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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4회 –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1

 

‘싱 스트리트’라는 음악영화를 봤습니다.

아일랜드의 어느 도시에서 살아가는 고등학생들이 밴드활동을 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풀어놓는 영화였습니다.

영국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그곳에서 희망을 찾기 어려운 시대에 음악을 통해 꿈과 희망을 만들어간다는 뻔한 얘기의 영화였지만

힘겨운 주변 상황에 주눅 들지 않고 덤덤하게 한발 한발 내딛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좋더군요.

강렬하지는 않지만 잔잔하면서도 나름대로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브리티시 팝음악도 편안하고 즐거웠습니다.

 

음악영화답게 여러 곡의 노래가 중간 중간 나오는데요

그 중에서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왔던 노래가 제일 흥겹고 정이 갔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그 곡을 먼저 들어볼까요.

 

 

 

어떠신가요?

다소 뻔한 리듬과 가사의 노래지만

애잔하면서도 흥겨움이 동시에 느껴지지 않으세요?

 

 

네 인생이야 어디든 갈 수 있어

그 핸들을 잡아 네 거야

훔친 듯이 달려

 

달려 네 인생이야

넌 뭐든 될 수 있어

네 인생을 축제로 만들어

페달을 밟고

훔친 듯이 달려

 

 

이 곡의 클라이맥스에서 흥겹게 박수를 치며 이렇게 외칠 때

제 머릿속에서는 “애들아,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가 않단다”라고 냉소를 보냈지만

제 가슴속에서는 “그래 현실이 만만치 않겠지만 한번 달려봐”라고 박수를 치고 있었습니다.

 

 

2

 

억압적인 학교와 무너진 가족과 전망 없는 도시에서

게릴라처럼 시원한 공연을 마친 주인공은

조그만 보트를 몰고 바다 건너 런던으로 향합니다.

런던에 아는 사람도 없고 돈도 없지만

포트폴리오와 데모테이프만을 들고 당당하게 달려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영화가 끝납니다.

그러면서 한 곡의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그 또한 제 머리와 가슴이 따로 반응을 하더군요.

그 마지막 장면을 같이 보시겠습니까?

 

 

 

런던으로 간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비틀즈의 꿈을 안고 갔겠지만

만만치 않은 현실의 벽 앞에서 수없이 자신을 채찍질했을 테고

악착같이 버티다보면 아주 잠깐 반짝이는 순간도 있겠지만

살아남아야 할 현실의 삶은 길고 청춘의 꿈은 오래 빛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겠죠.

그래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다보면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처럼 지방의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는 3류 밴드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저들의 무모하지만 당당한 도전에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자꾸 제 삶의 경험들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3

 

예전에 통신업체에서 비정규직노동조합 활동을 하던 분을 만나

그분의 활동에 대한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는데

바로 직전에 투쟁을 벌였던 한국통신계약직노동조합 출신들에 대한 얘기를 했었습니다.

 

처음 현장에 들어갔을 때는

일도 잘 모르고 현장도 익숙지 않았는데

경험이 많은 한국통신계약직노조 출신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열악한 노동조건에 맞서 노동조합을 만들어 싸우기 시작하니까

그분들은 한발 뒤로 물러나서 부정적인 얘기들만 하더라고 하더군요.

 

그 얘기를 들으면서 그 둘의 입장이 다 이해가 됐습니다.

한통계약직노조는 정말로 목숨을 걸고 격렬한 투쟁을 몇 년 동안 벌였었거든요.

실제로 투쟁 과정에서 조합원이 두 명이나 죽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의 투쟁은 패배했고 노동조합은 해산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상처를 안고 현장에서 일을 하던 분들의 입장에서는

열정만 갖고 노동조합 만들어서 싸우겠다고 덤비는 이의 모습이 안쓰러웠을 겁니다.

그래서 애정 어린 조언을 한다는 것이 투쟁하는 이들에게 발목 잡는 얘기가 되겠죠.

 

하지만 한통계약직노조의 투쟁에 같이 연대하기도 했던 분의 입장에서는

얼어붙은 그곳에서 포기하지 않고 다시 뭔가를 해보겠다고 나서고 있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초치는 얘기만 하면서 기운을 빼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일 겁니다.

치열한 투쟁의 경험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뒷세대의 투쟁에 걸림돌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4

 

나이가 들어갈수록 말을 줄여야 한다고 합니다.

자기 기준을 앞세워 이것저것 가르치려 드는 꼰대가 아니더라도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애정 어린 조언을 건네는 노땅도

그를 넘어서려는 세대들에게는 걸림돌이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주둥아리를 다물든가

뒷세대들에게 등을 내주든가 해야겠는데

둘 다 쉽지 않으니

참 고민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한 수 배워야하지 않을까요?

 

 

 

(이하이의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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