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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134회

 

 

1

 

 

고향에 내려와서 농사를 배우며 살기시작한지 5년째입니다.

이제 농사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게 된 시간입니다.

오늘은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즐거움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합니다.

 

 

농사를 지으며 생긴 가장 즐거운 변화는 자연의 흐름에 몸이 맞춰진다는 겁니다.

식물이 자연의 흐름에 맞춰 반응하기 때문에 사람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적응이 되더군요.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을 자게 됩니다.

아침 5시에서 일어나서 밤 9시에 잠을 자게 되는 게 아주 자연스러워지죠.

새벽 2~3시까지 잠을 자지 못해서 고통스럽게 지내야했던 세월이 까마득한 기억이 됐습니다.

 

 

규모가 크지 않은 조그만 비닐하우스에서 과수농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일이 그리 힘들지도 않습니다.

요즘 한 달째 전정작업을 하느라 엄청 피곤하고 정신이 없기는 하지만 이렇게 바쁜 건 이때뿐입니다.

이렇게 바쁜 시기를 보내고 나면 대부분의 일은 오전 중에 끝이 납니다.

그 대신 매일 새벽부터 부지런히 일을 해야 하고 식물에 많은 신경을 써야합니다.

뭔가에 집중하면서도 여유롭게 자기 일을 해나갈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지요.

 

 

이렇게 몸이 자연의 흐름에 맞춰지고 적당한 노동과 적당한 휴식이 이뤄지면 마음의 여유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무단히도 떨쳐버리려고 했던 머릿속의 끈적한 기억들이 어느 순간 땀방울과 함께 스스로 흘러내려버린 걸 알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명상이니 요가니 하는 게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오지요.

인터넷이나 책을 보면서 혼자 알음알음 배워가는 방식이 가능한 것도 이런 삶의 조건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이 여유로워지면 자연스럽게 삶도 윤택해집니다.

채식위주의 식단은 몸을 가볍게 해주고 사람들에게 시달리지 않는 삶은 마음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수입도 아주 크지는 않지만 혼자 살아가기에는 풍족한 수준은 됩니다.

여기에 마음이 통하는 개 한 마리가 있다면 그 이상의 행복은 없습니다.

 

 

한 달째 이어지고 있는 전정작업으로 몸은 지쳐가고

이곳저곳에 널려있는 일거리 때문에 마음만 조급해지는데

털갈이를 시작한 사랑이를 위해 매일 털 정리와 청소까지 해야 하는 요즘

코로나 때문에 생계가 어렵다는 사람들의 소식을 접하면서

저의 행복을 사치스럽게 만지작거려봤습니다.

 

 

 

2

 

 

요즘 뉴트로가 유행이라고 해서 저도 거기에 살짝 발을 올려볼까 합니다. 헤헤헤

예전에 삐삐라는 게 있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말괄량이 삐삐’가 있었고 제가 성인이 돼서는 ‘무선 호출기 삐삐’가 있었죠.

‘말괄량이 삐삐’도 엄청 재미있지만 오늘 얘기하려는 건 ‘무선 호출기 삐삐’이기에 ‘말괄량이 삐삐’가 궁금하신 분은 유튜브를 검색해보시기 바랍니다.

 

 

휴대전화가 나오기 전에 보급됐던 삐삐는 전화번호가 찍혀서 그 번호로 전화를 걸게 하는 간접적인 통신수단이었는데요

사람들은 이걸 영리하게 사용해서 직접적인 통신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숫자밖에 입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문자메시지를 전달하는데도 한계가 있었지만 사람들은 게의치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 삐삐를 통한 의사전달 방식을 알아보면

가장 대중적인 것이 8282와 1004일 겁니다.

이건 쉽게 아시겠지만 ‘빨리빨리’ ‘천사’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좀 더 진화하면 5782(호출 빨리) 825(빨리와) 79(친구) 같은 문자가 만들어집니다.

성질 급한 사람은 8282로 부족해서 1198282로 요란을 떨기도 하고

좀 더 창의적인 사람은 981(급한 일)로 센스를 발휘하기도 했죠.

삐삐를 통한 의사전달이 가능해지자 사람들은 직접적인 문자메시지 역할도 창조해냅니다.

1750(일찍오렴) 045(빵사와) 100(back 돌아와) 같은 메시지는 감탄이 나올 정도입니다.

이 정도 수준이니 연인들간의 사랑의 대화도 당연히 가능했습니다.

012486(영원히 사랑해) 1010235(열렬히 사모해) 0024(영원히 사랑해)

후후후 이 정도면 간첩들이 이용한다는 난수표 해독수준이 아닐까 합니다.

 

 

여기서 깜짝 퀴즈를 풀어볼까요.

7482 1472는 무슨 뜻일까요?

저도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잘 몰랐는데 소리 내서 읽어보니까 어렴풋이 알겠더군요.

여러분도 한번 소리 내서 읽어보시고 뜻을 만들어보세요.

해보셨나요?

7482는 치사빤스라는 뜻이고 1472는 일사천리라는 뜻입니다.

치사빤스는 좀 억지스럽고 일사천리는 141002가 더 어울릴 듯도 한데

그 당시 사람들이 이렇게 사용했다고 하니 그런가보다 해야죠.

 

 

사실 저도 삐삐를 사용해본 세대이기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고난도의 메시지를 사용해본적은 없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아, 오늘 이 얘기는 한지은씨가 쓴 책 ‘별걸 다 기억하는’에서 빌려왔다는 걸 말씀드려야겠네요.

잠시나마 재미있었나요?

 

 

 

3

 

 

 

안녕하십니까, 저는 사랑이입니다.

어... 일주일이 되게 빨리 찾아왔습니다.

어... 일주일 동안 무슨 얘기를 할지 고민 많이 했습니다.

음... 그래서 오늘은 성민이에 대한 얘기를 하겠습니다.

제가 제일 잘 아는 것이 성민이이기 때문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 이 사진은 성민이가 찍은 겁니다.

둘이서 같이 찍은 사진이 없다면서 찍은 건데

크크크 좀 이상하게 나왔습니까?

 

 

성민이는 어... 제게 잘 해주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처음에는 밖에서 살았는데 음... 작년부터 성민이랑 같이 집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 처음에는 사람이 사는 집안에 있는 것이 조금 이상했는데 지금은 좋습니다.

어... 집안에서는 바닥이 미끄러워서 조심해서 걸어 다니는데

어... 성민이도 나 때문에 조심해서 걸어 다닙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 산책입니다.

음... 성민이는 산책을 자주 나갑니다.

하루에 두 세 번은 산책을 나갑니다.

어... 성민이가 피곤할 때도 산책을 해줘서 좋습니다.

어... 산책할 때 냄새를 맡고 있으면 성민이가 줄을 잡아끄는데 그건 싫습니다.

어... 요즘에는 바빠서 하루에 한 번만 할 때도 있지만 괜찮습니다.

동네사람들은 저를 보고 ‘행복한 녀석’ ‘잘생긴 녀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산책할 때 사람들을 마주치는 것도 기분 좋습니다.

 

 

어... 산책도 좋지만 가끔 밖에서 놀고 싶습니다.

음... 밖에 풀어주면 놀다가 금방 집에 돌아오는데 그건 안 해줍니다.

성민이는 내가 다칠까봐서 그런다고 하지만

어... 저는 안 다치고 잘 놀다가 돌아올 수 있습니다.

어... 그것만 해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어... 저는 사람이 쓰다듬어주는 걸 좋아합니다.

성민이도 자주 쓰다듬어주지만 어... 좀 더 자주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음... 가끔 성민이가 혼자서 술을 먹다가

저를 쓰다듬어주는데 어... 그럴 때는 바닥에 엎드려서 저를 보면서 쓰다듬습니다.

어... 성민이는 저와 눈을 마주치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고 하지만

저는 음... 술 냄새가 나서 싫습니다.

 

 

어... 성민이가 밥을 먹을 때 “사랑이도 밥 먹어”라고 얘기 합니다.

그러면 저도 성민이랑 같이 밥을 먹습니다.

어... 둘이서 같이 밥을 먹으면 좋습니다.

음... 그런데 사료 말고 다른 맛있는 것도 많이 줬으면 좋겠습니다.

가끔 간식을 주기도 하고 어... 성민이가 먹는 반찬을 주기도 하지만

더 많이 줬으면 좋겠습니다.

 

 

음... 오늘은 여기까지만 얘기하겠습니다.

다음에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또 얘기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스윗소로우의 ‘멋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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