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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18회

 

 

 

1

 

 

‘읽는 라디오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열여덟 번째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진행을 맡은 저는 성민이입니다.

얼마 전에 들풀님을 대신해서 진행을 맡았었는데 오늘 방송도 제가 진행하게 됐습니다.

지난번에는 들풀님이 바쁘셔서 대타를 뛰었는데, 이번에는 들풀님이 할 얘기가 떠오르지 않는다며 대타를 부탁하셨습니다.

별로 할 얘기가 없는데 억지로 진행할 필요는 없겠다 싶어서 제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앞으로도 들풀님이 바쁘거나, 할 얘기가 없거나, 컨디션이 별로 이거나 그럴 때는 언제든지 제가 투입됩니다.

공동진행자 개념은 아니고요, 그저 들풀님이 방송 진행에 대해 부담감을 갖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내린 결정입니다.

서론이 길었네요, 이제 본격적으로 방송 시작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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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을 수확했습니다.

텃밭에 모종 몇 개를 심었는데 벌써 이렇게 큼직하게 자랐습니다.

기분 좋게 수확을 하고 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몇 개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를 썰어서 먹었는데 아주 맛이 좋았습니다.

당분간 수박은 원 없이 먹게 됐습니다.

가족들 나눠주고 남는 건 주위에 나눠 먹어야겠네요.

 

 

해마다 이맘때면 이런 즐거움을 만끽하는데

이 즐거움은 항상 씁쓸한 뒷맛을 여운처럼 달고 다닙니다.

제가 갖고 있는 것들을 나눠주면 사람들은 모두 좋아하는데

정작 제가 도움이 필요할 때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10여 년 동안 끝임 없이 반복되는 이 문제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 씁쓸한 뒷맛 때문에 나눔의 즐거움을 포기한다는 건

삶이 너무 삭막하고 허전할 것 같아서 싫습니다.

수박 몇 개는 주위 사람들과 나눠먹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습니다.

뭔가 바라는 마음을 지워버리고 그 즐거움만을 온전하게 느끼도록 해봐야겠습니다.

나중에 그 씁쓸함이 또 반복될지라도 지금은 즐겁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노력하다보면 반복되는 이 문제에 대한 답도 보이지 않을까요?

 

 

 

2

 

 

제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4.3 당시 집단학살이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제가 숨 쉬며 살아가는 이곳에 대해 너무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걸 반성하며 제주에 대한 얘기들을 많이 들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먼저 4.3에 대한 얘기들을 듣기 위해 책들을 찾아봤습니다.

예전에는 역사나 정치의 관점으로 4.3을 접근하는 책들을 봐왔는데

이곳 사람들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4.3생존자들의 증언집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은 그저 즐거웠던 기억으로 그때를 회상합니다.

어느 날 해방이 됐다고 사람들이 좋아했지만 그게 뭔지 실감하지 못하고 천진난만하게 살아갔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군인과 경찰들이 들이닥치고 이유도 모르게 마을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무서워서 산으로 도망가기도 했지만 결국 잡혀서 끌려갔고 그 와중에 아버지와 오빠들은 죽었고 집은 불타버렸습니다.

너무 무섭고 경황이 없어서 울지도 못했습니다.

한바탕 학살의 태풍이 몰아치고 나서 조심스럽게 마을로 돌아왔지만 학살보다 더 끔찍한 현실이 놓여있을 뿐입니다.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든 버텨야했습니다.

그 와중에 굶어죽은 동생을 묻어야했고, 홀로 남은 어머니를 도와야했고, 어린 나이에 돈을 벌기 위해 물질을 배워야했습니다.

버티고 버티면서 살아가다보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는 고마운 이도 있었고, 도와주면서도 눈치를 팍팍 주는 이도 있었고, 얍삽하게 간을 빼먹는 이도 있었고, 어렵게 모아놓은 걸 날려버리는 이도 있었습니다.

그럴수록 더 악착같이 버티면서 견뎌야했던 세월이었습니다.

 

 

나이 80~90대가 된 지금에 와서 풀어놓는 그 모진 세월의 얘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경건해지더군요.

거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게 어떤 건지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제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할머니들

그분들의 가슴 속에는 이런 것들이 들어있었습니다.

 

 

 

3

 

 

여름에 감귤나무에 약을 치려면 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해야 합니다.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 간단히 배를 채우고 일을 준비하고 있으면 날이 밝아옵니다.

새벽 여명의 모습은 힘찬 기운을 안겨주곤 하는데

어느 날 붉은 노을과 함께 하루가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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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어둠을 비집고 약간 푸른 기운을 띠면서 기지개켜듯이 서서히 밝아오는 모습과 달리

하늘을 붉게 칠하면서 퍼져나가는 모습은 편안한 에너지로 주위를 감싸는 듯 했습니다.

새벽 여명의 힘찬 기운과 저녁 노을의 포근한 기운이 어우러진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입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에너지가 조금이라도 전달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김국환의 ‘타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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