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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4/24
    옐친이 죽다.
    한울타리
  2. 2007/04/24
    동학농민혁명이 뭔가?
    한울타리
  3. 2007/04/24
    불신임 대자보
    한울타리
  4. 2007/04/24
    안데르센의 장난감 병정
    한울타리

옐친이 죽다.

쿠데타 세력 탱크에 맞선 민주주의 영웅?
"격변기의 탁월한 역사적 인물"각국 애도?

 


옛 소련의 몰락을 촉진하고 민주 러시아를 출범시킨 보리스 옐친 러시아 초대 대통령이 23일 76세를 일기로 타계했단다.

오랫동안 심장질환을 앓아온 옐친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45분(현지시각) 관상혈관계 이상으로 모스크바 중앙병원에서 사망했다고 러시아 대통령 주치의가 인테르팍스 통신에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는 위스키를 즐겨마신 주당(?)으로 더 잘알려진 인물이다.

 

소련은 미국과의 군비 경쟁 구도에 말려 결국 공산주의를 포기했다.


소련의 멸망 원인은 군비경쟁 뿐만이 아니다. "소련 공산당이 집권 74년 만에 붕괴되고 소련 해체에까지 이른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공산당의 이상적 신념을 견지해나가고 사상도덕 수양의 계기로 삼는 것과 동시에 청렴한 당풍을 조성하고 위험방지 능력을 높인다고 한 중국공산당의 활동을 보면 소련  내부의 부패도 한 원인인 것으로 볼수 있다.

물론 부패는 어느곳에나 숨어있지만 소련의 국민들 속에 자리잡은 안일함도 멸망의 한 원인으로 작용할 만큼 심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공산주의는 현 상태에서 자신만이 편한 것을 고집함으로 사상성이 강고하지 못했던 것이 결국 멸망의 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옐친이 타계했다. 영웅이니 역사적 인물이니 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와 싸워 이겼다는 판단에 따른 평가 일 것이다. 고르비가 개혁개방 정책을 펴고 그 뒤를 이어받은 옐친이 소위 민주러시아 라는 자본주의 국가를 만들지만 그도 역시 빈부격차와 재벌을 만드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지만 경제는 파탄나고 말았고 국민들의 신임은 고르비 때보다 더 추락했다.

그러나 고르비와 예친은 서방에는 인기가 좋았다. 공산주의를 종결시킨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와 비교해 결코 우월한 이데올로기 인지는 아직 이르다고 본다.

자본주의 내 빈부격차가 계속해서 좁혀지지 않고 더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FTA를 계속 진행한단다. 그로인해 경제가 살고 소득이 높아진덴다. 맞다. 그에 따라 양극화도 더 심해질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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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이 뭔가?

동학농민혁명이 뭔가?

113년전인 1894년은 도내 곳곳에 농민혁명의 들불이 타올랐던 역사의 분기점이었다. 당시 도내 인구가 100만명 안팎이어던 실정에서 도내에서만 줄잡아 10여만명이 희생된 것만 봐도 혁명의 열기를 짐작할 수 있다.

 

나라의 곳간인 호남평야의 중심에 있던 고부와 배들평 농민들에 대한 수탈은 때마침 확산되고 있던 동학정신과 어우러져 혁명의 불씨를 당기게 했다. 만석보 축조를 위한 노동착취와 수세 징수로 촉발된 농민의 저항은 부정부패 척결이 당장의 목표였다. 그러나 집강소라는 자치기구를 가동해 민주주의를 실천하는가 하면 당시 일본이 민비 를 살해하면서 침략을 노골화하자 반외세 자주의 기치를 내걸었다. 

 

하늘을 찌를 농민봉기의 큰 불씨의 도화선이 된 정읍 고부땅이나,
만득부이 무주장수 당뫼골로 이동하여 혁명적 횃불을 밝힌 제 1차 봉기를 통한 동학농민군의 창의포고로 혁명적 체계를 갖춘 것이며,
백산 봉기를 통한 호남찬의소의 대장정,
그리고 4월 7일 황토현 대전적 이후 4월 27일 전주입성을 고비로 강화이후의 집강소정치,


또한 강화 불이행과 청일전쟁 발발로 9월 12일 삼례회의를 기점으로 9월 재봉기 단행, 우금치 폐전 이후 원평, 태인, 남원, 완주대둔산 등의 항전지를 열거해 본다면 우리 전북땅은 동학농민혁명 봉기에서부터 동학농민전쟁에 이르기 까지 가히 역사발전의 몸통이 되고 명실공이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권운동의 요람지, 민주발전의 성지인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은 단순히 농민의 저항이 아니었다. 봉건체제를 부수고 근대화로 전환하는 역사의 분수령이었다. 그런데 동학농민혁명기념일 제정을 둘러싸고 이견이 있다.
정읍은 고부농민봉기 사발점으로 1월10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고 고창은 역사,상징성이 있는 무장기포일인 3월20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는 5월10일 이와 관련 정읍 황토현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학습토론을 한다고 하니 기다려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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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임 대자보

전주공장이 버스부가 지난주부터 주야 맞교대로 돌고있다.

집행부의 행동이 괘씸하지만 절차상의 문제가 없으니 결국 불신임에서 견뎌 냈다.

기왕 합의한거 한 2년만 돌면되지 불신임은 지나친거 아냐? 반투위가 너무하는거야! 라는 볼맨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원칙을 훼손하는 집행은 방관해서는 안된다는게 우리조직의 입장이었고 노사합의를 했을때도 즉각적인 라인점거보다도 집행부 퇴진에 무게를 실었던 것이다. 결국 반투위에서 라인점거를 우선하는 바람에 불신임은 흐지부지 되었지만 반수가까운 사람들이 집행부 퇴진에 찬성했다는 사실은 회사쪽이 관리자를 동원하여 반대표를 몬 것에 비하면 대단한 성과 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 마음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당시 불신임을 추진한 주체 조직으로서 대자보 내용을 게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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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을 배신한 6대 집행부


심판의 날이 다가 온다


현장중심, 인간중심 NO, 사측중심, 자본중심 YES!
⇒ 이것이 6대 집행부의 본심 이었다


사측의 감언이설에 속아 두차례나 조합원들이 반대한 주야 맞교대를 일방적으로 합의한 6대 집행부는 이제 더 이상 방치할 수가 없습니다.

6대 집행부는 철저하게 사측에게 의지한 체 노동조합의 자주성, 민주성, 투쟁성을 땅바닦에 내팽겨 쳐버리고 조합원들의 자존심을 짖밟았습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조차 하지 않으면서 국어사전 운운하며 잘못한 것이 없다는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집행부 입니까? 

그토록 깔끔하게 집행한다던 그 소리는 조합원을 위한 집행이 아닌 사측을 위한 집행이었습니다.

 

4월3일 불신임 총회 실시!
조합원의 손으로 민주노조를 바르게 세워냅시다.


조합원을 위해 일을 해야 할 집행부가 사측을 위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주야 맞교대를 합의해 놓고도 해당 조합원들에게 설명조차 하지 못하고 유인물 한장 달랑 내고 말았습니다. 이미 합의했으니 이젠 포기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지난 날 주야맞교대 합의안이 현장 조합원들의 힘으로 부결이 나자 사측은 기초질서 지키기 라는 이름으로 현장을 탄압하였습니다. 하지만 6대 집행부는 어떠했습니까? 사측에 말 한마디 못하고 꼼짝도 못한 체 사측의 눈치나 살피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집행부에게 조합원들의 고용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조합원을 배신한 집행부가 조합원을 위해 무엇을 할 수 가 있겠습니까? 4월3일 실시하는 6대 집행부 불신임 투표에 전주공장 전 조합원들이 참여하여 조합원들 배신한 집행부를 심판해야 합니다. 압도적인 불신임 찬성으로 진정 조합원을 위해 일하는 민주노조를 건설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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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의 장난감 병정

안데르센은 인기있는 동화 작가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작품중에 장난감병정이 있다.  우리집 막내의 오랜 책꽃이에 있기에 한번 읽어보았다.

안데르센의 장난감병정은 도깨비의 장난으로 시련을 격게되는 꼬마병정의 이야기이다.

 

꼬마병정과 발레인형과의 러브스토리 라고 해야 되나?

숟가락을 녹여 만든 병정들 중에 납이 부족해서 한쪽다리를 완성하지 못한 외다리 병정.

그는 발레하는 종이인형을 너무 좋아하지만 큰 궁전(종이로 만든)에 사는 발레인형과의 신분 차이를 걱정해 언제나 말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는 짝사랑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런 어느날 그는 도깨비의 장난으로 바깥으로 나가게 되고 많은 시련을 겪은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도 잠시...

도깨비의 끝없는 장난으로 그는 난로속에 던져지게 되었고 그의 몸은 불길에 녹아갔다.

그때 열려진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 종이 발레인형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난로속으로 날아 들어가 둘은 같이 타버리게 된다.

라는 이야기....

 

어찌보면 해피엔딩이지만. 잔인하다 싶다. 안데르센은 지나치리마큼 잔인한 방법으로 사랑을 소구한게 아닐까 .

긴 시련을 겪으면서도 한번의 반항도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어께에 매여진 총만 붙잡고 있었던 꼬마병정의 안일함에도 이젠 실망스러워진다.

왜 안데르센은 이런식으로 스토리를 잡았을까? 그의 생활이나 사고방식이 이랬나? 동화치고는 잔인한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어른들을 상대로 장난감이나 인형을 등장 시켰을리 없지 않은가?

 

안데르센..

이사람은 정말 어린이를 위해 동화를 만든건지..

자신의 사랑을 위해 동화를 만든건지...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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