
*주) 1998년 8월 14일, 파업 농성장 평조합원 텐트.


98 현자 파업공간에는 파업의 룰을 벗어던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체 파업 공간의 공기를 뜨겁게 장악하고 있었다. “간다!”라는 짧은 표현 속에 함축된 그들의 전술은 지옥 같은 노동의 대가를 이 싸움에 “건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 공간을 구성하는 압축된 금기의 에너지였으며, 노조의 공식적 채널을 통해서 발표되는 “비폭력 평화투쟁”, “아름답고 질서있는 투쟁”이라는 기조와 끊임없이 어긋나고 있었다.

또한 압박하는 방식으로 동원되는 파업 일반론을 정면에서 부정하면서 파업보다 더 극단적인 행동전략을 선택하고 있었다. 이것은 십수년 라인을 타던 현장으로 복귀하겠다는 집착을 던져버리는 데서 비롯된 파업의 질서를 넘어서는 행위였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후회없는 싸움’이 일자리에 대한 욕구를 거세하면서 작동되는 극단적인 메커니즘이었다. 공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결행되는, 파업의 룰을 어기는 싸움방식. 이것은 공식적인 담론의 장에 결코 드러날 수 없었던 98 현자 파업의 실물적인 흐름, 또 다른 질적 특성이었다.

“공장 떠날 결심 이미 굳혔다. 여기서 어물정거리다 이상하게 끝나면 내 인생이 너무 비참하고 찝찝해질 것 같아, 가는데까지 가보자는 거다. 어디 가서 밥 못 먹고살까, 자동차에 대한 미련 다 끊어냈다. 좀 다르게 싸우고 싶다. 정말 끝나도 좋다.”

*주)
*주) 1998년 8월 10일, 파업 농성장 평조합원 텐트.

“우리는 목숨까지 걸었어! 그거 알아 이 새끼들아?”*주)
*주) 1998년 8월 10일, 사측의 조업 시도로 몸싸움이 벌어진 1공장에서.

“더 이상 볼 거 뭐 있노? 공장 박살내고 집에 가자!”*주)
*주) 1998년 8월 21일, 파업 농성장 문선대 텐트.

“나는 정리해고명단은 안 받았지만, 이 싸움에서 지고 현장에 돌아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결심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표 쓰겠습니다.”*주)
*주) 1998년 8월 10일, 파업 농성장, 5지대 어느 사수대와의 인터뷰.

다시 일을 한다는 전제를 배제하는 싸움, 게임의 규칙은 무너진다. 공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생각들은 제도화된 투쟁수단으로서의 파업의 아우라를 허무는 극단적인 행위로 반전된다. “단 한 명의 정리해고도 수용할 수 없다!”는 표현에는 굴복하여 수용할 경우나 끝까지 거부할 경우, 그리고 패배하여 강행될 경우 모두 공장을 떠나야 한다는 결단을 요구하고 있었다. 현대자동차 파업은 정리해고 명단을 던진 회사(자본)를 향하여 전선을 쳤다. 그런데 98 현자 정리해고자들에게 이번 ‘파업’은 조업의 일시중단, 노동의 일시정지가 아니라 ‘끝’을 내는 싸움이었다. 그들은 파업 저 너머 또 다른 출구를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파업의 가시적 효과를 전술적으로 계산하면서 정치권 움직임과 당시의 국면, 여론의 변수를 끊임없이 고려해야 하는 지도부로 하여금 파업과 파업 너머, 그 사이에 또 하나의 바리케이트를 쌓게 한다. 98 현자 파업은 두 개의 바리케이트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할 수밖에 없는 이중구속을 강제당하면서 숨막히는 싸움을 감당하고 있었다.

“우리 지대에는 명단 받은 사흘후 사수대에 결합된 조합원들이 많은데, 사실 이 사수대 막사로 오기까지 엄청난 고민과 고통 속에서 사흘 밤낮을 술로 지새고 결단을 내린 겁니다.
사실 지금도 엄청난 고통을 느끼면서 밤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단지 우리에 의해서, 조합에 의해서 강제되거나 통제되고 있는 거지, 가더라도 그냥 안 간다는 심정 하나로 버티는 거 같아요.”*주)
*주) 1998년 8월 11일, 파업 농성장, 2지대 어느 사수대와의 인터뷰.

“제가 굴뚝에 올라오기 전에 사수대하고 며칠 자면서 느낀 건데, 와와…정말 겁나더라고요. 조, 반장 책상 다 부수고 관리자들 얻어맞고, 이거는 둘째 문제고, 공장 작살낸다, 공장에 불지르겠다, 이런 생각들을 진심으로 갖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시기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자율적으로 통제되도록 분위기를 조절하고 그랬는데, 노조에서 비폭력지침이 떨어지면서 오해도 생기고 그랬는데, 사실 전술에 있어서는 조합원들이 많이 자제를 하고 있는 편입니다.”*주)
*주) 1998년 8월 9일, 파업 농성장 굴뚝에서 고공농성 중이던 전직위원장 중 1인과의 인터뷰.

“내가 쓰던 공구, 내가 쓰던 임펙트, 내가 쓰던 각종 측정기, 이거를 딱 자기가 보관하는 거라. 나중에 정리해고 철회되면 가지고 들어가면 되거든. 그런 전술도 필요하다. 그런데 회사가 정리해고 철회 안하고 공권력 들어오면 그거 다 뿌수고 가야지, 뭐.”*주)
*주) 1998년 8월 10일, 파업 농성장, 조합원과의 인터뷰.

“제가 그래서 가장 미약한 방법 하나를 집행부에 제기한 적이 있어요. 우리가 10년 세월, 20년 세월에…먹고살기 위해 손에 쥐고 있던 공구가 있다. 이 공구를 싹 다 거두자! 이거를 본관 앞에 쌓아놓고 불질러버리자. 아니면 에러를 발생시켜 반납하던지…그러면 내가 보기에 이 현대자동차는 안 돌아간다. 이 공구들은 한순간에 조달 안 되는 수급불가능 구조를 갖고 있어요. 모두 수입품에다 어떤 것은 작아 보여도 임펙트 하나에 3,4백만원씩 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공구들을 총망라해서 못쓰게 만들었을 때, 가장 기초적으로 멈추게 돼있습니다. 사실 공구가 없으면 제조업은 안됩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이렇게 해서 우리의 엄청난 분노를 1차적으로 보여주고, 그래도 계속 강행하겠다면 더 강도 높은 자본을 멈추는 다른 방법…엄청난 장비들이 있지 않습니까?
사실 현대자동차에 있는 이 프레스기들은 전세계를 통틀어 하나씩밖에 없는 겁니다. 이것은 예비품이 없는 거고 또 누군가 여벌로다 만들어서 대기시켜 놓고있는 이런 구조가 아니예요. 그래서 프레스기 같은 경우에 에러가 발생될 정도의 문제를 일으켰을 경우에 사실 현대자동차는 망합니다. 보통 하나 만드는데 7-8개월이 걸리기 때문에…기계를 만들어서 갖고 들어오는 데만 1년 정도 걸립니다. 여기서 설치하는데도 3개월이 걸리지요. 1년 3개월입니다. 현대자동차는 망하게 돼있습니다.
그러면 프레스기를 영원히 멈추게 하는 방법이 뭔가? 기계성능을 이용하는 거는 키 하나면 쉽게 정리됩니다. 그런데 지금 키가 없어요. 쟤들이 키를 다 빼서 챙겨갔기 때문에. 지금은 외적인 물리력이나 엄청난 화력을 이용하는 방법 외엔 없다구요. 그것이 눌어붙거나 변형돼야 됩니다. 프레스라는 게 덩치가 크고 겉으론 우습게 보이지만 그게 엄청난 고감도, 고정밀도거든요. 약간의 변형만 가도 사용 못합니다. 그것을 가하려면 제가 추산해보니까 엄청난 돈이 필요해요. 대당 7백만원 정도입니다. 우리가 지금 당장 현장에서 그 많은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돈을 어디서 받을 수 있겠어요? 한순간에. 물론 우리가 돈 일부는 마련할 수 있어요. 돈 백만원 이상씩 들여서 약간의 에러를 발생시킬 수 있는데, 그렇게 해선 효과가 없다는 거죠.
완전히 내려앉힐 때만, 이런 구조를 한번 보여 줄 때, 아 정리해고는 더 이상 할 게 못 되는구나! 이런 인식을 가질 수 있는 대계기가 아닌가 라는 생각들을 하는데. 이런 현장의 생각과 조합간부들의 생각이 일치되지 않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극단의 지점으로 갔을 때는 그렇게 가야된다는 얘기들을 계속하고 있어요. 그냥 갈 수 없다는 말이 실제로는 이런 겁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그래요. 집행부에 반하는 행동을 했을 때 나타나는 역현상! 투쟁을 접는다고 선언하는 대(對)조합원 협박 같은 역현상 말입니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예외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측면에서 집행기조에 벗어나는 움직임이나 준비들을 섣불리 드러내놓고 추진한다는 것도 상당히 힘들어요.”*주)
*주) 1998년 8월 11일, 파업 농성장, 2지대 어느 사수대와의 인터뷰.

2) 노조는 무엇보다 평화와 안정을 필요로 한다.

“기계를 멈추는 방법”들이 은밀하게 준비되고 “자본을 멈추는 것” 그리고 “간다!”는 전략들이 비공식 경로 속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되면서 파업의 질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위협당한다. 이것에 대하여 현장조직 활동가들이나 노조간부들은 기계파괴전술이라는 이름으로 그 행위에 대한 개인적인 논평들을 했다.

“기계파괴운동 같은 것이 과거에 있었다고 하는데, 저는 그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봐요. 그러나 최소한의 저항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조합원들이 분노에 쌓여있어서 만약 공권력이 투입되면 회사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거라 판단됩니다.”*주)
*주) 1998년 8월 10일, 파업 농성장, 한 현장조직 의장과의 인터뷰.

“저는 저항은 확실히 하되, 기계를 파괴한다, 불지른다, 이런 것은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되면 보수언론의 집중적 타격이 예상되는데, 안 그래도 지금 노동운동 기운이 약화된 지점에서, 이후 노동운동 진행과정을 무척 어렵게 만들 것이라 보기 때문입니다.”*주)
*주) 1998년 8월 18일, 파업 농성장, 현자노조 조직실장과의 인터뷰.

“때리 뿌수고 나가자,. 더 이상 무슨 희망이 있냐. 저도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전망이 없다. 그래요. 그 모든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완전히 절단낸다는 것은 차마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이후 운동을 일으켜 세우는데 조그만 근거라도 남겨야 한다고 봐요.”*주)
*주) 1998년 8월 18일, 파업 농성장, 현자노조 집행간부와의 인터뷰.

이런 싸움형태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들이 실물적 흐름으로 팽창되면서 지도부의 통제는 더욱 강화된다. 그 ‘역현상’을 염려하던 사수대의 인터뷰가 있은 그 다음 날 집회에서 바로 그 예의 역현상이 일어났던 것이다.

“집행부의 비폭력 평화노선을 적극 따르라. 조합원들이 위원장의 지시에 절대 복종하지 않는다면 투쟁을 포기하겠다.”*주)
*주) 1998년 8월 12일 저녁 집회, 김광식 당시 현자노조 위원장 발언.

“우리가 만든 생산차에 손대지 맙시다. 기계에 손대지 맙시다. 파괴하고 불지르지 맙시다. 이것만은 지켜주십시오.”*주)
*주) 1998년 8월 18일 저녁 집회, 김광식 당시 현자노조 위원장 발언.

이런 집행 기조의 실행을 위하여 현장의 실핏줄이라 할 수 있는 대의원조직 등 모든 공식적 체계는 통제를 위한 전달벨트로 가동될 수밖에 없었다.

“지도부의 지침에 철저히 복무한다.”*주)
*주) 1998년 7월 22일자 현자노조 「중앙비대위속보」 57호.

“세부적인 지침은 중앙비대위 회의를 통하여 대의원에게 전달될 것이므로, 대의원의 통제에 적극 따라 주기 바랍니다.”*주)
*주) 1998년 8월 11일자 현자노조 「중앙비대위속보」 74호.

“각 사업부 대의원은 조합원 현장 출입을 철저히 차단한다.”*주)
*주) 1998년 7월 24일자 현자노조 「중앙비대위속보」 59호.

이렇게 파업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통제는 강박관념을 넘어 희극적 요소로 등장하기도 한다.

“노조 창립기념일 선물(주방세트)은 비폭력 투쟁을 위해 당분간 지급을 보류합니다. 식칼 등 무기로 사용될 우려가 있는 내용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주)
*주) 1998년 7월 25일자 현자노조 「중앙비대위속보」 60호.

“오전 11시 가족들은 어김없이 정문에 나타났다. 조직실장은 가족대책위원회를 소개하면서 ‘통제가 불가능한 집단’ 이라고 했다.”*주)
*주) 1998년 7월 24일자 현자노조 「중앙비대위속보」 59호.

사실 이런 기조는 노조의 공식적인 채널이나 매체를 통해 파업 초기부터 반복적으로 강조되어 온 셈이다.

“저는 이 양정벌에 흔적을 남기고 싶습니다. 우리의 피와 땀을 여기서 뿌리는 것이 아니라, 순결한 투쟁을 남기고 싶습니다. 영원히 지역주민과 국민들에게 기억될 순결한 투쟁을 자리매김하고 싶습니다.”*주)
*주) 1998년 8월 18일 저녁집회, 김광식 당시 현자노조 위원장 발언.

“우리는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질서있고 아름다운 투쟁을 전개할 것이다.”*주)
*주) 1998년 7월 22일자 현자노조 「중앙비대위속보」 57호.

“지도부의 지침을 따르지 않는 조합원은 회사측이 파견한 프락치로 규정한다.”*주)
*주) 1998년 7월 23일자 현자노조 「중앙비대위속보」 58호.

“노동조합은 평화를 사랑합니다.”*주)
*주) 1998년 8월 12일자 현자노조 「중앙비대위속보」 75호.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진정으로 회사를 사랑합니다.”*주)
*주) 1998년 7월 8일자 현자노조 「중앙비대위속보」 47호.

공식노동조합체계가 급진적인 행동수단을 통제한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일반화된 현상이다. “언제나 노동조합은 그들 조합원의 이해의 직접적 증진을 주된 임무로 삼아왔고, 이러한 이유에서, 관계를 맺는 다른 집단들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적대자(또는 파트너)가 될 수 있는 입장을 채택”

*주)하는 것이다. 현대자동차노조는 제도언론의 집중적 조명 때문에 노조의 공식 입장은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특히 ‘국민여론’은 전략적 선택의 아주 주요한 요소가 되는데, 이것은 한국 노조운동의 일반적 경향이다. 왜곡보도로 인한 피해의식과 여론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노조운동은 파업의 ‘표현적 기능’조차 스스로 축소시켜 왔다.

*주) 주프 비서, 「공장 점거와 산업 민주주의」, 김현우 옮김, p. 218; Joop C. Visser, “Factory Occupation and Industrial Democracy,” in Lammers and Szell (eds.), International Handbook of Participation in Organizations, Vol. 1, Oxford Univ. Press, 1989.

그러나 노조들이 어떤 온건한 태도를 취하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언제나 왜곡보도를 당할 수밖에 없다. 제도언론을 통해 표현되는 ‘여론’이란, 노동자의 파업투쟁에 대하여 절대 호의적일 수 없다. 결국 여론에 대한 지나친 고려로 선택되는 행위들의 효과나 계산은 언제나 빗나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온건한 액션을 취하더라도 언론에서 비난의 근거로 사용되는 단어들은 ‘폭력파업’, ‘불법파업’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98 현대자동차 파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 공간에서 기계파괴, 공장파괴라는 말로 표현되던 생산설비에 대한 완전한 타격들은 파업지도부의 집행권과 통제력에 의해 완벽하게 차단되고 은폐되었다. 다만 투쟁의 가시적 효과와 ‘표현적 도구’로 드러났던 쇠파이프나 공권력에 대한 방어적 바리케이트, 파업파괴자로서 행동했던 관리자들과의 충돌 등을 근거로 제도 언론들은 연일 98 현자 파업의 폭력성, 전투성을 의례적으로 강조하는 기사를 내보낸다. 이것은 그들의 파트너인 회사와 정부의 협상입지를 강화시키고 여론에 약한 대기업노조를 압박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그것이 자명한 언론의 역할이었다. 노사정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협상이라는 정치드라마 속에서 언론이란 메가톤급 조연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로 노조의 비폭력 평화투쟁, 아름답고 질서있는 투쟁이란 슬로건은 나름대로 하나의 표현전략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적 명분을 위하여 내걸은 상징이라기보다는 최근의 노조운동 속에 내면화된 이데올로기나 철학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대외적으로는 온건한 이미지 효과를 위한 장치가 되지만, 내부규율을 과도하게 규제하는 강력한 기제로 작동한다. 또한 이것은 98 현자 노조가 택한 평화적인 해결 방법인 협상에서의 강제력마저 약화시키는 족쇄로도 작용한다.

파업을 한다는 것만으로는 생산활동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정부나 자본이 예측하거나 의도하는 파업은 파업 일정에 맞춘 생산량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치명적인 타격은 정부와 자본이 예상하는 파업기간의 파격적인 지연과 확실한 압박 수단을 동원한 협상력인데, 98 현자 파업은 정부측이 정한 마지노선

*주)에 굴복함으로써, 이미 계산된 파업손실비용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예측된 일정을 파괴하지 못하면서 노사관계의 적대 개념을 거세당한, 질서있고 아름다운 투쟁 기조는 협상을 압박하는 수단이 될 수 없었다.
*주) “조금 있으면 노사당정이 협상타결 발표를 할 예정입니다. 오늘이 김대중 대통령 취임 꼭 6개월 째 되는 날입니다. 신노사관계의 시작, 좋은 시작이라고 봅니다.” (1998년 8월 24일 현자 본관 프레스 센터, 국민회의 중재단 조성준 의원 기자간담회.)

협상이란 대단히 실리적이고 개량적인 수준에 머물지라도 협상 테이블에서는 적대적으로 대립할 때 가능한 것이다. 흔히들 “노사협조주의”를 분명히 표방하는 노조조차도 “노사관계는 힘관계”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곧, 적대와 대립이 형성될 때만이 주고받는 거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적대와 대립, 힘관계. 그것은 서로 다른 전략적 ‘키워드’를 제시하는 것인데, 98 현자 파업에서는 노․사․정의 지배적 키워드가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것은 “산업평화 정착”, “평화적 해결”, “안정적 노사관계”, “상호신뢰” 등이다. 실질적인 적대는 부재했으며 노조 고유의 전략적 키워드도 없었다. 또한 협상과정의 모든 것은 “평화적 해결” 구도 속에 흡수되었다. 게다가 ‘노조운동의 100년 대계! 새로운 노사관계의 창출!’ 이 둘의 행보마저도 공권력을 막아야 한다는 데서 일치한다.

“공권력 개입 없이 정리해고 관행을 정착시키는 것, 새로운 노사관계의 창출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주)
*주) 1998년 8월 24일 현자 본관 프레스 센터, 국민회의 중재단 조성준 의원 기자간담회.

“노동조합의 100년대계, 10년대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본다면...지금 이 집행부에서 할 수 있는 만큼하고 차기 혹은 차차기에서 여건이 조성될 때 지금 미흡했던 부분을 보완하여 높은 요구수준을 제시할 수도 있을 거라 보면서 지금은 단지 다같이 살 수 있는 근간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금 원칙만을 주장한다면 마찰은 필연적인데 현장은 완전히 박살나고 긴 암흑의 터널로 가게 됩니다.”

*주)
*주) 1998년 8월 10일, 파업 농성장, 노조 교섭팀과의 인터뷰.

“여하한 경우에도 공권력 투입이 바람직하지 않다는데 노사 양측이 저희들과 인식을 같이 했습니다. 평화적으로 풀어야 합니다. 그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주)
*주) 1998년 8월 19일 현자 본관 프레스 센터, 조성준 의원 기자회견.

“공권력”에 의한 파국을 막기 위한 “평화적 해결” 구도는 결국 98 현자 파업에서 파업을 넘어서는 행위들을 막기 위한 노사정 공동의 전선이기도 했다.

3) 파업 저 너머

노사정 공동이 완벽하게 포개지는 평화적 해결구도 속에서 이미 ‘협상이란 무엇인가를 내놓으면서 시작되는 거래’가 되었다. 이 거래에서 첫 번째로 내놔야 하는 것이 바로 ‘정리해고’였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노조의 입장에서 정리해고 수용은 이미 그 가닥이 잡혀있었다.

“노사정간에 합의된 정리해고 법제화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반대한다는 건 여론적인 측면에서도 어렵습니다”라는 8월 10일 노조 교섭팀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사실들은 확인된다. 그러나 같은 날 평조합원 텐트에서 하는 판단은 다르다.
“지도부에서 유보나 최소화방침으로 협상을 한다면요?”
“우리는 도 아니면 모다. 나중에 받는다든지 쪼매만 받는다든지, 그런 거 없습니다. 이왕에 했으면 화끈하게 쇼부 쳐야지. 한사람도 내줄 수 없습니다.”
“만약 지도부가 퇴각명령을 내린다면요?”
“퇴각명령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주)
*주) 1998년 8월 10일, 파업 농성장 평조합원 텐트, 조합원들과의 인터뷰.

“단 한 명의 정리해고도 없다는 것이 전술적 선동차원이지 전략적 목표인가라는 점에서 극단적이고 모험적인 투쟁보다 희생을 최소화하는 차선을”

*주) 선택해야 하는 입장과, 협상이든 투쟁이든 정리해고 문제는 싸움을 시작한 이상 끝을 내야한다는 판단이 서로 어긋나고 있었다. 결국 지도부는 미래를 기약하는 투쟁으로 국면을 전환시키기 위해 공권력이냐 대책있는 정리해고냐라는 양자택일을 제시한다. 이것은 교섭과정에서 명단철회가 불가능할 경우 공권력과의 결전은 불가피하다고 보는 조합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주) 천창수,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투쟁에 대한 하나의 평가」, ꡔ현자노조 CUG-현장의 소리/대자보(go hmwu)ꡕ, 178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자동차 망하는 것”, “공장을 박살내는 것”에 대한 표현들이 파업공간을 끊임없이 술렁거리며 흘러다녔다. 이것은 명단을 받지 않고도 이 싸움에 결합한 많은 노동자들과 명단은 받았지만 공장복귀를 바라는 정리해고자들에게 정서적 동의를 불러일으켰다. 이는 이 싸움이 실패한다면 굴욕적인 패배감과 잘려나간 사람에 대한 부채감이라는 이중의 고통을 떠안고 복귀해야 하는 현장, 그 살인적인 노동통제가 기다리는 콘베이어 라인을 날려버리고 싶은 심정 때문에 더욱 강렬한 설득력을 가진다. 결국 파업의 끝에서 시작될 노동의 고통 때문에 그것은 ‘행위전염’ 효과처럼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마치 공장파괴 충동에 감염되는 것 같았다.

“만약에 지도부가 공장을 내려 앉히라면 내려앉혀야죠.”
“나는 사람이 온순해서 그냥 가려는데 과격한 사람들이 다 부수고 간다는군요.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더 이상은 아직 보안입니다.”
“원래 헬기 뜨고 그러면 퇴각명령으로 알아듣는 게 관행인데, 이번엔 달라요. 한번 붙는 겁니다.”

*주)
*주) 1998년 8월 10일, 파업 농성장 평조합원 텐트, 조합원들과의 인터뷰.

“들어오기만 하면, 닥치는 대로 부수고 지르고 할 것 아니야?”
“사실 회사로 보면 그게 제일 그렇지.”
“그래도 들어오면 순식간이지.”
“그게 우리 마지막 히든카드지.”
“걸고가는 거지.”

*주)
*주) 1998년 8월 21일, 파업 농성장 평조합원 텐트.

지금까지의 노조의 비타협적인 투쟁은 공권력이란 폭력적 수단으로 마무리된다. 그것만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상징으로 남겨진 채, 파업은 끝나고 조업은 재개될 것이다. 그러나 노조의 백년대계와 노동운동의 미래를 위협하는 징후들과 돌출행위 때문에 평화적 해결이 더욱 불가피해진다. 그것은 “파국을 막는다”로 표현되었다. 공권력과 대립하면서 전개될 조합원들의 극단적인 움직임을 전면적으로 통제하지 못할 경우를 예상하면, 이때 평화적 해결은 예측불허의 행위들을 차단하는 최상의 기능이 되는 것이다. 평화적 해결이 가지는 구조적 기능이 노사정 모두의 이해를 공통적으로 포괄하는 또 다른 측면이다.

당시 현자노조 CUG를 통해서 올라온 발언이나 농성텐트에서 취재한 내용들은 대개 다음과 비슷했다.

“공권력 들어오면 회사도 망하고 저도 회사를 떠나겠습니다.”
“공권력 들어오면 회사나 노동조합, 저 자신 그걸로 끝나지 싶습니다.”

*주)
*주) 1998년 8월 14일, 파업 농성장 평조합원 텐트, 조합원들과의 인터뷰.

“조합원 여러분, 공권력이 들어오면 화염병을 던지는 방향은 경찰이 아니라, 공장 쪽입니다. 명심하십시오. 공장.”

*주)
*주) 1998년 8월 16일자 ꡔ현자노조CUG-익명게시판(go hmwu)ꡕ 196번.

“만약에 공권력이 투입된다면 조합의 지침에 따를 수가 없습니다. 비폭력투쟁 그 순간에 날아갑니다. 재기불능상태로 만들겠습니다. 위원장님 힘드시겠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주)
*주) 1998년 8월 10일자 ꡔ현자노조CUG-익명게시판(go hmwu)ꡕ 184번.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패러다임이 강제되었지만 공권력 투입을 예상한 방어적 바리케이트나 계획들은 실제로 진행되었다. 98 현자 파업에서 드러나는 복합적인 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행위자들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그것은 그 파업의 가장 위험한 요소로 간주되던 직접행동의 스펙트럼이나 발생․지연․소멸까지의 과정이나 메커니즘, 동선 등을 치밀하게 추적함으로써 가능해진다. 파업의 룰을 파괴하는 행위와 통제하는 행위라는 이분법적 대립으로는 해명되지 않는 여러 요인들이 존재한다.

8월 11일 인터뷰한 사수대는 지도부의 퇴각명령이나 협상타결을 전혀 예상하지 않는 상태에서 공권력과의 대응 전술과 그때 일어나는 현상이 가지는 의미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본이 멈춘다 내지 이윤이 창출이 되지 않는 멈춤, 이런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 아니냐! 그래서 노동자라는 단위가 자본을 유지하는데 필연적인 조건으로 인정되는, 인정될 수밖에 없는 현상을 분명히 인식시켜 주어야 된다. 이런 측면의 생각을 정리해고자들이 많이 하고 있고요.
농성대오가 크다하더라도 이 농성대오가 무장을 하지 않거나 이랬을 경우 진압은 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차피 진압은 당하게 되어있는 것인데, 지금 비무장상태에 계속 비폭력 평화투쟁이라는 이 기조를 계속 유지했을 경우에 과연 이 농성대오가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겠나? 그냥 단지 23일차 전무후무한 전조합원 철야농성을 했다, 뭐 이거 외에는 사실 남을 게 하나도 없다는 거죠.
정리해고 다 됐고, 고용불안은 이미 현장에 다 자리잡았고, 그리고 이 직장이 나의 평생직장이 아니라는 인식은 이미 자리잡았고, 그러면서 새로운 배치전환과 새로운 직무이동으로 인해서 오는 새로운 고용불안... 이것이 사실은 제2의 정리해고라도 해도 과언이 아닌데, 어떻게 보면 또 정리해고보다 더 불안하거나 더 악독한 제도일 수 있어요. 지나왔던 고통과 혼란, 이것은 사실 정말로 빙산의 일각이다...이후에 오는 배치전환 그 하나만 가지고도 이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겪어야 되는 고통과 아픔이라는 것은 정말 아비규환에 비근할 정도의 최악의 상황으로 가는 수순이 안 될까 하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당한 만큼 보여주자는 거죠. 우리의 행동이 극악한 상황으로 표출되었을 때 적어도 남한에서 정리해고를 겁 없이 할 수 있는 놈은 정말 쉽지 않을 거다. 이것이 주는 영향이라는 것은 엄청나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도부는 그렇게 한다면 모두가 절단난 상태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 이후를 기약할 수 없다, 이런 생각이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이 극한으로 가는 걸 구조적으로 봉쇄하고 있다고 봐요. 과거의 통상적인 투쟁의 예를 볼 때 사실 공식단위가 이런 일을 계획하거나 선언한 적은 남한노동운동사에 없습니다. 항상 현장에서 그런 일이 돌출적으로 벌어지거나 뭐 조끔 조직적인 행보로다 벌어지면서 그것이 확산되는 유형, 이런 유형으로 사실 그런 투쟁이 진행되었던 예가 한두 번 있는데, 공식단위가 그런 행보를 걸은 적은 제 기억으로는 없습니다.
그러나 퇴각명령은 용납될 수 없다는 거죠. 위원장이 계속 얘기했던 ‘난 이 자리에서 간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어요. 그런데 어떠한 유형으로 간다는 부분은 아직까지도 확신할 수 없죠. 어떤 유형으로 갈 거냐, 조합원들과 극렬하게 싸우면서 자본이 멈추는 걸 보여주며 갈 건지, 아니면 비무장 비폭력 연좌 시위로 갈 건지, 그런 문제에 대해선 아직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공권력이 들어왔을 경우에 가족들이 남아있느냐 안 남아있느냐는 집행기조와 딱 맞아떨어지는 지점입니다. 정말 이대로 잡혀가고 정리될 것 같으면 가족이 있어야 합니다. 이후 법정투쟁이라도 할 거라면 생계문제가 걸리기 때문에 그나마 가족이 같이 보고 겪어야 서로간에 고충도 알고 장기적으로 대처가 가능해요. 그런데, 정말로 엄청난 특단의 결정을 내리고 한번 해보겠다면 병력이 들어올 경우 가족은 다 나가야 합니다. 가족이 있을 필요가 없어요. 다 귀가시켜야 됩니다. 여기서 무슨 사태가 발생할지 모르는데, 우리만 싸우면 됩니다. 가족이 있으면 행동의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지점에서 이후 공권력 대응 기조가 뭐냐... 이거는 가족을 보면 딱 알 수 있습니다. 아직은 집행기조가 애매한 상황인데, 이후 우리가 어떻게 움직일 건가, 공권력 택을 어떻게 할 건가, 이것이 마지막 지점입니다.”

*주)
*주) 1998년 8월 11일, 파업 농성장, 2지대 어느 사수대와의 인터뷰.

3. 여전히 남는 문제들

결국 공권력 투입 없이 모든 건 평화적으로 끝났다. 기계는 파괴되지 않았고 현장도 절단나지 않았다. 두 번 시도된 분신도 막았다. 초기에 불길을 잡은 서너 번의 방화시도도 조절되었다. 노조와 현장조직은 노동운동의 미래를 위하여 모두 건재하다. 그들은 지금 산별 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과제와 현장 곳곳의 현안문제들로 힘겨운 활동을 하고 있다. 다만, 277명이 해고되었을 뿐이다. 모두가 살 수 있는 근간이 마련된 셈이다. 대기업노조운동의 100년 대계를 위하여 단지 277명만 넘겨주고 모두 살아남았다. 양정동 700번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숨막히는 싸움은 98년 8월 24일 일단 종결되었다.

같이 죽자와 함께 살자, 끝내는 싸움이냐 끝없는 싸움이냐, 갈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 공권력이냐 평화적 해결이냐, 파업공간에 두 개의 전략이 잠복하고 있었다. 그 둘은 어떤 때는 서로 만나고 어떤 때는 철저하게 분리․배척되었다. 결국 하나는 배제되고 또 다른 하나는 채택되었다. 배제된 전술로 규정된 싸움 방식은 공권력이라는 마지노선을 향해서 심란하게 지연되었지만, 평화적 해결은 파업을 넘어서는 반란을 영원히 유보시켰다. 제2의, 제3의, 일일이 공개할 수 없는 수위로 준비된 무기들을 또 하나하나 해체하고 파업 농성장을 나갔던, 파업을 넘어서는 사람들. 그들 중 일부는 정리해고되어 울산을 떠났으며 일부는 정말 공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일부는 무급휴직자로 있다가 다시 콘베이어 라인 앞에 서있다.

그들의 모든 경험 중 당시에 언어로 표현된 아주 일부만 여기서 드러낼 수 있었을 뿐이다. 물론 우리가 접근해야할 중요한 98 현자 파업에 대한 분석요소들은 다양하다. 98 현자 파업의 성차별 문제를 분석했던 한 노동연구자는 “노동조합에 의해 지도되는 파업의 일반적 양상에 대한 분석조차 안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노동연구실정”

*주)이라고 했다. 결국 사후 평가에서조차 거론되지 않는다면, 실재했던 파업의 에너지는 지배질서를 위반하는 ‘위험한 상상력’, ‘불가능한 작전’으로 치부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모든 경험은 언어를 통해 재현되고 언어가 없으면 경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의 몸과 생각과 감정은 담론적으로 구현되지 않고는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실현되지 않고 공식적 기록으로 등록되지 않았지만 실재했던 시도들 중 아주 적은 한 부분, 그 표피적 현상만 추적함으로써 공장파괴 욕구에 대한 화두만 던지게 된 셈이다. 그들이 왜 그런 시도를 했으며 그때 경험한 것들과 복잡한 관계망들이 무엇인지를 치밀하게 추적해야 한다.
*주) 신병현, 「여성노동자의 집단적 정리해고와 ‘민주’노조운동」, ꡔ진보평론ꡕ 창간호, 1999.

제출할 수 있는 요구사항의 범위를 넘어 불가능한 계획을 시도하는 움직임에는 한순간에 파악할 수 없는 그들의 독특한 발언이 숨어 있었다. 그것은 담론체계에서 통용되지 않았던 몸과 감정경험의 코드였다. 그것을 언어의 질서로 재구성한다는 것은 아직 많은 과제를 요구한다. 행위 당사자들의 몸과 기억 속에만 들어있는 그 맥락들은 치밀하게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 일부 현상들만 기술함으로써 실제 경험조차 제대로 드러낼 수 없는 한계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언어적 서술구조로 재현하려는 시도는 ‘파업’에 존재하는, ‘파업’을 가능하게 만드는 감성공학에 대한 접근이기도 하다.

존재해야 하는 것이 부재하는 자리에서 비극이 발생한다. 98 현자 파업의 비극성은 이런 것이다. 집단적 기억이 어떤 행위의 반복적 리듬을 만들기도 하지만 실패한 상흔이 훨씬 강도높게 지속된다고 한다. 공장은 돌아갈 것이고 지금까지 생산의 질서는 영원히 파괴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도저히 꿈꿀 수 없는 불가항력으로 고착될 것이다. 극단적인 욕망과 극단적 좌절 사이의 너무 큰 간극은 도저히 기억으로도 진입할 수 없게 만드는 혼돈과 상실감이 되어 모든 경험은 거부되고 부정될 것이다. 그것은 영원히 물질화될 수 없는 퇴행적 에너지가 될 것이다. 파업은 파업의 질서를 고려하지 않는 힘을 필요로 하면서도 이를 제거할 수밖에 없는 움직임 속에 존재한다. 파업 행위 당사자들의 원한과 감정을 부단히 분리․제거하면서 파업 고유의 목표를 달성시킬 수 있는가는 아직 미지수인 채, 지금 노동현장은 합리적이고 과학적 시스템이 구축되는 심란한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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