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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애 낳고 일도 하겠다.

그녀와 만난 지 벌써 4개월이 되었다. 임신하고 직장도 잃고 절망에 빠졌었는데 다행히 체류자격 변경이 승인되었고 이제 행복하게 아기를 낳을 수 있게 되었다. 베트남 여성인 T씨,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온 지 1년 반.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일을 하는 베트남 남성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임신을 했다. 헌데 이를 어쩌나, 회사에서 임신 사실을 알고 그녀를 해고시켜버린 것이다. 당시 그녀는 남편과 함께 우리 센터에 찾아왔고 해고를 막아달라고 했다. 그때가 임신 3개월째 되던 때였는데, 우리가 산전휴가를 내줄 수 없는지, 그녀의 고용상태를 지속시켜줄 수 없는지 물었지만 회사에서는 그저 해고 결정을 내려버렸다. 부당해고로 노동부에 진정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래봤자 복직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부당해고에 따른 한달분의 급여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소용도 없었다. 여기저기 물어서 임신을 이유로 구직기간 연장이 가능하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 후 고용지원센터에 전화를 해서 가능한지 물었더니 돌아온 말, "집에 돌아가라 그러세요". 참 나, 그래서 노동부 본부에 연락을 해보았다. 외국인정책과에서 이주노동자가 임신, 질병, 산재 등의 이유로 취업활동을 할 수 없을 때 인도적 차원에서 그들의 구직기간을 연장시켜줄 수 있다는 답변이 왔다. 그래, 이거야! 해고 뒤 구직기간 2개월이 흘렀을 때 고용지원센터에 공문을 써서 그녀에게 들려보냈다. 2개월 더 연장해달라 하고. 바로 전화가 오더라. 처음 전화를 받았던 그사람한테서. 전화통화때와는 달리 꽤나 협조적인 반응을 보였다. 자기도 노력을 해보겠으나 출입국쪽과 아무 문제가 없는지 확인이 필요하니 확인 후 연락을 주겠다고. 일주일쯤 후 다시 연락을 해보니 이 사람의 (1년마다 갱신하는) 비자가 4월경 만료되기 때문에 고용지원센터에서 구직기간 연장을 해주어도 출입국쪽에서 비자 연장을 해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말을 했다. 그러니 G-1(요양비자)로 체류자격 변경을 했다가 출산 후 다시 E-9(고용허가제)로 바꿔보란다. 후... 정말 쉽지않네. 왜 하필 비자가 이때 만료되냐... 사실 구직기간 때 비자가 만료되면 구직필증을 가지고 출입국에 가서 임시 연장을 받기도 하는데 또 안해줄라고 하네.. 결국 체류자격변경 신청서와 센터 공문을 썼고 이 여성과 센터 베트남출신 동료분이 그걸 가지고 함께 출입국사무소에 갔다. 임신을 이유로 체류자격을 G-1으로 변경해달라고. 또 전화가 온다. 출입국 창구 직원의 말, "지금 임신 7개월이네요. 저희가 9개월정도 됐으면 해드리겠는데 지금은 7개월쯤 됐고 비행기 탈 수 있잖아요. 돌아가도록 말씀해보시죠." 이런다. 그래서 '이 여성은 고용허가제로 온 거고 출산 후 일을 계속 하고싶어하니 변경을 수락해달라'고 말했다. 또 안되나보다하고 체념한 후 다음날 동료분과 얘길 하는데, 나랑 전화통화를 한 후 출입국 직원이 변경해주려고 했단다. 그런데 남편의 등록번호를 물어서 말을 하니 "남편, 불법이네요? 가세요" 이러더란다. ㅡㅜ 황당했다. 남편의 체류자격을 변경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비자가 있는 이 여성의 자격변경을 신청한 것인데 왜 남편 체류상태가 영향을 끼친단말인가! 대표와 상의를 했고 다시한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안되면 국민권익위원회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보자고. 비장한 각오로 출입국 과장에게 연락을 해보았더니 또 놀랍게 자기 직원들이 너무 열심히 일을 한다(원칙을 너무 지킨다)며 찾아오라고 한다. 앗싸~! 이번엔 이 여성과 내가 직접 갔다. 담당 실무자중 좀 높은 사람이 과장실로 왔고 우리를 데려갔다. 신청서를 제출하고 기다리는데 결재가 오후에나 나겠다며 돌아가라고 하네. 그리고 몇시간 후 나에게 전화를 해서 결재 났다고, 설명도 듣고 등록증도 받으러 오란다. 됐다, 됐어!!!! 다음날 이 여성은 다시 출입국에 가서 맡겨둔 등록증과 여권을 받아왔고, 등록증 뒷면에 보니 체류자격이 G-1으로 변경되어 7월까지 유효하다고 적혀있었다. 1회에 걸쳐 두달까지 연장할 수 있다고 하니 출산하고 한달쯤 연장하면 되겠구나. 아... 너무 기쁘다 정말. 잘됐다, 잘됐어... 여러가지가 겹쳐서 많이 돌아 목적지에 도착한 느낌이다. 분명 고용지원센터에서 끝낼 수 있었을 문제가 아니었나싶다. 비자를 임시연장하는 선에서 말이다. 이쪽에서 몸을 좀 사린듯한 느낌이다. 아마 두번쯤은 더 해야 할 구직기간 연장이 부담스러웠겠지. 이 여성도 마음 고생 많이 했을거다. 자기 친구도 똑같은 상황에서 연장이 됐다는데 왜 나는 이렇게 잘 안되나... 거기다 어쩜 비자가 또 4월에 만료되냐.. 개인의 임신, 출산 이런 문제마저도 법이라는 제도 때문에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통탄스럽기만 하다. 일하러 온 사람은 임신하면 안된단 말밖에 안되지 않는가! 일 안할거면 니네 집에 가! 이런 식이니... 그리고 여성의 체류 자격 변경신청에 남편의 체류 자격이 영향을 끼치는 것, 이해하기 힘들다. 내 친구들 말대로 "미혼모예요" 혹은 "술 먹고 모르는 남자랑 자서 생겼어요"라고 말해야 한단 말인가? (ㅋ) 암튼 잘 해결되었고 이런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싶다. 정말 외국인 혼자서 하는 게 불가능할테니. 정말 다행이지. 잘됐다, 정말...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닫는다. 갈 길이 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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