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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137회

 

1

 

 

읽는 라디오 살자 백서른일곱 번째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성민입니다.

오늘은 지난번에 예고 드렸던데로 야외 공개방송으로 진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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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오늘 공개방송을 진행할 장소입니다.

사진으로는 조금 어수선해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꽤 조용하고 경치가 좋은 곳입니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서 주변에 밭들만 있고요

뒤쪽으로는 오름이 편안하게 자리를 잡았고

고개를 조금 돌리면 멀리 바다가 보이기도 합니다.

한라산을 보시고 싶은 분은 뒤로 보이는 계단을 통해 비닐하우스 위로 올라가면 보일 겁니다.

 

 

아, 여기가 어디냐하면요

저희 하우스 뒤편 물탱크입니다.

오늘 찾아와주신 분을 위해 의자도 준비해봤는데

일행이 있으신 분들은 바닥에 깔개를 깔고 앉으셔도 좋을 겁니다.

사랑이도 같이 왔으니까 많이 귀여워해주세요.

물탱크 앞쪽에 있는 텃밭이 비어서 이곳을 공연장소로 선택했습니다.

마음껏 노래하고 춤을 출 수 있는 공간이니 그저 신나게 놀아주시면 됩니다.

 

 

저희 텃밭에서 장만한 상추, 오이, 고추, 마늘, 양파로 주전부리가 마련돼 있으니 마음껏 드시고요

음료가 필요하신 분에게는 지난 겨울에 수확해서 담가놓은 레몬차가 준비돼 있습니다.

가볍게 술 한 잔 하시고 싶은 분은 담근지 4년 된 울금주가 마련돼 있는데

이게 별로인 분은 10여 분 정도 마을로 걸어가시면 아주 조그만 구멍가게가 있는데

그곳에서 맥주나 막걸리를 사다 드시면 됩니다.

그곳에 가면 제주막걸리를 파는데요 제주막걸리가 맛이 괜찮으니 한번 드셔보시길 권합니다.

 

 

아, 시작하면서 쓸데없는 얘기가 너무 길었네요, 죄송합니다.

오래간만에 사람들과 어울려서 이런 자리를 마련하다보니 제가 좀 업 됐습니다.

이해해주세요, 헤헤헤

 

 

1년 중에 가장 바쁘고 고된 5월을 보내고 난 지금이 저는 가장 여유롭습니다.

오전에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나서 낮에는 tv를 보다가 낮잠을 잠시 자기도 하고

저녁이 돼서 사랑이와 산책을 나서면 가장 행복해지는 때입니다.

낮에는 조금 덥기는 하지만 한여름처럼 숨 막히는 더위는 아니고

저녁이 돼서 그마저의 열기가 사라지면 선선한 기운에 감싸여

하늘과 바다와 산과 밭을 온전히 호흡하며 산책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런 여유를 여러분과 함께 느끼고 싶어서 마련한 자리입니다.

 

 

지금의 이 온화함을 온전히 느끼시려면 몸과 마음의 긴장을 푸는 게 좋겠죠.

눈을 잠시 감아보실래요?

눈을 감고 여러분의 머리카락을 살살 건드리는 바람을 느껴보세요.

선선한 바람이 여러분의 몸을 가볍게 마사지하게 내버려두세요.

그리고 들려오는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세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도 들리고, 멀리서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도 들리고, 사랑이가 꼼지락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저온고 돌아가는 소리도 들릴 겁니다.

좀 더 릭렉스하게 그 상태를 유지하시다보면 옆사람의 숨소리도 들리고, 자신의 호흡이 움직이는 것도 느껴지고, 햇살의 감촉도 느껴질 겁니다.

이런저런 판단을 하시지 말고 그냥 그 소리들과 느낌들에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맡겨보세요.

 

 

이제,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셨나요?

그렇다면 눈을 감고 있는 그 상태 그대로

들려오는 선율에 몸과 마음을 맡겨보세요.

 

 

 

 

(루시드 폴의 ‘봄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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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조금 일찍 오신 분들이 마을을 산책하시다가

꽃이 이쁘다면서 사진을 찍어오셨습니다.

이맘때가 되면 화사한 분홍색을 자랑하곤 하는 꽃인데

이름을 몰라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봤더니

송엽국이라는 이름의 꽃이었습니다.

 

 

다년생이라서 한번 심어놓으면 해마다 이맘 때 아주 환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꽃 하나의 모습도 이쁜데 항상 서로 모여서 피어있기 때문에 아름다움이 배가 됩니다.

여름이 지나면 꽃은 시들지만 꽃이 시든 자리가 지저분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차분하게 그 자리에서 다음 해 여름에 다시 꽃을 피우길 기다리는 거죠.

 

 

사랑이와 산책을 하다가 이 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얼마나 환해지는지 모릅니다.

아침에는 살짝 오무려있다가 낮에는 아주 활짝 펴있는 모습이 춤을 추는 것 같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어울려서 같이 살랑살랑거리는 그런 춤 말이죠.

 

 

자, 우리도 지금 이 자리에서 가볍게 춤을 춰볼까요?

그냥 그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몸을 흔들면 됩니다.

그게 쑥스러우신 분은 그냥 그 자리에 앉아서 손이나 발을 까딱까딱 거려도 되고요.

준비됐나요?

 

 

 

 

(DJ Okawari의 ‘Flower Dance’)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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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간이 저녁 7시 30분을 조금 지났는데요

이 시간에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오늘 공개방송 장소로 이곳을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이기도 합니다.

 

 

최근 방송에서 해가 지는 모습을 몇 번 보여드리기는 했지만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지 않습니까?

일년중에 요맘때가 해지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더라고요.

그냥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시인과 촌장의 ‘풍경’이라는 노래 가사에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모습을 보면 그런 편안함과 포근함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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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다 뒤편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나면

그곳에 배들이 자리를 잡습니다.

밤에 집어등을 켜고 고기를 잡는 걸 보니 오징어배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도시에서는 네온사인이나 가로등이 거리를 비추지만

이곳에서는 고깃배들이 바다를 비춥니다.

 

 

좀 전에 얘기한 ‘풍경’의 가사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죠.

태양이 하루 일을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가 버린 곳에서

고깃배들이 새롭게 고단한 하루 일을 시작하는 거죠.

 

 

하루 일을 마치고 쉬러 돌아온 해를 품어주는 곳도 바다이고

하루 일을 다시 시작하는 고깃배들의 일터도 바다입니다.

누구는 그 바다를 보며 목가적인 편안함을 느끼고

누구는 그 바다를 보며 고된 삶을 체험하기도 하죠.

그게 세상살이인가 봅니다.

 

 

그런 의미로 이번에는 이상은의 ‘바다여’라는 노래를 들어볼까 하는데요

가만히 앉아서 노을과 함께 음악을 음미해보셔도 되고요

일어나서 가볍게 몸을 흔들며 리듬을 타보셔도 됩니다.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삶의 파동이 달라지듯이

여러분의 마음의 위치에 따라 노래의 파동도 달라질 겁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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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곳 옆에는 두 기의 무덤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관리가 되지 않은데다가 풀이 무성해서 무덤같이 보이지 않으시겠지만

조금 가까이 가시면 무덤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습니다.

가운데 비석이 있는 건 보이시죠?

동생이 10여 년 전에 이 밭을 샀는데 그때도 이렇게 관리가 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고 하니

최소한 20년 이상 방치된 무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주도에는 이렇게 밭 안에 무덤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옛날에는 공동묘지 같은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묻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조금씩 밭을 개간하게 되면서 무덤이 있는 주변이 밭으로 변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뭐 아무튼, 이곳에서는 이렇게 죽은 자와 산 자가 자연스럽게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데요

산 자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조금 불편합니다.

그 무덤이 자신의 조상무덤이라면 정성스럽게 관리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장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남의 조상무덤과 함께 공존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방치돼 있는 경우는 골칫거리가 됩니다.

그런데 이 무덤의 경우는 비석도 있고 묘적계에 등록이 돼 있어서 함부로 손을 댈 수도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불편하더라도 이렇게 공존하며 살아가는 거죠.

이런 상황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무덤이 있다고 해서 무섭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무덤 주변에 고사리를 심어놔서 봄이 되면 무덤에 올라가 고사리를 꺾느라고 무덤의 존재를 확인하기도 하죠.

 

 

열여덟살에 자살을 해서 구천을 떠돌던 귀신인 꼬마인형이랑 같이 읽는 라디오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꼬마인형이 얘기하기론 구천을 떠도는 귀신들은 육체적 감각이 없기 때문에 욕망이나 이런게 없어서 그냥 무덤덤하게 살아간다고 하더라고요.

세상살이에 별로 관심도 없이 자신이 살았던 동네를 배회하며 지내는데 욕망은 없지만 기억은 남아 있기 때문에 그 기억 때문에 조금 힘들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죽어서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고 합니다.

구천을 떠돌다가 어느날 갑자기 저승으로 가게 되는 귀신들이 있는데 저승으로 가게 되면 이승에서 모든 것과 이별이기 때문에 그 기억들마저 사라진다고 하더군요.

 

 

지금 저 무덤에 귀신이 살고 있다면 오늘 우리의 이 공연을 어떤 기분으로 보고 있을까요?

조용히 살고 있는데 사람들이 와서 귀찮아할까요?

아니면 그냥 무덤덤하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그것도 아니면 오래간만에 볼거리 생겼다면서 즐기고 계실까요?

저곳에 묻히신 분은 저승으로 가셔서 저 곳은 빈집일 가능성도 높을 겁니다.

 

 

뭐, 어떤 경우든 오늘 우리가 같이 즐기고 있는 이 자리에

죽은 자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만약 귀신이 있다면 그냥 편한 마음으로 저희랑 같이 즐겨주셨으면 좋겠고요

그냥 빈집이라면 저희가 편한 마음으로 빈집을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장재남의 ‘빈 의자’)

 

 

 

5

 

 

어... 안녕하십니까.

어... 저는 사랑이입니다.

어... 고맙습니다.

음...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니까 어... 많이 떨립니다.

 

 

어... 오늘 모르는 사람들이 오니까

어... 조금 무섭고 어... 조금 긴장했습니다.

음... 처음에는 많이 짖었는데 어... 지금은 괜찮습니다.

어... 여러분이 저를 이뻐해주셔서 어... 지금은 괜찮습니다.

음... 맛있는 간식도 주셔서 어... 고맙습니다.

 

 

음... 성민이랑 둘이서 사는 곳에 어... 사람들이 오니까

어...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어... 지금은 좋습니다.

어... 강아지 친구가 없어서 아쉽지만 어... 그래도 좋습니다.

어... 아까 춤을 출 때는 나도 춤을 추니까 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음... 노래를 들을 때는 어... 옆에 있는 분이 어... 제 머리를 쓰다듬어 줬습니다.

그래서 어...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음... 이번에는 성민이가 노래를 합니다.

그런데 어... 성민이는 노래를 진짜 못합니다.

제가 성민이 노래를 들어본 적 있는데 어... 정말 웃깁니다. 크크크크

그런데 어... 오늘 기분이 좋아서 노래를 하겠다고 합니다.

어... 읽는 라디오니까 괜찮다고 했습니다.

기타도 못 치는데 어... 읽는 라디오니까 치겠다고 했습니다.

어... 정말 웃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 읽는 라디오니까 들어보겠습니다.

성민씨 나와주세요.

 

 

 

반갑습니다, 사랑이 사회 잘 보죠?

오늘 열일 하고 있는데 그런 사랑이를 위해 박수 한번 부탁드립니다.

사회를 보다가 이번에는 공연을 위해 이 자리에 섰는데요

아까 사랑이가 얘기한데로 제가 노래를 엄청 못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제가 진행하는 읽는 라디오니만큼

자신감을 갖고 아주 멋드러진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아름답다면 제 노래도 아름답게 들리겠지요? 하하하

아, 그리고 중간에 피처링은 사랑이가 역시나 수고해줬다는 점을 밝혀드립니다.

 

 

 

 

나는 이 바다 위의 작은 집이랍니다.

세상의 물길을 따라가는 작고 충만한 이 집에는

의외로 많은 것들이 곳곳에 숨어 있답니다.

 

 

이 집에는 사랑스러운 가족이 함께 한답니다.

더없이 사랑스러운 연인도 제 곁에 있어요.

친구들도 찾아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현명한 분들과 영혼 깊은 얘기도 나누지요.

가끔은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이 찾아와 상처를 감싸기도 합니다.

 

 

(그건 너의 환상이야, 너는 그저 외톨이일뿐)

 

 

알아요, 알아요.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저는 이들과 행복을 나누고 있어요.

 

 

 

 

나는 이 들판 위의 작은 집이랍니다.

바람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작고 충만한 이 집에는

의외로 많은 것들이 곳곳에 숨어 있답니다.

 

 

집안에는 귀여운 강아지 가족이 함께 살아요.

저 하늘 위의 잉꼬 한 쌍도 이 집의 식구예요.

올망졸망 꽃들이 피어난 화단엔 나비가 날아들고요

귀여운 아이들과 함께 텃밭을 일궈서

닭과 염소에게 먹이도 준답니다.

 

 

(그건 너의 환상이야, 너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을 뿐)

 

 

알아요, 알아요.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저는 노아의 방주가 부럽지 않아요.

 

 

 

 

나는 이 나무 위의 작은 집이랍니다.

해와 달의 기운으로 둘러싸인 작고 충만한 이 집에는

의외로 많은 것들이 곳곳에 숨어 있답니다.

 

 

집안에는 제가 만든 가구들이 놓여있어요.

친구들이 보내 준 그림과 책들로 장식했죠.

가지에 매단 그네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계단으로 이어진 줄기 속에는 어릴 적 기억이 채워져 있어요.

이웃들을 위한 벤치도 저 아래 만들어놓았답니다.

 

 

(그건 너의 환상이야, 너는 지쳐서 쓰러져 있을 뿐)

 

 

알아요, 알아요.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꿈을 꾸어요.

 

 

 

 

 

6

 

 

어... 재미있습니까?

음... 저는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어... 아까 맛있는 고기 주신 분 고맙습니다.

오늘 맛있는 것 많이 먹었습니다.

그리고 음... 노래도 좋았습니다.

개가 듣기에도 좋은 노래였습니다.

그리고 음... 사람들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어...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지금은 어... 기분 좋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니까... 히히히,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어... 성민이랑 같이 노래도 부르니까 더 재미있습니다. 까르르르르

나중에 저도 방송을 오래하게 되면 음... 저도 동네 개들 불러서 어... 저도 이렇게 해보고 싶습니다.

 

 

음... 오늘 마지막 공연은

어... 무서운 누나 두 명이 나옵니다.

그런데 어... 재미있습니다.

저도 음...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어... 누나들이 저를 이뻐해주셔

음... 지금은 좋습니다.

어... 처음에는 무서우니까 어... 조심하세요.

 

 

어... 저는 말을 잘 못해서

음... 이만 마치겠습니다.

오늘 공연이 끝나도 어... 더 놀다가도 됩니다.

 

 

 

 

(무키무키만만수의 ‘방화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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