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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6회 – 주경야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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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안에 나뭇가지를 묶어주는 유인줄을 보강했습니다.

비교적 얇은 와이어를 하우스 끝에서 끝으로 연결하는 작업인데

쉽게 할 수 있으리라 예상했던 작업이 열흘이 걸려버렸습니다.

이유는 제가 와이어 푸는 작업을 서툴게 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별다른 고민 없이 와이어 끝을 잡고 무작정 잡아당겼습니다.

와이어가 술술 풀려오기에 상단으로 늘어뜨려서 잡아당기는 데만 집중했는데

어느 순간 와이어가 끌려오지 않더군요.

뭐가 문제인가 싶어서 와이어를 살펴봤는데

중간에 와이어가 엉켜버려서 둘둘 말린 상태가 엉망이 돼버렸더라고요.

문제는 와이어가 로프가 아니라 철사이기 때문에 엉켜버리면 풀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수백 미터짜리 와이어를 일일이 잡아당기고 풀고 다시 잡아당기고를 반복하는데 엄청 시간이 걸렸습니다.

 

첫 번째 와이어작업에서 그렇게 시행착오를 했기에

두 번째 와이어작업에서는 신경을 써서 했습니다.

와이어가 감겨있는 상태를 잘 살피며 조금씩 풀어가면서 작업을 했는데

한참 작업을 하다가 중간에 또 와이어가 끌려오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황급히 달려가 사태를 확인했더니 또 다시 중간에서 엉켜버린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서 와이어가 중간에 뭉텅이로 꼬여버려서 그것을 풀어내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봤더니

와이어를 풀 때는 감겨있는 안쪽에서부터 풀어가야 하는데

저는 마감 처리된 바깥쪽 끝을 잡아당기며 작업을 해버렸던 것입니다.

 

두 번의 시행착오 끝에 세 번째 와이어작업에 들어갔을 때는

안쪽 와이어를 잡아당기면서 조심스럽게 풀어나갔고

중간 중간 풀려나가는 상태도 수시로 확인하면서 했더니

꼬이는 것 없이 잘 할 수 있었습니다.

 

비교적 단순한 일을 하는데도

일머리가 없으면 이렇게 고생을 합니다.

주위에 물어볼 사람이 없으니

이렇게 하나하나 시행착오를 하며 몸으로 익혀가는 수밖에 없네요.

여유롭게 사흘이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작업이

무릎 때문에 불편한 다리를 끌면서 열흘이 걸려 끝났지만

다 하고 났더니 속이 시원해집니다.

 

 

2

 

4.3을 얘기할 때 가장 아쉬웠던 점은

국가권력에 의한 집단학살만을 강조하면서

불의에 대한 저항의 정신을 지워버린 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식명칭도 4.3항쟁이 아니라 4.3사건이라 부릅니다.

 

4.3에 대한 기록들이 온통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가운데

그 당시 당당하게 총을 들고 맞섰던 여성 빨치산의 인터뷰가 책으로 나왔더군요.

인터뷰는 그분이 살아계셨을 때 이뤄졌지만 “내가 죽고 나면 발표하라”는 본인의 뜻에 따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그 얘기를 들을 수 있게 됐습니다.

 

해방 이후 인민위원회와 남로당 활동이 얼마나 활발하게 이뤄졌는지

항쟁이 시작된 이후 저항은 어떻게 진행됐는지

학살과 고문 속에 인간성은 어떻게 망가져 가는지

한국전쟁 이후 밟아본 북한의 현실은 어떠했는지

다시 구속된 후 장기복역과 전향공작이 얼마나 살벌했는지

모진 고난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얼마나 처참했는지

그동안 제대로 들을 수 없었던 이런 얘기들이 생생하게 전해졌습니다.

 

‘당당한 저항의 정신을 다시 살려내는 책’이라는 기대감에 선택한 책이었는데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면서

상상할 수 없는 그 잔인함과 처참함에 가슴이 막혀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말없이 죽어간 이들은 그렇다 쳐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이들마저 입을 다물고 살아갔던 것은

단순히 국가권력이 짓눌러버렸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무수히 죽어간 이들에 대한 미안함, 자신의 주장을 믿고 따르던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 변절하여 동지를 팔아먹은 이들에 대한 분노, 끔찍한 폭력 앞에서 비굴해지고 나약해지는 사람들에 대한 환멸, 그 모진 세월을 견디며 기다려준 가족에 대한 미안함, 끝까지 전향을 거부하며 죽음으로 맞섰던 이들에 대한 자격지심

이런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이 가슴 속 깊이 쌓이고 쌓여 있어서 쉽게 입을 열 수 없던 것이었습니다.

 

‘4.3은 그저 억울한 피해자의 역사가 아니라 불의에 맞선 당당한 저항의 역사’라고 목소리를 높이기에는

가슴 속 상처들이 너무도 깊고 깊다는 것을 알고

다시 한 번 그분들에게 머리를 숙일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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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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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했던 감귤 꽃이 지고

콩알만한 열매들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갓 태어난 갓난아이를 보듯이

사랑스럽고 조심스럽습니다.

 

“올해도 열심히 해볼 테니까

그저 잘 자라기만 바란다.”

 

 

 

(시와의 ‘작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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