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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3/18
    맛깔나게 글 쓰는 법, 누가 안 가르쳐 주나? OTL(10)
    레이-1
  2. 2007/03/14
    [뉴스] 주민등록증 없이 여권발급 길 열려(2)
    레이-1
  3. 2007/02/21
    블로그에 대한 예의(10)
    레이-1
  4. 2007/02/15
    타인에겐 철저한, 나에겐 관대한.(6)
    레이-1
  5. 2006/12/20
    밀린 포스트 쏟아내기 신공(2)
    레이-1
  6. 2006/11/12
    '이름'에 대한 이런저런 잡생각들.(2)
    레이-1
  7. 2006/10/17
    좀 제대로 살고 싶은데..(5)
    레이-1
  8. 2006/10/10
    대학..꼭 보내야 하나..?
    레이-1
  9. 2006/10/09
    공무원과 나의 공통점과 차이점.(4)
    레이-1
  10. 2006/10/02
    오해..오해?(9)
    레이-1

맛깔나게 글 쓰는 법, 누가 안 가르쳐 주나? OTL

월간 『사람』에 연재하는 "이것도 인권이에요"꼭지는 매월말 내게 심각한 두통을 선물한다. orz 그런데 정말 더 좌절할만한 상황이 발생했다. 비슷한 소재로 쓴 글인데 이렇게 맛이 다를수가!!! 누가 나한테 이렇게 글 쓰는거 안 가르쳐 주나요? 흑흑. 내가 쓴 글 나를 좌절시킨 문제의 그 글!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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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주민등록증 없이 여권발급 길 열려

오리님의 [오리의 우왕좌왕, 좌충우돌 쎄컨드 신분쯩 만들기] 에 관련된 글.

ㅋㅎㅎㅎㅎ 이런거 보고 웃으면 안되는데 기사를 보자마자 마구마구 웃어버렸다. 몇 달전 오리가 미친듯이 쎄컨드 신분증(운전면허증) 만들려고 돈도, 시간도 쏟아부은걸 생각하니 웃을 수밖에. ㅋㅋㅋ 오리한테 말해줬더니 뜨거운물만 부으면 바로 싸~악 뽑혀버릴 것 같은 얼마 안되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을것 같은 표정으로 소리지른다. "내 70만원~~~~~~~~~~~~~~~~~!!!" ㅋㅋ 오리 미안해. 배아프게 하려던건 아니었어. :p


지문날인거부자 김성민 씨, 신분증 없이 여권발급 예정 김민재 기자 b19431939@jinbo.net / 2007년03월08일 13시45분 지문날인 없이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지문날인 거부를 이유로 신분증이 없었던 김성민 전 울산노동뉴스 기자가 여권발급에 성공했다. 김성민 씨는 국가기관에서 발급하는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울산시청으로부터 여권 발급을 거부당하자 신분증 대신 네티즌 등으로부터 신원을 보장받는 방법으로 곧 여권을 발급받을 예정이다. 김성민 씨가 자신의 사진과 그간의 사정을 알리는 글을 통해 네티즌에게 신원보증운동을 펼친 후, 3주 남짓한 기간 동안 김성민 씨를 알고 있는 40여 명의 네티즌이 김성민 씨의 신원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 또 김성민 씨는 사진과 최소한의 양식을 적고 신원을 확인한다는 서명용지를 만들어 시의원, 구의원, 정당인, 노조간부, 인권활동가 등 10여 명을 대상으로 서명을 받았다. 2월 28일, 김성민 씨는 다시 시청에 찾아가 여권발급신청서와 사진 1장, 그리고 ‘제 신분을 확인해 주실 분들을 찾습니다’라는 글과 댓글들, 장석대 변호사의 법률 검토 의견서, 신분을 확인한 서명지 등을 구비하여 여권발급을 신청했다. 이에 시청관계자는 외교통상부에 “지문날인거부로 인해 신분증이 없는 경우, 공인 등을 통해 신분을 확인하는 것이 가능한가”를 문의한 후 김성민 씨가 제출한 서류를 접수했다. 지난 2일 외교통상부는 “신청인과 여권 명의인이 동일인임을 확인하는 방법은 주민등록전산망 사진과 신분증의 대조가 가장 확실하고 보편적인 방법이나, 문의한 경우와 같이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거주지 읍,면,동장의 신원확인서 등으로 보충될 수도 있다고 판단됩니다”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동사무소 신원확인서 양식에 동장의 확인만 받으면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정건 울산시청 민원실 차석은 “김성민 시민의 적극적인 문제제기에 관련법을 검토한 결과, 여권발급에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는 법적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신분증이 없더라도 관공기관을 통해 신원이 확실한 시민이라는 사실이 증명되면 여권발급이 가능할 것이다”며 “외교통상부에 질의한 결과, 동사무소가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으로 교체하기 전의 주민등록증이나 주민등록등본에 기재된 정보를 토대로 면접조사를 진행하여 신원을 보증한다면 여권을 발급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일이 시민의 불편을 덜어주는 모범선례가 될 것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김성민 씨는 “‘실명 댓글과 같은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연대의 힘’을 바탕으로 ‘국가로부터 권한을 위임 받지 않은 공인’을 인정받으면 그것이 제 신분증”이라며 이번 일을 “아래로부터 모아지는 힘을 통해 국가기관의 일방적 신분확인제도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투쟁”이라고 평가했다. 또 “이를 계기로 자발적 연대운동과 불복종 저항운동의 흐름을 만들어갈 생각이다. 오는 3월 28일에 ‘기본권과 불복종 저항운동’이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성민 씨는 조만간 동사무소에서 신원확인을 마치고 여권을 발급받을 예정이다. 이번 사례는 외교통상부가 지문날인을 하지 않고도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최초 사례로, 지문날인 거부 운동의 한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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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대한 예의

트랙팩님의 [나에게 (진보)블로그란 ?] 에 관련된 글.

1. 사실은 별로 관련 없는 포스트를 하려다가.. 포스팅의 이유가 트랙팩의 주제와 관련이 있어서 여기에 슬쩍 얹어간다. 트랙팩도 하고, 글도 올리고.. 1타 쌍피라 할 수있;; 2. 게다가 실은 예전에 이런 낙서로 내 블로그에 대한 생각을 써본적도 있다. (재활용까지 하니 이건 1타 3피..?) 3-1. 왜 꼭 '진보블로그'냐? 라고 묻는다면, 글쎄. 아마도 쓰레기같은 덧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장점이지 않을까 싶다. 이건 나 말고 다른 많은 블로거들이 공감하는 부분일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솔직히 내가 가진 비윤리적 취향/성향이나 천박한 취미를 공개하기에는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언제 어디선가 갑자기 '이런 혁명적이지 못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니! 운동권으로서 반성하시오!'라는 날벼락 같은 댓글이 달릴 것 같아 겁난다. 솔직히, '겁난다'보다는 '귀찮다'가 맞는 말이겠지만, 이런 이유때문에 포스트에 대한 자기검열을 한다는 것은, 결국 1인 매체로서의 블로그의 성격을 아직은 충분히 이해하거나 활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블로그를 '내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나보다. 3-2. 위의 내용과 연결해서, 솔직히 나는 '내 블로그에서는 이런거 못 받아준다!'라는 경고가 참 꼴사납다고 생각한다. 그럴거면 홈페이지는 어떠세요?라고 되받아주고 싶을 때가 있다. 블로그가 갖는 특별한 기능들(트랙백이나 RSS..에..또..아우 사실 나 이런거 완전 문외한인데!-공부가 귀차나요 -┎)을 고려해본다면 블로그는 철저히 소통, 연결의 공간으로서 활용되는 것이 정상이다. 홈페이지 만들려면 돈 들잖아!라거나 홈페이지 만들 줄 몰라서 그런다 왜?라는 답변이 돌아온다면 (즐~ 이라고 하진 않겠지만 ┒-) 블로그 서비스 개발자들의 서비스 개발 취지와 무관하게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그건 사실 무임승차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 혹여 오해를 빚을까봐 하는 얘긴데, 나는 컨텐츠 자체가 개인의 신변잡기로 채워져 있다고 뭐라 하는 것이 아니다. 블로그가 갖는 소통 가능성을 차단하는 행위에 대해 반대하는 것일 뿐이다. (아주 쪽팔린 얘기지만, 사실 난 맨처음 만들었던 블로그를 거의 미니홈피처럼 활용했었다. 트랙백 다 막아버리고, 댓글 설정도 다 막고, 친구 공개만 설정하고;;) 3-3. 뭐 그래도 저건 결국 내 생각일 뿐이므로, 누가 안 듣는다고 해서 뭐라 할 수는 없다. 물론, 논쟁의 여지는 있다. 그러나 논쟁은 타인의 생각을 인정하지만 뭔가 논리적 해석이 되지 않을 때 반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지, 너 참 편협해서 잘났다는 식으로 들이대신다면 참 괴롭다. 그럴때는 나도 한 마디 하고 싶어진다. 비난은 너네 집에서라고 말이다. 4. 쓰고보니 참 싸가지 없는 말투로 썼다. 그런데, 이건 사실 내가 몰래(!) 좋아하는 어떤 블로거의 말투다. 그 블로그를 좋아한다고 하자니 참 정치적 생명(응?)이 끝장날까봐 차마 드러내놓고 좋아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말투, 써보니 꽤나 재밌다. ㅎㅎㅎ


. . . . . . . 이거 쓰다가 까먹어버렸다.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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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겐 철저한, 나에겐 관대한.

어떤 문제든, 사실 원인은 그 문제를 느끼는 순간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꽤나 오랫동안 묵혀둔 문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작은 것이라고 그냥 넘겨버렸던 것이 큰 덩어리로 돌아와 목구멍에 턱 막혀버릴 수도 있고.. 어느쪽이건 간에, 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원인들을 꼼꼼히 따지기 보다는 그 일이 불거진 순간 순간을 좀 더 꼼꼼히 돌아보며 당장의 대책을 찾곤 한다. 내 경우는 종종 사람들과의 수다를 통해 문제에 대한 내 감정을 해결하곤 했는데, 이걸 반복하다 보니 의문이 생겼다. 나와 수다를 떠는 사람들은 내 얘기만 듣고 내 의견에 동조해준다. 물론 솔직히 나는 아주 객관적인 사람은 아닐 것이다. 나도 내가 충분히 자기 중심적인 인간이라는 점에 대해 인정하고, 내 말이 전달 될 때 얼마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려하지 못할 때가 있을것이라 인정한다. 그래도 사람들이 너무 쉽게 내 말에 수긍하고 인정할 때, 난 가끔 위안을 얻기 보다는 내가 점점 더 편협한 인간이 되는 것 같아 두려울 때가 있다. 어쩌면 그 동안 사람들에게 동조를 구해왔던 의견들이 한 번도 긍정적인 쪽으로 실현된 적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말로만 올바른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내 말이 옳다고 얘기 해줘도, 결론은 항상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나가지는 않으니 말이다. 어쩌면 나는 잘못 생각하고 있거나, 아니면 생각만 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면 지금 이 순간 조차도 내 생각은 결국 옳았지만 단지 지쳤기 때문에 손을 놓고 있을 뿐이라고 합리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인에겐 철저하고 나에게는 관대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 자꾸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아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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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포스트 쏟아내기 신공

....을 펼치는 이유는 단 하나 뿐이다. 원고마감!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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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 대한 이런저런 잡생각들.

얼마전 어떤 기자회견(그냥 대충 넘어가죠 -_-)에 갔다가 약간 기묘한 느낌을 받고 돌아왔다. 이래저래 아는 얼굴들이 많은 자리였고 그래서 열심히 기자회견을 구경(orz 저 원래 이런년이에요. 뭐든 '구경'하는 자세..)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남성활동가들이 별칭을 쓰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점. 실제로 내 주변에도 별칭을 쓰는 남성활동가들은 그리 많지 않다. 별칭이 없는게 아니라, 별칭을 활동명(활동할 때 본명을 대체할 정도로 사용하는 경우..정도)으로 쓰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별칭을 많이 쓰더라도, 공식적(?)인 소개때는 본명을 쓰는 경우도 있고.. 그게 차별적이라던가 뭐 그런 의미는 아니다. 다만, 남성활동가들이 별칭을 잘 쓰지 않는 어떤 이유가 있나 궁금한 것이다. 정말 자기 맘에 드는 별칭을 찾지 못해서?..라고 하기에는 별칭의 사용 비율이 너무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나는 별칭을 쓰기를 고집하는 편이다. 형식적인 이름이 필요한 경우(공문 등을 작성할 때)엔 가명을 쓴다. 솔직히 나는 내 본명이 싫다. 물론 이유없이 그냥 싫은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뭐 굳이 밝혀야 할 필요는 모르겠고;;) 레이..라는 이름을 쓰게 되면서 많이 받았던 질문은 1. 무슨 의미에요? 2. 왜 써요? 였다. 1번은 몇 번 반복해서 얘기했었는데 이제는 그 의미가 나한테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렸고, 2번은 답변의 내용을 계속 고민하다보니 이젠 슬슬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별칭을 쓰는 이유는, 내가 활동가로서 온전히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별칭을 활용할 수 있는 공간에서 나는 활동가로서, 그리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연대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신뢰를 주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인지되기를 원한다. 누군가 나를 '레이'라고 부르는 것이 내게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물론 '활동가'와 '대중'을 쪼개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활동을 시작하고, 그리고 활동하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도 있다..) 본명을 쓸 때, 내게 떠오르는 것들은.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돈벌이도 되지 못하는 일이나 쫓아다니며 결혼도 하지 않고 부모님 친구분들에게 자랑거리도 되지 못하는 철없고 골치거리인 동생보다 집안에 기여하지 못하는 못난 첫째... 로 낙인찍혀있는 가족 안에서의 내 위치이다. 아버지가 첫째라고 무척 고심하면서 지으셨다는 내 이름이, 지금 내게는 무척 부담스럽고 큰 족쇄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특히 본명을 불렀을 때 주는 여성적인 느낌과 지금의 나의 이미지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평가들은 내가 별칭을 더 고집하게 되는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 부모님의 바람을 담은 것이었다면, 지금의 내 별칭은 온전한 내 바람을 담은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런 내 사소한 고민이, 만약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나처럼 별칭을 쓰는 많은 활동가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문제라면 그건 참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게 정말 내가 느낀대로 성별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이라면 그건 더 서글픈 일일 것이다. 그냥.. 그렇다. + 지금의 별칭이 온전한 내 바람을 담은것.. 이라고 했지만 내 별칭에 대해 앞으로 내가 얼마나 책임을 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노력해야겠지. 적어도 내가 '레이'라는 이름을 좋아하는 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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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제대로 살고 싶은데..

최근 포스팅 횟수가 현저히 줄고 있다. 활동을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머리 속에 남는 생각도, 고민도 없나부다. 그러다보니 블로깅도 재미없어졌;; 아이고야. 빨리 돌아와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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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꼭 보내야 하나..?

사교육으로 먹고 사는 주제에 제목이 너무 거창하다. 그래도 나도 사람인 이상 속 쓰리는 일은 있지 않겠나. 사교육이 계급을 재생산하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문득 묻고 싶다. 그럼 우리는 돈 많은 애들만 갈 수 있는 대학, 그리고 자본주의적 인간형만을 키우고 있는 요즘의 대학을 보면서도 '대학 가지 마라!'라고 쉽게 얘기할 수 있을까?


입에 풀칠하기 위해 내가 나가는 학원은 수강료가 꽤 비싼 편이다. 학원에서도 그걸 알기 때문에 너무 많은 강의를 들으려고 욕심내는 학생들에게는 적당히 시간을 조절하는 법을 안내해주기도 한다. 오늘, 한 학생이 전화를 했다. 수업을 들을까요..말까요..하고 묻는 전화였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 학생과 그 학생의 부모가 부담하게 될 수강료 때문에라도 선뜻 수업을 들으라고 말하기가 민망했다. 그런데 그 학생의 태도는 '대학에 붙을 수만 있다면 이깟 투자 정도'랄까. 수강료 따위는 이미 그 학생과 부모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농담으로 '일찍 태어나서 대학 가길 잘했지'하며 웃고 지나가곤 했지만, 그 고액의 수강료를 '대학 가기 위해서라면 아깝지 않은 투자'라고 생각하는 요즘 수험생들에게 대학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 주변에 있는 많은 엘리트주의의 문제점을 누누히 지적하고 있는 운동권들도 사실 대학 졸업장이 가져다 주는 혜택을 누리면서 살고 있지 않나? 그리고 대학 졸업장의 혜택을 버리면서 살라고 타인에게 과연 말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아이들에게 '너 왜 대학가니?'라고 쉽게 물을 수 있을까? 졸업장 따먹기..이외의 다른 의미를 주지 못했던 내 대학생활을 곱씹어 봤음에도, 나는 그 비싼 수강료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그 학생에게 '학원 다닐 필요없다'라고 단호히 말해주지 못했다. 대학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게 네 인생에 어떠한 도움이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냐고 묻지도 못했다. 하긴, 제 앞가림도 못하는 어설픈 학원 선생이 학생에게 그런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다. + 어설픈 학원선생, 자기 합리화를 위해 사교육을 공격하기 보다는 대학교육 정상화를 먼저 부르짖으련다. 졸업장 따먹기 대학은 이제 없어졌음 좋겠다. 그래서 나도 당당하게 학생들에게 저런 질문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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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과 나의 공통점과 차이점.

■ 공통점 ─ 무사안일주의. 공무원주의(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중 대사) ─ 일이 곧 생존 이유를 설명하는 것 ■ 차이점 ─ 일의 목적이 공무원 보다는 분명함 ─ 일의 동인은 돈이나 철밥그릇 때문보다 내 정치적 판단이 우선 작용. ─ 일하면서 돈을 벌 수 없는 것. ■ 결론 ─ 공무원 셤이냐, 올인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 가늘고 길게 수명을 연장하되, 일의 중요성과 효율성을 고려하게 되는;; ....이런 포스팅을 하는 나도 참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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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오해?

이런 말 하면 무식하다/무례하다 욕 먹을지 어떨지..암튼 내 블로그니까 솔직하게 털어놔보자. 동성애자들에게 '언제, 어떻게 자신이 동성애자인지 알게 됐어요?'라고 질문하는 것은, 참 어이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질문이 때로 중요한 의미를 담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동성애자임을 확인'하는 것은 내가 (이성애자인)남들과 다른 상태를 확인했냐고 묻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도플갱어가 아닌 이상 세상 사람 어느 누구도 똑같지 않고 모두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 중에서도 내가 꼭 다른 점을 언제 확인했냐..고 묻는게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래도 현실이라는게,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차별이라는게 있어서 사실 동성애자들 스스로는 무척 조심스러워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돌 날아올것을 뻔히 알면서 몸을 드러내는 사람은 용기있는 자가 아니라 무모한 자다. 때와 장소를 가려가면서 용기를 내보여야 하는 법. 또 삼천포로 빠졌지만 어쨌든. 하고 싶었던 얘기는, 나는 아직 내 성적 취향에 대해서 확신할 수 없다는 거다. (이쯤에서 돌 던질 사람들 몇몇 있겠지만.. 뭐 솔직히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니까..)


"혹시.. 레즈비언이세요?" 혹은 "애인이 여자분이세요?" 혹은 "이성애자라고 확신하세요?" 까지.. 근 한 달 사이가 아니었어도 꽤 여러번 들었던 얘기라 별로 당황스럽지도 않았다. 아니 사실, 그 전에 그런 얘기들을 들었을 때도 맨 처음 한 번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당황했던 것 같지 않다. (물론, 내 취향이 아닌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질문했다고 느꼈을 때는 예외.. ^^;) 글쎄, 성적 취향이라는 것은 내게는 상당히 묘한 부분이라서, 당장 어느 한쪽으로 꼭 정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별로 들지 않는다. 사실, 스스로는 거의 이성애자라고 생각하는 쪽이긴 하지만(이성과 노는 행태를 보아하니..) 매력적인 동성들에게 정신팔려본적이 없다고는 말 할 수 없다. 어떤 동성때문에 건강까지 해칠만큼 미쳐있었던 적도 있었고... 사실, 나한테는 내가 이성애자이건 동성애자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면, 그래서 서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내가 예민해지는 것은, 내가 동성애자처럼 보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는 것이다. 이성애자처럼 보이는 것에 대해 반응을 고민해본적은 당연히 없었는데, 동성애자처럼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반응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참..이런 고민을 하는 내가 솔직히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사실인걸 어쩌나. 고민되는걸. '저 레즈비언 아니에요'라고 딱 잘라서 말해야 할지 어떨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아직 잘 모르겠어요'라고 하면 날 아는 사람들은 '에이..애인있잖아~'하는 반응을 보이고, 모르는 사람들은 '한 번 잘 고민해보세요'라고 충고하지만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성을 나는 못 느껴봤고... 지금의 애인이 이성이 아니었다면 지금만큼 잘 지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아닐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예전에 어떤 사람이 말해준 '같이 자고 싶은 성(性)이 나의 성적 취향을 말하는 것'이라는 설명은 충분치 않은 것 같다. 특히 연애관계라는 것이 상대방을 '성적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동류의식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라면 사실 생물학적 성이 상대를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이 된다는 것이 맘에 들지 않기도 한다. 내가 이성애자건 양성애자건 뭐 그건 별로 상관없겠지만, 나는 그냥 가끔 내게 던져지는 질문에 대해 좀 더 담담하게 반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왠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말이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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