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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준비4호] 유로존 위기와 세계대공황 2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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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위기와 세계대공황 2라운드

 

 

이민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본주의 체제 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별 일이 다 일어나고 있다. 재정위기로 침몰하고 있는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럽의 17개국)에서 지난 11월, “시장의 신뢰를 잃은” 두 명의 총리가 며칠 사이에 잇달아 퇴진해야 했다. 언론이 말하는 “시장”이라는 것은 금융자본가들이다. 그리스의 파판드레우 총리와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국제 금융자본가들의 협의체인 IMF와 유럽중앙은행의 신임을 끝내 잃어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두 총리는 각각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노동자 민중들의 항거에 의해 퇴진한 게 아니라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이들 국제 금융과두체의 지시로 물러나야 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라는 것이 부르주아들 간의 민주주의에 불과한 것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과연 이렇게 노골적인 금융과두정으로 자신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경우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은행가들의 쿠데타”

 

  “시장”, 즉 채권보유자들(예를 들어 억만장자 워렌 버핏과 세계 최대 채권펀드 핌코 같은)의 요구 하에 이들 선출된 두 정치인 총리 자리는 두 명의 “테크노크라트”(은행가인 루카스 파파데모스와 금융전문가인 마리오 몬티)가 각각 계승했다. 둘 다 선거는 없었고 국회에서 최소한의 요식행위만 거쳐서 취임했다. 그리고 여기에 EU와 유럽중앙은행을 대신하여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과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나서서 인준해 줌으로써 미국 금융자본을 비롯한 “시장”을 안심시켰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유명한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라는 민주주의 규정이 언제 개정되었던가. “국민” 대신 “금융자본”으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앞서 IMF와 유럽중앙은행과 사르코지 · 메르켈은 파판드레우 총리에게 혹독한 긴축안을 받아 적게 했다. 한국에서 1998년에 IMF가 김대중 정권에게 했던 것처럼. 그런데 파판드레우는 이 긴축안을 갑자기 국민투표에 붙이겠다고 발표하는 만용을 부렸다가 “시장”으로부터 “너 죽을래?” 한 마디에 꼬랑지를 내려야 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 프랑스 칸에서 열린 G20 회의에 소환되어 정식으로 경고를 받았다. “국민투표 공식적으로 철회 안 하면 ‘구제기금’은 더 이상 없다.”     

 

  아테네로 돌아온 파판드레우는 굴욕적으로 국민투표 철회를 발표했다. 그리고 그의 나라를 이후 10년 간 불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할 그 무시무시한 긴축안을 실시하겠다고 다시 천명했다. 국민투표 철회로 끝나지 않고, 이제 ‘상부’의 신임을 완전히 잃은 파판드레우 자신도 퇴진해야만 했다.

 

  칸 G20 회의에서 야단맞은 또 하나의 직무태만자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였다. 이미 오래 전부터 두통거리였던 그의 어릿광대짓을 이제 더 이상 참아줄 수 없었다. 이탈리아는 유로존 3위 경제대국이다. 경제 규모로 그리스의 7배나 되고, GDP 대비 부채 비율이 유럽에서 두 번째로 높은 나라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채권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국가부채 위기는 현 유로존 재무장관들에게 최악의 악몽이 아닐 수 없다.

 

  이탈리아 정부채를 보유하고 있는 투자가들이 ‘위험담보금’을 올려야 한다며 더 많은 투자 수익을 요구함에 따라 정부채 수익률(즉 국채 금리)이 몇 주 간 계속 올랐다. 베를루스코니는 그 동안 인기 없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큰 폭의 재정 삭감은 피하고자 했고 그 때문에 정부 차입금을 계속 늘려 올 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의 부채는 1조 9천억 유로(약 2,882조 원)로 GDP의 120.5%이다.

 

  그래서 칸에서 베를루스코니도 파판드레우처럼 외교적 예우도 생략당한 채, 집에 가서 빨리 긴축 프로그램을 밀어붙이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못하겠다면, 할 수 있다고 하는 다른 “신뢰할 수 있는” 인물에게 자리를 내줘야 할 것이다. 이탈리아에 신뢰할 수 있는 정치인이 거의 남아 있지 않으므로 여기서도 아마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가 자리를 차지할 상황이었다.

 

  베를루스코니는 긴축 프로그램을 강행할 적임자는 자신이라고 시장을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11월 9일 유럽 최대의 국채거래 청산회사인 LCH클리어넷이 이탈리아 국채 거래 증거금(위험담보금) 인상을 요구하자 이것이 발단이 되어 국채 가격이 폭락하고 채권 투매 패닉이 일어났다. 같은 날인 11월 9일에 이탈리아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7%를 넘어 섰다. “시장”이 볼 때 이 수준이라면 이미 되돌아 올 수 없는 지점, 즉 차입 비용이 추가 차입을 불가능케 하는 지점에 이른 것이다. 세계의 정치가들과 경제전문가들과 언론이 한 목소리로 “어릿광대”는 물러나야 하고, EU 경쟁위원회 전 위원장이자 투자회사 골드만삭스그룹의 고문인 마리오 몬티가 베를루스코니를 대신할 적임자라고 합창을 했다.

 

  채권 시장 패닉에 동반하여 전 세계 증시 폭락이 이어지자 의회 내 베를루스코니 지지자들과 연정 파트너들도 그를 사퇴시켜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탈리아 대통령 조르지오 나폴리타노 -- 그는 구 이탈리아공산당의 지도자였다 -- 는 몬티가 총리가 될 수 있도록 종신 상원의원으로 의무 지명했다.

 

  11월 10일 이탈리아 상원은 공공부문 일자리 및 사회보장 감축안을 밀어붙였고, 여기에 더해 기존 노동보호법을 뒤엎고 개악하는 법안들을 156 대 12로 통과시켰다. 다음날 하원은 이 모든 것을 380 대 26으로 일괄 통과시켰다. 민주당(구 이탈리아공산당이 ‘좌익민주당’으로 변신했다가 다시 ‘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꿨다)은 그들에게 표를 던졌던 이탈리아 노동자들을 이렇게 다시, 가장 수치스런 방식으로 배반했다. 은행가들의 사람인 몬티에게 “베를루스코니 제거”라는 명분으로 잠깐이라도 신임을 보내는 것은 수치스런 불명예 수준을 넘어 정치적 범죄이다.              
 
이탈리아 노동자들과 실업·반실업 청년들과 남부 농촌의 빈민들은 이제 자신들 말고는 믿을 놈이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노동조합의 기층 평조합원들 속에서, 작업장과 학교에서, 노동자계급 지구들에서 대중적 저항운동이 이미 자라나고 있다. 그리스에서 사회적 삶을 파탄내고 있는 긴축 내핍이 이탈리아에서 똑같이 실시되도록 놓아두지 않으려면 고립적인 ‘하루 행동의 날’이나 상징적인 점거행동을 넘어서 총파업으로, 그것도 무기한 총파업으로 나아가야 한다.

 

 

“제2차 신용사태”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위기, 그리고 EU가 조직한 이번 “은행가들의 쿠데타”를 통해 유럽 공동 통화의 심장부 깊숙한 곳에서 날로 커져가고 있던 모순이 드러났다. 4년 간 불황과 정체와 최근의 성장 하락이 이어진 뒤에 이 모순이 그리스에서, 그리고 다음으로 이탈리아에서 터져 나왔다. 디폴트(채무불이행/국가부도)로 “제2차 신용대란”이 터질 기세다. 미국에서 2008년 리먼브러더스 붕괴에 뒤이은 신용경색 사태보다 훨씬 더 큰 은행 위기와 금융시스템의 잠재적 붕괴 가능성을 점치면서 경제전문가들이 즐겨 쓰는 완곡한 표현이 바로 이 “제2차 신용대란”이다.
 

  “우리 돈”으로 구제기금을 받고 있는 것은 이른바 “게으르고 낭비가 심한” 그리스인들이 아니라, 프랑크푸르트와 브뤼셀과 파리와 런던에 있는 “우리나라 은행가들”이다. 실제로 이들 금융자본가들이 자신들이 보유한 그리스 채권의 가치를 최종 50% 상각(부채 50% 탕감)한다 하더라도 그리스 구제금융은 대부분 그들 주머니로 들어가고 일부는 그리스 국내의 몇몇 인수합병 독점자본한테 간다. 유럽중앙은행과 IMF 등이 ‘구제금융’이라는 이름으로 그리스 재무부에 빌려주는 신규 대출은 곧장 이들 기생충들한테 그 동안 밀린 국채 이자를 갚느라고 다 빠져나간다. 유로존에서 가장 낮은 임금과 가장 빈약한 연금으로 가장 긴 시간을 일하는 평범한 그리스인들한테는, 한국에서 1998년 IMF 때 그랬던 것처럼 단 한 푼도 가지 않는다.  

 

  미국 정부와 연준(미국 중앙은행)이 ‘양적완화’라는 이름으로 하듯이 유럽중앙은행이 그 자신의 채권(말하자면 유럽연합 공동국채; 유로본드)을 발행하거나 대대적으로 돈을 찍어낼 수 있다면 지금의 위기로 인해 유로존이 해체 직전까지 가고 있는 상황은 일부라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독일 정부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는 일부 언론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1923년 살인적인 초인플레를 겪고 그 결과 히틀러 집권이라는 재앙을 맞게 됐던 독일 국민들의 정신적 강박 같은 것 때문이 아니다. 전체 유로존 수준에서 양적완화가 안 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유로화를 남유럽 국가들의 생산성에 대비해 그 보다 높은 수준으로 맞춰놓아야 이 나라들의 경제가 북부의 은행가들과 기업가들을 위한 확실한 돈줄이 계속해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이 환율을 조정할 자국 통화를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독일 등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수입 급증을 막아낼 길이 없다. 남유럽 국가들의 조세수입으로는 이 같은 과평가된 통화를 떠받칠 수가 없어서 파멸적으로 높은 금리로 (프랑크푸르트은행과 파리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차입해야만 했었던 한편, 그와 동시에 이들 국가의 경쟁력 없는 산업들은 홍수처럼 밀려드는 독일 수입품에 밀려 무너져 내렸다.

 

  예를 들어, 그리스 국내산 제품 가격은 1995년에서 2008년 사이에 평균 67% 올랐는데 이는 유론존 차원에서 볼 때 기록적인 상승이다. 스페인 국내산 제품의 평균 가격은 56%, 포르투갈은 47%, 이탈리아는 41%나 각각 올랐다. 대조적으로 독일은 같은 시기에 단지 9% 올랐을 뿐이다. 독일 자본한테는 추가 보너스가 될 것 하나가 또 있는데, 유로화 도입 이래 독일 노동자들의 임금이 사실상 멈춰서 있다는 것!      
 
  이탈리아인들도 베를루스코니 10년으로 피폐해졌다. 7명 중 1명꼴로 빈곤선에서 허덕이고 있는 한편, 경제위기로 고실업 저임금이 만연했다. 이미 10월 15일 국제 아큐파이 날 로마에서 경찰과 한바탕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베를루스코니가 실각했다고 거리에 쏟아져 나와 춤추던 것도 시간이 지나 끝나고, 이제 마리오 몬티 새 총리가 착수하는 긴축 공격의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면 그리스와 같은 규모로 광범한 저항과 대중파업 물결이 번져나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프랑스는 어디로?

 

  이제 투기꾼들은 호시탐탐 이탈리아 어깨 너머 프랑스를 엿보고 있다. 프랑스 국채 금리도 급등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6개월 밖에 남지 않은 선거를 의식해서 전면적인 긴축 조치는 피한 채 포퓰리즘과 보호무역주의를 뒤섞은 베를루스코니 식의 ‘짬뽕 정치’를 수년간 추구해 왔다. 이제 프랑스는 그리스 · 이탈리아와 같은 덫에 걸려 성장률 하락과 부채 증가 사이에서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프랑스를 “관찰 대상”에 올려놓고 여차하면 신용등급을 강등할 태세를 보였다.

 

  11월 11일 금요일 무디스는 프랑스의 신용등급이 이미 강등되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것은 “실수”라며 급히 철회했지만, 시장이 처음부터 성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될 수 없었다. 성명은 아무도 쌩뚱맞다고 여기지 않았고, 심지어는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결과, 성명으로 패닉과 시장 급락이 촉발됐다. 금융자본가들은 프랑스 부채가 이미 기존 트리플-A 지위를 잃은 것으로 간주했고, 국채 금리도 계속 올라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만일 프랑스가 이탈리아와 동일한 압력 아래 놓이게 되면 이는 단지 프랑스의 신용등급이 문제가 되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사태를 가져올 것이다. 프랑스는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이며, 독-불 동맹은 유로존이 굴러가는 중심축이다. 프랑스가 부채 위기에 빠지면  유로존 전체는 물론이고 그것을 넘어 세계경제를 걷잡을 수 없는 침몰 상태로 몰아넣을 것이다. 프랑스의 신용등급이 강등된다면 유럽재정안정기금 -- 국채 매입 등을 통해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의 긴축 프로그램에 버팀목을 대주고 있는 유로존 구제기금 -- 의 신용등급도 동반 추락할 것이다.

 

 

전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유럽 전역을 넘어 미국에서까지 “전염”이라는 단어가 금융기관과 경제전문가들 누구의 입에서나 오르내리는 말이 되었다. 서로 서로 물려 있는 상호 부채가 어느 일국(또는 어느 주요 은행)의 채무불이행 사태를 신호탄으로 체제 전반의 패닉으로,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같은 “신용경색”과 은행 줄도산으로 번지는 것을 말한다. 지금 병든 중위권 유로존 나라들 -- 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 의 정부 부채 중 외국인 보유분은 그 대부분이 독일과 프랑스 은행들 것이다. 미국 은행들은 이들 나라 부채 가운데 6%만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비율은 파생금융상품 같은 다른 형태의 부채까지 포함하면 18% 정도까지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더해, 미국 은행 대출에서 독일과 프랑스 은행들에 대여된 것이 1조 2천억 달러가 넘는다. 이는 간접적으로 미국 은행들이 이들 중위권 나라들의 정부 부채 중 훨씬 더 많은 액수 -- 미국 은행들 자산 총액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액수 -- 가 물려 있음을 의미한다. 칸 G20회의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유럽 정상들, 특히 독일 메르켈 총리한테 “당신네들의 우유부단함이 세계경제 전체[‘미국 은행들’이라고 읽자]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대놓고 문책한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더 폭발적인 것은, 미국의 10대 머니마켓펀드(MMF)들이 유럽 은행권에 대한 단기 대출을 2850억 달러로까지 늘린 것인데 이는 그들 자산 총액의 42%에 달하는 액수이다. 그리스에서 이탈리아로, 프랑스로 번질 때마다 매번 ‘위험담보금’은 더 높아지고, 시장의 공포가 증대되고 부채 비용도 증대되고, 그와 함께 은행권 붕괴를 가져오는 국가부채 위기의 위험도 증대된다. 2008년 가을에 미국 은행 리먼브러더스가 붕괴하여 금융 위기와 세계 공황의 방아쇠를 당겼는데, 이번에는 전염병이 역방향으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번져갈 수 있다. 유럽은 비틀거리며 그 같은 붕괴 직전 상황까지 왔다. 

 

 “신흥시장”에 대한 유럽 은행권의 대출 규모가 총 3조 6천억 달러(신흥시장 은행들의 차입 총액의 71%)이다. 여기서 신용경색이 일어나면 오늘날 세계경제의 주 성장 원천에  결정적인 타격이 될 것이다. 유럽 은행권의 위기는 제2차 공황(이른바 “더블딥 불황”)을 알리는 전령이다. 그 공황은 2008년-2009년 공황보다 더 격렬할 것인데 왜냐하면 이번에는 그 공황을 억제하는 데 필요한 구제금융과 경기부양 프로그램을 위한 가용 기금이 없기 때문이다.  

 

 

부채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무디스와 LCH클리어넷 같은 금융시장 인프라는 외견상 기술적이고 “중립적”인 외관을 취하고 있지만, 이들의 경제적 힘은 시장의 변수들을 조작해서 멀쩡한 나라들까지도 경제위기에 빠뜨릴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하다. 이들은 이번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보듯 정부를 퇴진시키고 긴축 프로그램을 강요하여 노동자의 임금과 일자리, 노동기본권과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공격하는데, 이 공격의 범위와 강도를 보면 전에 반(半)식민지 같은 보다 가난한 나라들에서나 보았던, 역사적인 규모의 공격이다.

언론은 이러한 공격과 압력의 출처를 “채권시장”이라는 중립적인 용어를 써서 처리하고 있는데, 그 수면 아래에는 워렌 버핏과 핌코 같은 억만장자 거대 작전세력이 있다. 이들이 국채 매입 등을 통해 자금을 대출해 준 정부들은 전면적인 긴축 프로그램을 받지 않을 수가 없는데,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곧바로 대출 상환 요구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 긴축 프로그램은 민영화와 구조조정, 임금·연금 및 복지 삭감과 노동기본권 축소 등 자본에 이익이 되게 나라 경제를 완전히 재편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실로 0.1%가 99%를 겨냥하여 펼치는 ‘작전’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러한 사태가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이제 겨우 그 초입부를 통과한 역사적 위기 속에서 허우적대는 자본주의가 20세기 후반부에 유럽 노동자들이 쟁취한 성과물을 회수하기 위해 지금 사생결단으로 덤벼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수십 년 걸려 쌓아 올린 것을 단 몇 달만에, 길어야 몇 년만에 파괴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 지도부들과 개량주의 정당들이 그러듯이 케인스주의적 공황 타개 정책에 희망을 걸고 저항과 반대투쟁을 미루고 늦추는 것은 계급에 대한 범죄이다.

 

  자본의 이러한 역사적 공격에 맞선 효과적인 저항은 전면 총파업을 감행하는 것이다. 트로츠키가 말한 것처럼 총파업은 “누가 나라의 주인인가”의 문제, 즉 정치권력의 문제를 제기한다. 지금 자본주의 자체가 객관적으로 준혁명적 · 혁명적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도 급속도로, 그리고 전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말하자면 지금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보이는 독일 같은 나라들에서의 노동자들이 곧 최전선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고 돌발적으로 정세를 급변시키고 있다.

 

  나라 별로 저항하는 것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배계급과 그들의 언론이 노동자들의 주의를 진짜 적(자본주의)으로부터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유포하고 있는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에 맞서기 위해서는 직접 공격받고 있는 나라 노동자들과의 국제주의적 연대 행동에 착수해야 한다.
  유럽에서 노동자계급과 사회주의 혁명세력이 이러한 임무와 과제를 요청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스공산당 등이 내걸고 있는 “좌측으로 유로 이탈[좌익적 EU 탈퇴]”이라는 쇄국주의 슬로건은 대중들을 지배계급의 민족주의 · 애국주의에 결박시키는 데 일조할 뿐이다. 한국이든 유럽이든 자본의 위기 전가 공격에 맞서 투쟁하는 데서 가장 큰 장애물은 어디서나 이러한 민족주의 · 애국주의 물결이다.
  중동이나 동아시아나 어디서든 그렇지만, 특히 지금 유럽의 노동자계급에게 필요한 것은 전 유럽적 차원에서의 노동자 국제주의에 입각한 사회주의유럽합중국을 명확히 목표로 하는 강령과 그러한 강령에 바탕한 국제적인 사회주의혁명정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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