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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21회 – 지옥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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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밭에서 일하시는 분이 옥수수 몇 개를 주셨습니다.

더운데 홀로 일하시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텃밭에서 수확한 참외를 몇 번 드린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자신이 수확한 옥수수를 들고 오신 겁니다.

 

사실 저는 옥수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난 여름 열심히 땅을 일궈 첫 수확한 것을 들고 왔는데

거절할 수도 없어서 고맙다면 받아들었지만

어찌해야할지 잠시 고민을 했습니다.

몇 개 되지 않는 걸 누군가에게 다시 준다는 것도 좀 그렇고

정성스럽게 건네준 것을 몰래 버릴 수는 없고

사랑이가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할 수 없이 제가 먹기로 했습니다.

 

30분 동안 삶고 다시 30분 동안 알갱이를 일일이 때어낸 후 드레싱소스를 뿌렸더니

그런대로 괜찮은 밑반찬이 만들어졌습니다.

밥과 함께 먹어봤더니 담백하니 좋더군요.

보잘 것 없고 기호에도 맞지 않는 것이었지만

서로의 정을 이렇게 주고받는 기억이 참으로 오래간만이어서

기분은 더없이 좋았습니다.

 

 

2

 

더위의 기세는 확실히 꺾였지만

아직도 30도를 넘는 더위와 열대야는 여전해서

혼자 가을로 달려갔던 마음만 괜히 지쳐버리는 요즘입니다.

 

이런 날 하우스에 들어가 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있으면

이런저런 잡념들이 머릿속에서 유별나게 활개를 칩니다.

사람들과 부딪힐 일도 별로 없고

주변에 특별한 일도 없는 요즘이어서

머릿속을 채울만한 것들이 별로 없는데도

부지런한 제 마음은 과거의 것들을 일일이 찾아내서

여기저지 펼쳐놓기에 바쁩니다.

 

각종 쓰레기들을 제 밭 주변에 버리면서 이런저런 사소한 문제로 신경을 쓰이게 만드는 분

가끔씩 농업용수 문제로 연락을 할 때마다 황당하게 내게 짜증을 냈던 마을 이장

밤에 술 먹고 떠들며 잠을 깨게 만드는 관광객들

농기계 수리로 부를 때마다 폭리를 취하면서도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지 않을 때는 얼렁뚱땅 넘어가 버리는 수리업자

이것저것 나눌 것이 있으면 정성스럽게 챙겨왔지만 정작 소소한 나의 부탁에는 뜨뜻미지근하기만 한 친척

 

해결된 문제도 있고

지나 버려서 신경 꺼도 되는 문제도 있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도 되는 문제도 있지만

제 마음은 그런 것에 상관없이 열심히 긁어모아서 펼쳐놓기 바빴습니다.

 

이럴 때보면 제 마음이 하는 일은 참으로 편향됐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작은 수확물이라도 나누며 마음을 전하는 분도 있고

힘든 병치레 와중에 서로의 안부를 다정하게 주고받는 분도 있고

묵묵하게 서로 도움이 되어주려는 가족도 있고

항상 제 주변을 서성이면서 마음의 의지처가 돼주는 사랑이도 있는데

왜 하필 불편한 것들만 골라서 끄집어내는지 모르겠습니다.

 

저한테 문제가 있는 걸까요?

세상이 험해서 그런 걸까요?

인간이 원래 그런 걸까요?

 

 

3

 

미쳐버린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사나워지는데

감정의 쓰레기를 꾹꾹 눌러가며 살아오던 이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해 여기저기서 칼 들고 설쳐대고 있고

경찰들은 잔득 겁을 주면서 거리에서 부랑자를 잡아들이고 있고

권력자들은 싸움판을 만드는 데만 정신이 팔려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마음의 의지처가 돼야 할 종교는 코로나 때 밑천을 다 까먹어서 앙상한 뼈만 남았고

“당신들 정신차려요!”라며 목소리를 높여야할 사회단체들은 단물 빨아먹다가 약에 중독되어 비실비실해져 버렸으니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판에서 그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는 이들은 스스로 알아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올 여름이 가장 서늘한 여름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예견에도

세상은 쉽게 바뀔 것 같지 않고

살아가야할 삶은 아직도 막막하기만 한데

주위의 시한폭탄들은 곳곳에서 재깍재깍거리고 있지만

권력자든 정신병자든 그 모두가 살아남고자 발버둥치고 있는 이 꼬락서니를 보면

이곳이 지옥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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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https://blog.naver.com/gyurina/130390799)

 

 

 

(브로콜리너마저의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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