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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집교수의 기고문

노동 없이 민주주의 발전 어렵다

 

신간 [현대노동시장의 정치사회학](정이환 지음, 후마니타스, 2006)에 부쳐

최장집(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

 

 

민주화 운동보다 중요한 노동시장 정책

 

IMF금융위기가 미친 가장 중요한 효과의 하나는 노동시장 문제를 한국사회의 중심 문제로 부각시켰다는 데 있다. 금융위기 이전에 노동시장 문제가 없었다거나 중요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 노동시장은 경제생활을 하는 모든 국민들의 관심사였다기보다 산업생산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문제로 이해되는 정도를 크게 넘지 못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현재 한국사회의 노동시장 문제는 모든 국민들의 삶의 조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대사로 만들어 놓았다. 한마디로 말해 이제 한국 민주주의의 향배는 과거 민주화운동의 경력이 있는 대통령과 정부를 선출하는 문제보다, 향후 한국의 경제구조와 노동시장체제를 어떻게 개혁해 갈 것이냐에 대해 어떤 비전과 대안을 갖는 대통령과 정부를 뽑을 것인가에 더 많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저성장, 고용불안, 빈부격차, 양극화 등 오늘날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의 중심에는 노동시장 문제가 위치한다.


그것은 정규직-비정규직 문제, 중소기업 내지 영세사업장 노동 문제, 실업자들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대기업의 피용자들이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을 포함하는 중산층도 예외는 아니다. 노동시장의 높은 유동성과 짧은 고용주기, 빠른 기술진보, 고령화-저출산으로 특징되는 노동인구의 구조변화, 경쟁의 치열함 등은 누구도 고용불안과 실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었고, 이러한 변화는 중산층 이하 모든 사회구성원의 안정적 지위와 삶의 조건을 뿌리부터 뒤흔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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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이러한 경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시장경쟁에서 탈락하는 열패자의 운명을 면치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진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희소한 것이 현실이다. 아마 양적 측면으로만 본다면 연구결과의 수와 규모는 오히려 늘었다고 할 지 모른다. 민주화 이후 정책결정과정에서 전문가에 대한 수요와 각종 연구용역과 프로젝트 사업이 크게 늘면서, 전문가들이나 대학교수들이 양산해 내는 정책보고서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1990년대 이래 노동문제에 대한 연구가 사양 산업화하여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대학의 지적 풍경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한국 민주주의의 중심 문제로 부각된 노동시장 연구

 

학문과 정책의 밀착은 학문이 현실에 기여한다는 긍정적 요소 못지않게 부정적 요소 또한 컸다. 그 동안의 민주정부들의 경제-노동-사회복지 정책영역은 한국사회에서 노동문제에 대한 보수적 콘센서스의 범위 내에서 움직였기 때문에 많은 연구결과들이 그 협애한 범위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많은 연구자들이 외국의 이론이나 정책, 제도의 사례들을 맥락을 무시한 채 기계적으로 한국 상황에 적용하는 일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수요자의 요구에 부응하여 이론이나 개념을 자의적으로 사용하는 예도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나 전문가에 의한 그간 연구는 이론적으로 부정확할 뿐 아니라 한국적 현실 내지는 현장과 많이 괴리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한국 노동운동은 이론의 빈곤 내지 비교연구의 결핍 때문에 현실에서 실천 가능한 대안을 발전시키지 못함으로 인해 크게 위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현장의 노동운동 지도부나 활동가들의 문제라기보다 지식인과 전문가들의 책임이다. 노동운동에 친화적인 진보경향의 지적 영역에 있어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날 권위주의 하에서 그리고 민주화운동과정에서 한국의 노동운동은 맑시즘의 강한 영향과 더불어 사회주의 급진이념의 전통을 발전시킨 바 있다. 오늘날에도 관성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러한 접근은 구체적 경험연구와 앞선 나라들의 사례에 대한 비교연구를 자극하기보다 경시하게 하는 일정한 제약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진보경향의 지적 영역에서 또 다른 하나의 흐름을 보게 되는데, 미국식 자유시장 모델에 대한 무조건적 거부와 유럽식 사민주의 체제에 대한 비현실적 선호가 그것이다. 그러다보니 미국식 경제모델은 구체적이고 분석적인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나쁜 것을 집약한 모델”로 단순화되어 버렸고, 반대로 유럽식 모델은 우리가 선택한다면 실현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많았다. 유럽적 사민주의 체제는 오늘의 한국의 경제구조 내지 생산체제와 역사적 경험, 정치적 실천 및 제도, 이데올로기적 특성 등 여러 수준에서 매우 큰 차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사민주의가 한국의 경제체제를 개혁하는 데 준거가 되기 위해서는 거시적 또는 체제적 수준에서가 아니라 미시적 기초를 충분히 분석하고 구체적으로 배우고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의 한국사회가 모든 측면에서 미국식에 매우 친화적인 조건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냉정한 이해 없이 자신의 선호를 추상적으로 말하는 것만으로는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책에 주목하는 이유

 

최근 출간된 서울산업대학교 정이환교수의 『현대노동시장의 정치사회학』은 앞에서 말한 이러한 학문적 상황에서 나타난 중요한 저작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최근에 양산되는 정책보고서적 연구의 결과물도 아니고, 현장으로부터 괴리된 순수 학문적 연구도 아니며, 어떤 이데올로기적 편향이나 선진적 거시모델에 무비판적으로 경도된 연구도 아니다.
정 교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따른 산업 및 고용구조의 급격한 변화, 그리고 금융위기 이래 급속히 진행된 한국 노동시장의 분절화, 고용과 실업문제, 사회양극화의 문제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문헌을 섭렵하고 외국과 한국의 경험적 자료를 치밀하게 분석한다. 그리고 그 분석의 결과를 토대로 한국의 현실에서 실현가능한 하나의 대안적 노동시장 체제를 조심스럽게 제시한다.
 
그것은 학문적이고 이론적이면서도 현장성과 현실성을 갖는 것으로 판단된다. 유럽의 사민주의적 경험에 보다 큰 비중과 준거를 두지만 영국과 미국, 일본 등 또 다른 유형의 경험을 두루 검토하고, 이를 토대로 한국현실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나 실천적 대안모색을 위해 미시적으로 문제를 분해하여 우리 현실로 가까이 가져오는 작업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작업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어떤 특정 모델이나 이론에 미리 경도되지 않고, 자신과 특정의 이론 사이에 거리를 유지하며, 대면하고 있는 문제와 비판적 긴장을 유지하는 학문적 자세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째, 현대노동시장의 제 문제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주로 노동-노동시장-사회복지를 주제로 여러 이론을 다루고 있다.
둘째는 사회복지국가의 이념형이라 할 스칸디나비아 복지체제, 유럽대륙의 복지체제를 대표하는 독일, 자유경쟁시장 체제를 대표하는 미국 그리고 한국, 일본, 대만을 묶는 동아시아 노동시장 체제의 경험적 현실 사례를 대비시키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부분에서는 이러한 이론과 다른 나라의 사례들을 비교 검토한 것을 기초로 한국의 노동시장체제를 분석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첫 번째 이론부분에서 저자가 대답하려고 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실제로 세계의 생산체제와 시장구조를 영미식 자유경쟁체제로 수렴시킬 것인가, 즉 유럽의 사회복지체제가 해체되고 자유시장체제로 전환될 것인가 하는 문제라 하겠다. 그에 답하기 위해 그가 소화한 문헌의 범위는 실로 광범위해서 매우 인상적이다. 저자의 광범위한 문헌해석을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간의 학문적 변화 내지는 경향에 대해 언급하는 약간의 우회적 방법이 필요할 것 같다.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의 문제틀

 

노동-사회복지 문제영역과 관련하여 세계 학계의 이론변화를 보면서 흥미 있게 느끼는 것은, 그 전환의 계기에 있어 1970년대 중반 신자유주의의 확산이 가져온 영향보다 1980년대 말 냉전의 해체에 의한 동구 국가사회주의 체제의 붕괴가 훨씬 컸다는 사실이다.

그 최초의 시발은 1991년(영어판은 1993년) 출간된 프랑스 경제학자 미셀 알베르의 저작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라 하겠다. 그는 이 책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체제를 (1) 자율적 시장경쟁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앵글로색슨 모델” 또는 "미국식 (자유 시장) 자본주의"와, (2) 조직 노동자를 포함해 생산자집단들이 기업운영의 결정과정에 광범하게 참여하고 사회 전체의 복리를 경제와 사회의 중심적 가치로 하면서 법적, 제도적으로 규율되는, “사회적으로 책임지는 자본주의” 또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구현하는 독일모델의 두 이념형적 유형으로 구분했다. 원래 프랑스어로 집필된 이 책이 곧 유럽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두 개의 자본주의”라는 말이 대중화되기에 이르렀다.

알베르의 유형분류는 1990년대 초 두 개의 자본주의논쟁을 자극하면서 논의를 더 풍부하게 하는 데 출발점이 되었다. 수잔 버거와 로날드 도어가 편집한 『국가적 다양성과 지구적 자본주의』 (1996), 프랑스 조절이론의 전통을 포함시킨 콜린 크라우치와 볼프강 스트리크 편, 『현대자본주의의 정치경제: 수렴과 다양성을 좌표 짓는 것』 (1997)과 J.로저스 홀링스워쓰, 필립 슈미터, 볼프강 스트리크 편, 『자본주의경제들을 관리하는 것: 경제부문의 수행과 통제』 (1994), 로널드 도어의 『주식시장자본주의 대 복지자본주의』 (2000), 볼프강 스트리크, 코조 야마무라 편, 『비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기원들』 (2001) 등은 1990년대를 통하여 ‘두 개의 자본주의’가 던진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대표적인 성과들이다. 이러한 연구경향을 집대성한 결과물은 정 교수의 책에서도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는 피터 홀, 데이비드 소스키스 편집 『자본주의의 다양성: 비교우위의 제도적 기초들』 (2001)이 아닐까한다. 최근 년에는 요나스 폰투손, 『불평등과 번영: 사회적 유럽 대 자유 미국』 (2005), 모니카 프라사드, 『자유시장의 정치학: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에 있어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의 흥기』 (2006) 등의 연구업적이 발표되고 있다.

미셀 알베르가 던진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의 문제틀은 자본주의생산체제를 바라보는 데 하나의 전기를 이룬다. 명시적이든 또는 암묵적이든 그 이전 세대 학자들이 문제를 바라보았던 방법은 사회주의 체제를 비교의 준거로 자본주의 체제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입체적이고 구조적인 이해에 많은 진전이 있었다. 만약 하나의 체제, 하나의 지배적인 정책이나 이념만이 존재한다면, 현존하는 체제에 대한 비판이나 대안모색은 더 이상 가능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소련과 동구사회주의의 해체는 체제의 수준에서 대립적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현존하는 생산체제나 시장질서에 대한 기존의 비판적 분석 틀을 해체시켰다. 그러면서 시장자유주의로의 수렴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인지, 현실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교분석 내지 유형화에 기초를 둔 비판적 접근은 불가능하게 된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알베르의 문제제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체제 간 대립이나 차이는 종결되었을지 몰라도 자본주의 내에서 서로 갈등할 수 있고 경쟁적일 수 있는 하위유형들이 존재하며, 그 대립의 강도와 차이는 적어졌을지 모르나 여전히 대비될 수 있는 유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적 시장체제, 앵글로색슨모델, 주식시장 자본주의, 카지노 자본주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등 이를 무엇이라고 부르던 하나의 전일적인 형태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다시 말해 합리적 개인주의, 사유화와 민영화, 최소국가의 실현, 국가의 개입 없는 자유/자율적 시장, 경쟁과 시장효율성,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을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시장체제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비경제적 사회유대, 비경쟁적 협력, 집단적 의무, 도덕적 헌신 등의 가치와 규범을 중심으로 조직되고 공동체와 사회에 접맥된 시장체제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 제기되는 가장 중심적인 문제는, 그러한 유럽식 사민주의적 복지국가 모델이 어떤 형태로든 존립할 수 있느냐 하는 데 두어지게 된다.
 
폴 피어슨, 피터 홀, 토벤 아이버슨, 요나스 폰투손 등 이 분야의 여러 이론가들은 유럽의 사회복지국가 모델의 변화를 추적하면서, 유럽의 복지국가체제가 1980년대와는 분명 다르지만 나름대로 시장경제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복지국가 체제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진단하고 또 그렇게 전망한다. 물론 모든 학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독일의 대표적인 노동사회학자 볼프강 스트리크는, 앞으로 독일의 노동시장은 미국화할 것이며 소득분배 구조는 소수의 부자와 평균소득의 하향화를 보이며 악화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요컨대 고전적 모델이라 할 독일의 복지국가는 해체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Economist 06/02/09, 4). 여전히 신자유주의적 시장체제의 도전과 영향력은 강하고, 그와는 다른 모델의 존립을 주장하고 전망하는 일은 쉽지 않은 과제라 할 수 있다.

 

저자의 관점 : 고용과 평등의 균형적 접근

 

이제 정 교수 책의 내용으로 다시 돌아와 보자.
분석의 초점은 ‘조정된 시장경제’ 체제를 갖는 유럽의 복지국가에서 노동시장 제도가 세계화라는 외부 환경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영미식의 자유시장 체제에 특징적인 제도로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두어진다.
이를 위해 저자는 역사적 제도주의, 프랑스 규제이론, 사회적 네트워크이론,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의 논의들을 다양하게 끌어들인다. 이를 바탕으로 외부의 충격은 기존의 행위자 간의 조율/조정을 통해 만들어진 균형을 허물고 기존의 관행에 도전하지만, 정부가 생산자집단과 유권자의 압력에 따라 조율 양식을 회복하고자 노력하기 때문에, 새롭게 조율된 양식은 과거와 일정한 차이를 가질 수 있겠지만 급진적 변화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현대 자본주의는 실업과 불평등을 동시에 해결할 수 없는가?”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답하면서 세계화된 현대경제체제에서 그 목표를 동시에 실현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그는 요스타 에스핑-안데르센의 논의를 따르면서 실업과 불평등 양자를 동시에 실현할 수 없다면, 차선의 대안은 상쇄적 교환관계(trade-off)에 있는 양자에 대해 최적의 균형점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불평등의 해소보다 실업의 해결, 즉 고용의 확대를 평등의 원리에 우선하는 가치로 설정하고, 따라서 유럽복지체제에 비해 고용실적이 우월한 미국식 자유시장 체제의 장점을 강조한다.
그는 노동시장 경직성이 실업을 증가시킨다는 시장논리를 비판하지만, 또한 실제로 유럽식 복지체제가 창출하는 경직성이 고용을 증가시키지 못하는 한계를 그 체제의 중대한 약점으로 지적한다. 이 부분은 기업경쟁력은 노동비용의 삭감에서 나오며, 낮은 노동비용을 위해 생산을 아웃소싱 할 것이고,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국내 노동비용을 낮추고, 세율을 인하하며, 탈규제를 통해 국내시장을 확대하는 규제변화를 실시할 것이라는 , 신자유주의적 수렴론의 전제들에 비판적인 앞부분에서의 논지와 대조되면서 균형을 이룬다. 그리고 저자는 고용과 평등에 대해 상쇄적 교환관계의 메커니즘으로서 코포라티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저자가 발견하는 대안은 네덜란드의 바쎄나르 협약(Wassenaar Agreement)과 같은 사회협약이고, 이를 수단으로 ‘유연안정성’을 실현하는 노동시장의 창출이다.

 

각국 노동시장 체제의 유형 분류

 

(1) 북유럽 사회복지 모델

 

책의 두 번째 부분은, 노동시장체제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환경변화에 대응하여 어떻게 변화했는가하는 문제를 고용/실업과 불평등이라는 기준으로 각국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 있다. 여기에서 다루는 범위는 매우 넓다. 에스핑-안데르센이 “복지자본주의의 세 가지 세계”(1990)에서 제시한 사회복지국가의 세 이념형이라 할 스칸디나비아의 북유럽, 코포라티즘과 국가중심적 복지체제의 독일, 자유주의적 복지국가의 미국을 포함하는 모든 국가/지역을 다룰 뿐만 아니라 그에 덧붙여 한국, 일본, 대만을 아우르는 동아시아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범위가 넓을 뿐만 아니라, 또 유형을 달리하는 여러 국가의 제도와 실천적 내용이 아주 구체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한국 학자들은 물론 외국학자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넓은 범위를 다루는 연구를 찾기 힘들다.
저자는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를 포함하는 북유럽 복지국가 모두를 다루고 있지만 스웨덴에 초점을 둔다. 일찍이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 전반 스웨덴 복지국가의 위기와 그에 대한 대응은 세계적으로 커다란 관심의 대상이 된 바 있었다. 저자는 이 시기 노조의 연대임금 정책과 노사 간 중앙교섭이 종식되는 변화를 거쳐 어떻게 새로운 형태의 복지체제가 출현하게 되었는가 하는 과정을 상세히 서술한다. 여기에서 스웨덴복지국가의 거시경제 정책에 대한 이론적 기반이었던 렌-마이드너(Rehn-Meidner) 모델의 성공과 한계에 초점을 맞춘다.

총수요를 증진하는 팽창적 재정정책을 통해 완전고용을 추진했던 전통적 케인즈주의와는 달리 스웨덴의 경험으로부터 이론화한 렌-마이드너 모델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재정팽창이 아니라 생산성향상을 통해 완전고용을 이루려는 것이다. 생산성이 약하고 경쟁력이 없는 사양 산업이나 한계 기업들은 시장에서 도태되도록 하고 경쟁력이 강한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그 방법은 긴축재정 정책을 통해 인플레를 억제하고 간접세 중심의 조세정책을 통해 기업의 투자환경을 지원하는 동시에 완전고용을 실현하는 정책이다. 이를 위해 노조가 해야 할 일은 임금을 평준화하면서도 고용을 위해 임금수준의 전반적 상승을 억제하는 일이다.
그리고 저자는 계급 간 타협의 코포라티즘적 원리가 약화되는 과정과 노사 간 전국 수준에서의 단체교섭과 연대임금 정책이 해체되고, 어떻게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후퇴하게 되었는가 하는 변화의 궤적을 추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스웨덴은 영국식의 신자유주의를 채택하지 않았지만, 금융의 탈규제, 노동시장 유연화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화의 원리를 대폭 수용하면서도, 기존의 노동시장 제도와 사회복지를 유지하고 고실업을 극복하며 경쟁력을 회복하는 나름의 ‘제3의 길’을 발전시킨 성공사례로 제시된다.

 

각국 노동시장 체제의 유형 분류

 

(2) 독일의 국가중심적 코포라티즘 체제

 

유럽대륙의 복지국가 체제를 대표하는 또 다른 모델은 독일이다.
원래 스웨덴보다 훨씬 시장원리를 폭넓게 수용하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발전시켰고 유럽 최대의 경제규모가 갖는 영향 면에서도 독일모델의 지속은 유럽 사민주의 모델의 향방에 있어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곧, 독일 복지체제의 최대 문제로 부각된 고실업의 충격으로부터 어떻게 기존의 체제를 유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저자는 독일 노동시장의 특징으로 장기 고용, 평준화된 임금구조, 고숙련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노동시장 제도로 경영참가와 해고규제, 산별교섭 체계, 직업훈련 제도를 상세히 서술한다.
독일 복지제도의 문제의 중심에는 고용보호와 실업보호를 비롯하여 비임금 노동비용이 증가함으로써 고용창출이 저해된다는 점이다.
독일 복지제도는 그 재원이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바도 크지만, 그보다는 주로 노사 기여금에 의존하는 특징을 갖는데, 이는 정치적 저항으로 세금부담은 증가하지 않는 동안 사회보장 기여금 부담을 큰 폭으로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그것은 또한 복지제도에 대한 커다란 압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세계화에 의한 경제환경 변화와 인구구조의 변화로 인한 고실업, 고령화는 실업보험, 고용보험, 건강보험 등에 대한 재정 부담을 지속적으로 증가시키면서 기업의 노동비용 상승을 유발하게 된 것이다. 실업을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만든 제도들이 역으로 실업의 원인이 됨으로써 복지제도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1980년대 중반이후 헬무트 콜 기민당 정부의 <고용촉진법>으로부터 최근 슈뢰더 사민당 정부의 <‘하르츠(Hartz) IV 법>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고용정책, 노동시장 제도, 복지제도 변화를 상세하게 서술한다. <하르츠법>은 실업보호에 대한 완화를 통해 고용을 촉진하고 사회보장에 대한 부담을 축소하는 슈뢰더정부의 대표적인 노동시장 개혁으로서 정치적으로도 논란이 분분했던 정책이다. 논의의 초점은, 전통적으로 잘 제도화된 산별교섭이 단체협약에서 기업별 비중이 증가하고 분권화가 진전되는 변화에도 불구하고 노사관계의 기본 틀로 유지되고 있으며 평준화된 임금구조 또한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각국 노동시장 체제의 유형 분류

 

(3) 미국의 자유주의 노동시장 체제

 

미국 노동시장을 논의함에 있어 저자는, 한국의 비판적 논자들이 미국에 대해 극히 비판적이라는 점을 특별히 유의하면서 '균형 있는 평가'를 강조한다. 그리고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데 큰 주의를 기울인다. 필자의 관점에서 미국 자유시장 체제의 강점은 무엇보다도 고용창출 능력이다. 낮은 실업률도 그렇지만, 고용/실업 구조의 내용에 있어서도 유럽 복지국가 체제가 갖지 못한 여러 장점을 갖는다. 낮은 비정규직 비율, 높은 청년취업 비율, 낮은 장기실업자 비율, 높은 여성취업 비율 등은 유럽에 비해 분명한 상대적 우위를 갖는 요소들이다. 즉 고용분배 면에서는 미국의 시장모델이 유럽에 비해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낮은 실업률이 국민의 삶의 질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왜냐하면 복지혜택이 적은 미국에서는 생존을 위해 취업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은 고용과 해고에 대한 규제가 가장 약한 나라로서 높은 노동시장 유연성을 구현하므로, 높은 고용불안정을 수반한다. 그리고 최근 년의 변화는 고용안정성이 더욱 약화되었고, 임금불평등과 소득격차는 심화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실업률이 낮아진 것이다. 미국의 노조조직률은 한국과 비슷하게 12%대로 선진자본주의 국가 가운데서 최저수준이라 할 수 있고, 단체교섭은 기업수준에서 이루어지므로 임금평준화에 별로 기여하지 못한다. 미국의 법정 최저임금 수준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할 때 뚜렷하게 낮은 편이다. 더구나 사회보장제가 발전한 유럽에서 생계비가 적게 든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에서의 상대적 최저임금은 더 낮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실업보험 또한 약하다.
최근 년 미국의 사회복지는 복지 대신 노동, 개인책임, 자활능력, 제재를 통한 규율, 수혜 자격의 제한과 축소의 방향으로 변화했다. 1996년 제정된 <개인책임과 근로기회조정법> (PRWORA)은 상징적이다. 이 법에 의해 미국의 가장 중심적인 공공부조 제도인 저소득층 소득지원을 대상으로 한 <아동부양가족지원제도> (AFDC)는 <한시적 빈곤가정지원제도> (TANF)로 변화했다(Gilbert & Terrell 2005). 그에 따라 이전에는 연방차원의 수혜가 보장되었던 것에서 각 주로 프로그램 운영주체가 이양되었고, 복지수혜 기간이 제한되었으며 성인 수혜자의 근로활동 의무와 벌칙조항이 강화되고, 직업훈련이 민영화되는가 하면, 교회 등 민간단체에 의한 복지서비스가 증가되고, 자녀에 대한 미혼모의 양육, 부모로서의 책임을 강화하는 등 보수적 방향으로 복지체제가 재편되기에 이르렀다. 나아가 미국식 생산체제의 중요 특징은 기술수준의 양극화라 하겠다. 고부가가치 부문의 노동력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고기술에 의한 최고 경쟁력을 갖지만, 저학력 일반 노동자들이 대거 포진돼 있는 생산부문이나 서비스부문은 저임금-저숙련으로 특징되는 양극구조를 갖는다는 것이다. 요컨대 미국의 노동시장은 고용창출에는 성공하고 있지만, 고용불안과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요약된다.

 

각국 노동시장 체제의 유형 분류

 

(4) 동아시아 노동시장체제

 

동아시아를 다루는 부분은 두 가지 점에서 관심을 끈다.
하나는 서구 국가들과 동아시아를 어떤 기준에서 유형 분류할 수 있는가, 바꾸어 말하면 동아시아의 노사관계를 서구와 구분되는 어떤 독자적인 유형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다른 하나는 동아시아 내에서 저자가 다루는 세 국가들 간의 하위유형을 어떻게 특징지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여기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유형 구분은 두 가지 기준을 따라 만들어지는데, 첫째는 구미 국가와 동아시아 국가들을 구분하는 것으로, 이들 국가에서는 구미에서와 같은 직무급 전통이 없고 노동시장을 전체적으로 규제하는 제도가 약한 대신 기업내부 노동시장이 발달되었다는 것, 즉 연공임금과 종신고용, 기업복지로 특징되는 일본의 기업내부 노동시장이 대표적이지만, 한국의 대기업 또는 대만의 국영 대기업의 경우도 일본의 이념형을 일정하게 따랐다는 것이다. 또한 낮은 실업률과 임금격차가 축소되는 경향으로 표현되듯, 상당한 정도의 평등이 병행하는 특성을 통하여 구미 국가들과 동아시아 국가들을 구분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동아시아 국가 간의 차이를 통해 유형을 구분하는 것이다. 첫 번째 구미 국가와 동아시아를 구분했던 차이는 1990년대 초로부터 2,000년에 이르는 사이 괄목할만한 변화가 발생했는데, 동아시아 국가에서도 실업이 증가하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이라 하겠지만, ‘총중류사회 붕괴’, ‘하류사회’, ‘격차사회’라는 일본식 용어가 나타내듯 일본이나 대만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동아시아 노동시장 체제의 특성을 세 가지 구분한다. 즉 (1) 시장형, (2) 분권적 교섭형, (3) 조율된 교섭형이 그것인데, 시장형은 미국이 대표적이고, 분권적 교섭형은 캐나다, 영국이 그에 속하고, 조율된 교섭형은 북유럽 국가들, 그리고 독일, 오스트리아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범주화는 임금결정 방식의 차이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시장형은 시장논리에 따라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분권적 교섭형은 조율되지 않은 기업별, 산별교섭이 지배적이고, 조율된 교섭형은 전국 수준에서의 중앙교섭 또는 조율된 기업별, 산별교섭을 임금결정의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이들 유형은 각각 그 결정방식이 가져오는 특정의 임금격차를 낳는다. 그리고 이 유형들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사례, 즉 분권적 교섭은 한국, 조율된 교섭은 일본, 시장형은 대만에 각각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 세 나라의 기본 과제는 노동시장 불평등을 줄이고 복지를 확대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성장이 아닌 제도와 정책을 통해 불평등과 빈곤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유럽이 복지삭감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복지국가를 축소했던 것과는 “반대방향의 과제”를 동아시아 국가들은 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국의 노동시장체제 분석

 

(1) 한국에서의 고용안정성과 노동시장 불평등

 

책의 세 번째 부분은 한국의 노동시장 체제를 분석한다.
그 첫 번째 부분에서 저자는 한국과 미국의 장기근속과 연공임금을 비교분석한다.
그 결과, 한국 노동자의 고용안정성은 선진국 중에서 고용 안정성이 가장 낮은 미국에 비해 낮으며, 이런 면에서 장기고용이 한국 노동체제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덧붙여 미국에 비해 연공급의 크기도 크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요컨대 그의 분석은 한국의 임금구조가 미국보다 훨씬 연공적이지만 근속연수는 짧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저자의 설명중 하나는 단기근속-저임금 부문과 장기근속-고임금 부문으로 노동시장이 매우 강하게 분절화되어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의 고용관행에 있어 일부 노동자 외에 다수노동자들에게 강한 배제의 기제가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의 결론은 강력하다. 한국에서 장기고용 관행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한국사회가 여전히 공동체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는 견해가 오류라는 것이다. 이제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는 공동체 원리가 아닌 시장원리가 지배적이 된 것이다.

 

한국의 노동시장체제 분석

 

(2) 분절화된 한국의 노동시장

 

한국 노동시장분석의 두 번째 부분은 한국 노동시장의 분절화가 만들어내는 정규-비정규직의 분획과 이들 간의 연대의 문제를 다룬다.
때마침 지난 6월 30일 현대차, 기아차, 대우차를 포함한 대공장 13개 노조원들이 개별사업장 노조에서 산별노조로 전환키로 결정한 사례도 있어, 이 문제는 당장 현재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문제에 대해 저자는, 그동안 산별노조로의 전환문제를 둘러싼 논의들이 주로 정규직 사이의 연대에 초점이 두어졌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정규/비정규 노동자 사이의 연대에 초점을 둔다. 저자는 이 작업을 위해 그동안 정규/비정규 간 연대의 성공과 실패의 몇 가지 경험적 사례들을 통해 분석한다.
분석의 결과,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정규직 노동자의 태도는 연대/배제라는 선택의 어느 하나가 아니라 훨씬 다양하다는 것, 조합원들의 이해관계가 절대적 변수가 아니라 운동의 이념이나 규범도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대기업 노동자들의 운동이 본래적으로 연대 지향적이라거나 정반대로 정규직 노동운동이 기본적으로 이기적이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배제하고자 한다는 그 어떤 관점도 대기업 노동운동의 본래적 특성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시장체제 분석

 

(3) 고용창출-평등-고용안정을 지향하는 대안

 

한국 노동시장 체제의 대안을 모색코자하는 이 책의 결론은 저자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기준들, 즉 (1) 고용창출(충분한 일자리를 제공하는가), (2) 평등의 원리(사회통합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공정하고 평등한가), (3) 고용안정(일자리는 안정적이고 괜찮은가)의 세 기준을 통해 노동시장 체제에 관한 그간의 논의들을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민주화이후 형성된 노동시장 체제를 기업별교섭, 기업내부노동시장, 노동시장분절을 그 중심적인 구성요소로 하는 ‘87년 노동체제’라고 말하고 그 체제는 실패했다고 평가한다. 물론 저자가 ‘87년 노동체제‘의 실패라고 말할 때, 그것은 민주화 이후 모든 시기에 관해 말하기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상황을 말한다. 외환위기 이전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노동시장 분절화가 확대되었다 하더라도, 높은 경제성장률과 낮은 실업률은 기업규모별 임금격차를 축소시키는 효과를 가졌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사태는 크게 악화되어 기업규모별 임금격차가 확대되고 경제구조의 양극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현재 제시되는 대안의 방향은 대체로 세 가지로 나타나는데, 첫째는 대기업 노동운동이 추구하는 것(기업내부노동시장의 재강화), 둘째는 사용자들이 추구하는 것(영미식 방향으로의 탈규제와 유연화), 셋째는 주로 노동운동에 우호적인 학자들이 선호하는 것(사회적 노동시장의 구축)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양극화 해소와 좋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세 번째 사회적 노동시장 구축이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노동운동이 추구하는 기업내부 노동시장의 재강화는 기본적으로 인사이더-아웃사이더 분획을 해소하지 못한다. 그것이 인사이더의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을 가져올지는 몰라도 고용창출을 실현할 수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기업내부노동시장의 노동자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이고, 그에 따라 외부 노동시장의 노동자 수는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저자의 관점에서는 현재 노동운동 쪽에서 대안으로 생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는 기업 간 불평등 및 영세기업의 노동자 문제가 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노동시장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 결코 될 수 없다.
저자가 사회적 노동시장이 대안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여러 다른 학자들이 말하듯이 유럽식 복지국가 체제를 곧바로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창출과 평등, 고용안정이 실현될 수 있는 한국적 노동시장의 방향을 말하는 것이다.
유럽 복지국가체제는 각 국가마다 제도와 실천이 다양하고, 그들은 각각 그들대로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계가 많다. 따라서 저자는 그러한 모델을 무차별, 무매개적으로 한국에 적용하는 데 부정적이다. 저자는 “특정 체제를 모델로 한 것보다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 방향을 설정하고 그 구체적 방안과 접근을 현실에 맞게 모색하는 작업”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지금까지 주요내용을 요약, 정리해 봤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노동시장 문제가 사회적 계층, 직종의 범위를 넘어 한국사회에서 경제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일하는 사람들의 중심 문제로 부상된 오늘날 가장 시의적절하면서도 한 사람의 한국 사회과학도가 수행할 수 있는 훌륭한 연구 작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의 내용을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정 교수의 연구는 노동시장과 관련된 거의 모든 주요 문제를 종합적으로 포괄하고, 이 분야에서 새로이 발전되는 이론들과 경험적 연구결과들을 두루 소화하고, 한국사회에 대한 분석과 대안이 매우 정교하고 경험적이며, 진보적이면서도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라면 누가 보아도 그 분석과 대안 제시가 합리적이고 현실에서 실현 가능할 수 있다는 설득력을 준다.
그러나 정 교수의 저서가 갖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에 못지않은 약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그것은 학문 발전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의미 있는 토론과 생산적인 비평의 활성화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제일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연구는 많은 문제들을 제기하고 그에 답하려고 한다. 예컨대 왜 한국의 임금구조는 미국보다 훨씬 연공적인데 근속연수는 짧은가, 왜 한국의 비정규직노동자의 양산은 다른 나라의 유형과 다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것은 모두 중요한 질문들이지만, 이 연구 전체를 관통하면서 내용을 구성하는 각 부분들을 하나의 주제로 조직하는 중심 질문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논문을 전체적으로 조직하는 큰 질문은 그 연구의 주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이 정도의 큰 연구는 여러 다른 작은 질문들을 포함하게 되겠지만, 이러한 작은 질문들이 위계적으로 조직되지 않는 한 각 부분들은 하나의 주제 하에 일관된 논지를 따라 통일적으로 배열될 수 없을 것이다. 이 말은 인과적 연결구조의 위계성을 말하는 것이다. 설명구조의 정점에 큰 질문이 없을 때, 각기의 작은 질문들, 문제들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설명을 독자적으로 시도하는 동안 중심과 초점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되고 산만함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결론부분에서 “87년 노동체제의 실패”라고 말했다.
필자가 보기에 이 문제는 중요하다고 본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과 노동운동의 고양은 민주화와 병행했다. 그것은 저자 자신이 말하고 있듯이 그동안 화이트칼라 일부에만 적용되던 기업내부시장이 생산직 노동자들에게도 적용되는 변화와 더불어 노동시장의 중요한 변화를 초래했다. 그 뿐만 아니라 화이트칼라의 조직을 비롯한 노조조직의 확대, 노동자권익의 증진, 노사관계의 변화, 그리고 노동과 자본 간의 사회적 힘의 관계의 변화, 정치적 통치체제의 민주화 등, 노동문제와 관련된 거의 모든 수준에서 커다란 전환이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형성된 노동시장 체제와 그것의 구조적 특징은 무엇인가?
그동안 노동운동을 억압했던 정치 환경이 민주화되고, 사회적 힘의 관계가 변하고, 노사관계, 노동시장체제가 변했다면 그 내용은 무엇인가? 그런데 왜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하여 그 이전의 노동운동의 성과들은 급격하게 역전되었는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효과는 무엇인가? 만약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87년 노동체제의 실패”를 가져왔던 결정적인 변수라면 권위주의로부터 민주주의로의 정치체제의 변화는 이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떤 영향을 미쳤나? 만약 영향을 미쳤다면 어떤 영향을 미쳤고, 아니라면 왜 그러한가? 만약 외환위기라는 외적 충격이 없었더라면 한국의 노동운동/노동시장체제는 상당히 다른 경로의 발전을 보였을 것인가? 노동시장 체제의 실패에 노동운동과 민주정부가 기여한 요인은 없는가? 대체 민주화 이후 그간의 운동과 정치는 오늘의 노동시장 문제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이었나?

 

모니카 프라사드 연구의 예

 

한국 노동시장 문제가 직면한 문제와 관련해, 최근 출간된 인도 출신 미국 사회학자 모니카 프라사드의 『자유시장의 정치학: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에 있어 신자유주의 경제의 흥기』는 매우 의미 있는 질문을 제기한다. 그녀의 질문은 왜 미국, 영국은 신자유주의적 자유시장 체제를 채택하게 되었고, 독일과 프랑스는 그렇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일견 너무 평범한 질문이어서 문제조차 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답은 그동안 학계에서의 수많은 연구를 통해 확실하게 정립된 이론들과 가정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경험들이 있어 이미 다 알고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예컨대 세이무어 마틴 립셋의 ‘미국예외주의’ 테제가 말하듯이 미국에서 노동운동은 약하고 사회주의 정당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개인주의적이고 친시장적 문화가 강해서 재분배적 정책을 펼 수 없었고 석유파동 이후 보다 더 친기업적인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막을 수 없었다는 설명도 가능할 것이다. 영국 역시 유럽 대륙의 국가들에 비해 노동운동이 약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반면 독일과 프랑스는 사회주의 혹은 사민주의적 노동운동의 전통이 강해서 자유시장 정책이 관철될 수 없었다는 것도 하나의 상식적 설명이 될 것이다.

그러나 프라사드의 대답은 이와 정반대이다. 그녀는 우선 1970년대 중반 이전까지 미국과 영국의 조세정책은 진보적이었으며 산업정책은 기업에 적대적이었고 복지체제는 재분배적이었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또한 대처의 신자유주의적 급진개혁이 가능할 수 있었던 영국에서 노동운동은 약했던 것이 아니라, 1970년대 동안 파업을 통해 정부를 붕괴시킬 정도로 강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전후 사회경제적 전환과정에서 노동운동은 중산층과 연대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따라서 대부분의 투표자들은 노동자 계급과 분리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투표자들을 소외시켰고 또 소외되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보수당은 신자유주의적으로 급진화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 경우 강한 노동운동의 조건은 신자유주의적 급진화를 가속시키는 효과를 낳았던 것이다.
그녀가 볼 때, 두 나라 모두 전후 정치사회 구조와 국민경제 성장과정에 있어서 좌와 우, 노동과 자본이 공존의 틀 위에서 파트너로서가 아니라 적대적 경쟁관계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두 나라 모두에서 전후 사회경제적 전환정책이 좌파 내지 진보적 정부들에 의해 수행된 바 있었다. 그 결과 대부분의 투표자를 두 적대적 분획의 서로 다른 반대쪽으로 움직이게 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자들은 투표자들의 급진적 성향을 알고 그 이점을 활용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좌우파가 균형을 이루어 어느 일방이 지배적이 되지 못하고 파트너로서 작용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의 과격한 등장과 같은 급진적 반동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파격적인 대답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 질문과 대답을 뒷받침할 증거자료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프라사드는 1960년부터 1990년대 말까지 각 국가의 조세자료와 산업정책, 복지정책을 면밀하게 분석한다.

찰스 틸리가 격찬하고 있는 그녀의 연구는 상식을 뒤엎는 대담한 문제제기로 앞으로 세계 학계에서 커다란 논쟁을 유발하게 되겠지만 어쨌든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을 새로운 각도에서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연구는 한국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한국 노동운동은 그 강한 운동성에도 불구하고 왜 노동시장의 급진적 신자유주의화를 막지 못했나? 한국의 노동운동은 왜 중산층을 통합해낼 수 있는 대안을 발전시킬 의지를 갖기는커녕 노동자 전체의 연대조차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었나? 노동운동이 매우 열악한 조건에 처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반노동적인 공세와 분위기는 더욱 강해지고 있나? 한국의 노동운동은 어떻게 투표자들을 소외시키고 또 그들로부터 소외되고 있는가?
일찍이 아담 세보르스키는 지금은 고전이라 할 『자본주의와 사민주의』(1985)에서 보수주의의 강력함에 대해 이론적 설명을 제공한 바 있다. 그것은 지배적 집단이 강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들에 대항하려는 잠재적 경쟁자들이 국가권력을 결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문적 지식과 아울러 대안적 행위가 실제로 가능할 수 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할 능력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노동운동은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에 대해 고통스럽게 획득한 지식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기존 체제가 별다른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더라도 이 체제를 통해서 무언가 이익을 증대하고 경험을 쌓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필자의 소견으로, 오늘의 한국노동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핵심적 문제는 그저 신자유주의에 반대한다고 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노동자 권익을 실제로 증대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더불어 어떻게 존립할 수 있는가 하는 데 있지 않나 한다.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아니 현재와 같은 민주화와 노동운동의 한계 때문에 오늘의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점점 더 무방비로 노출되어 왔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을 이해하는 방법과 관련해

 

정 교수의 책은 여러 이론 가운데서도 ‘비교자본주의/자본주의다양성’ 이론이 그 중심을 이룬다고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 세 가지 문제가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유럽 사회복지국가에서 복지체제를 지속토록 하는 힘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는 복지제도가 자유시장 체제로 수렴되지 않도록 하는 저항적 힘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특정국가의 경제체제에 있어 주요 사회세력, 주요 이해관계의 당사자들이 복지국가의 유지를 더 선호하게 된 원인을 밝히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비교자본주의 이론에 있어 분석의 초점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이다.
둘째,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의 중심 토대를 이루는 역사적 제도주의에 있어 핵심 개념인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에 대한 관점이다.
세 번째는 노동-노동시장-복지체제에 있어 사회적 힘의 관계를 반영하는 정치의 중요성, 바꾸어 말하면 제도를 형성, 변화, 작동하도록 하는 행위 주체와 관련된 문제이다.

첫 번째, 누가 복지체제를 유지하기를 바라는가, 또는 누가 이를 폐기하기를 원치 않는가 하는 질문은 분명 매우 새로운 접근이다. 복지국가를 설명함에 있어 고용자/자본가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대안적 접근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을 전후한 시기였고, 이 관점을 통한 연구결과들은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으로 불리게 되었다. 예컨대 한 연구자는 회사와 산업이 위험에 크게 노출될 때 그들은 비용과 위험의 분담을 가능케 하는 사회보장체제를 선호할 수 있는데, 그 결과 고용주들이 보편적인 실업보험 및 산재보험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보장은 노동력의 기술획득을 촉진하고 특정 산업부문에 있어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를 가지며, 따라서 고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업은 관대한 실업보험을 지지하게 된다는 분석을 내놓는다(이사벨 마레스 2003). 그런가 하면 다른 연구자는, 독일의 사회보장 제도와 단체교섭 체제가 어떻게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했는가를 밝히면서, 사회보장제도가 어떻게 노조의 임금억지와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했는가를 보여 준다(필립 마노우 2002).

또 다른 연구자는 국제시장에서 효과적으로 경쟁하고 잠재적인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보장을 제도화할 것을 요구한다. 장기적인 고용보장과 실질임금의 안정에 대한 암묵적 협약이 없는 조건에서는 숙련기술을 갖는 노동자들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데, 이를 위해서는 고용주들의 약속 만으로서는 불충분하다. 이것은 왜 정부정책으로서의 사회보장이 필수적인가 하는 것을 말해준다(에스테베스-아베, 아이버슨, 소스키스 2001). 이러한 문제의식은 캐서린 텔렌의 “독일 고용주들은 왜 독일모델을 폐기할 수 없나?”라는 논문 제목으로 잘 집약된다(텔렌 2000). 요컨대 사회보장 체제는 자유시장 논리에서 말하듯이 노동비용 상승과 고용주의 생산비 증가가 경쟁력 약화를 야기하는 체제가 아니라, 노동자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비용을 분담하고 고용안정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체제라는 것이다.

 

이처럼 문제를 보는 초점의 전환은 분명 복지국가에 대한 앞선 이론들과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에스핑-안데르센은 복지국가를 “시장에 반(反)하는 국가”로 정의하고, 복지국가의 형성을 중산층과의 계급연합에 의해 실현된 정치적 좌파의 역사적 힘의 발현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국가 대 시장으로 요약되듯이 노동력의 ‘상품화’에 대해 노동자를 강화하고 고용주의 절대적 권위를 약화시키는 ‘탈상품화’를 대치시켰다. 그것은 얼마나 많은 시장이냐, 아니면 얼마나 많은 복지국가냐 하는 제로섬(zero-sum)적 관계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코르피, 에스핑-안데르센, 휴버와 스티븐스 등). 또한 복지국가에 관한 월터 코르피의 ‘권력자원 모델’은, 복지국가는 “기회만 닿으면 그 부담을 벗어던지고자 하면서 억지로 끌려오는 자본가계급의 어깨 위에 건설된 것”으로 정의한다. 분명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은 이러한 접근과는 매우 다른 접근이다.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과는 다른 방향이기는 하지만, 필립 슈미터와 게르하르트 렘부르크 등이 발전시킨 코포라티즘 역시 문제를 설명하는 초점의 전환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다. 맑스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을 종속시키고 그들이 진정한 혁명적 목표를 성취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코포라티즘 제도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한마디로 코포라티즘은 자본가들의 속임수라고 보았던 것이다. 슈미터 자신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그와는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한다(Snyder & Munck 미출간 원고). 맑스주의자들의 주장대로 국가가 자본의 이해를 지켜주는 보장자 역할을 한다면, “자본가들은 왜 스스로를 조직하려 하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본가들을 위한 제도로 본다면, 코포라티즘은 어떻게든 노동자를 제도의 틀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하게 된다. 하지만 슈미터가 실제 경험적으로 발견하게 된 것은 코포라티즘은 노동자계급에게 유익한 결과를 낳았고 동시에 이 제도의 취약성은 자본가계급의 이탈 혹은 그 가능성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처럼 코포라티즘 연구는 기존 노동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초점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는데, 다름 아닌 자본가의 중요성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자본가의 역할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에 반해 코포라티즘 이론가들은 자본가들은 왜 조직하려 하는가, 나라에 따라 산업부문에 따라 왜 다르게 조직되는가, 왜 어떤 나라에서는 자본가들이 매우 강한 ‘정상조직’(peak association)을 갖고 어느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은가, 부문과 수준에 따라 왜 다르게 단체교섭을 하는가 등 새로운 연구주제들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Streeck and Schmitter 1985; Schimitter 1990; Hollingsworth,Schmitter and Streeck 1994).
정이환교수의 책은 필자가 접한 범위에 있어서 한국의 사회과학도들 사이에서 자본주의다양성/비교자본주의에 대한 문헌을 가장 광범하고 종합적으로 다룬 저서라고 생각한다. 이 자본주의 다양성 논의는 세계 학계에서 이 분야의 이론 발전의 관점에서나, 그리고 한국의 지적 풍토와 노동운동의 전통의 관점에서는 분명 보수화된 이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한국의 대표적인 노동사회학자가 이들 문헌을 상세히 소개하고, 이를 적용해서 한국 문제를 설명하려고 한 시도에 대해 환영하고 또 그것이 이 분야에서 새로운 연구를 자극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 이론이 한국의 노동문제를 이해하고 그 대안을 모색함에 있어 단순히 온건하고, 유연하고, 상대적으로 비(非)이념적이고,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라는 점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조합, 노동운동, 노동정당, 노동계급 중심적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일방적, 단선적 관점으로부터 국가, 자본가/사용자, 노동운동, 정당들 간의 복합적인 전략적 상호관계로 시야를 넓혀볼 수 있는 이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은 이 이론을 구성하는 문제와 방법 자체가 종래의 이론들과는 상당히 상이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문제를 본다면, 한국사회의 노사관계, 노동시장, 노동운동에 있어서 자본가들의 이익과 병립할 수 있는 범위가 무엇인가, 이익공유의 영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렵다면 그 제약들은 무엇인가 등의 문제를 사고하는 데 훨씬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경로의존성에 대한 해석의 문제

 

둘째는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의 핵심 요소를 이루는 경로의존성의 문제이다. 유럽 복지국가들에서 행해지고 있는 노동시장 개혁이 왜 자유시장 체제로 수렴되지 않는가를 설명하는데 있어, 복지국가 구조와 이들 국가경제의 광범한 조직적 특성들 사이에 높은 연관관계가 존재한다는 가정들은 커다란 설명력을 갖는다. 이는 제도의 효과를 말하는 것으로, 과거에 만들어진 선택과 그 결과로서의 제도가 그 이후의 선택을 체계적으로 제약한다는 뜻이다. 이 개념은 제도들에 얽혀 있는 상호작용의 체계가 여러 행위자들의 관성적 패턴을 지속시키는 효과를 갖는 것이자 기성 제도에서 혜택을 보는 기득이익이 제도의 지속성을 강화하고 변화를 어렵게 한다는 논리를 말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에 있어 폴 피어슨과 같은 대표적인 경로의존론자들이 갖는 약점은, 특정의 제도가 그와 다른 제도를 갖는 국가로 이식되기 어려운 어떤 강한 분획선을 상정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는 데 있다(Pierson 2004). 처음의 결정과 제도화는 지속적으로 그것을 강화하는 구조를 발전시키기 때문에 그와 다른 제도를 갖는 나라에 이식되기 어렵고, 그렇게 하려면 커다란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보수적인 제도결정론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치명적인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보다 좋은 선택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의 공간과 이를 통한 새로운 제도 창출을 부정하거나 좁힌다는 것이다. 예컨대 오늘날 한국경제의 신자유주의적 발전전략과 노동시장 구조는 필연적인가? 내가 볼 때, 그것은 그동안 민주정부들의 좋은 또는 나쁜 선택의 결과가 더 많이 작용했다. 다른 선택의 가능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쉐보르스키의 말처럼 “모든 것이 경로의존적이라면 제도의 충격에 대해 말하는 것이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 충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다른 제도들이 동일한 역사적 조건에서 존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반사실적’(counterfactual) 역사들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Snyder & Munck 미출간 원고).

다른 하나는 설명하고자 하는 수준에 따라 연속성과 단절성 또는 신자유주의적 시장체제로의 수렴과 비(非)수렴이 다를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연속성을 강조하는 것은 변화를 자의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예컨대 오늘의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체제는 과거 권위주의적 산업화 시기에 원인을 두는 경로의존적인 결과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국가-재벌이 성장을 견인하고 노동이 소외된다는 중요한 특성을 보면 그것은 경로의존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권위주의 산업화 시기 한국의 경제에 대한 국가의 역할과 노사관계의 제도 및 관행들은 미국의 자유시장 체제보다 일본의 비(非)자유주의적 체제를 모델로 삼았다.

 

이는 결코 경로의존적이 아니다. 어떤 수준에서 말하느냐가 문제이다. 정이환교수는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에 포함된 이 경로의존성 개념에 대해 자신의 분명한 관점을 말하지 않는다. 어떤 때는 이를 비판적으로 말하는 듯 하고(p.48), 또 어떤 때는 이를 긍정적인 것으로 말한다(p.10: 396). 저자가 사회변화는 경로의존적이기 때문에 “가까운 시간 안에 유럽식 노동시장체제가 한국에 뿌리내릴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라고 말할 때, 그렇다면 왜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을 이 책의 중심이론으로 불러들이는 것인지 의문이다.

 

사회적 힘의 관계를 반영하는 정치의 중요성

 

셋째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의 핵심에 위치하고 있는 정치의 중요성에 관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이론은 경제학에서가 아니라 정치경제/사회학 분야에서 발전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은 기본적으로 정치행위자 중심 모델이다. 국가/정부, 정당, 기업, 사용자단체 및 노조를 중심으로 한 생산자집단/이익집단, 선거경쟁과 투표자들이 그들이다. 누가, 즉 어떤 투표자층, 어떤 정치세력 내지는 정치연합이 복지개혁을 어떤 내용으로 추동하나, 누가 복지체제를 유지하기를, 혹은 누가 해체하기를 원하나 하는 등의 복지체제를 둘러싼 정치세력 간 이해관계의 차이 또 이들 간의 힘의 관계가 중심을 이루는 접근이라는 것이다.
필자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의 최대 매력은 바로 유럽의 이른바 조율된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복지체제가 어떻게 정치체제와 맞물려 제도적 상보성을 가지고 작동하는가를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다양성 분야의 연구들은 대개 정치제도, 생산자 집단의 조직형태, 이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정당체제, 생산체제와 노사관계 등에 있어 복지체제 개혁이 어떻게 상호 연관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룬다. 즉 정치적 맥락 없이 복지체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정이환교수의 이번 책에 대한 필자의 가장 큰 불만은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이 풍부하게 제시하는 정치적 맥락과 행위자들 간 이해관계의 갈등, 이들 사이의 힘의 관계에 대한 분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책의 접근방법으로서 행위자중심 접근을 강조하고, 권력관계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분석에서는 이러한 접근을 발견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책은 유형분류를 통해 제도의 특성을 말하고 그 변화를 추적하고, 유형분류에 의한 제도변화를 다소 정태적으로 추적하는 것이 내용의 중심을 이룬다. 그러므로 이 책을 통해서는 실제로 유럽의 사회복지국가의 제도들이 어떤 사회경제적 문제를 만들어내고 이에 대응하여 정치행위자들이 어떻게 행위하는가 하는 체제의 동태적 문제는 발견하기 어렵다. 따라서 스칸디나비아형, 독일형, 영미형 등 가장 거시적인 수준에서의 이들 시장체제의 특성에 관한 서술과 극히 기술적이고 미시적 문제들이 자주 혼재됨으로써 설명과 서술의 위계적 연관관계를 놓칠 때가 많다. 정치적 다이내믹스를 통하여 문제를 그 체제 안으로부터 보고 그 체제가 안고 있는 제약과 개혁의 방향 및 내용을 분석하고 그것이 가져온 효과를 평가해야 할 것이다.

 

대처의 영국과 콜의 독일이 다른 결과를 낳은 이유

 

필자는 앞에서 왜 미국과 영국은 신자유주의적 자유 시장체제를 급진적으로 수용했고, 독일과 프랑스는 그 체제를 수용하지 않았는가 하는 사회학자 프라사드의 질문을 좋은 문제제기의 한 사례로 들었다.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냈던 것은 경제논리 그 자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정치제도의 차이와 관련된 정치적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슈트와트 우드는 영국과 독일 두 나라의 사례를 들어 이 문제를 더 구체적으로 다룬다(Wood 2001).

1979년 영국의 대처 보수당정부의 집권과 1980년대 초 신자유주의적 대처혁명의 시작과 거의 같은 시기인 1983년 서독에서는 헬무트 콜 기민-자유 연립정부가 성립됐다. 콜은 “더 작은 국가, 더 많은 자유”라는 슬로건과 함께 신자유주의적 테마를 앞세워 캠페인에 임했고, 집권과 더불어 복지국가에 대한 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영국에서 성공했던 신자유주의적 혁명은 독일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왜 그러한가?

정치적 수준에서 이 문제를 간단히 설명한다면 영국의 정치체제가 다수결 민주주의의 모델이고 독일체제는 합의적 체제의 전형적 모델이라는 사실과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영국의 급진 보수혁명의 시발은, 기업계와의 교감 속에서 추진된 인플레이션 억지정책, 실업의 급증을 허용한 1981년의 긴축예산과 더불어 시작되었는데, 이 시점에서 사민당의 분당에 따른 노동당의 분열은 영국의 선거제도가 단순다수제라는 사실에 힘입어 대처정부에게 다수의석을 보장해주는 결과를 만들었다. 대처정부는 노동조합이 향유했던 기존의 권력을 해체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개혁을 단행할 수 있는 조건을 갖게 된 것이다.
영국의 제도적 맥락에서는, 양당체제하에서 다수를 획득하는 정당이 권력을 독점하는 구조로 인하여 입법과정에서 정치경제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에 공급측면에서 경제행위자들을 조정하는 것이 어렵다. 정부가 정책의 급진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능력을 갖기 때문에 기업은 위험부담이 높은 장기적인 투자에 소극적이다. 안정적인 장기투자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경제행위자들 간의 조정을 위한 네트워크를 발전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조율된 경제 네트워크를 발전시키지 못하는 영국기업들은 시장확대 정책에 대한 강력한 인센티브를 가지고 정부를 압박하게 된다. 조정되지 않은 기업, 제약 없는 정부가 맞물려 움직이는 정치경제체제라는 영국적 특징은 신자유주의로의 급진적 전환을 가능케 한 요인이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독일은 이와는 완전히 다른 정치경제체제를 발전시켰고, 또 완전히 다른 정책적 결과를 가져왔다. 독일의 노동조합은 사회당에 의해 더 많이 대표되지만, 기민당에 의해서도 대표된다. 콜 정부가 시장확대를 지향하는 노동시장개혁을 추구했을 때, 실제로 그것을 좌절시켰던 것은 야당인 사민당이 아니라, 기민당의 친노동그룹인 ‘사회위원회’들의 역할이었다. 1986년 노동개혁의 내용은 개혁과 그에 대한 반대라는 두 입장 간의 고전적인 타협의 형태로 귀결되었다.
당내 저항에 부딪쳐 정부의 원래 노동개혁의 방향과 내용은 완화되고, 결국 노조의 파업권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환경변화에 따라 조정하는 방향으로 개혁은 종결되었다. 고용주들의 입장에서는, 힘을 행사하기보다 자제하는 것이 더 큰 인센티브를 갖는 것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개혁은 보수적 노동시장 개혁을 지지했던 영국 고용주들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노조의 파업조건을 바꾸는 개혁안은 노조의 파업비용을 증가시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단체교섭의 주체로서 기업이든 노동이든 어느 편에게도 협의를 거부할 인센티브를 주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용주들은 법적 개입을 통하지 않고서도 보다 질서 있는 단체교섭이 가능할 수 있도록 노조가 가질 수 있는 인센티브를 재조정하는 개혁을 지지했던 것이다.

콜 기민당 연립정부내의 신자유주의파들이 추진했던 또 다른 개혁이슈는 1976년 <공동결정법>에 의거하여 제정된 기업 내 노동평의회 선거절차에 관한 개정문제였다. 그것은 군소 노조들, 즉 기독교계열의 다른 총연맹들의 대표권을 사실상 배제하고 DGB(독일노동조합총연맹) 가맹조합 대표의 독점을 보장하는 절차를 말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기민당 내 사회위원회들은 노조의 지위를 약화시킬지도 모를 어떤 개혁조치에도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이 절차에 대한 개혁 문제는 신기술을 도입하는 문제까지 공동결정제를 확대하려는 것과 중간급 경영위원회를 설치하려는 것과 같은 다른 이슈와 연결된 것이기도 했다. 이 이슈로 인하여 콜 정부는 또다시 연립정부와 당내그룹 간 내부 갈등에 휘말려 결국 개혁시도는 좌절되었다. 독일 고용주들은, 이러한 개혁의 목적이 기업 내 작업장수준에서 노조의 권력을 약화시키려는 데 있다 하더라도 이 개혁안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이러한 입장은 노사관계에 있어 조정/조절의 논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기업이 견고하고 성실한 협력자로 노동을 수용하는 태도와 가치가 실천되는 데서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자유시장은 그것대로 효율성을 가질지 몰라도 갈등과 불신을 수반할 것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고용주들은 작업현장에서 노조의 요구가 분열되기보다 ‘한 목소리로 말하는’것을 원하며 그 제도적 장치가 노동평의회인 것이다. <공동결정법>과 <노동헌법>이 규정하는 노동평의회의 대표성 문제는 지난 2005년 9월 독일총선에서도 이슈가 된 바 있었고, 현재의 메르켈 기민-사민당 대연정 정부에서도 문제가 되었으나 필자는 현재까지 그것이 개혁의제에 올라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영국 보수당의 의회 리더십이 정당정책과 선거전략에서 완전히 자율적인 것과는 달리 기민당 사례에서 보듯 독일의 정당체제는 사용자 단체나 노조와 같은 정당 밖 이익집단들과 밀접한 상호관계를 가지며 그들에 의해 제약된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독일의 기업은 고도로 조절된다. 그리고 그들은 극히 제약된 권력과 제한된 자율성을 갖는 정부를 상대한다. 독일의 정부, 기업, 노조 간의 상호관계에 기초한 조절된 시장질서는 정치체제의 제도들에 의해 뒷받침되고 그것과 연동하여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와 사회의 중요한 집단, 행위자들이 권력을 분점하는 체제는 피터 카첸슈타인이 말하는 ‘준주권적 국가/중앙정부’(semi-sovereign state)라는 현상의 내용이라 하겠다(Katzenstein 1987). 여러 주요 정책영역이 연방정부의 관장사항이라는 사실과 함께 독일의 연방제는 연방정부의 권한 자체를 제약한다. 다른 나라의 상원들과는 달리 독일의 상원은 하원에 못지않은 큰 권한을 가지고 하원에서의 다수결정을 견제한다. 국가기구 내의 강력한 헌법재판소 이외에 국가영역 밖에도 연방은행, 상공회의소와 같은 공적 권력을 갖는 사적기구들 역시 정부의 자율성과 정책독주를 제약한다. 말하자면 정부가 개혁적 정책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고자 할 때 그 정책방향에 대한 비토의 지점이 많다.
그보다 이러한 제도와 함께 정치가 실제로 작동하는 방법을 보면 독일의 정치체제를 왜 합의적 결정의 모델이라고 부르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정부 형태에 있어 연정은 예외가 아니라 정상이고, 그럼으로써 한 정당의 정책이 설사 그것이 최대다수의 집권정당이라 하더라도 그 정책목표를 전일적으로 실현할 수는 없다. 더욱이 선거제도 역시 영국의 소선거구 단순다수제와 그에 기초한 양당제와 달리 대표적인 비례대표제의 다당제라는 점에서 하나의 정당이 압도적 우위를 점할 수 없다.


앞에서 콜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시도에서 보듯이 다른 정당의 도전을 받기 전에 같은 정당 내에서 저항에 부딪친다. 기민당의 구성 자체부터가, 자유시장을 지지하는 친기업 그룹으로 대표되는 경제적 우파로부터 노조를 대표하는 사회위원회 그룹과 같은 좌파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다. ‘국민정당’(Volksparteien)이라는 사실 자체가 기민당을 제약하는 조건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정치체제의 차원에서 본 것이다. 이와 병행해서 노사관계의 체제가 있다. 전국 수준에서는 노동자와 기업이익을 대표하는 정상조직들이 존재한다. 그 아래 수준인 산업부문에서도 기업이익을 대표하는 여러 업종의 부문별 사용자단체들이 존재하고 그와 대응하여 산별노조들이 존재한다. 독일에서 가장 강력한 노조라 할 수 있는 독일금속노조(IG Metal)는은 이 수준의 노조이고 전국총연맹인 DGB의 중심 조직이다. 그리고 맨 아래에는 기업의 작업장 수준에서 노동평의회가 존재한다.

 

기민당, 사민당의 중심 기반을 이루는 조직은 이들 사용자단체와 노조들이며, 이들 생산자집단들은 정당에 대해 어떤 다른 사회 집단보다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독일의 임금인상률을 포함하여 노동시장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결정들은 대체로 여러 부문의 산별수준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맨 아래 수준에는 기업운영과 노동현장에서의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공동결정제와 이를 통한 노동평의회의 역할이 있다. 정치의 대표를 선출하는 데에만 주기적인 선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현장에서 기업운영을 위한 노동평의원 대표를 선출하기 위해서도 공동결정법에 따른 주기적인 선거가 있다.
독일의 헌정체제, 정치체제, 노사관계체제들은 마치 옛날 우리나라의 한옥(韓屋) 구조를 연상케 한다. 못을 사용하지 않았던 한옥은 기둥과 구조들을 서로 맞물리게 연결해 놓아 전부를 해체하지 않고서는 집을 무너뜨릴 수 없는 구조를 갖기 때문이다. 필자의 생각으로 이러한 구조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제도는, 맨 아래 수준에 위치하는 제도 즉 공동결정제의 원리에 입각한 노동평의회이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는 다른 유럽 복지국가들이 대부분 이를 채택한 원형으로서, 조절된 시장체제를 뒷받침하는 노사관계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라 하겠다.

이 제도에 따라 노동평의회의 대표성이 사용자 대표와 노동자 대표를 동수로 하는 이른바 대표의 ‘동등원칙’(parity principle)은 이 제도의 핵심 원리라 하겠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원리를 자본주의 시장의 운영주체인 기업운영에 적용했다는 점에서 제도적 혁신이 아닐 수 없다. 동등원칙은 폭스바겐과 같은 독일 최대기업에서부터 작은 기업에 이르기까지 예외 없이 관철된다. 폭스바겐의 경우, 폭스바겐을 구성하는 세 주체들, 즉 주식소유 대표, 정치 대표, 노동 대표들이 노동평의회의 감독이사회를 구성한다. 이사의 수는 총 20명으로서 경영과 노동 각각 9명, 정치인대표가 2명으로 구성된다. 정이환교수가 책에서도 소개했던 <하르츠법>은 슈뢰더 정부가 폭스바겐 인사담당 책임자이자 감독이사회의 위원이었던 피터 하르츠에게 개혁안 작성을 위임해서 만들어진 노동시장 및 복지 개혁법이다. 실업수혜비와 사회보장혜택을 삭감하고 취업재배치와 고용창출을 목적으로 했던 <하르츠법>은 2005년 총선을 준비하면서 슈뢰더 정부가 내놓은 가장 야심적인 프로젝트였다.

 

정치 없는 정책, 노동 없는 정책이 지배하는 한국 현실

 

필자는 앞에서 독일의 사례를 들어 노동시장 체제가 어떻게 구성되었고 또 어떻게 작동하며, 특정 개혁안이 어떤 맥락에서 제기되고, 그것은 어떻게 성공하고 실패했는지를 말하기 위해 그 정치적 맥락과 행위자들의 이해관계를 통해 다소 장황할 정도로 설명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노동시장문제, 노동과 사회복지체제에 대해 논의하는 데는 정치적 힘의 관계와 맥락, 그리고 행위자들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중요한 변수로 불러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다. 즉, 노동문제에 대한 논의가 정치적 문제의식과 밀착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한국의 노동시장 문제를 논의할 때 선진국의 제도를 수용하거나 정책의 모델로 삼기 위해서는, 그 정치적 맥락을 함께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렇지 못할 때 현실에 대한 호소력은 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경제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사회복지-사회정책 등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되는 이슈들인 고용, 소득분배, 사회양극화와 같이 노동과 관련된 문제영역을 논의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이를 정치적 맥락과 분리시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어떠하든 그것은 자연히 노동문제의 중심적 행위자로서 노동자, 노조, 노동운동을 사상하고 논의하는 구조를 발전시켰다. 그것은 정부의 노동정책의 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정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 정책자문 그룹과 전문가들, 학계의 학자들 모두에게 있어 공통적인 특징이 아닐까 한다.
 
오늘날 한국의 노동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개혁의 필요를 느끼면서 노동문제를 접근하는 지식인 또는 학자들이 해야 할 일의 하나는, 노동문제가 얼마나 정치적 문제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일깨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정치적 문제, 정치적 맥락은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을 통해 노동문제를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고, 어떤 개혁 내용과 전략이 모색될 수 있는가를 탐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 복지국가 모델이 정치적 맥락과 분리될 때, 사회복지, 노동시장, 노사관계 등의 제도나 정책 내용들은 파편화된 부분으로서 우리에게 이해된다. 그럼으로써 정책결정자들이나, 정치인들이나, 정책자문가들이나, 학자들을 통해 불러들여지는 스칸디나비아, 독일 또는 네덜란드의 사례들은 한국에서의 고용확대나 사회복지개혁을 위해 참고할 준거 혹은 우리가 수용해야 할 모델로서 논의되고, 그것은 정책의 내용 속으로 부분적으로 수용된다. 앞에서 독일의 사례를 보았지만, 유럽의 사회복지체제, 노동시장 제도를 그 정치적 기반과 맥락을 함께 이해한다면, 유럽 복지국가 모델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마치 동독 사회주의 해체 이후 서독의 제도를 전체적으로 이식하듯 ‘제도이전’(institution transfer)을 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제도나 정책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경우에라도 그 정치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그 제도를 가져왔을 때 소기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물론, 그 제도나 정책 자체를 이해하는 데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잘못된 사회협약론의 문제

 

한국에서 ‘코포라티즘’이나 ‘사회협약’ 만큼 널리 사용되면서도 정치권과 지식인 사회에서 그 개념이 소비될 때 편의적으로 변용되고 있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코포라티즘이든 사회협약이든, 그것은 자본주의체제에서 두 중심적인 생산자집단으로서 사용자단체의 대표와 노동자단체의 대표들 간의 이해관계, 정책목표의 타협/교환에 의한 결정, 그리고 이들 간의 합의를 중재하는 국가/정부의 개입을 통한 3자결정의 메커니즘이다.


의제의 설정과 협상과정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이들 집단이다.
오늘날 노사정 사회협약처럼, 정부와 기업이 주도하는 사회통합, 사회대타협, 양극화해소 등 그것이 어떤 슬로건이나 목적을 위한 것이든 노조를 수동적으로 또는 형식적으로 그 협의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이 사회협약은 아니다.

최근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의장은 자신의 사회협약안을 제시하면서 정치권과 사회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내용의 핵심은 2단계의 타협으로 첫 번째는 정부와 기업 간에 이루어진다. 즉 정부는 재계가 요구하는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경영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각종 규제완화와 같은 조처를 하고, 경제계는 국내투자의 확대, 신규채용 확대, 중소기업에 대한 하청관행 개선, 취약계층 노동자를 배려하는 조처를 교환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내용이 분명히 제시되고 있지 않지만 아마 노동계와의 대화를 통해 이 협약에 노동을 끌어들이는 것이 될 것이다.

김 의장의 제안은, 그동안 정부여당의 정책결정자들이나 자문위원들 사이에서 간헐적으로 제기되고, 최근에는 일상적 담론이 되다시피 한 사회협약의 내용을 구체화한 것으로 보여 진다. 그리고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서유럽 복지국가들에서 정부/기업/노조 간의 사회협약에 의한 투자활성화, 국제경쟁력 제고, 고용유지 및 창출이라는 경제업적을 만들었던 모델들, 대표적으로 네덜란드나 아일랜드의 성공사례들을 모델로 한 발상이고 정책제안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 서평의 주제와 관련해 볼 때 김 의장의 협약안은 서유럽의 코포라티즘 내지는 사회협약을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사회협약의 중심 내용은, 그동안 복지국가를 지탱했던 높은 수준의 노동비용을 포함하는 복지비, 규제되고 조정된 시장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논리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하는 것으로, 복지국가의 비용 삭감과 노동시장 유연화가 그 핵심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기업은 일정한 재정적 부담과 신기술 도입에도 불구하고 고용을 보호하는 대신, 노조는 임금인상과 파업을 자제하고 고용안정을 얻는 교환이 중심이다. 결과는 이 책에서도 자세히 살펴보고 있듯이 노사관계의 안정과 유연화를 실현하는 이른바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이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신자유주의적 독트린의 과격하고도 전면적인 일련의 개혁들을 통해 그 원래 모델인 미국보다 더 시장원리를 따르고 세계 최고의 노동시장 유연성을 실현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기업과 노동은 무엇과 무엇을 교환할 수 있을까?

현재 교환의 대상으로 김 의장이 기업에 제안한 내용은, 시장원리를 얼마나 더 확대할 것인가 혹은 아닌가 하는 문제이기보다는 정부의 기본적 역할, 즉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위해 최소한의 법의 지배를 실현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사회협약의 이름으로 정부와 기업 간의 교환을 말하는 것일지는 몰라도 근본적으로 사회협약이나 코포라티즘의 본래 성격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서유럽의 경우 교환의 대상은 지나치게 보호된 노동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노동시장에 한정해 말한다면, 유럽복지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고용, 실업, 임금보호를 내용으로 하는 사회보장에 시장유연성을 결합하는 사회협약, 그럼으로써 ‘유연 + 안정성’(flexibility + security = flexicurity)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어떤 형태의 사회협약이라는 말이 가능하려면, 외환위기 이후에 더 허약해지고 열악하고 불안정해진 노동자의 지위와 권익을 증진하는 것이 사회협약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유연화에서 더 유연화의 방향이 아니라, 유연화에서 안정성을 지향하는, 그 방향이 서유럽과는 정반대인 한국적인 유연안전성을 지향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유럽 복지국가의 사례들을 볼 때 한국사회에서 사회협약이라는 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권익을 대표할 노동의 조직화가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10% 초반대로 하락한 노조조직률은 한국 노동운동의 위상이 얼마나 허약해졌는가를 단적으로 상징한다. 이 조직률은 노동자전체는 고사하고, 노동자다수를 대변할 수 없다. 전국수준에서 기업-노동-정부 대표들 간의 협약이 이렇듯 대표성이 낮은 노조를 통해 관철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한국에서의 진정한 사회협약은 노사관계 수준에서 서유럽처럼 기업이 노동을 경영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생산의 파트너로서 인정하고, 노동에게 기본적인 사회적 시민권을 부여하는, 노동자에 대한 인정을 포함하는 것을 그 출발점으로 해야 한다고 본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위해 노사관계를 민주화하는 사회적 협약을 주도하는 일이다.

 

최근 한 세미나에 참여한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말과 같이 “어느 날 갑자기 회의에 오라고 연락 와서 가서 도장 찍고 악수하고 사진 찍는 세리모니가 사회협약은 아닌 것”이다. 또 최근 우리는 정부 여당의 정책결정자들이나 지도자들이, 정부의 정책목표와 기업이익 간의 교환 또는 타협을 사회협약이라고 말하는 것을 본다. 그것이 네덜란드의 바세나협약, 또는 아일란드의 협약 또는 어떤 사례로 뒷받침되든 그것은 실제의 사회협약의 정신과는 무관하다고 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사회협약은 실제 유럽에서 수행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기능, 즉 그것이 해결하고자 했던 실제 이슈를 한국에서는 없애버리는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정치적 문제의 중요성과 관련하여 현재 가장 중요한 이슈의 하나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지위문제에 대한 저자의 대안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저자가 제시하는 내용의 핵심은 현재의 비정규직법안에 있어 비정규직노동자의 고용을 2년으로 제한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기간제 노동사유를 규제하는 것이 필수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 실정에서 그 대안은 상당히 현실적인 것으로 보인다.
기간제 노동사유를 규제해야 하느냐, 하지 않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실제로 고용주들의 이해관계 측면에서 중요하고, 그럼으로써 이 법안의 핵심쟁점이 될는지 모른다. 필자는 이러한 구체적이고 기술적인 문제를 판단할 지식을 갖지 못한다. 다만 필자가 여기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국의 노사관계와 노동시장 수준에서만 문제를 보고 대안을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것이 발생하고 전개되는 정치적?사회적 힘의 관계라는 또 다른 수준, 즉 노동운동이 전개되고 노사관계가 실제로 발생하는 정치적 매트릭스에 관한 이해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자 권익을 실현하는 것이나 특정의 제도가 작동하는 것은 노사관계의 정치적 매트릭스로서 실제 정치적?사회적 힘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최근 금속노조들의 산별체제로의 전환과 그 효과를 분석하고 전망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노사관계에만 한정해서 그 전환의 효과가 얼마나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를 판단하기란 매우 불확실하다. 그 효과를 실제로 만들어내는 것은 정부의 정책이고, 정치적?사회적 힘 관계의 변화이고 궁극적으로는 법이 적용되는 방법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필자는 정이환교수의 이번 저작이 가질 수 있는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몇 가지 문제들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이 저자의 연구업적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이 책이 비교자본주의이론,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을 한국에 종합적으로 소개하고 이를 통해 한국 노동시장 문제를 분석한, 이 분야에서의 개척적 연구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 방향에서의 연구의 시작이기 때문에 저자 자신이 이를 지속하든, 다른 사람이 이를 발전시키든 이 책은 이 분야 연구의 초석이 될 것으로 본다. 이 책을 바탕으로 노동시장 연구가 질적으로 크게 성장하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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