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다시! 29회 – “나 돌아갈래!”

 

 

 

1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근처에 사시는 분이 생선을 갖다 주셨습니다.

길에서 마주치면 인사하고

텃밭에 채소가 많으면 조금 나눠먹고

사랑이 보면 간식거리 건네주고

그러면서 지내는 분인데

일부러 생선을 사서 갖다 주신 겁니다.

보아하니 오일장에 갔다가 일부러 저를 위해 챙겨 오신 것 같았습니다.

요즘은 텃밭의 채소들이 자라고 있는 중이라서 답례로 드릴 것도 딱히 없어서

고맙고 미안하고 그렇더군요.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마음이 오고가는 일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시골에서 살고 있다고 해서 이렇게 마음이 오고가는 일이 흔하지는 않습니다.

서로의 계산과 이해관계 속에 적당히 거리 두며 살아가기는 이곳도 마찬가지여서

남에게 피해나 주지 않고 살아가려 할 뿐이죠.

더군다나 저는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외진 곳에 떨어져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인정이 얼마나 가슴 따뜻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더 고맙고 미안할 뿐이죠.

 

마을에서 인사를 하며 지낸지는 몇 년이 되지만

그분의 이름도 모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전혀 모릅니다.

그냥 마을에서 인사하면서 편하게 지내는 사이일 뿐입니다.

그분이 지금 암 투병으로 고생하고 계시지만

가끔 만나면 안부만 물어보고

텃밭에 채소가 있으면 조금 나눠줄 뿐

어떤 도움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몇 배는 더 고맙고 미안했습니다.

 

그렇다고 앞으로 그분과의 관계가 특별히 친밀해지거나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그저 길에서 마주치면 인사하고

꼬리치는 사랑이를 위해 간식을 건네줄 것이고

텃밭에 채소가 있으면 나누며 지내겠죠.

그때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은 전해지리라 생각합니다.

 

 

2

 

사랑이와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근처 감귤 선과장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요즘 선과장이 바쁘다보니 선과장을 지킬 개를 데려다 놓은 것 같았습니다.

사랑이도 개 짖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다가 그냥 가던 길을 가더군요.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선과장 근처를 지나는데 역시 개 짖는 소리가 들렸고

사랑이도 관심이 있어 하는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다가갔습니다.

사랑이를 보며 짖던 개가

사랑이가 다가오니 짖는 걸 멈추고 꼬리를 올려 세우더군요.

긴장해서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니 아직 한참 어린 강아지였습니다.

사랑이가 꼬리를 흔들며 조심스럽게 다가가니

긴장했던 강아지도 조심스럽게 긴장을 풀고 꼬리를 흔들더군요.

그렇게 잠시 서로의 냄새를 맡으며 신뢰를 쌓았습니다.

 

다음날부터 산책하는 사랑이를 보면 더 이상 짖지 않고

앞발을 들고 서서 사랑이를 더 자세히 보려고 하더군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가까이 다가갔더니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가만히 사랑이를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사랑이도 그런 강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돌아섰지요.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낯선 곳으로 오게 된 강아지

그 인연이 얼마다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선과장이 운영되는 겨울 동안은 이곳에 있을 것 같으니

그동안만이라도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 박하사탕에서 설경구가 달려오는 기차를 마주하면서

“나 돌아갈래!”라고 외쳤던 유명한 장면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영화는 그가 살아왔던 삶을 한발자국씩 뒤로 돌아보면서

그의 삶이 어떻게 망가져왔는지를 찬찬하게 보여주고

마지막에 가장 순수했던 20대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납니다.

처음에 이 영화를 봤을 때

먹먹하면서도 가해자들과 화해를 얘기하는 것 같아서 불편하기도 했었는데

20여 년이 지나 문득 이 영화가 떠오른 이유는

“나 돌아갈래!”라는 한마디 때문이었습니다.

 

고향에 내려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몸과 마음의 상처들이 아물어져갔고

이제는 더없이 편안한 나날을 만끽하고 있지만

문득문득 과거의 추한 기억들이 떠올라 마음을 괴롭힐 때면

나의 죗값을 다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분명 저에게도 순수하고 밝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동안 찌든 때를 조금씩 벗겨낸다고 해봤지만

원죄처럼 못이 박혀버린 악행들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할 때면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냥 지금의 제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합니다.

 

이렇게

편안한 나날 속에

악행의 죗값도 치르며

욕심 없는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그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를 바라봐줄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 박하사탕 Main Title I)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