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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4/14
    우리 시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란?
    한울타리
  2. 2007/04/14
    이 나이에도 울고 싶을때가 있다.
    한울타리

우리 시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란?

우리 시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란?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그런대로 신임도 받고 능력도 인정 받는, 그야말로 괜찮은 사람이 장관이나 총리 등 고위직에 지명받는 법인데, 일단 인사청문을 위한 검색대에 올라 전모를 들추게 되면 위법이나 탈법의 흔적이 곳곳에서 백일하에 드러나게 됩니다.

장관이나 총리 물망에 오를 만한 사람들,

이제는 이 같은 검색과 더불어 후환이 두려워 지명되는 것 자체를 재고하기에 이른 것이 오늘의 현실이 되었으며 가진자들의 반성이 필요합니다.

 

  제가 열거한 부류 중 백만장자는 잘 아시겠지만, 서양에서 많이 쓰는 용어로 백만 달러를 보유한 사람들인데, 한국에도 백만불(10억원)을 항시 은행에 예치한 사람들 통계가 나왔는데 약 4만 명이 된 답니다.

대단한 재력가들이고, 은행 지점에 가면 5억 원이상 예치자는 VIP룸에서 별도 써비스를 받고 있답니다.

또 항시 예금 5억원이상 사람은 7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자기 돈 알아서 사용 하겠지만, 이쯤 되면 이 분들도 당연히 사회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10 여 년 전 이야기지만 한 달에 부동산 임대 소득이 월 3천만 원 이상인 사람들이 2만 명을 넘는다 하더군요.

 

  우리 시대에 사는 사람들, 가진 만큼 남에게 베풀 줄도 알아야 하는 것도 이 시대의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닐까요?

몇년 전 80대의 노신사가 200억원을 넘는 재산을 방송국에 기부 한 분도 있습니다. 돈 뿐만이 아니라 도덕성의 문제인것 입니다. 지금처럼 노동조합이 무시되며 손가락질 받은 적이 없는것 같습니다. 탄압이라고 보기엔 우리의 도덕정신이 그 만큼 헤이 해 진것으로 봐야 겠지요. 우리는 이 시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될려면 일반 대중들 보다 그 자질이나 도덕성에 있어 더 탁월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우리 안의 도덕성의 문제 제기를 많이 하는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야 대중들은 그들을 믿고 따르게 될 것이기 때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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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에도 울고 싶을때가 있다.

이 나이에도 울고 싶을때가 있다.


꿈 많던 소년 시절도 아니고
연애의 감정에 푹 빠져 눈시울을 붉히던
사춘기 시절도 아닌 지금의 이 나이에
혼자 울고 싶을때가 있습니다.

손등에 뜨거운 눈물을 뚝뚝 떨어 뜨리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목이 터져라 소리치며
혼자 울고 싶을때가 있습니다.

이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어울릴만한 때도 되었는데
아직도 어색한 걸 보면
살아감에 익숙한 이들이 부럽기만 합니다.

모두들 살아가는데 이유가 있어 보이는데
나만은 어릴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똑 같은것만 같습니다.

이젠 어른이 되었는데
자식들도 점점 나 만큼이나 커 가는데
가슴은 아직도 소년시절의
그 마음이 그대로 살아있나 봅니다.

나이값을 해야 하는데
이젠 삶의 익숙해질 때도 되었는데
내 가슴속엔 아직도 더운 눈물이 남아있어
이렇게 혼자 울고 싶을때가 있습니다.


 
 갈대시인 이라는 분의 시 입니다.

살아가면서 우린 너무 타인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아요. 이웃, 친구, 정부나 기득권층 ...

잘못된 모순을 지적해 내는것이야 말로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의 표현 일 텐데...
누구나 마음의 나이와 몸의 나이는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몸과 마음의 나이가 다릅니다.
그래서 철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죠. 
아내는 우는걸 무지 싫어해요. 해서 아이들이나 제가 울면 인상을 찌푸리는 편이죠. 제가 눈물이 많거든요.
예전엔 이렇게 눈물 많은 제가 미웠는데 지금은 안 그래요.
눈물이 많은건 아직 내 가슴에 사랑이 있기 때문이야라고 저를 다독거립니다.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은 때 웃을 수 있다는건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상대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 안는것, 노동자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 안고 싸울 때 연대라는 것이 드러날 겁니다.

갈대시인님의 마음에 봄의 바람이 가득 들어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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