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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안 풍경

날짜 모름.

 

구로에서 탄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는 우물쭈물 서있다. 잠시 뒤 전철이 출발하자 곧 팔에 든 노트북을 살짝 닫아두고 자신을 단편영화 감독이라고 소개한다. 뒤이어 자신이 찍고싶은 장편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찍는데 5억이들고, 20억이 만들어질 거라고 이야기한다. 정말 너무 방법이 없어서 여기까지 나왔다며 죄송해하는 그 남자는 말을 더듬고 있다. 여전히 어쩔줄 몰라보이는 모습이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하는 이야기는 저에게 관심이 있으신 분은 명함을 드릴테니 손을 들어달라고 부탁한다. 지하철 안에 싸한 분위기가 맴돈다. 그남자가 터벅터벅 다음칸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다. 괜히 눈물이 핑돈다. 그남자의 서툼에 어색함에 그런 것에.

 

어떤 아저씨는 전철을 기다리면서부터 욕을 하고 있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분명한 욕이다. 끊임없이 욕을하다가 전철을 탄다. 그리고 다시 욕을 한다. 같은 칸에 탄 나는 괜한 겁을 먹고 있다. 곧 내 앞에 어떤 아저씨가 선다. 머리속의 하얀 살들이 보일정도로 젤을 바른 그 아저씨는 내 다리켠에 자그마한 캐리어를 세운다. 전철에서 물건을 파는 가방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작은 가방이다. 그 가방을 세워놓은 아저씨는 기모레깅스를 꺼낸다. 시중에서는 12000원에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그 레깅스는 아저씨의 손에서 장미란이 강호동이도 입을 수 있다는 말에 대한 증명으로 쭉쭉 늘어나며 탄력성을 선보이고있다. 시중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다는 4중기모로 된 그 레깅스는 내 다리에도 같은칸의 다른 여자들의 다리에도 이미 신겨져 있다. 듣다보니 그 레깅스의 장점은 탄력성도 4중기모도 아니었다. 음이온이 마구 뭐 통과되기 때문에 신경통과 관절염에도 아주 좋다는 레깅스. 그렇구나. 레깅스가 만병통치약이 될 수 도 있었구나. 한켤레를 구입했다. 4천원. 이번에도 눈물이 핑 돈다. 그냥 음이온이 통하는 레깅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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