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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념]변혁을 위한 과학기술은 존재하는가?

특근하면... 김진균선생님 동영상보고 울적해서 함 적어봤습니다.

 

 

변혁을 위한 과학기술은 존재하는가?

과학기술자에 대해 요즘 사람들은 흥미 없어 하지만(이공계 기피 현상을 보면 알 수 있다) 17-8세기 과학자들은 탤런트나 마술사와 같은 인기를 누렸다. 당시 과학의 시연은 대중들에게 마치 마술과도 같이 신기하게 보였고, 또 그 기술을 이용하면 생활에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과학기술자들은 자본가들의 지원을 받았다. 중요한 이유는 그들의 과학이 중세 종교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데올로기적 물질적 기반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흔히들 갈릴레오가 ‘지구는 돈다’라고 해서 종교재판을 받았다고 하지만, 이미 갈릴레오는 자본가들에게 종교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와 이데올로기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에 요주 인물이었다.  


이렇게 자본가들로부터 지원을 받은 과학은 20세기 냉전을 맞아 더 비약적인 발전 하는데, 그것은 70년대 반도체(고체물리)를 기반으로 하는 양자역학과 80년대 광학의 발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80년대 전쟁광 레이건의 스타워즈 계획은 광학을 하는 과학기술자들에게는 산타클로스의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 버린 90년대 들어 자본주의가 추락하면서, 기존의 과학기술 역시 추락하고 있다. 돈 되지 않는 과학은 관심을 잃어갔고, 기존 기술은 발전의 발전을 거듭해서 한계까지 왔다. 자본주의 상품은 제품의 유용성(기능성) 보다는 껍데기 디자인만 바꾸어 ‘신제품’으로 출시되고 있다. 이로 인해 그 동안 각광받았던 고학력 과학기술자들은 노동자 대중들과 같은 운명이 되었다. 당시 국내에 주주자본주의가 도입된 시기였다. 이에 발 맞추어 IT, BT NT 등이 등장하였지만, 주가와 동고동락하는 이들 기술들은 주가가 폭락하면서 순차적으로 IT가 몰락하고, NT도 몰락하고 황우석 사건으로 BT마저 몰락해 가고 있다 (아직까지 BT에 대한 기대는 크다)

과학기술을 비판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 가 있다(아래 레빈스교수 글 참조). 우선 예전의 과학은 공유되었지만 지금은 특허 등으로 사유화되고 기업 의 비밀로 간주되어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과학의 오용에 대한 비판(주로 환경오염, 원폭문제)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자유주의 시민단체에서도 지속적으로 비판해 왔고, 대립지점도 분명하며, 주로 과학기술 정책비판에 의존하였다. 두번째로 엥겔스나 레닌이 했듯이 과학기술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이다. 과학기술의 검증 역시 과학기술계에서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이러한 비판을 어렵게 한다. 한번 따져보자 현대 과학기술이 과연 객관적일까? 혹시 어떤 이데올로기를 포함하고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IQ를 TEST해 보니까, 흑인 보다 백인이, 여성보다 남성이 뛰어나다는 ‘과학적’ 결과가 있다고 한다. 어떤 과학자는 범죄 유전자를 찾는다고 난리를 피운다. 또 잘 알려진 ‘주위력 결핍 장애’라는 병을 정의하고, 사회학적 치료방법을 도외시 한 채 아이들에게 마약을 처방하기도 하고, 이 마약이 ‘공부 잘하는 약’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또 기독교 신화(혹은 아프리카 원주민 신화)와 유사한 ‘빅뱅이론’은 현대 우주론의 주류이다. 또 각 나라에서 발견되는 유인원의 역사는 고무줄과 같다. 이러한 결과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과학기술은 노동자-민중의 삶과 과학기술의 삶은 아주 밀접한 듯 하지만(소비의 측면에서) 아주 동떨어져 있다(생산의 측면에서). 과학에서도 노동자-민중의 ‘주권(전복할 수 있는 권리)'은 없다. 근대에서 탈 근대로의 주장을 펴는 분들은 하나의 대안으로‘이성(과학)’에서 ‘욕망’으로의 이전을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과학기술에 얽혀 있는 많은 문제들에 대한 본질적인 해답은 나올 것 같지 않다. (그렇지만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과학기술(이성)을 축으로 해서 ‘욕망’을 탐구하고 싶다. )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고민은 다음과 같다. 과학기술에 대해 앞서 두가지 측면에서 비판은 아주 중요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첫번째와 두번째 비판을 수행하면서, 그 대안을 찾는 것이다. 중세에서 근대로 오면서 과학기술의 발전은 역사 발전의 중요 선상에 있었다. 그 과학기술은 자연에 대한 객관성을 ‘일부’ 포함하면서도 자본주의의 탄생과 성장을 위한 과학이며 과학기술이었다. 그렇다면 변혁을 생각하는 우리들, 또 이 시기에 첫번째와 두번째 비판에 자유로우면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과학 혹은 과학기술, 은 무엇일까? 혹은 더 비판적으로 그러한 것이 있기는 한 것인가? 없다면 다른 대안은 무엇인가?

 

필자는 이러한 입장에서 과학기술을 고민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과학기술을 비판하고 찾는 작업들에서 소련의 ‘리센코 사건'은 소중한 교훈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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