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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농의 샘, 보는 이의 마음까지 경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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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BBC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실제 예수의 얼굴을 그려봤는데 사진과 같은 모습이 나왔다고 합니다.
법의학자, 인류학자,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모여서
성경의 기록들, 당시 이스라엘 갈릴리 지방 셈족의 유골, 고대 시리아의 프레스코화 등을 분석해서 컴퓨터로 이미지를 합성해봤더니 이런 모습이 나왔다네요.
예수는 하층 노동자인 목수인데다가 몇 년 동안 유랑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키 153센티미터에 몸무게 50킬로그램 정도의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투박한 인상일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영화나 그림으로 알고 있던 큰 키, 하얀 피부, 긴 머리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어떻게 보면 중동의 무슬림하고 인상이 비슷하기까지 하니 기독교인들에게는 신성모독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역사는 해석의 학문이고 종교는 믿음의 영역이기 때문에 예수의 모습을 어떻게 상상하느냐 하는 것은 자신의 해석과 믿음에 따라 다르겠지요.
무신론자인데다가 허접한 농부로 살아가고 있는 저는 후광이 비치는 멋있는 예수보다는 투박한 노동자의 모습을 가진 예수가 더 친근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 모습이라면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이주노동자들 속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2
옆 밭에서 홀로 밭을 일구고 있는 중국인 분이 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는데 기계는 쓰지 않고 간단한 농기구만으로 넓은 밭을 매일 조금씩 일구고 있습니다.
30도를 넘는 날씨에도 패랭이 하나 쓰고 묵묵히 일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텃밭에서 수확한 참외를 두 개 드렸습니다.
그 동안 별다른 인사 없이 멀리서 바라보며 지내다가 참외를 드리러 가까이 갔더니 생각 외로 젊은 분이었습니다.
참외를 드렸더니 고마워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게 인사를 하더군요.
다음 날 그 분이 하우스로 찾아와 조그만 종이가방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조금은 어눌한 한국말로 “이웃이니까 친하게 지냈으면 합니다”고 하더군요.
가방에는 보이차가 담겨있었습니다.
안쓰러운 마음에 참외 두 개 건넸던 것뿐인데 바로 이렇게 답례를 받고 보니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선한 인상의 얼굴에 깍듯한 자세로 내미는 선물을 거절할 수 없어서 받았습니다.
참외 두 개가 그분에게는 소중한 선물로 다가갔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그분이 건네준 보이차가 부담스러운 답례가 아닌 소중한 선물로 다가오더군요.
이런 짧은 인사치례로 돈독한 정이 쌓이는 것은 아니겠지만
소중한 마음이 그렇게 오고 갈수 있어서 기분은 좋았습니다.
3
지난 방송에서 모처럼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봤습니다만
역시나
세상은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았고
저의 외침은 무더운 열기 속으로 공허하게 사라져버렸습니다.
10년 넘게 읽는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수없이 반복되는 현실입니다.
그런 현실에 좌절도 하고 체념도 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멀리 있는 세상은 그렇게 차가웠지만
가까이 있는 현실은 생각보다 따뜻합니다.
굳이 세상을 향해 뭔가를 해보려하지 말고
지금 이곳에 만족하며 편안하게 살아가고 싶어지는 이유입니다.
보이차를 마시며 내면의 예수를 그려보는 것이 천국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사이코페스 정신병자들은 곳곳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널려있습니다.
그들은 저의 과거이자 분신이기도 합니다.
그들을 외면할 수 없기에 세상을 향한 눈과 귀를 닫을 수도 없습니다.
제가 아무리 지랄발광을 해도
세상은 끄떡하지 않을 것이고
제 목소리는 공허함에 묻혀버리겠지만
그 지랄발광을 멈출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읽는 라디오 다시!’는
힘이 빠져서 더 이상 외칠 수 없을 때까지
그 무의미한 지랄발광을 계속 해댈 겁니다.
‘읽는 라디오 다시!’의 주제곡 들으면서 오늘 방송 마치겠습니다.
류금신의 ‘또 다시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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