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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7회 – 폭염의 한가운데서

 

 

 

1

 

감귤농사를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여름철 방제입니다.

여름철에는 각종 병해충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만큼 방제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하지만 이 더운 날씨에 방제복과 마스크와 장갑과 모자까지 중무장하고 약을 치는 일은 조금 각오를 하고 해야 하는 일입니다.

 

병충해 중에 가장 골치하픈 것이 응애입니다.

응애는 돋보기를 들이대야 겨우 보일 정도로 아주 작은 놈인데 감귤에는 아주 치명적인 피해를 주기 때문에 가장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죠.

더군다나 응애는 주로 잎사귀 뒷면에 서식하기 때문에 잎사귀를 앞뒤로 골고루 쳐야하기에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폭염이 절정에 이른 어느 날 응애가 발견됐습니다.

다음날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방제준비를 합니다.

새벽 5시 30분쯤 되니 나무 형체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돼서 방제를 시작합니다.

아침 7시쯤 되면서 햇살이 하우스 안으로 비쳐 들어옵니다.

방제는 아직 반도 못했는데 하우스 안의 온도는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하고 마음은 급해집니다.

오전 9시 몸이 지켜가기 시작하는데 약이 떨어져서 다시 채워 넣으면서 잠시 숨을 돌립니다.

온도계를 봤더니 하우스 안은 이미 40도 가까이 올라가고 있더군요.

남아있는 부분이 많지 않아 30분 만에 일을 끝내고 30분 정도 더 뒷정리를 한 뒤 깨끗하게 샤워를 합니다.

폭염 속에 4시간 넘게 약을 치다보면 몸은 녹초가 되지만 마음은 후련해집니다.

 

응애 방제를 하고 며칠 지나 다시 잎사귀를 살펴봅니다.

혹시 방제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살아남은 것들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때가 가장 긴장이 됩니다.

힘들게 방제를 했는데도 혹시라도 살아있는 것이 발견되면 다시 방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꼼꼼하게 잎사귀를 살펴야 하는데 불안한 제 마음은 자꾸 잎사귀를 건너뛰라고 부추깁니다.

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방제가 잘 된 것이라고 생각해버리고 싶은 마음과 원칙적으로 꼼꼼히 살펴 제대로 방제를 해야 한다는 마음이 격렬하게 대립을 하는 샘이죠.

 

마음속으로 격렬한 투쟁을 벌이며 사흘 동안 감귤나무 전체를 살펴봤더니

세 군데에서 살아있는 응애가 발견됐습니다.

다행인 것은 전반적으로 죽어있는 것들이 많이 발견됐기에 방제는 성공한 것으로 보여서

세 군데만 부분적으로 방제하는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이렇게 며칠에 걸쳐 긴장 속에 방제를 하고나서 병충해가 보이지 않으면 그제야 마음을 놓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병충해 피해가 보이기 시작해서 또 다시 전쟁을 벌여야 합니다.

 

 

2

 

뜨거운 여름날 오후

에어컨을 틀어놓고 침대에 누워 편안하게 영화를 보고 있었습니다.

영화는 그다지 재미가 없어서 더 볼까말까 고민하는데

가볍게 콧물이 나면서 몸이 살짝 불편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순간 냉방병이라는 것을 직감하고는

에어컨 온도를 높이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했습니다.

 

날씨가 덥고 습해지면서 몸이 힘들어 하기에 편하게 놔두었더니

그동안 방치해뒀던 몸이 경고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더위에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됐으니 몸과 마음을 좀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중단했던 운동을 조금씩 시작했고

새벽에는 짧게라도 명상을 해보려고 노력하고

컴퓨터만 보지 말고 가벼운 소설이라도 읽어보려고 해봅니다.

 

감귤은 무럭무럭 자라는 동시에 병충해 피해를 본 이파리들이 눈에 보이고

텃밭의 채소와 과일들은 서서히 수확량이 줄어들고 있고

긴 장마 동안 왕성하게 자랐던 주변 잡초들은 제초제로 정리를 했습니다.

이제 감귤 병충해 방제에 좀 더 신경 쓰면서 가지 묶기를 해야 하고

조금 있으면 텃밭을 정리해서 겨울작물을 심기위한 준비를 해야 하고

더워서 미뤄뒀던 시설보수작업도 하나씩 해나가야 합니다.

 

그동안 늘어졌던 몸과 마음을 다시 다독이면서

서서히 여름을 정리해나가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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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생네 부부가 찾아와서 모처럼 외식을 했습니다.

너무 더워서 멀리가지는 못하고 가까운 식당을 찾았습니다.

부둣가 근처에 있는 작고 오래된 식당이었습니다.

다섯 개 정도의 테이블이 있었는데 손님은 저희를 포함해서 여섯 명이 전부더군요.

그나마 저희를 뺀 나머지 분들은 나이가 지긋한 동네 단골인 듯 했습니다.

식당 한쪽 벽에는 카드기를 사용할 줄 몰라서 현금결제만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더군요.

팔십대로 보이는 부부가 운영을 하시고 계셨는데 두 분 다 불편한 다리를 절뚝거리시면서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리 많은 손님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주문을 하고 20분 가까이 기다려야 음식이 나왔습니다.

밑반찬은 부실했고 그나마 깍두기는 오래돼서 젓가락이 갈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전반적으로 그리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려운 식당이었는데

주문한 물회는 대접에 가득하니 푸짐하게 나와서 마음에 들더군요.

수저를 들고 물회를 한 입 접어 넣었는데

그 맛이 어릴 적 집에서 먹었던 맛 그대로였습니다.

칼로 다진 자리돔과 각종 야채들, 된장과 식초로 간을 하고, 마지막에 제피가루를 살짝 뿌려준 그 맛이 입안에서 돌아다니는데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채 서로의 맛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먹을수록 입맛을 돌게 하더군요.

부실해보이던 밑반찬도 막상 먹어보니 괜찮았습니다. 그래도 깍두기에는 젓가락이 가지는 않았지만...

동생네 내외도 말없이 먹기만 하면서 그릇을 싹 비워냈습니다.

밥을 다 먹고 계산을 하려고 보니 가격도 아주 저렴해서 너무 만족스러웠습니다.

우리가 밥을 먹는 동안 다른 손님이 더 오지 않아서 주인 내외분도 한쪽 테이블에서 점심을 같이 드시더군요.

식사를 하시는 두 분에게 진심으로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렸더니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주셨습니다.

 

10여 년 동안 이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늘어서 각종 식당들이 곳곳에 들어선 동네였는데

그 한쪽 구석에 초라한 행색으로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식당은

그저 두 분이 먹고살 수 있는 정도만 되면 괜찮다는 식으로 장사를 하고 있었고

음식들도 본인들이 먹는 것처럼 손님들에게도 먹을 만하게 내어주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레시피도, 친절한 서비스도, 뜨거운 입소문도 없었지만

밥을 먹고 나서는 발걸음에 편안함이 묻어났습니다.

저도 그렇게 욕심 없으면서도 기본은 충실하게 살아가야겠다고 괜시리 다짐해봤습니다.

 

 

 

(산울림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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