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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5회 –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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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 꽃이 화사하게 피었습니다.

처참한 수확결과에 아쉬워할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정전까지 하고 났더니

무릎에 이상이 와서 병원치료를 받고 있는 요즘인데

화사한 감귤 꽃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환해집니다.

 

노랗게 익은 감귤을 볼 때보다

하얗게 꽃망울을 터뜨린 모습을 볼 때가 더 기분이 좋더라고요.

나무가 내뿜는 생동감이 오롯이 느껴져서 좋은 것도 있고

한 해 농사에 대한 설렘과 기대와 각오가 동시에 다가와서 벅찬 것도 있습니다.

올해는 꽃들이 유난히 많이 피어서

처참했던 지난 수확결과에 대한 보상을 하는 것 같아서 더 기분이 좋습니다.

 

해마다 크고 작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하고 있는 터라

올해는 정말 잘 해보리라 다짐을 해보지만

아직도 어설픈 농부여서 나무한테 미안할 따름입니다.

 

이제부터 나무가 잘 자라도록 해야 될 일들이 많습니다.

올해는 잘 해낼 수 있을지 고민도 되고

한여름을 견디며 그 일들을 해내야 하는 것이 걱정이기도 하지만

여름에 얼마나 땀을 흘리냐에 따라 결실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마음으로

화사한 꽃들이 노란 감귤이 될 때까지 열심히 해봐야겠습니다.

올해도 파이팅 입니다!

 

 

2

 

얽매이거나 구속됨이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

가만히 제 삶을 돌아보면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 비결은 비교적 간단했습니다.

얽매이거나 구속될만한 것들을 버려버리면 되거든요.

 

제일 먼저 버렸던 것이 ‘학연 지연 혈연’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한칼에 완전히 정리한 것은 아니고 서서히 그런 것들과 멀어졌더니

인간관계가 단순해지더군요.

그리고 의도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버려야했던 것도 있습니다.

‘부 명예 지위’ 이런 것들은 가질래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포기했던 건데

그런 거 없어도 살아가는데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버렸던 것은 살아남으려다보니까 어쩔 수 없이 버려야했던 것입니다.

10년쯤 삶의 구렁텅이에서 발버둥 치다보니 ‘세상과 사람에 대한 희망, 미래의 꿈, 소중한 과거의 자산’ 같은 걸 하나씩 버리게 됐는데

그런 것들을 버렸더니 지금의 삶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돼서 홀가분해졌습니다.

 

이렇게 자유로워진 삶이 마냥 편안하고 행복한 건 아닙니다.

가진 게 워낙 없으니 주변의 무시나 외면 같은 건 당연한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인간관계도 극도로 빈약하다보니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청할 곳이 별로 없고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다보니 현재의 삶이 흔들릴 때 잠시 공황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을 다 감수하더라도 자유로운 삶은 이점이 많습니다.

세상을 틀에 지워서 바라보지 않게 되다보니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입니다.

가진 게 별로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많지도 않지만 하나하나가 소중해서 그것에 집중하게 됩니다.

인관관계가 빈약하다보니 제 자신을 좀 더 많이 바라보고 얘기를 나누게 되면서 마음의 안정이 찾아옵니다.

주변이 빈약하니 그에 따르는 욕망과 욕구도 빈약해져서 갈망과 애증의 고통이 옅어집니다.

결국 자유롭다는 것은 오롯이 지금의 삶에 집중하면서 편안하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상,

두 시간 동안 감귤나무에 농약을 치면서

했던 생각이었습니다.

 

 

3

 

지난 방송에 득명님이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제 마음을 간질이는 댓글에 저도 답글을 달았습니다.

그랬더니 득명님의 마음도 간질였는지 다시 답글이 달렸더군요.

그 댓글과 답글을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소개합니다.

 

 

나이들면 감각도.. 뭔일에 습득도 떨어지고.. 벌어지는 일에 익숙해지고 하는게 당연한 것 같습니다. 사무실서 비둘기호를 아냐고 물으니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군시절 통일호를 타고 집에 내려올때 문을 활딱 열어놓고 신문지 깔고 앉아 바람을 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문을 열고 맨 뒷칸을 찾아가면 사슬로 걸어놓은 뒤로 철길이 구불구불 도망도 갔었지요.

 

이런 경험을 한 사람과 하지 못한 사람이 느끼는 정서는 분명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근데 수업시간에 버젓이 엎드려 자고 있는 학생을 보면 쫓아가 뒤통수라도 한대 갈겨주고 싶은 마음인걸 보니.. 아마도 저는 꼰대 같습니다. ㅋㅋ

(득명님 댓글)

 

 

지나간 시간들은 그저 흘러가게 놔두고 과거의 기억에 연연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기억들이 저를 자꾸 괴롭히고 때로는 다른 이들의 발목을 잡기도 합니다.

그렇게 과거의 기억들을 밀어내려고만 했었는데, 득명님의 글들을 보면 과거의 기억들을 소중하고 아름답게 간직하려고 하시는 것이 보였습니다. 과거를 밀어내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하면 그 기억들이 나의 자양분이 될 수 있겠죠. 득명님의 글을 읽으며 이렇게 삶의 가치를 하나씩 배워가네요.

(성민이 답글)

 

 

추억이나 과거는 늘 아름답지만은 않지만 아름다운 것들만 기억하려고 애써 노력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두뇌는 이런 나의 지시와 노력들을 생각 외로 충실히 반영하는 것으로 보여지고요.

불교에서는 그리스도교와 달리 어린이 불교학교를 열지 않습니다. 왜냐면 초등6학년까지는 가치관이 성립되는 시기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시기에는 마음껏 뛰어놀고 마음껏 받아들이라는 배려이지요. 잘 모르는 것을 알려줘도 초등 6학년까지는 그냥 진실로 받아들이므로 이시기에는 어떤 생각과 관념을 일부러 알려주지 않는다 합니다.

 

저는 과거의 기억이 나를 괴롭힐때면.. 스트레스 받은 상태로 나를 인지하여 제 육신을 피곤하게 하는 버릇이 있어요. 동네 학교 운동장을 맨발로 40여 바퀴 뛰는가 하면 수영을 2km 이상 하기도 하고 지칠때까지 걷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런 기억이 가물가물 해지고 야릇한 기억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진짜루 몸도 마음도 하나임을 느낍니다.

 

예전에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오다가 홧병날 거 같아 시작한 게 화분키우는 것이었고, 분노조절장애를 일정부분 극복한 것은 내 마음을 실어 연주할 수 있는 해금이였습니다.

 

나이가 하나둘 많아질수록 세상을 더 모르는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살아가면서 망각이라는 건 무지무지 큰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득명님 답글)

 

 

득명님이 얼마 전에 해금공연을 했다고 합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단아한 곡을 연주했다는데

오늘 방송은 득명님이 공연에서 연주했다는 곡을 들으면서 마칠까 합니다.

득명님의 연주는 직접 들을 수 없으니

원곡인 김애라의 연주로 듣겠습니다, ‘하얀등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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